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59)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59화(559/599)
[559화] 정정당당에밋과 나눈 이야기를 더욱 심도있고 면밀히 구체화하는 동안, 별도의 연락책을 통해 미리 쏘르에 우리의 도착을 통보하는 과정을 제외하면 무탈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쏘르까지 이어지는 게이트를 제공하며 우리에게 합류하기로 결심한 도시는 행정적인 관리를 목적으로 쏘르 남부 징검다리 도시라고 불릴 뿐, 딱히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려 게이트가 생성된, 그것도 적지 않은 규모의 도시인데도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마족령에는 이런 도시가 굉장히 흔하다는 게 데오니 성녀님의 설명이었다.
“게이트가 가져다준 편의에서 비롯된 범죄들이 대두된 건 마족령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최근입니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건 200여 년이 채 지나지 않았고,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건 그 뒤로도 10년은 더 지난 다음이었죠.”
마족령 전체가 연결될 수 있는 편의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보안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그 편의성에 제약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결과, 사람이 모인 곳에 게이트가 설치되는 게 아니라 일단 게이트부터 설치하고 관문처럼 쓰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도시들의 공통점이 바로 게이트가 중심에 위치한다는 점이죠. 게이트에 가까운 게 편하니까요.”
“쏘르도 그렇게 새워진 겁니까?”
“아뇨, 쏘르는 전술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겁니다. 투입된 병력이 어디로든 빠르게 이동하도록 말이죠.”
처음엔 게이트만 지키기 위해 파견된 병력들이라도 있으니 사람들이 몰리고, 몰리니까 상권이 형성되고, 그렇게 점차 커지면서 마을 혹은 도시가 된다.
그런 도시들을 분류하는 명칭이 ‘징검다리’였다.
“사실 이렇게 도시로 자리 잡는 경우는 드뭅니다. 사람이 살만한 환경을 고려해서 게이트를 세운 게 아니라 방범防犯이 목적이었으니까요. 대부분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만한 노력과 조건 끝에 기껏 도시화를 이룬 곳의 시민들임에도 교단을 따라 움직인다라. 영원히 떠나는 게 아닐지라도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텐데 여러모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성녀님께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여 가볍게 동의를 표하셨다.
느닷없이 도시의 역사에 대한 흥미가 샘솟아 이런 대화를 나눈 건 아니다. 아무런 분쟁없이 도시로 진입했다고는 하나,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 이곳에서 합류하는 이들을 우리 체계에 맞게 분류하여 편성할 필요가 있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을 뿐.
원래는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어야 하는 작업이었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취한 연락에 맞춰 시민들이 준비를 다 끝낸 상태였기에 적당히 인간 테트리스를 하며 편성을 조정하는 식으로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도시를 가로질러 게이트 앞에 선 채 세 시간 정도 대화했을까.
저 멀리서부터 말을 타고 다가온 라이토르 백작이 피로 가득한 얼굴을 다잡으며 말했다.
“성녀님. 곧 편성이 완료될 예정입니다. 나팔수가 보내는 신호에 맞춰 게이트가 개방될 테니, 쏘르 영주와 이야기를 마치신 뒤 말씀을 전달해주시면 됩니다.”
“빠르군요.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요?”
“네, 대부분의 문제는 거주민들이 알아서 해결한 상태였습니다.”
식량, 짐, 이동 수단 등등 따로 지정해 줘도 문제가 생기는 영역까지 알아서 잘 준비했다는 말과 함께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를 들은 우리는, 이어지는 신호에 맞춰 개방되기 시작하는 게이트를 향해 몸을 돌렸…
“대체 왜 매번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움찔거리시는 겁니까?”
“당한 게 많아서.”
아무리 이상하다는 듯 바라봐도 별수 없다. 한동안은 나을 거 같질 않으니.
그렇게 주변의 눈총을 받아 가며 최소한의 호위병력과 성녀님의 뒤를 따라 들어선 게이트 너머는 다행스럽게도 요새 도시 쏘르가 맞았다.
나야 그곳이 쏘르인지 다른 어딘가인지 알 방법이 없었지만, 눈에 띄게 안심하는 성녀님과 더불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태도 덕분에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야, 이렇게 또 뵙게 되는군요 성녀님! 에파가 님의 축복이 함께 하심이 분명합니다! 아, 성녀님께는 너무 당연한 말이려나요?”
두터운 털 코트에 주렁주렁 달린 장식. 그것만으로도 심히 화려한데 그에 질세라 온몸에도 장신구를 착용해, 귀금속이 몸 위에 널려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는 젊은 남자가 쏘르 영주라는 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그의 복장이 화려하거나 가장 먼저 말을 걸어서가 아니라, 삭막하기 그지없는 석재 건축물과 견고해 보이는 갑옷을 무미건조하게 두른 병사들 사이에서 혼자 그러고 있어서.
“여전하군요. 쏘르 영주.”
“여전하다뇨? 이거 새로 추가한 귀걸이입니다만.”
정말 예전에도 저런 모습이었는지 태연하기 그지없는 성녀님과 달리 난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제 귀에 걸린 대여섯 개의 귀걸이 중 하나를 가리키는 모습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믿을 만한 신앙심을 지닌 영주라고는 쥐뿔도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 이분이 소문의 용사님이시겠…는데, 소문처럼 막 마족 둘을 합친 듯한 덩치는 아니네요. 아쉬워라.”
아니 또 그딴 괴소문이 돈다고?
한층 더 표정 관리가 힘들어지려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온 쏘르 영주는 성녀님에게 보여줬던 것보다도 정중하게 예를 취하며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종족이 다름에도 마신님의 뜻을 받들어 사특한 무리들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하려는 용사님의 무용담은 익히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곳 요새 도시 쏘르의 영주, 델 쏘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자기소개는 이상했다.
델 라이토르라든가 델 쏘르는 이름 뒤에 붙는 지역명에 불과하다. 라이토르 백작의 경우를 놓고 보면, 파시로사 우르 세피아 델 라이토르 중 파시로사가 이름이고 나머지는 미들 네임으로 조상이나 부모님 중 한 분의 성함을 넣은 것이다.
그걸 간단하게 줄이면 결국 ‘라이토르의 파시로사’ 라는 말이 된다. 지금 쏘르 영주는 앞에 있어야 하는 이름을 다 제외해 버렸으니, 자신을 ‘쏘르의’ 라고 소개한 것과 다름없다.
“존함을 다 말하지 않으신 거 같습니다만.”
이런 부분까지 괴짜 기질이 있는 건가 싶어서 조심스레 지적했으나 돌아오는 건 미소와 함께 짧은 고개짓이었다.
“하하하, 아뇨. 이게 맞습니다. 저는 이름을 버렸으니까요.”
뿔까지 온갖 장식으로 빛나는 쏘르 영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대답과 함께 허리를 쭉 펴더니 방금 보여줬던 예법은 온데간데없이 악수를 요청했다.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개요를 읽어보니 아주 흥미롭더군요. 이렇게 뵙자마자 저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생겨 참으로 기쁩니다.”
악수를 위해 내 손을 거의 강탈당하다시피 했지만 불쾌감보다는 얼떨떨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무한히 이어질 것만 같은 강렬한 악수를 끊은 것은 우리 곁으로 다가온 데오니 성녀님이었다.
“인사는 나중에 천천히 나눌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은 주변을 개방하고 징검다리에 있는 사람들을 받을 준비부터 하십시오.”
“당연히 모든 준비를 다 해 두고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성녀님께서는 그저 사람을 보내 게이트를 넘어 오라는 말씀만 전해주시면 됩니다. 우선은… 두 분께서 쉴 공간부터 안내해드리도록 하죠!”
내 손을 놓으며 두 손을 활짝 피고 얼굴도 활짝 웃어 보인 쏘르 영주가 가볍게 박수를 치자 갑옷 입은 쏘르의 병사들 사이로 차분한 미소를 짓는 메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 역시 이상하다. 인족이나 마족이나 메이드는 웃지 않아야 한다.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성녀님이 먼저 조용히 말씀하셨기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딱히 심각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뒤에서 여전히 시끄러운 쏘르 영주 뿐만 아니라 메이드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성녀님의 입이 열렸다.
“쏘르 영주의 가문은 전대 마왕을 섬겼습니다. 워낙 유명한 충신 가문인지라, 반란을 통해 마왕이 된 현 마왕의 수하로 들어간다고 한들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다짜고짜 시작된 이야기였음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표정 관리를 못한 게 그대로 티가 났는지, 흘깃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던 성녀님이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맞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마왕 밑으로 들어갈 생각 따위 없는 자들이었지만, 가문과 도시 그리고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숙이려고 했습니다. 허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들은 그간의 충성이 너무나도 굳건하여 무조건적인 숙청이라는 선택지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름을 버린 자. 그럼에도 쏘르의 영주로 군림하는 자.
“그런 마왕의 눈에 들기 위해 쏘르 영주는 전대 쏘르 영주를 비롯한 측근과 가족들을 제 손으로 직접 숙청하고 그 목을 마왕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말이죠.”
쏘르의 패륜아.
세간에서 쏘르 영주를 부르는 멸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