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7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75화(575/599)
[575화] The Road to Lich is paved with RAGE시체 썩은 냄새라는 건 매우 불쾌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딴 곳으로 튀고 싶은 와중에 쏟아지는 진액, 살점, 닿기만 해도 피부에 온갖 질병이 발생할 것만 같은 손길 등을 피해 열심히 싸우다 보면 깔끔하게 뼈만 남은 스켈레톤을 볼 때마다 반가워질 지경이다.
하지만 이런 소리도 결국은 내게 카쿨라의 도끼와 에스테가 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뼈를 치는 건 의외로 칼날을 쉽게 상하게 만드니까. 일반적인 모험가들은 스켈레톤보다 좀비가 낫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파티에 칼잡이가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인 상황이었다. 자진 납세자는 무기 없이 잔뜩 움츠러든 채 눈치만 보게 만들어 놨고, 에밋은 마법을 쓰며 칼 칸시는 손발로 싸우니 적당히 내가 정화의 성법만 걸어 주면 전투에 큰 문제가 없다.
일반적인 모험가들이라면 진즉에 무기나 장비에 하자가 생겨서 물러섰을 정도까지 전투를 치르며 대충 중간 지점 정도까지 파고든 다음에야 짧은 휴식을 취하며 그런 생각을 입에 담았더니, 모닥불을 쬐고 있던 칼 칸시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정말 손님의 발상은 도무지 따라가질 못 하겠네. 저 많은 언데드들을 족친 감상이 겨우 무기 상태 때문에 후퇴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다야?”
그러면서 칼 칸시가 고개짓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수많은 시체와 해골 무더기들이 즐비해 있다.
마법에 죽은 놈, 칼 칸시에게 터져 죽은 놈, 베여 죽은 놈 등등 참 종류도 다양한 시체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족히 쉰은 되어 보인다. 그럼에도 주변에는 여전히 많은 언데드들이 존재한다. 진짜 이 장면만 누군가가 똑 떼서 본다면 판타지가 아니라 좀비 아포칼립스라고 여기지 않을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수준이었으니까.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죠?”
“같은 의견일세. 정말 말 그대로 ‘언데드’가 되었을 뿐, 몬스터로서의 강함 같은 게 느껴지는 개체는 굉장히 한정적이더군.”
그저 움직이고 있을 뿐인 시체. 어떤 힘도 깃들어 있지 않아서 일부 개체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었다.
당장 우리가 자리 잡은 다 무너진 건물 아래로 몰려드는 놈들 역시 마찬가지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개체는 스켈레톤 몇 마리뿐. 그마저도 바늘로 처리하고 나면 나머지는 그냥 흙 대신 깔려 있는 움직이는 시체에 불과하다.
“처음엔 핵이 존재하는 던전과 달리 힘을 받지 못해서 그러는 건가 싶었네만… 좀 더 살펴보니 그런 영역의 문제가 아닌 듯하더군. 아예 텅 빈 느낌에 가까웠어.”
“그런 것도 알 수 있습니까?”
“몬스터와 마력의 상관 관계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꽤 심도 있는 학문이거든. 특정 개체는 이만큼의 마력을 지니고 있더라, 언데드는 이 정도의 최소 마력을 지니고 있어야 활동이 가능하더라 등등 꽤 상세하게 연구되어 있지. 나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게 있다 보니 중간중간 확인해봤지.”
언제 어디서나 돈값을 제대로 하는 우수 사원 에밋은, 꽤 많은 마법을 쓰면서 전투를 보조했음에도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것인지 가볍게 지팡이를 놀려 허공에 무언가를 적어가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특수 개체… 그러니까, 좀비들을 융합하여 만든 것들이라든가 스켈레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강했던 개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최소한의 생명 유지만 하는 수준으로 마력이 남아 있었네. 자네들도 봐서 알겠지만 좀비들이 전부 다 인족인 것도 아니고, 마족이 많이 섞여 있었던 와중에 마력량이 이렇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 덕분에 우리가 상대하려는 리치가 어떤 녀석인지 좀 명확해졌다네.”
“그걸 알아내셔서 잠깐 쉬자고 하셨던 겁니까?”
“아니, 그건 그냥 진짜 피곤해서 쉬자는 거였는데?”
“예?”
“뭘 놀라나? 내가 아무리 유능하고 잘난 마법사라고는 해도 엄연히 노인인데 내 체력을 존중해주질 않더군. 그 와중에 대뜸 신전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걸어가면서 설명조차 제대로 안 해 주길래 일단 쉬자고 한 걸세.”
혀를 차면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는 에밋의 말에서는 분명 진심이 느껴졌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말대로 내가 앞장서서 일행들을 딴 길로 인도하고 있긴 했지만, 그와 별개로 ‘노인’ 과 ‘체력’ 이라는 핑계를 도저히 진지하게 들을 수 없었다.
라드넬반데스처럼 맨손으로 두개골도 쪼갤 거 같이 생기지는 않았어도 얼굴의 주름 조금을 제외하면 정말 노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정정한 양반이 저런 소리를 진심으로 한다는 사실에 나뿐만 아니라 자진 납세자마저도 못 믿겠다는 눈초리를 보내 왔지만, 에밋은 당당한 태도로 계속 말했다.
“녀석이 악마와 거래한 건 기정사실이었지. 문제는 그냥 단순히 악마에게 혼을 판 게 아니라 자신의 혼을 지키기 위해 좀 많은 사람들을 희생한 부류일 거 같더군.”
“설마 지가 리치가 되기 위해 이곳이 도시였을 시절의 사람들을 죄다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그거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이들은 제물로 바친 게 맞지.”
“옘병…”
데오니 성녀님이 내 입에서 마왕군이 신살神殺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인간 말종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행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뒷골이 땡겨 왔다.
“최악의 경우엔 자네 말마따나 과거에 존재했던 이 도시를 통째로 제물로 바친 다음 리치가 된 극악무도한 존재일 수 있긴 해. 그럴 경우 우리가 상대하려는 건 리치가 아니라 데미리치일 수도 있지.”
데미리치.
말만 들으면 데미갓이랑 동류로 느껴져서 무조건 강할 거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일단 반쪽은 리치지만 나머지 반쪽은 사람 새끼인지 초월에 발을 디딘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리치였다가 물리적으로 대가리가 깨진 탓에 힘을 잃어서 반푼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런 녀석들도 싹 다 싸잡아서 데미리치로 불리거든. 실제로 데미리치를 마주쳤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지금 에밋이 걱정하는 데미리치는 그런 반푼이가 아니라 반쪽만이라도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놈일 경우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이라도 초월의 영역에 들어 선 탓에 그런 놈은 평범한 리치와는 궤를 달리하는 괴물이다.
“그럴 경우… 최악의 경우엔 놈을 처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네. 자네도 리치의 성물함에 대해서는 알지 않나?”
“저게 어떻게 성물함입니까? 유물함이지.”
불편한 심기를 가득 담아 태클을 거니,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에밋은 자신의 발언을 정정해주었다.
“그래, 그래. 유물함. 아무튼, 초월에 이른 데미리치가 제 유물함을 늘리지 않았을 리가 없지. 놈의 경지에 따라서는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유물함을 숨겨 놓았을 수도 있는 노릇이네. 심지어 마왕군과 거래까지 했다고 하니, 어쩌면 자신의 유물함 일부를 다른 곳에 옮기는 것도 대가에 포함 시켰을지도 몰라.”
그걸 감안하고 싸움에 임하는 게 좋을 걸세. 에밋이 그렇게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모두의 시선은 당연하게도 나에게 쏟아졌다.
나도 안다. 전생의 판타지 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세상의 리치도 제 목숨을 별도의 물건이나 보석 같은 거에 보관해둘 수 있는 큐베 같은 놈들이라는 것을.
흔히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리치가 생전에 쓰던 물건이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마법 좀 배워 본 입장에서는 다 개소리고 그냥 좋은 마도구나 순도 높은 보석일수록 좋을 뿐이라는 것까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기분 나쁘게 감히 성물함이라고 불리는 편이지만 엄연히 유물함에 불과한 그 물건들은 이름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로 제작된다. 리치가 생전에 쓰던 물건이라는 말이 생겨난 건 그냥 그 리치가 생전에 좋은 마도구들을 썼었다 보니 와전된 것에 불과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기에 내가 앞장서서 움직이고 있었던 거고.
내가 덤덤하게 대답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휘어보인 에밋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방금 전의 대화를 곱씹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 그러고 보니 ‘저게’ 라고 그랬지?”
“바로 반응하실 줄 알았는데 좀 늦으셨네요.”
“설마, 유물함과의 연결이……?”
“그거 확인하려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제3자인 자진 납세자는 맥락을 이해 못 하고 갈고리나 수집했지만 칼 칸시와 에밋의 반응은 달랐다.
“난 영락없이 하나라도 더 많은 언데드를 쓸어 버린 다음에 리치를 잡으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나에 대한 평가가 어째 점점 박해지는 거 같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지금까지의 행동을 되짚어 본 다음에도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다니 뻔뻔하기 그지없군. 왜 먼저 말하지 않은 겐가?”
비겁하게 팩트로 후려패려는 두 사람에게서 눈을 돌린 나는 다 무너진 창가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마력 줄기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사방팔방 뻗어 있는 10개의 줄기는 비록 중구난방이긴 했어도 도시 밖의 아주 먼 어딘가까지 이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 직접 보고 이야기 하려고 했죠.”
직접 리치의 유물함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내 입장에서는 저렇게 무방비하게 노출이 되는 곳에 정말 제 목숨줄이라고 할 수 있는 유물함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거기까지 다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에밋은 내가 어떤 생각으로 물증을 확인하려고 들었던 것인지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이다. 골치 아프다는 듯 자신의 뿔을 긁적인 에밋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면서 이야기하세.”
그러더니 대뜸 지팡이를 움직여 모닥불의 불꽃을 조작하더니 위로 올라오는 계단이 없는 탓에 1층에서 악취와 소음을 자아내며 위만 바라보던 좀비들을 향해 불의 비를 흩뿌렸다.
단순히 불에 타는 게 아니라 불길에 잡아먹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광경 속에서 작은 불씨들이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1층에서 바글거리던 언데드들을 죄다 구워 버리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 기가 막힌 광경에 감탄하는 칼 칸시와 자진 납세자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에밋은, 가벼운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자네 능력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할 거 같군.”
어김없이 단정하게 코트를 걸치는 에밋의 모습은, 방금까지 노인이 어쩌고 체력이 어쩌고 하던 어르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날래고 절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