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7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70화(570/599)
[570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의도치 않게 마왕군의 순찰대를 박살 내버린 우리는 일단 두 명의 포로를 자가용에 묶은 채 좀 더 이동하여 야영지를 다시 세웠다.
그 과정에서 기를 쓰고 발악하는 순찰대장 놈 때문에 아주 잠깐의 소란이 있긴 했지만, 기절 시켜서 자가용에 태우는 것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자진 납세한 마왕군은 그 모든 과정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애초부터 포로를 잡을 계획 따윈 없었다 보니 마족을 묶을 만한 방법도 마땅치 않았는데, 녀석은 자신의 모든 무기를 우리에게 넘긴 뒤 지시에 따라 앞장서겠다는 말까지 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덕분에 매우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졌지만, 일단은 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일행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게 우선인지라 나중으로 미뤄야만 했다. 그렇게 반나절 이상 더 이동하고 나서야 적당한 위치에 다시 자리 잡게 된 우리는 짐을 풀고 저녁을 준비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얘가 원래는 마검이었다고?”
주로 나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말이다.
칼 칸시는 신기하다는 듯 라이카를 안아 들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 쓰다듬으며 반응을 확인했고, 에밋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매우 흥미롭다는 듯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인공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던 시절엔 지능이 높은 동물의 혼을 쓰는 경우가 흔했다고 하지. 자아가 너무 강해 원래의 형태를 되찾으려고 하는 건 실패작으로 취급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까지 변화가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겠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누가 마검에 성검 조각이 스며들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고 생각이나 했을까.
당장 에스테를 발쿤 씨의 공방에 처음 들고 갔을 때만 하더라도 신성력과 마법의 경계를 두고 마검이네 성검이네 열띤 토론을 하던 마검 전문가들이 수두룩했으니, 대륙 역사상 전례가 없는 사례일 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묘한 무구들만 가지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라이카는 단 한 번도 검으로 쓴 적이 없었던 탓에 애완동물에 가깝다는 느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머릿속에 들려오는 대화들 때문에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애초에 가장 오래된 검인 이 몸께서 최고참인 게 맞다는 거지!] [넌 그땐 자아도 없었잖아. 주인이 오래 쓰던 검에 깃들었을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거 아니야?]정작 그 전례가 없는 마검은 마찬가지로 전례가 없는 성검과 함께 누가 최고참이냐, 라는 하찮기 그지없는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 중이거든.
[요, 용사랑 성검은 한 몸이라고!] [그럼 최고참이 아니라 최측근인 거잖아. 최고참은 역시 내가 맞네.]남들이 보기엔 그냥 웅웅 거리는 검과 턱을 쓰다듬어지며 헥헥 거리는 개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정작 라이카는 의문을 해소하는 것에 불과하고 에스테만 열을 내는 듯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처음엔 분명 왜 자신의 편린이 라이카에게 흡수되었냐며 도둑놈이라고 박박 우기던 걸로 기억하는데 대체 어느 틈에 대화 주제가 여기까지 튀어 온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너무 시끄러워서 안 듣고 싶은데, 하필 라이카와 에스테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은 성검의 기능이라서 온 오프도 불가능하다.
“뭔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이로군.”
“지금 둘이서 엄청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이 소음을 공유할 수 없는 게 슬플 따름이네요.”
날 것 그대로의 진심을 내비치자 흥미 가득한 눈으로 턱을 괸 채 라이카를 바라보던 에밋이 너털 웃음과 함께 몸을 뒤로 뺐다. 심지어 상체만 움직인 게 아니라 자신이 앉아있는 외투까지 뒤로 살짝 밀면서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원래 고통과 기쁨은 혼자 감내하는 게 주변에게 이로운 법일세.”
그러더니 대뜸 사람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제가 아는 격언이랑 뭔가 많이 다른데요. 고통은 나눠서 반감하고, 기쁨은 나눠서 배로 늘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단단히 잘못 알고 있구만. 고통은 나눠봤자 같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늘어나거나 나의 고통을 즐기는 사람만 늘어날 뿐이고, 즐거움은 나눠봤자 시기와 질투만 살 뿐이라네.”
“……어라?”
왜 맞는 말 같지?
갑작스러운 인지 부조화에 당황하는 사이, 나와의 대화를 끝마친 에밋은 지금까지 기절한 순찰대장 옆에 앉아 묵묵히 우리를 관찰하고 있던 마왕군에게로 방향을 돌려 질문했다.
“그보다 자네는 꽤 순순히 항복하던데. 뭐 다른 이유라도 있나?”
별거 아니라는 듯 흘려 지나가는 어투였지만 내가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었다. 지금까지 마왕군이다 특작부다 하는 놈들을 나름 많이 상대했지만 저렇게 덤덤하게 항복하는 녀석은 처음 봤기에 아직도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되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녀석의 대답은 그 태도만큼이나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살려고 항복하는 데에 이유라고 할 만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 친구도 그렇고 자네의 다른 동료는 그리 생각 안 하는 거 같던데.”
“저들이야 뭐… 자기들 소신대로 마왕군에 있는 거니까요. 교단을 따르는 성직자들처럼 말이죠.”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마왕군의 입으로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소신이라…
마왕군이 겪고 있는 문제는 그런 단어로 퉁치기엔 굉장히 미묘한 경계에 놓였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너무나도 무덤덤하다.
“저들은 마왕이라는 신앙이 있을 뿐이다?”
뭔가 놓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게 무엇인지 갈피가 안 잡히는 느낌이 생각을 방해한다. 내가 그 답답함을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동안에도 에밋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고…
“네. 전 딱히 그런 거에 관심 없습니다. 누가 이기든 어차피 같은 마족이잖습니까. 오래 살 수 있는 쪽에 붙는 거죠.”
…이번엔 마왕군의 입에서 내 의문의 해답이 될 수 있을 말이 튀어나와서 나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어차피 같은 마족이라고? 마왕군이 이기면 신을 죽이네 마네 하는데?”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마왕군은 아주 잠깐 의아함을 내비쳤다가 이내 뭔가 깨달았다는 듯 ‘아.’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거.”
혹시 사령부의 진짜 의중까지는 알지 못 하는 것일까. 그리 생각하며 녀석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정작 마왕군은 굉장히 당혹스럽다는 듯 눈썹을 휘며 조심스럽게 대답할 뿐이었다.
“음…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구호인지 아십니까?”
마치 ‘모르는 부분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려는 듯한 뉘앙스. 저거만 놓고보면 그 구호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족을 돌보지 않는 신을 버리고 마왕을 새로운 신으로 만들 계획이라는 걸 포획한 특작부한테 들었지.”
이 이상 녀석의 의중을 의심하는 건 부질없는 짓인 듯하여 그냥 다이렉트로 꽂았더니 오히려 녀석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며 예상치 못한 대답이 이어졌다.
“어, 다 알고 계시네요. 그렇다면 딱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은 아니지 않… 아, 이건 용사님껜 좀 불경스러운 이야기이려나.”
비꼬는 것도 아니고, 마왕군의 의도를 알면서도 신성 모독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저건 다른 사람의 종교를 그 사람 앞에서 까지 않으려는 예의에 가까운 반응이다.
“…이해가 안 되는 말은 아니지 않냐고?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마왕군의 반응과 대답이 이어질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잔뜩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하나씩 맞아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엘프, 드워프, 인족, 풀링, 리자드맨, 수인 등등. 다른 종족들의 신들은 모두 자신을 섬기는 이들을 비호하잖습니까. 그에 비해 마족은 세대가 멀다 하고 인족의 용사에게 마왕성까지 털리는 게 일상이니 불만이 없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요?”
대체 이 당연한 걸 왜 굳이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모습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라이카를 만지며 놀고 있던 칼 칸시도, 이제 막 차를 따라 마시려고 했던 에밋도 동작을 멈춘 채 마왕군만 바라본다. 나는 당연히 잔뜩 굳은 상태로 바라보는 중이고.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에 가까운 거였지만 마왕군은 그게 말을 재촉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어렵게 어렵게 대답을 이어 나갔다.
“마신도 평범한 마족이었다가 승천했다고 역사서에 나와 있잖습니까. 마왕이 하려는 것도 방법이 다를 뿐이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교단이 이겨도 지금까지처럼 지내다가 인족의 용사에게 얻어맞는 일상이니 그런 도박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걸 죽은 악신의 잔재까지 사용해 가면서 하고 있는 데도?”
“죽었잖아요? 악신을 믿으라고 강요한다면 당연히 발부터 빼고 봤겠지만 그런 것도 아닌 데다가 도구로 쓰는 거니 그냥 성능 좋은 마검이나 성직자들의 성법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라이카와 에스테의 대화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편두통이 몰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유독 멍청한 놈에게 잘못 걸린 게 아닌 이상, 이 녀석의 의견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 이 전쟁을… 규모가 큰 내전 정도로 여기고 있는 거로군.”
“어…그렇죠?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 말을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 표정만으로도 자기가 실언을 했다는 걸 대충 알아서 감 잡았을 것이다.
놀랍다는 듯 휘파람을 불어가며 ‘마족의 신앙은 상상 이상으로 바닥을 기는 걸.’이라고 말하는 칼 칸시의 중얼거림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 개조라도 하지 않는 이상 한 사람을 신으로 만들겠답시고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진해서 갈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 여겼거늘 그 전제부터가 틀려먹은 거였다.
“너처럼 생각하는 마왕군이 많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희 부대 내에서는 없진 않았죠.”
이쪽이 맹목적이니 저쪽도 당연히 맹목적일 줄 알았는데, 교단과 에파가 님의 이름으로 모인 군세와 달리 마왕군은 애초부터 통일성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강한 자에게 고개 숙인다.
그 독특한 종족값에서 비롯된 사고 방식만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