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5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58화(558/599)
[558화] 정정당당신앙심이 너무 굳건한 것도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마저 속일 수 있는 힘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 하나만으로 데오니 성녀님조차 저런 반응을 보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성녀님에게만 말했기에 망정이지, 생각 없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퍼지며 혼란이 가중되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 없이 빠르게 성녀님의 혼란을 수습하고 나니, 그 뒤로는 이해가 빨랐다.
“의외로… 할 만하겠군요.”
군대 단위로 착각물을 찍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성녀님의 말마따나 쏘르로 향하는 동안 깔아 놓은 밑밥이 너무 많아서 퍼지는 소문만 적절하게 조합하면 꽤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수준의 상황이었다.
렌기에 에파가시에라로 향하는 동안 응징의 성자라는 이명을 얻어가며 줄줄이 업적을 세우고, 침식체의 힘 앞에 일방적으로 무너져야 했던 도시를 구해 냈을 뿐만 아니라 그 침식체마저 순살瞬殺시킨 뒤 주둔해 있던 마왕군이 상부에 보고할 틈조차 주지 않고 괴멸시켰다.
많고 많은 도시 중 하필 수전노 에밋과 당대 리베어 백작 간의 금전 관계가 틀어진 리베어로 향해 그를 매수하고는 내성에서부터 외성까지 거꾸로 뚫어 버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수주 동안 모습을 감추는가 싶었더니 대뜸 수인들의 영역을 가로 질러 하필 라이토르에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수인들의 영역에 똬리를 틀고 있던 용을 죽여 버린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라이토르에서, 어쩌면 마왕의 히든카드였을지도 모르는 소하 시노어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 와중에 교단의 손실은 전무한 수준. 단순히 병력이 되는 인원만 이끌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온갖 민간인들이 다 같이 움직이는데도 이런 결과다.
마왕이 진짜 회귀자라면 집무실에 있던 물건들이 죄다 가루가 되고도 남을 최악의 사건만 줄줄이 터진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의외로 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진즉에 지나친 거 같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혹에 눈이 멀어 두려움에 떨었던 스스로가 부끄럽기 그지없군요.”
마왕은 우리가 왜 이런 행보를 보인 것인지 미치도록 궁금할 것이다. 어디선가 정보가 새어 나간 것인지, 아니면 철저한 우연에 기인한 결과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회귀가 발생한 것인지.
“만에 하나 마왕이 회귀자가 아니라 하더라도이득이죠. 그럴 경우 결국 내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우리가 어디 도시 같은 곳에 가만히 짱박혀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지금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는 집단인지라 마왕이 원하는 정보는 오로지 우리 내부에만 존재한다. 신앙이라는 구심점이 가져다준 근본있는 이점이었다.
죄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떠벌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럴 경우 어쭙잖은 거짓말이 들통 날 가능성만 늘어나겠지.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럴 줄 알고 있었다더라.
그거면 충분하다.
“예로부터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건 근본있는 가르침이었죠. 가만히 있어도 미칠 노릇일 텐데 회귀한 게 자신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정보까지 들어가면 꼴이 아주 볼 만 할 겁니다.”
그리 말하며 웃어 보이자, 성녀님이 묘한 미소로 적당히 호응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웃는 게 악당같습니다.”
“이런.”
내 주적이 마왕이라는 게 기정사실에 가까운 상황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졸지에 좀 더 용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게 된 나를 앞에 두고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던 성녀님은, 이내 헛웃음 비슷한 것 고개를 내저으셨다.
“정말 놀랍지만… 갈피를 잡고 나니 주변의 많은 상황들이 저희를 도와주는군요. 이 안건은 쏘르 영주가 적격입니다.”
“그 변덕이 죽끓듯한다는 친구 말입니까?”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군요.”
지금까지 꽁꽁 싸매고 있었던 교단 쪽에서부터 갑자기 소문이 퍼지거나 다른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의심할 테지만, 소문의 근원지가 그라면 대부분의 귀족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고도 남을 거라는 것이 쏘르 영주에 대한 성녀님의 평가였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면 안 될 소리를 하는 건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세지도 않을 정도죠. 가끔씩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 거 맞습니까?”
어째서 계획의 완성을 위한 완벽한 인재인 것처럼 말하는 설명을 들을 때마다 신뢰도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것일까.
그런 내 불신을 이해하는 것인지 성녀님도 떨떠름하게 웃어 보였다.
“괜찮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긴 합니다.”
“신앙심 때문에?”
“신앙심 때문에.”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긴 했지만, 쏘르 영주가 아니라 덤덤하면서도 확신을 담아 말씀하는 성녀님의 태도를 믿기로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정리된 이후로는 다시금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성녀님은 지휘부 내에서도 확실하게 입단속이 가능한 사람들을 엄선하여 자문을 구하고, 사전 준비를 함과 동시에 더 이상 마왕군의 순찰대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반발은 없었다. 오히려 곧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하다 보니 불필요한 경계를 하느라 진군 속도가 늦춰지는 것보단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여러모로 바빠진 성녀님과 달리 내가 하는 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매일 같이 몸 상태를 체크하고, 에밋의 수업을 받는다. 사흘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는 재활을 위해 칼 칸시와의 대련도 일과에 추가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신뢰할 수 있는 집단 지성이 모여 회의를 내린 끝에 오히려 그러는 편이 나중에 소문을 키우기에 좋다고 결론을 내놨기 때문이다. 내가 전생자라는 이야기까지는 꺼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줬기에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자네는 여러모로 용사같지 않단 말이지.”
그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로 분류되어 우리의 계획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의견까지 어필했던 에밋은 열심히 수업 받던 나를 보며 대뜸 그리 말했다.
“저만한 용사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직접 신께 말씀도 듣고 대화도 나누고 업적도 세웠으며 성검도 만들었으니 자화자찬은 아니었다.
“그걸 당당히 말할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용사보다는 일단 들이 박고 보는 광전사인데 결과가 좋았다, 라는 느낌 아니겠나.”
하지만 에밋은 내 뚱한 대답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쿨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마법사라 그런가? 비겁하기 그지없는 팩트가 아주 묵직했다.
이에 내가 불만스럽다는 듯 코를 찡그리자 에밋은 웃음을 터트리며 마법을 취소하고 지팡이를 거뒀다. 휴식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사실 생각을 정리하다가 너무 제멋대로 축약해서 말한 것에 불과한 것이지,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아니야. 내 말은… 용사라는 존재들은 항상 목표가 명확했거든. 마왕이라든가, 악신이라든가 혹은 초월적인 힘을 지닌 외계의 존재라든가. 종족불문, 종교불문 모두가 그렇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러라고 내려주신 힘인데.”
“맞는 말이긴 한데, 중요한 내용은 그 다음일세. 그런 용사의 목표는 항상 하나였어. 마치 신들이 쥐고 있던 활시위에서 벗어나 목표를 날아가는 한 발의 화살처럼 하나의 목표물에만 명중하지.”
잠깐의 쉬는 시간을 틈타 잡담을 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자신의 외투를 불러와 의자처럼 앉는 에밋을 보며 나도 맞은편에 주저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가 하는 것처럼 따라 하고 싶었지만, 저게 마도구라서 쉽게 되는 거지 내가 아무 천 쪼가리나 붙잡고 똑같이 따라 하려면 기운만 더 빠지더라고.
처음엔 뭣도 모르고 따라 했다가 아무 설명 안 해준 에밋에게 당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했었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도 벌써 까마득히 먼 일처럼 느껴진다.
“어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가 이 문제를 바라볼 땐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전에 마왕이 회귀하기 전의 세상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네. 제국의 용사는 마왕의 대척점이었다고 치고, 그렇다면 어째서인지 지금도 용사의 자질이 있는 듯한 소하 시노어는 누구의 대척점이었을까?”
“…어……”
듣고 보니 그랬다. 내가 주장했던 가설이 들어맞으려면 소하 시노어가 용사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에파가께서 당신의 아이들을 위협하는 무언가를 느끼고, 이를 막기 위해 소하를 용사로 점지했겠지. 결국 전부 가정에 불과하지만, 그 세상의 소하는 나름 용사의 일을 잘 하지 않았을까 싶더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너무 유능해서 영입하고 싶은 적으로 여겨졌으니 이곳에 있는 거 아니겠나. 나였으면 어중간한 적은 회귀와 동시에 미리 죽였을 걸세.”
이번에도 듣다 보니 맞는 말 같다. 적이었다가 아군이 되면 약해지는 것이 국룰이라고는 해도, 가능하다면 시도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겠지.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일세. 소하 시노어가 아예 용사의 힘을 잃었다면 모르겠지만… 자네의 말대로라면 그는 아직 용사의 자질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지. 어쩌면 세상을 뒤집는 정체불명의 권능이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이거나, 모든 신들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일방적이지 않은 증거일수도 있는 현상이라고 여기지만, 지금 중요한 건 마신께서 ‘목적’을 가지고 부여한 ‘힘’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일세.”
에밋의 지팡이 끝이 흙바닥을 긁으며 글씨를 새긴다.
지크프리트 옆에는 화살표와 마왕을, 소하 시노어의 옆에는 이전 세상의 흑막이라는 글자를 새긴 그의 지팡이가 이번엔 내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엘드미아 에가 라는 이름 옆에는 물음표만 새겨졌다.
“얼마나 많은 강제력을 지니고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용사의 존재 의의를 따져볼 경우 결국 소하 시노어는 어떤 형태로든 용사로서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가설일세.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자네는 비록 에파가께서 직접 힘을 부여해주셨다고 한들 이 말도 안되는 규모의 사건을 일으킨 사특한 존재의 대척점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지.”
그래서 그리 말했다네. 용사 같지 않다고.
나에 대한 내용은 정말 많이 배제하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밋의 추측은 날카로웠다. 에파가 님께서도 나를 전생시키며 용사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 하셨던 탓에 더욱 신빙성 있는 추측으로 들린다.
“격이 높은 용이나 장수하는 엘프, 수많은 위업 끝에 반신의 영역에 도달하고 무언가 통달한 이들이 남긴 어록 중 ‘세상의 균형’이라는 게 있다네. 어쩌면 자네라는 존재는 ‘겨우’ 용사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소하 시노어의 대척점이던 존재가 세상의 섭리를 과도하게 비틀어 버렸기에 그 ‘균형’을 맞추고자 내세워진 무언가가 아닐까?”
아실리에의 고향에서 대장장이 뤼밍스에게 들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을 입에 담던 에밋은, 이내 자신의 멋들어진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쨌든 간에. 우리는 이 가설을 기반으로 마왕을 한 번 더 휘저을 수 있지 않을까?”
한참 진중하던 앞의 내용과 달리, 에밋의 입가엔 아주 짙은 미소가 깔려 있다. 방금 전까지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던 터라 잠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에밋이 한 말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고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드러나지 않는 배후까지 알고 있다는 상황을 만드는 거군요?”
“사실 그런 초월적인 배후가 없더라도, 마왕군의 사기를 깎는 데에 충분한 역할을 하겠지. 마왕이 이 추측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소하 시노어조차 뒤틀린 술식으로 점칠된 폭발 마법으로 보일걸세.”
씨발 세상에.
과연 마법사는 마법사다.
“이건 비싸게 쳐드리겠습니다.”
“역시 말이 잘 통한다니까. 일 하는 보람이 있어.”
비겁하게 팩트로만 후드려 패는 줄 알았더니 정정당당한 선동과 날조에도 일가견이 있는 에밋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