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6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64화(564/599)
[564화] 정정당당“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위쪽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상태입니다. 오히려 순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말 오랜만에 데오니 성녀님 입에서 긍정적이기만 한 발언이 나왔으나 놀랍진 않았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저희가 라이토르까지 당도하는 동안 인원의 손실이 거의 없었다는 소문이 예상보다 빠르게 퍼진 덕에, 기존에 들어왔던 보고보다도 많은 도시와 마을이 마왕군을 등지고 교단의 편에 섰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진군 자체는 수월한가 봅니다.”
라이토르에 있을 땐 왕국이나 제국이 보낸 첩자들과의 접선이 쉽지 않았거늘, 쏘르에 오자마자 디테일한 정보들이 빠른 속도로 오고 가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우리가 많이 올라오고 연합 전선은 많이 내려왔다는 뜻이겠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기는 했으나 뭔가 큰 사건 하나가 마무리되어 간다는 것을 실감하며, 나는 아군이 점령하다시피한 마족의 지역들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현지인들과의 불화같은 문제는 없나요?”
“아쉽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전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별다른 소음이라고 할 게 없지만, 이번에 제국의 병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것에 맞춰 내륙의 다른 왕국들이 보낸 지원 병력이 말썽을 일으킨다는 모양이더군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들이 레비엥보다는 동부 전선에 대거 투입되었다는 것입니다만…”
단순히 전투만 하면서 쏘르까지 밀고 오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주둔군을 둬야 하다 보니 레비엥에도 하이에나 같은 지원 병력들이 흘러 들어갔다는 소리다.
제국 아카데미에서 잠깐 마주쳤던 이들만 하더라도 마족의 위협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마족을 짐승이나 몬스터처럼 여기는 경우가 허다했던 게 떠오른다. 그런 분위기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면 여러모로 골머리가 썩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쏘르의 병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교단의 병력만 움직여 레비엥 변경백과의 합류를 서둘러야 했으나, 예정보다 진군이 빨라서 그냥 쏘르 주변을 좀 더 굳히는 식으로 방침을 변경했습니다. 위치도 나쁘지 않으니 동부 전선에서 잘만 선회한다면…”
과도하게 밀었던 전선을 조금 희생하는 대신 인근의 마족령을 안정권에 넣을 수 있게 되겠죠.
그리 말씀하시며 크게 움직인 성녀님의 손가락이 그려 낸 영역은, 그 긴 세월 동안 고착화 되어 있던 최전선을 후방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한참 앞으로 나와 있었다.
“레비엥이라는 샛길을 통해 인족의 군세가 내려올 경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 중 하나로 쓰이는 것을 목표로 세워진 것이 요새 도시 쏘르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곳을 막는 것만으로도 레비엥과 쏘르 사이에 있는 기존의 마족령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만큼 마족령에서의 접근도 원활하다는 말 아닙니까? 아직 적들의 공세가 적극적이지 않을 때 조금이라도 합류를 서두르는 편이 저희에게 유리하지 않나요?”
쏘르가 요충지라는 것을 이해하기 전부터 이곳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델 쏘르를 완벽하게 설득하여 아군으로 두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래야 했으니.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도 아군의 군대와 빠르게 합류하여 전선을 굳히는 게 더욱 중요할 터였다.
쉽게 비유해서, 쏘르는 병의 입구를 막고 있는 코르크 마개와도 같다. 병 안쪽에서야 접근하기 위한 방향이 한정되어 있지만 밖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당연히 레비엥을 목전에 두고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 비단 쏘르 하나뿐인 것은 아니었으나, 나머지는 아군이 알아서 잘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여기서 안쪽은 당연히 레비엥이고 밖은 마족령이 된다. 아무리 동쪽에서부터 아군의 군대가 전선을 대각선으로 깎으면서 열심히 접근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전까지는 180도로 처맞기 딱 좋은 위치라는 소리다. 그러지 않고서야 보급이 용이하지 않을 테니까.
“인족의 영토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쏘르는 다릅니다.”
“예?”
“음, 이럴 줄 알았으면 따로 전술 지도를 챙겨올 걸 그랬군요.”
난감한 표정으로 약식 지도를 바라보는 성녀님을 보고 있던 내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잠깐만요. 지도라면 분명…”
이티스엘에서 비룡 타고 이동하던 날 습격했던 특작부의 시체에서 찾아냈던 지도 세 개. 그중 가장 커서 쉬이 펼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지도는 분명 이티스엘뿐만 아니라 마족령 언저리까지 표기되어 있었다.
이라노레프와 싸우는 과정에서 좀 상하긴 했어도 제구실을 할 정도는 된다. 그렇게 꺼낸 지도를 탁자 위에 펼치기 시작하니 데오니 성녀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게, 어째서…?”
“이티스엘에 있을 때 특작부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뺏었던 물건입니다.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최대한 꾸역꾸역 압축해서 이티스엘 전체와 마족령 일부를 그려 낸 지도는 참 컸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랑 지도를 번갈아 보던 성녀님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한참 말을 고르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긴 이제 와서 이런 걸로 놀라는 것도 이상하군요. 아무튼, 쏘르로 게이트를 사용하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해봤자 이 정도입니다.”
묘한 체념과 함께 성녀님이 가르킨 곳은 겨우 네 곳이었다.
“게이트에 대한 부담이 인족보다 적은 탓에 생긴 병폐라고 할까요. 마족령은 흉폭한 몬스터들 때문에 어차피 도로나 길을 관리하는 것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다 보니 도시와 도시 사이의 교역로 몇 개를 제외하면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쏘르를 치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면 방금 보여드린 네 방향에서 접근해야 하죠.”
그나마 그중 한 곳은 곧 동부 전선에서부터 밀려오는 아군에게 먹힐 예정이다.
아군의 유능함에 내심 감탄한 나는 짧게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다.
“그렇다면 전 당장 여기서 딱히 할 일이 없는 거죠?”
“……대체 또 뭘 하려고 그런 불안한 서두를 꺼내시는 겁니까?”
내 별거 없는 질문은 어째서인지 성녀님의 도끼눈을 소환하고 말았다.
◈
전선에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부터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크프리트는 레비엥에서부터 이어지는 전투가 예상보다 쾌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원인은 이미 알고 있다. 레비엥의 비룡부대가 펼치는 게릴라 작전과 유성처럼 떨어져 일대를 불살라버리는 레비엥 변경백의 활약, 그리고 침식체의 부재不在와 적들의 내분은 감추고 싶다고 해서 감춰지는 내용이 아니었으니.
그중에서도 황실의 지원을 받아 전선에 투입되었다는 레비엥 변경백 전용 마도 갑옷의 성능과 그걸 사용하는 그녀의 기량은 가히 독보적이다. 도구도 뛰어나지만 착용자도 뛰어나다. 이미 제국에서 비슷한 물건을 몇 번 사용해봤던 지크프리트였기에 그 사실이 더욱 피부에 와 닿았다.
지크프리트 일행과 군대의 활약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한 대응책이 전혀 없는 일반 병사들에게 레비엥의 불길은 자연 재해 그 자체다. 당연히 마왕군도 바보가 아닌지라 디스펠을 시도하지만, 당사자의 연산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도무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전투가 쉬워질 수밖에.
물론 그런 개인적인 감상을 입 밖으로 낼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
전쟁이 아무리 쾌적하다고 한들 피아구분 없이 사상자는 발생한다. 죽어 간 전우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감상을 입 밖으로 내기 힘들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전투도 이젠 슬슬 막바지에 이르는 중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보급조차 받지 못해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사기가 깎여 있는 마왕군이다. 맹렬하게 저항하던 초반과 달리 항복을 하는 인원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목적지인 요새 도시 쏘르와의 거리는 가까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허튼소리하지 마시오.”
-허, 허튼소리!?
“그렇소. 귀하의 고국에 항명서를 보내기 전에 되도 않는 약탈의 핑곗거리를 찾는 행위 따위 관두고 일이나 하시지.”
통신용 수정구를 눈앞에 두고 덤덤하게 말하는 레비엥 변경백의 모습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지크프리트의 착각일까. 지휘소에 모인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훑어 봤지만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우리 변경백님 말 참 시원하게 잘하시는구만!’ 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매우 뿌듯해 한다.
“우리가 지나오는 곳에 존재했던 소도시나 마을은 전부 협력자요. 마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약탈한다? 이티스엘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우린 연합군으로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오 레비엥 백작!
“이 씹…”
어어, 엘드미아 나온다 엘드미아 나와.
순간 일그러지는 미간과 축소되는 동공을 보며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크프리트의 예상과 달리, 변경백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욕설을 씹어 삼켰다.
“우선 첫째, 난 굳이 분류하면 후작이오. 변경백이라고 부를 거 아니면 후작이라 불러야 맞는 것이니 유의하시오.”
하지만 그 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줘서 내뱉기 시작했다.
“둘째, 이번 작전의 전공戰功에 따른 보상 분배 권한은 왕실과 제국의 동의 하에 내게 위임되었소. 이는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이미 전달받은 내용일 터, 그대들이 요구하는 건 정당한 대가가 아니오. 전투에 참여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권리로 약탈을 하겠다는 말이오? 번견番犬을 자처했으면 얌전히 맡은 바를 다 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기다리시오.”
갑작스러운 폭언에 수정구 너머의 대상이 말도 못 하는 광경을 보며 지크프리트는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어째 엘드미아 주변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기가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