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8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81화(581/599)
[581화] Devil, Cry.리치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세닛히구아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그거 하나뿐이었다.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일까?
소환에 응했다고는 하나 아직 거래를 한 것도 아니다. 굳이 이름을 밝히고 영혼을 바치겠다고 말할 정도로 숭배하는 것도 아니다. 세닛히구아의 이름을 팔아 위협하려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이 연달아 떠오르는 도중, 불현듯 리치의 싸움에 개입하는 꼴이 되어 버린 자신의 장난감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 그건가.’
사전 협의 없이 막대한 마력을 사용해서 장난감을 만들어냈으니 제 생명을 보물처럼 여기는 리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놀라거나 분노했을 가능성이 크다.
말도 없이 성물함에 손대는 짓은 안 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 놨건만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에 대체 무슨 짓이냐고 혼잣말을 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떤 구조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 미리 말이라도 해 줄 걸 그랬네.’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가 구르고 굴러 이런 형태로 방해가 될 줄이야.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세닛히구아는 격통으로 인해 잘 굴러가지 않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확신을 담아 다급하게 외쳤다.
“리치한텐 가짜 이름을 알려 준 거라고!”
악마들은 통증에 익숙하지 않다.
이 차원에서 그들이 얻는 통증이란 수없이 많은 옷을 겹쳐 입은 상태에서 주먹으로 두드려 맞는 것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다.
수많은 제물을 기반으로 생성한 가짜 몸인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애초에 악마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수단이 한정된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그리고 당연히 악마들도 자신들에게 그런 피해를 줄 수 있는 존재들은 알아서 피하는 법이다. 소환되었다고 해서 무턱대고 나갔다가 역으로 포위당해 수백 년 동안 강제로 사출당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담컨데, 그 ‘피해를 줄 수 있는 수단’조차 지금 세닛히구아가 느끼고 있는 격통의 원인인 검과 비교하면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내, 내 이름은 잉글라디우야! 대체 나한테 뭘 원하길…아아아악!!”
그리고 인족은 그 사실을 아주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검을 박아 넣은 상태로 마치 모래위에 나뭇가지로 선을 긋듯 한 뼘만큼 검을 움직였고, 그만큼 팔이 잘려 나가게 된 세닛히구아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은 격통에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는 세닛히구아를 보면서도 한없이 싸늘한 시선을 유지하던 인족이 다시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너, 잉글라디우하고 별로 안 친하지?”
그냥 지금 당장 팔을 뜯어버리고 재정비를 마친 다음 제대로 상대해야 한다고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건, 방금 인족이 던진 한 마디 때문에 생겨난 의문이었다. 저게 뭔 소리야?
“네가 왜 하필 많고 많은 악마 중에 잉글라디우의 이름을 팔아 먹는 걸까 잠깐 고민해봤거든? 네가 걔랑 친했으면 날 모를 리가 없으니까 친한 건 아니고… 안 친한데 이름을 팔아먹는다는 건, 보통 걔를 엿 먹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네가 잉글라디우라고 당당하게 구라칠만한 근거가 충분한 게 아닐까 싶더라고.”
명백한 조소와 비웃음과 멸시가 담긴 시선을 받고 있을 거라 여기며, 세닛히구아는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의도한 상황에서 비웃음 당하는 건 상관없다. 더 큰 쾌락을 위한 주춧돌이니까.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나 거기에 욱 해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차라리 부정적이더라도 감정 담긴 시선이 차라리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족의 머리가 점점 옆으로 기울어진다. 그러면서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과 얼굴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어째 인족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대하는 것 같아 소름 돋는다.
동시에 강렬한 위화감이 또 한 번 경종을 울렸다.
“악마랑 계약한 게 분명한 리치와, 다른 악마의 이름을 팔아먹고 있는 악마. 이름을 속이는 게 목적이라고 하기엔 이미 리치가 무의식중에 외친 한 마디가 결정적인 상황.”
악마는 필멸자들에게 있어 공포의 상징, 분노의 대상, 두려운 존재, 미지의 지식을 속삭이는 신비로 취급되어야 한다. 실제로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세닛히구아는 단 한 번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 인족에게는 그런 감정이 모래알만큼도 없다.
그게 위화감의 정체였다.
“저 리치에게 힘을 준 게 잉글라디우냐?”
마치 금방이라도 치워 버려야 하는 쓰레기에게 말을 걸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냉담한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세닛히구아는 인족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자신을 ‘살아 있는 것’으로조차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고통 속에서도 뻔뻔하게 웃어 보이며 세닛히구아는 이 이상의 장난질은 위험하다고 확신했다.
태도만 놓고 보면 그냥 미친놈이지만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통증은 꿈이 아니었으니, 이유와 과정이 어땠든 간에 놈은 악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게 맞았고, 동시에 악마를 적대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위험해. 진짜 위험해.’
날고 긴다는 성기사들조차 악마들을 저렇게 일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악마는 대적자이자 위험이지 아무렇게나 밟아 죽일 수 있는 해충같은 게 아니다. 놈처럼 시종일관 악마를 죽이는 것에 대해 어떠한 불편도 없다는 듯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 정도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통증과 당혹감 속에서 굳어져 있던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번쩍 눈이 떠졌다.
초월자와 달리 놈은 조금 이상하긴 해도 평범한 필멸자였으니, 일단 자신의 팔을 꿰뚫고 있는 검만 처리하면 이 기묘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
그렇게 결론을 내린 세닛히구아가 바닥에 흥건히 번져 있는 피를 조작하기 위해 마력을 운용하는 순간, 느닷없이 뽑혀 나가는 검과 함께 인족이 뒤로 물러났다.
“잉글라디우와 크루멜리아의 공통점이 뭔지 아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서 세닛히구아는 그가 자신의 기습을 예측하고 빠졌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서 재수가 없었다고 여길 뿐.
그랬기에 그녀는 다 낡아 빠진 망토를 쥐어 검신을 닦아내며 뒤로 물러나는 인족의 행동보다 그가 내뱉은 말에 더 집중하고 말았다.
갑자기 크루멜리아의 이름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안 됐고, 그저 조금 잘 나가던 악마와 만마전의 대공 사이에 대체 무슨 공통점이 있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최근에 이 세상에 넘어왔다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고 숨어 다니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인…?
“둘 다 너무 곱게 뒈졌다는 거야. 그러니까 만마전에 아무런 경고도 되지 못한 거고, 그 결과…”
검집을 풀어 한 손에 든 인족이, 다 닦아낸 검을 집어넣기 위해 칼끝을 맞춘다.
짧은 금속음과 함께 검집 입구에 검의 첨단이 닿는 과경이, 기이하리만치 섬뜩하다.
“…자꾸 너 같은 새끼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틈만 나면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거지.”
그 별거 아닌 동작을 마치고 자신을 노려보는 인족의 모습에서, 세닛히구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태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히, 히익.”
그리고 그 위기감이 머리를 잠식한 순간 세닛히구아는 다급하게 몸을 돌려 리치가 준비했던 소환진으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공포심에 심장이 쿵쾅거리는 상황을 처음 맞이한 세닛히구아는 만마전의 악마들과 쟁탈전을 벌이면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과정을 인지할 틈도 없었다.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본능을 통해 느껴지는 위기감은 세닛히구아로 하여금 인족 마법사로 위장했던 것조차 풀어 버리고 본 모습이 나오게 만들었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장난감들을 유지하기 위해 뿌려놨던 마력마저 회수하게끔 만들었다.
비효율적인 판단이다. 그래 봤자 회수도 온전히 할 수 없을뿐더러 장난감들의 지속시간이나 갉아먹을 뿐이다. 평소의 세닛히구아였다면 어떻게든 버티면서 언데드들을 부려 혼과 생명을 갈취하고 장기전을 노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러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직 지금 이 상황에서 전력으로 도망치기 위해.
“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그 덧없는 몸부림은 스르릉! 하는 서늘한 소리가 뒤에서부터 들려오자마자 세닛히구아의 머리통이 척추를 부수고 몸통으로 파고들면서 너무나도 손쉽게 무산되었다.
-콰드득!
“끄륵?!”
아프다. 그저 아프다. 이렇게 아플 리가 없는데 너무나도 아팠다
어떻게든 빠르게 회복하려는 몸이, 머리의 위치가 바뀌면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탓에 제멋대로 휘적이면서 바닥을 굴렀지만 고통은커녕 감각을 느낄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 짧은 순간 세닛히구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검집에 들어간 검을 여전히 쥔 채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는 인족의 모습이었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검이 검집에 들어간 탓에 자신의 머리통이 짓이겨진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갈 땐 허락 받고 가야 한다.”
놀이터에 불과했던 장소에 인지를 초월한 기형적인 괴물 하나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세닛히구아는 머리가 제자리로 돌아옴과 동시에 기어서라도 소환진에 다가가려고 했으나, 뒤에서 들려오는 칼 뽑는 소리와 함께 그마저도 실패했다.
이번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머리가 뜯겨졌다.
머리만 허공을 비행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 세닛히구아는 머리를 잃고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몸과, 검을 뽑은 인족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자랑이던 머리카락과 함께 바닥을 세 번 정도 튕겨 구르면서 점점 소환진으로 다가가는 인족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구르고 굴러 아까 자신이 대충 던져놓았던 마족의 시체에 부딪쳐 겨우 멈췄을 무렵엔 소환진 위해 올라 서서 묵묵히 그걸 바라보는 인족을 볼 수 있었다.
“아, 안 돼.”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한 세닛히구아의 단말마가 인족의 시선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행동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맞아. 안 돼.”
죽지 않는 이상 유일한 탈출구라 할 수 있는 소환진은 그렇게 인족의 흙발 아래 무자비하게 짖이겨져 망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