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6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61화(561/599)
[561화] 정정당당쏘르 영주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도시에 들어선 교단의 인파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도시 사람들의 환호성도 적당히 잦아든 뒤였다.
“봐주십시오! 여러분께서 도착할 때까지 참지 못하고 제가 세워둔 계획안입니다!”
양손 한가득 서류 더미를 든 채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몸에는 그새 보지 못한 장신구 몇 개가 더 추가되어 있었다.
자기 방에 가서 장신구 몇 개를 더 달았다고 하기엔 여러모로 미묘한 상황이다. 아무래도 우리를 따라 이동하던 민간인들에게서 구매한 것 같아 잠깐 바라보고 있었더니, 내 시선을 눈치챈 쏘르 영주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류 더미는 탁자 위에 내동댕이 치다시피 하며 활기차게 말했다.
“과연 용사님이시군요! 그 짧은 사이 제가 차고 있는 장신구를 파악하시고, 새로 추가된 것을 정확히 짚어내시다니! 뛰어난 안목과 관찰력이십니다! 교단을 따라 이동하는 신도분들 중 좋은 물건을 지닌 분이 계시기에 적정가로 구매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솔직히 놀랐다. 단순 지레짐작이라고 하기엔 내가 장신구를 보고 있다는 걸 정확하게 캐치한 듯했으니까.
그냥 뚫어져라 쳐다본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시선을 분산시키며 봤는데 그걸 눈치채다니, 덕분에 쏘르 영주가 숨겨 놓은 패가 많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기존의 장신구들과 맞지 않은 듯하면서도… 묘한 균형감이 느껴지는군요. 미적 감각이 남다르신 건 물론이거니와 운도 좋으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넘어가려다가 립서비스를 가장한 미끼를 던져 보았다.
“이거 기쁘기 그지없군요! 설마 용사님께 제 미적 감각을 인정받는 기회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죠!”
오늘도 오가토르프 가문에서 일하면서 배워온 잡지식이 다시 한번 빛날 때였다.
사실 장신구라는 게 나라별로 혹은 종족별로 만드는 법에도 차이가 있고 중시하는 부분도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이 세계에는 엄연히 그런 제작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드워프들이 존재하는 탓에 고가치 장신구의 조건으로 요구되는 절대적인 기준은 얼추 비슷한 감이 있다.
“과찬이십니다. 허나… 긴 여행길에 지치고 수중의 돈이 부족해진 이들이 너무 과한 가격에 팔진 않았을까 우려되는군요.”
그 많은 지식의 일부를 최대한 열심히 터득했던 내 관점에서 저 장신구들을 봤을 때, 다른 것들도 대부분 비슷하지만 이번에 새로 추가 된 세 개의 장신구는 그냥 평민들 결혼 예물에 불과한 수준이다.
옷에 추가 된 고정핀은 잘해봐야 은화 십수 개, 반지는 스무 개 남짓, 뿔 끝에 끼우듯이 걸린 물건은… 다섯 개 언저리?
“하하하! 걱정하지 마시지요. 저 델 쏘르, 영주가 되기 이전부터 이런 귀중한 장신구에는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이 반지는 금화 한 개라는 아주 안정적인 가격으로 구매했죠.”
마력시에 잡히는 것도 없으니 마도구조차 아닌 물건을 얼마에 구매했을지 궁금해서 슬쩍 운을 떼자, 쏘르 영주는 관심사가 언급되어 흥분한 아이처럼 설명을 이어 나간다.
그 모습이 마치 심각한 일을 목전에 두고 한눈을 파는 경박함을 흉내 내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집중하여 그의 행동을 살펴보게 됐다.
“나중에 두 배, 세 배의 가치를 지니게 됐을 때 팔 물건들입니다. 몇 개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서 품위 유지에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과연, 투자라는 것이군요. 혹시 다른 장신구들도 그렇게 구하게 되신 건가요?”
“물론입니다! 이건…”
하하하 웃으며 데오니 성녀님의 도끼눈조차 무시하고 속사포처럼 말하는 쏘르 영주 앞에서, 나는 그와 비슷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쏘르 영주는 꿈에도 생각 못 할 것이다. 자신이 귀중품을 구매할 때 측정하는 가격 기준이 1.5배에서 약 2배 사이라는 사실을 내가 눈치챘다는 것을.
당연한 일이다. 어느 용사가 보석이랑 장신구 가치 보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우겠어? 당장 그런 물건들을 주로 사용하는 귀족들조차 장신구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들을 직접 비교해가며 감탄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은 그저 카탈로그처럼 부류되는 유행 패턴이나 유명한 장인의 특징을 암기하고 다니기에 비싼 상품을 눈치챌 뿐이다.
그런 귀찮고 손 많이 가는 일은 언제나 고용주가 아닌 사용인이 하는 법이다.
그게 바로 나였지.
“흠, 흠. 두 분이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매우 기쁘지만 지금은 좀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 같군요. 쏘르 영주? 이 문서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이런, 너무 신나서 그만 결례를. 나머지 이야기는 이걸 다 말씀드린 다음에 이어가도록 하죠.”
경박하고, 경솔한 ‘척’ 한다.
겨우 장신구 하나로 확신을 가지게 될 줄 몰랐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우선 이 작전의 핵심이 되는 인물은 저희 인근에서 작은 영지를 관리하는 맥니 남작이라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저희에게 동조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이쪽의 정보를 마왕군에게 넘기는 첩자 노릇을 하고 있거든요.”
이어지는 설명은 여러모로 우스웠다. 분명 작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일이지만, 정작 그 내용 대부분은 첩자로 의심되거나 첩자인 자에게 허언과 자기 과시를 이어 나가는 것뿐이었으니까.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듯하면서 실제로는 그게 최선인 오묘함. 쏘르 영주는 평범하게 말하면 그냥 넘어갈 내용에 굳이 불신감을 심어넣는 재주가 아주 탁월했다.
짐짓 허술해 보이는 작전과 달리 목표들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이나 첩자라 여기게 된 근거들은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괴리감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관련된 내용을 질문하면 어버버 거리는 ‘척’하면서 적힌 대로라고 둘러대는 시늉을 한다.
마치 자기는 한 게 아무것도 없고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알아낸 걸 헛소리처럼 떠들 뿐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아무래도 이런 중대한 일은 아랫것들에게 시키기 힘든 법이죠. 땅이나 파먹고 사는 것들이 교묘한 심리전과 계략이라는 걸 이해할 리 없을 테니까요. 저에게 맡겨 주시면 ‘직접’ 발로 뛰어가며 완벽하게 성공해내겠습니다.”
심지어 그 뒤를 이어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삼류 악당의 정석이라는 책이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연속기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웃었더니,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졌다.
“멋진 계획이군요. 저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만한 계획을 세우신 쏘르 영주님께 이 작전을 완전히 일임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성녀님.”
그리고 내 대답에, 시선들이 담고 있는 의미가 한 차례 변했다.
무슨 꿍꿍이냐는 듯 도끼눈을 뜨는 성녀님과.
“…예?”
‘어라? 이게 아닌데?’라는 눈빛으로 연기조차 잊고 잠깐 당황한 쏘르 영주.
덕분에 나는 그의 포커페이스가 깨진 걸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서류로 시선을 옮겨 훑는 척을 하며 말을 이어야했다.
“하지만 몇 가지가 좀 아쉽군요. 원래 이런 건 거짓말을 좀 크게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예? 아, 물론 그렇…”
“이건 어떻습니까? 마침 저희가 수인들의 영역에 있는 동안 어떤 일을 겪은지 아는 이들이 없으니, 거기서 용도 잡았다고 하는 겁니다. 심지어 알고 잡으러 갔었다고 하는 거죠. 마왕에게 대항할 힘을 얻기 위해!”
“예, 예? 용이요?”
다급하게 돌아가는 쏘르 영주의 동공이 초 단위로 나와 성녀님을 왕복한다.
“하, 하지만 그, 부산물같은 게 전혀 없는 기만은 쉽게 들킬…”
“그 귀한 걸 함부로 보여주겠습니까? 뭐, 그래도 의심은 살 수 있으니 용고기는 대충 수인들과 나눠먹었다고 하죠. 우호의 의미로.”
어떻게든 입가에는 미소를 띄우고 있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성녀님, 왜 가만히 계십니까? 뭐라고 하셔야죠?’ 라는 느낌 한가득이다.
“어디보자… 그렇게 용도 잡았으니 라이토르에서 소하 시노어를 격파하는 건 좀 더 화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넘쳐흐르는 신성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순간 반신의 영역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아, 물론 그럼 지금은 왜 평범하냐는 말이 나올 테니 그때 무리를 해서 힘이 빠졌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되겠구요.”
당연히 성녀님은 날 말리지 않았다. 그저 눈을 질끈 감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실 뿐.
그 태도에 이상함을 느끼는 듯하면서도, 쏘르 영주는 내 말에 무지성 물개박수를 치며 개쩌는 의견이라고 호응하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과, 과연 용사님입니다! 규모부터가 다르군요! 그,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반신은 조금 많이 무리이지 않을지…”
“적을 속이고 위압감을 주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친김에 그 경험을 통해 미래와 과거의 편린을 읽고 미래시를 가진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고 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 그렇군요! 성녀님! 성녀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손바닥이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열성적인 박수로 환호하던 쏘르 영주는 다급하게 성녀님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너무 나가지 않았느냐. 빨리 제동을 걸어라. 누가 봐도 그런 의도가 한가득이었으나…
“용사님 말씀대로 하죠.”
“그렇죠! 아무래도… 예?!”
성녀님은 내 편이었다. 덕분에 난 쏘르 영주가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표정 관리에 실패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대충 해석하면 ‘쌍으로 돌아버린 것인가?’라는 느낌이 가득한 얼굴이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다.
“용사님 말씀대로 하죠.”
하지만 성녀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초탈한 미소를 지으며 영혼없이 같은 말씀을 반복할 뿐이었다.
“역시 성녀님입니다. 그럼 쏘르 영주님만 믿겠습니다. 세 치의 혀 앞에 적들이 속아 넘어가는 꼴이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시작부터 예스맨 포지션을 잡아버린 탓에 부정적인 말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쏘르 영주의 미소에, 경련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