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7화(57/599)
마지막 스튜까지 싹싹 긁어 먹으며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는 잠깐의 정비를 거치고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움직인 우리들은 다 함께 폐던전의 감시 위치를 파악한 뒤 마을로 향한 놈들을 추적할 때 내가 거닐었던 숲길을 따라 습격을 준비할 위치까지 파악하고 난 뒤에야 갈라졌다.
만의 하나라도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경우 나나 가엔달 외에 다른 이들이 연락책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보험이었다. 덕분에 시간은 상당히 잡아먹었지만 능숙한 모험가답게 일행들은 어려운 숲길을 제대로 숙지했다.
“이런 길을 달려서 30분만에 그 감시 위치까지 갔다고?”
“적당히 체력을 온존하려고 오러를 썼을 뿐이지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내젓는 예카트리나를 보아하니 역시 복귀 계획에 여유를 둔 건 현명한 선택인 듯 싶었다.
“게다가 배운 게 있으니까요. 무려 엘프에게 배운 기술 아니겠습니까.”
“나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엘프한테 이런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단 말이지. 대체 어떻게 구워 삶은거야?”
“그냥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니, 그럼 그냥 퉁치는 거잖아? 대답이 아닌데 그건.”
그렇다고 어릴 적에 도적 여섯 놈 정도를 찔러 죽이고 엘프를 구해준 뒤 계약을 맺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조차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그딴 소리를 눈 앞에서 떠드는 15살짜리 꼬맹이가 있으면 소설 작작 보라면서 뒤통수를 후려치지 않았을까?
내가 아무리 모험가로서의 실적과 직접 보여준 실력이 있다한들, 생판 남에 불과한 이가 허무맹랑하다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정도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길게 이야기 해 봤자 빙빙 돌 수 밖에 없는 주제였기에 적당히 둘러대자 그래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여겨준건지 예카트리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 배려를 보여 주었다.
그 뒤로는 뭐, 지루하기 그지없는 기다림의 시간이지.
잠깐 떠든다고 한들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무기의 정비를 마친 뒤 습격 계획을 재확인하고는 침묵을 고수했다. 나야 마력을 운용하는 훈련을 하며 시간을 떼우면 그만이었지만 예카트리나의 침착함과 참을성은 이번에도 날 놀라게 했다.
무슨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가 기회를 보는 것처럼 꼼짝도 안 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길을 응시하는데, 내가 다 무서울 지경이다.
짧은 시간동안 호쾌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녀였기에 더욱 낯설다. 결국 난 어느 정도 시간을 떼우다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녀가 과연 얼마나 오래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지 구경하기에 이르렀다.
“온다.”
그리고 자그마치 두 시간 가까이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던 예카트리나가 입을 여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구경은 경탄과 함께 끝났다.
“맞지?”
“정확합니다.”
그녀가 주시하던 길목 끝자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한창 취기가 올라 걸음마저 비틀거리는 마족 숭배자들이었다. 품에서 꺼낸 회중시계가 가르키는 시간은 5시 20여분 가량. 놈들의 걸음을 봤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빨리 출발한 게 분명했다.
모험가나 모험가조차 아닌 이들을 모아놓았음에도 마치 군인마냥 유대와 의무감을 가지고 행동하고 생각한다는 점이 명백해지자, 난 저들을 저렇게까지 교육시킨 이를 향해 속으로 박수를 칠 수 밖에 없었다.
뭐, 저들에게 줄 수 있는거라고는 예카트리나의 망치질과 내 칼질 뿐이었지만.
“다시 또 한 달 가량을 어떻게…응?”
예카트리나의 행동은 오러를 쓸 줄 모른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 망치의 무게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긴 금발을 휘날리며 수풀을 헤치고 뛰쳐나가는 그 모습은 정녕 한 마리의 사자와도 같았다.
그런 그녀가 휘두른 워 해머가 만들어낸 참상은 감히 사자 따위가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지만 말이다.
-콰아앙!
귓가에 남은 건 바닥을 내려치는 묵직한 타격음이었으나, 분명 그 사이에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강렬한 파열음이 함께했다. 전생에서, 누군가가 기르던 조그마한 애완견이 주인의 멍청한 부주의로 인해 길가던 자동차 바퀴에 깔렸을 때 들었던 처참한 파열음보다도 끔찍하기 그지없는 죽음의 소리였다.
강화된 신경과 사고가, 사람이 마치 공업용 프레스에 짓눌리는 것처럼 찌부러지기 직전의 상황에서 간신히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한순간만 늦게 반응했더라도 그 기괴한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나는 벙찐 상태로 반응조차 못하고 있는 놈들의 측면을 치기 위해 내달렸다.
“데니?”
한 사람을 피곤죽으로 만들어버린 워 해머가 언제 대지를 후려쳤냐는 듯이 순식간에 중단까지 들어 올려지며 눈 앞의 죽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두 놈을 향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속도로 내질러지는 그 순간에도, 그들이 내뱉은 한 마디는 이미 형체조차 남지 않은 동료의 이름이었다.
둘의 죽음은 확정이었기에 난 더 이상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저 모루와 다를 바 없는 워 해머가 찔러 들어가면 안면이 박살나는 거 외엔 선택지가 없으니까.
대신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놈의 눈을 향해 스트레이트를 꽂아넣으며 놈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며 옆 놈의 목을 베고 그나마 가장 멀리 있는 놈을 향해 검을 던졌다.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진 연계 동작은 어김없이 완벽하게 들어갔다.
던져진 검이 명치에 박혀버린 놈에게 달려드는 동안 이 모든 상황을 이제서야 받아들인 최후의 생존자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나와 예카트리나를 사이에 두고 방황한다.
갈피를 잃은 시선처럼 더듬거리며 겨우 겨우 허리 춤으로 움직인 떨리는 손이 제대로 검조차 쥐지 못하는 사이 난 이미 명치에 박혔던 검을 다시 뽑아 들었고 예카트리나는 무서운 기세로 놈을 향해 풀 스윙을 준비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놈은 공포에 질린 비명까지는 내질렀으나 취한 몸과 정신으로 검을 뽑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검과 검집을 제대로 두지도 못한 탓에 반 쯤 뽑히던 검이 검집에 걸려버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와버린 것이다.
“안돼에에에!!”
자신의 실수에 당황하며 예카트리나를 향하던 시선이 자신이 쥐고 있는 검과 검집으로 옮겨진 순간 이미 상황은 끝난 것과 다름 없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스듬이 무릎을 꿇으며 검을 쥐고 있던 놈의 두 손목을 잘라내기가 무섭게 예카트리카의 풀 스윙이 작렬한다.
-퍼어엉!
콰앙도 아니고, 쿵도 아니고, 말 그대로 터지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투는 끝났다. 질척한 무언가가 가까이에 있는 나무와 바닥에 부딪쳐 늘러붙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일부러 그 광경을 보지는 않았다. 내게 얻어맞은 눈덩이를 부여잡고 휘청거리며 일어나려던 녀석의 목에 검을 박아 넣으며 몸을 일으키는 것 만으로도 이미 지옥도가 따로 없는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육편 조각, 터져나간 인간의 잔해. 뒷처리 따위 불가능해 보이는 피바다를 연출한 예카트리나가 맹수와도 같던 표정을 한 숨 한 번으로 풀어내더니 나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네 말대로 정말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했네. 덕분에 좋은 걸 배웠어, 엘드미아.”
사뭇 공포스러울 수 있는 광경이었음에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그녀의 실력에 대한 감탄과 동료이기에 느낄 수 있는 든든함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시죠. 오러 쓸 줄 아는 거죠?”
“하하핫! 좋아! 더 칭찬 해 줘! 칭찬은 언제 들어도 좋은 법이지!”
과장 하나 보태지않고, 이세계 기준으로 따져 보아도 상식을 초월한 괴력이다. 머리 무게만 족히 20kg은 넘어보이는 저딴 쇳덩이를 무슨 양손검 휘두르듯이 휘두른다고? 저 정도면 왜 굳이 도끼나 양손검 같은 무기를 안 쓰는지 납득이 갈 정도다.
어차피 저 워 해머를 그만한 속도와 정확도를 살려서 휘두를 수 있는데 왜 그딴 위태로운 날붙이들을 쓰겠어?
“혹시 숨기고 있는 성이나 이름에 지멘이 들어가거나 그런 거 아닙니까?”
“응? 무슨 뜻이지 그건? 뉘앙스는 칭찬같은데 말이야.”
“거, 있습니다. 공성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망치를 쓰는 엄청난 전사가.”
“그거 대단하군! 전설적인 인물이겠어! 아주 마음에 들지만 아쉽게도 내 이름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걸!”
당장이라도 자리를 피하고 싶은 피바다와 시체 속에서 진심으로 즐겁고 호쾌하게 웃어 제끼는 그녀는 역시 이세계 감성의 소유자였다.
“후! 이럴 때가 아니었지. 빨리 돌아가서 나머지도 처리하자고.”
“순식간에 끝나서 여유도 있으니 이 난장판에서 놈들 돈 주머니나 좀 찾고 가죠.”
“오?”
“이 놈들 놀고 마시는데 돈을 쪼잔하게 줬을 거 같지는 않으니까요.”
셰릴이 봤으면 차게 식은 시선을 보냈을지 모르겠지만, 나와 예카트리나의 감성은 철저하게 모험가 감성이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안에 빠르게 돈 주머니를 찾아낸 뒤 폐던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