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7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78화(578/599)
[578화] The Road to Lich is paved with RAGE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까지도 마법사가 전력을 다하는 광경을 본 기억이 없었다.
전쟁터에서야 당연히 오만 가지 마법이 오고 가지만 그런 건 결국 페이스 배분이 필수적인 장기전이다보니 눈앞의 상대 하나만을 노리고 전심전력으로 상대하는 경우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직관하게 된 마법사간의 생사결을 펼치는 게 에밋과 리치라서 다행이었다. 오해도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열심히 에스테로 유물함을 찍어 누르면서도, 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주문의 향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리치는 그야말로 뒤가 없는 것처럼 마법을 구성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었으면 진즉에 과부하가 오고도 남을 양이었지만, 육체를 포기했기에 가능한 방대한 마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보니 어떻게든 유지가 된다.
우연히라도 내가 알아보고 파훼할 수 있을 만한 마법은 첫 대면에 쏘아올리려던 화염구 몇 개뿐. 그게 에밋에게 막힌 이후로는 하나같이 고등 마법으로 분류될 것들만 시전 중이다.
그나마 마력을 운용하는 방식은 그리 뛰어나지 못한 것인지 에스테를 들고 허공에 칼질을 한다면 몇 개 정도는 어떻게든 끊어 먹을 수 있겠으나, 그 뒤로는 결국 똑똑한 몸만 믿고 근접전을 펼쳐야 하는 수준이다.
그걸 막고 있는 에밋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건 대충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지팡이를 움직이는 모습이나 영창을 이어 나가는 것만 봐서는 여유롭게 연주 지휘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시종일관 여유롭기 그지없었던 평소의 모습과 비교하면 세상 심각한 상황인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에밋은 분명하게 리치의 마법을 막아 내고 있었다. 놈의 주변에서 수시로 불발된 마법이 터지고, 흩어지고, 우리가 아닌 애먼 곳을 향해 쏘아지는 건 전부 그의 노력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짬을 내서 빈틈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리치는 유물함이 멀쩡한 이상 죽지 않기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이걸 부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유물함을 두르고 있던 술식들은 어느새 반절 이상 파괴된 상태였다. 갈수록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리치는 세월이 흐르고 자신의 경지가 일정 간격 이상 오를 때마다 마법을 추가로 부여한 듯했다.
하긴, 이만한 마법을 매번 새롭게 다시 준비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면 말도 안 되는 거겠지.
어쩌면 우리가 발견한 게 놈이 지닌 유물함들 중 가장 튼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적인 관측을 하면서도 에밋의 마법에서 뭐라도 더 배우기 위해 열심히 눈을 돌리던 그때.
-콰가각!!
“오?”
지금까지 느껴졌던 저항이 느닷없이 사라지더니, 에스테가 순식간에 마법을 뚫고 유물함까지 갈아버렸다.
[[끄아아아아악!!!]]“어우, 갑자기 훅 치고 들어가네.”
유물함에 영혼의 일부가 담겼다는 말이 진짜인지는 마력시로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당장 저 리치 놈이 시전하고 있던 모든 마법이 무너지며 절규를 내지르는 꼴을 보아하니 타격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흔히 영혼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라고는 하는데, 통증이란 본디 육체에서 비롯되는 법이거늘 쟤는 지금 어떻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매우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 작은 즐거움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 어떻게!? 대체 어떻게!!]]꼬챙이로 꿰뚫듯 에스테에 유물함을 꿰어 놈의 시선에 맞춰 흔들어 보이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뻘건 무언가가 일렁이던 놈의 눈구멍이 다시 검게 바뀌며 겉으로 뿜어져 나오던 흉악함은 사라지고 처음 봤을 때의 느낌으로 돌아간다.
어째서일까, 분명 표정이 없는 해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미한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이제 아홉 개 남았네?”
아무리 그래도 해골이 두려움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이야기인지라 한 번 떠봤더니 놀랍게도 내가 느끼고 있는 놈의 감정이 더욱 커졌다.
[[아, 아홉?! 네놈 대체 그걸 어떻게?!]]경악, 불안, 두려움. 어쩌면 이마저도 용혈을 뒤집어쓴 후유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놈이 보여주는 반응에 진심으로 어이없음을 느꼈다.
눈앞에서 유물함 하나가 박살 남과 동시에 길길이 미쳐 날뛸 줄 알았건만 녀석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인간적이다.
오히려 반응만 놓고 보면 내가 악당이고 놈이 피해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려움에 떠는 녀석의 ‘시선’은 완전히 연결이 끊기고 빈 껍데기가 되어 버린 유물함에 꽂혀 있다.
그런 놈의 꼬라지가 너무나도 우스워서, 대충 팔을 휘둘러 유물함을 내팽겨친 뒤 어깨를 풀며 물었다.
“너, 보물찾기 좋아하냐?”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거 같은 유물함을 향해 천천히 검을 뻗자 놈의 시선이 그걸 따라 자연스럽게 옆으로 흘러 갔다.
[[아… 안 돼!!]]신기하면서도 재밌는 감각이다. 해골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다니. 난 부디 내 유쾌함이 놈에게 온전히 전달되길 바라며 화사한 웃음과 함께 대답해주었다.
“돼.”
◈
칼 칸시는 어안이 벙벙했다.
전투 중에 넋을 놓고 있다는 건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엘드미아가 사악한 미소와 함께 단답으로 대답을 마치는 것을 기점으로 전투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긴 했다.
심지어 그 에밋조차 처음에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엘드미아가 아직 남아 있는 언데드들을 분쇄해 버리며 미친 듯이 달려 나가고, 리치가 비명과도 같은 절규를 내지르며 쫓기 시작하고 나서야 두 사람은 지금 눈앞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유물함을 열 개나 만들어 놓았던 리치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은 어떻게든 저 리치를 방해해야 한다는 것을.
엘드미아는 엘드미아다 보니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비록 공포에 휘둘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리치다. 놈은 하늘을 가로 지르면서도 끊임없이 엘드미아를 방해하기 위해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공격 마법들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사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한 명중률에 주변의 애먼 언데드만 죽어 나가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치도 평정을 되찾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노릇이다.
평소 원거리 견제 수단은 단 하나도 들고 다니지 않은 탓에 에밋에게 접근하는 언데드만 열심히 때려잡으며 지원하던 칼 칸시는, 문득 열심히 뒤 따라오는 전직 마왕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댁은 왜 계속 따라와?”
“도망칠 용기도 없고! 방법도 없으니! 따라 갈 수밖에 더 없잖습니까!”
무기를 빼앗았기 때문에 갑옷만 덜렁 걸치고 있는 그는 격투술에는 영 조예가 없는 편인지 자신에게 덤벼드는 언데드들을 요리조리 피하기 바빴다.
워낙 맥없이 잡혀서 그렇지, 그래도 마왕군의 순찰대로 활동할 만큼의 체력과 실력은 있는 덕인지 딱히 위험은 없어 보였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악물고 따라오는 모습이 영 우스웠다.
“방법이 왜 없어? 우린 지금 댁한테 신경 쓸 여력이 없으니 그냥 튀면 되잖아?”
왔던 길만 그대로 돌아가도 엘드미아가 싹 다 갈아버리며 왔기 때문에 위협적인 언데드들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놓치지 않을 거였으면 칼 칸시에게라도 부탁을 했을 거라 생각하며 손을 내젓자, 전직 마왕군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마지막으로 엘드미아를 한 번 바라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거꾸로 달렸다.
“거 웃기는 친구네.”
애초에 적이었고 정이 든 것도 아니었기에 딱 그 정도 감상을 남기고 칼 칸시는 다시 주변의 언데드를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기묘한 추격전은 생각보다 속도가 나오지 않았기에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자신의 몸을 띄우고 리치를 방해하기 바쁜 에밋의 앞을 달려 미리 언데드들을 처리하며 십여 분가량을 더 달렸을까.
이제 리치의 불발된 마법이 주변 일대를 무너뜨리는 소음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저 멀리서 느껴지는 익숙한 인기척에 의아함을 느낀 칼 칸시의 팔다리가 아주 잠깐 멈췄다.
“…왜 또 저래?”
그곳에서는 분명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던 전직 마왕군이, 골목 귀퉁이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오더니 맹렬한 기세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
처음 항복했던 순간보다도 다급해 보이는 모습으로 뭐라 뭐라 외치는 그였지만 하필 리치의 화염구가 에밋의 방해를 받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터지는 바람에 들리지 않았다.
한 발로 끝나지 않은 대여섯 개의 화염구는 엘드미아와 에밋 그리고 칼 칸시에게서는 한참 먼 곳에 떨어졌지만, 한참 거리를 두고 있는 전직 마왕군은 에밋의 계산에 포함 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매우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폭발이 일어났다.
“…습니다!”
다급하게 달려오는 전직 마왕군의 뒤로 가장 큰 화염구가 떨어지며 만들어 낸 폭발이 꽤 극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주먹을 휘두르는 칼 칸시의 귓가에, 전직 마왕군의 아련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 아주… 됐습니다!!”
“뭐라는 거야? 왜 또 돌아와!”
-콰아앙!
다시 전직 마왕군이 입을 벌리는 찰나 그의 뒤에서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엔 리치의 마법이 아니었다. 전직 마왕군이 이제 막 지나쳐 온 건물이 뭔가에 부딪친 것처럼 갑작스럽게 터져 나가면서 낸 소음이었다.
그렇게 생겨난 먼지 구름과 폭발의 후폭풍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를 보고 나서야 칼 칸시는 기껏 도망칠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가 다시 돌아왔는지 설명 없이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 일대가 아주 좆 됐다구요!!”
2층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언데드가, 괴성을 지르며 전직 마왕군을 맹렬히 쫓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