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7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71화(571/599)
[571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족과 인족의 싸움이라서 하나로 뭉친다고 생각했지만, 당장 인족만 하더라도 이티스엘이 막아온 긴 전쟁을 남의 일 취급하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잖은가.
이번에 잡은 놈을 보고 나니 확신이 섰다. 하필 지금까지 내가 만나왔던 것들이 죄다 마왕을 향한 충성심이 과도한 부류에 불과했다는 확신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맹점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저런 발상을 하는 이들이 있을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도 못 했군.”
당장 옆에서 같이 듣던 에밋마저도 세상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의 입을 가리고 진지하게 중얼거리는 중이거든. 나와의 차이가 있다면 난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라는 거고 그는 나름 냉철한 분석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것 정도?
“후천신과 선천신을 대하는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같은 게 있는 건 정상이라고 하나, 이런 형태로 발현하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야.”
“이런 형태라는 건 뭔 소립니까 에밋 선생?”
스스로를 세로 리피티의 후예라 여기는 수인 중 하나인 칼 칸시일지라도 세로 리피티를 끌어내리고 신위를 찬탈한다는 경악스러운 발상을 하지는 않기에, 그는 나나 에밋 이상으로 마왕군을 벌레 보듯 바라보는 중이었다. 심지어 상종하기도 싫다는 듯 슬금슬금 거리까지 벌려가며 에밋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는 잠깐 말을 고른 다음에야 침착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신이 왜 마신이겠나. 마족의 신, 마족만을 위한 신이기에 마신일세. 인족이야 신들을 수호신의 영역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어서 마족령에 지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신을 믿지만, 자네는 살면서 마신을 믿는 수인이나 리자드맨, 풀링같은 다른 종족을 본 적 있나?”
“……전혀 없죠.”
조금 불경하게 말하자면, 대륙의 다양한 종족들은 수많은 신들 중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신을 취사하여 섬기는 것에 불과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에밋의 말대로 인족이다. 당장 이티스엘만 하더라도 만신전이 기본 전제잖은가? 제국이야 건국 신화와 빛의 에테가 워낙 긴밀하게 엮여 있어서 그쪽 교단의 세가 큰 거지, 다른 종교를 아예 허락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엘프와 드워프 수인 같은 종족들도 그렇다. 워낙 방향성이 한결같아서 종족 단위로 같은 신을 모실 뿐이지, 그들 중에서도 다른 종교를 가지는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자연을 너무 좋아해서 세계수의 수호자 아샤를 섬기는 수인이 있을 수도 있고, 화염과 모루의 바즈칼을 더 선호하는 엘프가 있을 수도 있으며, 사냥을 좋아해서 세로 리피티를 섬기는 드워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게 맞다. 그들에겐 종족신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후천신인 에파가 님은 에밋의 말대로 엄연히 ‘마족’의 신이시다.
“종족신, 그것도 후천적인 종족신이란 존재는 본디 업業을 짊어지는 의미가 강하다네. 종교 쪽은 전문 분야가 아니니 나중에 성녀님한테 제대로 듣기로 하고,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관련된 종족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말일세.”
에밋의 마지막 말이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가호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전부가 아니다. 이 세계의 신들이 그렇게 미미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면 오히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으면서, 어차피 그치도 예전엔 마족이었고 우리도 마족이니 동네 대표 갈아치우는 것마냥 도움이 안 되면 바꾸는 게 맞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으니 뒷목이 뻐근하다못해 아릴 지경이다.
[저, 저! 자기가 받고 있는 은혜도 모르는 불경한 자식!]봐라, 당장 지금도 눈앞에 나쁜 엘드미아와 더 나쁜 엘드미아가 나타나서 저 불경한 놈의 머리통을 오목하게 만들어 주라고 속삭…
아니네. 에스테였구나.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예로부터 무지는 죄가 아니라고 하였다. 심지어 잘못된 지식을 기반으로 그릇된 생각을 뻗어 나간 것이니, 이 자는 추후 교단의 도움을 받아 인식 개선을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그, 손님? 혹시 많이 빡쳤어? 말투가 이상해졌는데.”
빡치긴 많이 빡쳤었지만 에스테가 하도 시끄럽게 하는 탓에 정신이 들었다.
“지식이란 원래 편중되어 있는 것. 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런 인식을 지닌 채 마왕군에 붙어 있는 마족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 이번엔 그 틈을 파고들 실마리를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어… 뭔지 몰라도 감사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나 보네요.”
정말 모르겠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이는 마왕군이 새삼 어벙해 보였다. 아무래도 몸이 똑똑해서 머리가 고생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온 놈인 모양이다.
그 태도를 보고 있자 하니 붙잡아서 정신 교육을 위해 교단에 바치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주제로 계속 이야기가 반복될 경우 내 화를 주체하기 힘들 것 같아 빠르게 주제를 바꿨다.
“그 이야기는 됐고, 너희들 우리가 잡아 죽인 몬스터 흔적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했지? 그 이유나 들어 보자.”
“아, 그건 저희와 마주했을 때 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내용이 맞습니다.”
당장은 가장 중요한 일인지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 거였는데, 아쉽게도 이번엔 돌아오는 반응이 영 똑 부러지지 못했다.
“…두 개였잖아. 몬스터 언데드 부활설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마왕군 몬스터 관리설을 말하는 거야?”
아무래도 방금 말실수했다가 정수리부터 쪼개질 뻔했으니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한 번 더 되물었지만 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놈의 주둥아리가 열리지 않았음에도 무슨 말이 나올지 이해하고 말았다.
“그 두 개가 다 맞다는 말이었습니다만.”
어디선가,
뚝. 하고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느끼는 것과 동시에 자가용의 안장에 걸려 있던 도끼가 내 손으로 날아들었다.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놈을 향해 도끼를 휘두려는 나를 막아선 것은 에밋의 마법이었다.
“칼 칸시! 막게! 엘드미아 막아! 저거 지금 진심일세!!”
발과 허벅지 허리와 팔꿈치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게 속박 마법이라는 걸 눈치챘을 땐 이미 칼 칸시가 전력으로 달려들어 나와 마왕군의 사이를 가로 막은 뒤였다.
“소, 손님! 참으라고! 참아!!”
에밋의 마법과 칼 칸시의 육탄돌격이 내 행동을 제지한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난 기어이 참지 못하고 마왕군의 정수리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고자 온 힘을 다 했다.
“야이 씹새끼야!”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상태로 걸린 속박 마법은 마력을 동원한 근력으로도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걸 처음 깨달았지만 이미 그딴 건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바늘을 날릴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저 새끼의 두개골을 내 손으로 직접 쪼개놓는 거였다.
“뒈진 악신 새끼 시체 가져다 쓰는 것도 모자라서 몬스터에 언데드까지 끼얹어놓고 뭐? 신이 아무것도 안 해주니까 바꾸는 게 맞지 않냐고?! 그렇게 선택한 방법이 몬스터 새끼들이랑 붙어 먹는 거냐? 그 새끼들이 무슨 들짐승이야? 관리한다고 관리가 될 새끼들이었으면 모험가는 왜 있어?!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무식은 죄야 이 새끼야!!”
“손님! 쟤가 한 게 아니잖아! 쟤 그냥 말단이라고!”
정말 그럴까? 사실은 살기 위해 존나 머리 굴리는 한낱 씹새끼에 불과한 거 아닐까? 당장 두개골을 열어서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두 사람이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말리는 탓에 속에서는 천불이 끓어도 도무지 과감하게 뿌리칠 수가 없었다.
사실 놈이 아예 야영지를 벗어나 도망이라도 쳤으면 당장 죽여 버렸을 텐데, 식은땀을 흘리며 눈치까지 보는 주제에 일정 이상 거리를 벌리려고 들지도 않아 김이 빠진 것도 있었다.
“후우… 씨발 진짜 살면서 별의별 새끼들을 다 보네.”
신경질적으로 도끼를 바닥에 찍으며 다시 자리에 앉자 마왕군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왔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니 조금은 화가 누그러지는 듯하다.
“수단과 방법.”
“네?… 아! 지능이 있는 몬스터들은 아예 말이 통합니다! 지능이 좀 낮은 몬스터의 경우는 마법사를 대동하고, 언데드같은 경우는 인근에 자리 잡은 리치가…”
“리치? 너 씨발 지금 리치라고 그랬냐?’
“예, 예!”
으허, 으허허허.
아주 가관이다 가관이야. 이젠 하다 하다가 리치까지 나와?
“이걸… 후우. 데미리치야, 리치야?”
“그, 그것까지는 잘…”
이 세계에서 강령술이나 흑마법은 일반적인 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영역이다. 그중에서도 존재를 바꾸는 리치화化의 영역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거나 악신을 추종하거나 굉장한 실력을 지닌 대마법사가 죽음을 앞두고 삶에 미련이 남아 자체적으로 불사화를 시도 하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보통 그렇게 미련이 남은 마법사는 마법 연구에 미쳐 버린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속세와는 연이 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저놈이 말하는 리치는 몬스터까지 언데드로 변이 시킨다고 하니 악마 내지는 악신과 연관된 놈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는 건.
“그 새끼 어딨어.”
둘 중 뭐가 됐든 간에 갈 길이 바쁘다고 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버러지 새끼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