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8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84화(584/599)
[584화] Devil, Cry.자신의 성물함을 박살 낸 인족이 세닛히구아가 있을 폐신전으로 향했을 때, 솔직히 리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세닛히구아는 미심쩍은 거지 약한 게 아니다. 그 방대한 마법을 체감한 리치의 입장에서 인족의 선택은 자살과 다를 바 없었다.
“어리석은 필멸자 같으니, 제 죽음을 향해 알아서 기어들어갔군.”
자신을 가로막는 마법사를 제치고 놈의 뒤를 쫓지 않은 이유도 그때문이다. 녀석이 남은 성물함을 찾으러 달려갔다면 이딴 마법사와 지지부진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틈은 없었을 것이다.
리치는 성물함을 위협하는 존재가 알아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간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이제 네놈들도 곧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케케케케케…켁!”
그러는 사이 리치에게 생겨난 빈틈을 에밋이 찌르고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더 오래 웃을 수 있었겠으나, 늙은 마법사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리치의 술식을 파훼하고 역류시켜 기어이 타격을 입혔다.
“웃지 말게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만, 자네는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구먼.”
“입만 살아서는…!”
“리치가 되어 가지고 그거밖에 못하고 있는 자네가 할 소린가?”
사실 그리 말하고 있는 에밋의 상태는 영 좋지 않다. 리치의 마법과 술식을 깨는 것은 익숙해졌지만 실시간으로 깎여나가는 정신력과 집중력 그리고 체력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죽음을 향해 기어 들어갔다는 것인지 모르겠군. 꿈이라도 꾸고 있었던 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달리 도발을 섞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제는 단순히 에밋이 버티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리치가 평정을 잃어야 대치가 유지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값싼 도발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궁지에 몰려 무작정 시도한 발악은 아니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마법을 완성하지 못한 리치의 자존심은 잔뜩 금이 가다 못해 바스러질 지경이었으니, 오히려 악마와 거래해서라도 리치가 되어 마법을 탐구하고자 했던 마법사의 심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시도한 한 수였다.
“하! 악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 네 동료인 게 당연하지! 설마 초월에 도달하지도 못한 한낱 인족이 악마를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더냐? 그것도 제 능력을 온전히 다 끌고 온 악마를?”
아니나 다를까, 에밋의 예상대로 리치는 노기를 감추지 못하며 더욱 언성을 높였다.
“악마가 만든 피조물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도륙 낸 것은 대단하다고 해주지! 허나 거기까지다! 악마의 심기를 건드린 이상 네놈들에게 남은 건 고통스러운 죽음과 후회뿐이니!”
케륵케륵케륵. 턱을 덜그럭거리며 참으로 기분 나쁘게 웃어 보이고 빈틈을 내비치는 리치였으나, 이번에는 에밋의 반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원래 저렇게 제대로 손도 못 쓰다가 기세를 타서 우위를 점하고 자만하기 시작하는 삼류는 가만히 내버려 두는 편이 시간을 끄는 데에 더 용이한 법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침묵이 금보다 값진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한 에밋은 괜히 리치의 신경을 더 긁는 대신 잠깐 손발을 멈추고 자신과 눈이 마주친 칼 칸시에게 짧은 수신호를 보냈다.
모험가들이 공용으로 쓰다시피 하는 수신호였기에 사전에 이야기된 게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칼 칸시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신호하면 달려라.
너무나도 빠르고 은밀하게 이루어진 탓에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에밋의 침묵을 그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자의 좌절 정도로 받아들인 리치의 기분은 한껏 더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래, 좌절해라! 절망해라! 네놈들은 여기서 천천히 말라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초월을 위한 주춧돌이 되리라!”
예상치 못한 궁지에 몰렸던 만큼, 자신의 마법이 필멸자에게 막히며 지금까지의 세월을 반 이상 부정당한 만큼. 뒤늦게나마 우위를 점했다고 여긴 리치의 머릿속에 신중하게 속전속결로 끝낸다는 선택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최대한 고통을 주고 괴롭히다가 죽인다. 그리고 혼은 악마에게 넘겨 버린다.
고통 속에서 영혼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기억 속에서 꺼내 되새기던 리치의 어깨가 뒤틀린 즐거움에 심취하여 들썩이는 동안에도 여전히 침착하게 리치의 마법을 파훼하던 에밋의 사고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역시 자네 눈이 없어서 뵈는 게 없구먼.”
구체적으로 엘드미아의 능력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은 적은 없었으나, 에밋은 나름대로 고심한 끝에 마력을 잘라 내는 그의 능력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보며 추측해온 바가 맞다면, 엘드미아는 리치의 자신만만한 외침과 달리 오히려 악마의 천적과도 같은 존재다.
‘마력을 끊는’ 엘드미아의 능력은 아무리 격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엄연히 용족인 풍왕 이라노레프조차 막아 내지 못했다. 오만하고 고고한 탓에 치유 마법 따위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의 마법이 한낱 필멸자에게 방해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한들 필멸자들이 시전하는 디스펠이 용의 마법을 손쉽게 끊어 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어려운 걸 너무나도 손쉽게 해내는 것이 그 능력이다. 원리는 알 수 없을지언정 엘드미아의 능력 앞에서 마력이라는 건 가볍게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갈가리 찢겨 나갈 수 있는 얇은 종이와 같다.
“머리가 있는 악마라면 우리 고용주를 보자마자 도망치기 바쁠걸?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겠지만.”
악마가 많은 이들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인 이유는 전신이 마력으로 구성되다시피 하여 그들만의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제약이라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제힘을 온전히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제물을 바탕으로 현신해야 한다는 것 정도. 그마저도 악마들 나름대로의 편법이 있는 것인지 반드시 적용되는 전제 조건이 아니다.
그런데 엘드미아는 악마들의 신체를 구성하는 마력을 제멋대로 찢을 수 있다.
본디 공포의 대상이어야 하는 고위 악마가 제힘을 온전히 지닌 채 넘어올수록 오히려 엘드미아의 능력은 놈들에게 극독劇毒으로 작용한다.
악마가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과 동시에 행동에 나섰으니… 엘드미아 역시 모종의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게 무슨……?”
신나게 비웃던 와중에 이해 못 할 소리를 듣게 된 리치가 멈칫한 찰나, 분명 저 멀리서 느껴지던 악마의 기운과 마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절묘한 순간이었기에 리치의 고개가 눈앞에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급하게 뒤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에겐 그만큼이나 놀랍고 경악스러운 일이었고, 엘드미아라면 뭐라도 할 것이라 믿고 있었던 에밋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아무리 리치라고 해도 신경을 딴 데 팔고 있으면서 마법을 준비할 수는 없었기에.
“달리게!”
뒤에 신경이 팔려 정체되어버린 리치의 술식을 막아 내는 것을 멈추면서 에밋이 준비한 것은 대규모 빙결 마법이었다. 영창을 단축하기 위해 품고 있던 마도구 중 하나를 희생해야 했지만, 목숨 값이라고 치면 저렴한 거였다.
“이, 이 같잖은 것이…!”
리치의 주특기는 화염계.
언데드 주제에 건방지기 그지없었으나 긴 세월 묵혀 온 놈의 마법 체계는 나름 견고하여 화염 저항을 지닌 언데드를 상대하는 것과 진배없는 꼴이었다.
마찬가지로 화염 계열 마법이 주특기인 에밋이었지만, 그 탓에 유의미한 피해를 주기는 힘들었다. 겸허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 에밋이 내린 결정은 잠시라도 리치의 발을 묶는 것이었다.
“역시 자네는 마법사 실격일세.”
너무나도 쉽게 빈틈을 내보인 리치를 조롱하며 던진 얼음의 창은 새하얀 해골에 닿는 것과 동시에 리치의 전신을 얼려 버렸다.
순식간에 일대의 온도마저 낮아질 정도로 완성도 높은 빙결 마법이었지만, 저 얼음 속에서도 리치의 의식은 멀쩡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에밋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제 몸을 띄워 폐신전을 향해 날아갔다.
일부러 속도를 늦추거나 해서 칼 칸시와 발을 맞추지는 않았다. 혼자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라 그만큼 전력으로 도망치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다행히 칼 칸시는 아무 설명이 없었어도 상황을 귀신같이 이해하고는 네발로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고, 조금 늦게 사태를 파악한 마왕군은 어디서 구해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검마저 내던지고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 내며 달렸다.
그리고 꽁꽁 얼어붙은 얼음 속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리치는 정신적으로 이를 갈았다.
[[감히 너 따위가!!!]]에밋의 마법은 분명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시금 검은 눈구멍에 붉은빛이 일렁이기 시작한 리치의 주변에 검은 불꽃이 휘몰아치자마자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단순히 녹는 것을 넘어 습도가 올라갈 틈도 없이 수분이 증발하며, 마치 달구어진 철판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자아냈다.
덕분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리치를 바라본 칼 칸시는 그 서늘퍼런 반응을 마주하고는 정말 오랜만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에밋 선생! 쟤 완전 눈 돌아갔는데!”
그래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날아가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에밋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영 시원찮았다.
“알면 더 빨리 달리게! 엘드미아와 합류해야 해!”
우리로는 답이 없다는 말과 이음동의어였다. 결국 칼 칸시는 이전까지 보여줬던 존경을 잠깐 내려놓고 황망하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푼이 취급하면서 머리끝까지 화나게 해 놓고 결국은 도망치는 겁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비록 악마에게 혼을 판 반푼이일지라도 리치는 리치일세! 유물함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죽어!”
그야, 분명 사실이었지만.
워낙 엘드미아와 에밋의 활약에 익숙해진 탓인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답변에 아쉬움을 느낄 틈은 없었다.
[[다 태워 죽여버려주마!!]]에밋의 방해에서 완전히 벗어난 리치가, 지금까지 시전 못했던 마법들을 전부 쏟아부을 기세로 쫓아 오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