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8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88화(588/599)
[588화] Devil, Cry.‘우리는 그대의 연구에 큰 관심이 있다.’
타네벨로 비스탈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수준의 고위 마법사와 기사들을 대동한 채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암막공이 처음으로 말을 건넸을 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자신이 지닌 숙원의 크기에 짓눌리지 않고 필멸조차 극복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성과까지. 꼭 우리와 함께 손을 잡아 주었으면 하는군.’
평생 홀로 연구했기에 소문이 날 구석도 없었거늘 대체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특작부의 수장은 당장 비스탈을 죽이기에 충분한 전력을 끌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택도 아닌 인원으로 무례하게 치고 들어온 엘드미아와는 여러모로 상반된 태도였다.
‘그런 공치사가 무슨 의미지? 거절하면 이대로 죽을 게 뻔하거늘.’
하지만 비스탈이 보기에 그 예의는 손에 쥐고 있는 무력을 신뢰하기에 나오는 오만에 가까웠다.
어차피 거절이란 선택지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인 듯하고, 동시에 자신의 연구엔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볼멘소리라도 한 마디 하고 고개를 숙이려 했으나 암막공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음? 아아, 오해하지 말게. 이건 안전을 위한 대비에 불과하니까. 말이 통하는 게 확인되었으니 이젠 사람들을 물려도 아무 상관없다네. 자네가 편하다면 그리하지.’
빈말이 아니었다. 암막공의 손짓 한 번만으로 뒤에 서 있던 스무 명의 강자들은 정말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당혹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현 상황을 재확인하던 때, 비스탈의 귓가로 암막공의 말이 스며들듯이 들려왔다.
‘자네의 연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네. 물론 공짜는 아니지. 우린 그 ‘필멸을 극복하는 방법’을 공유받고 싶다. 자네의 핵심 연구는 관심도 가지지 않겠네. 그건 오롯이 자네만의 것이니까.’
모든 재정적 지원을 하는 대가로 부산물만 먹고 떨어지겠다는 말과 다름없는 꿈같은 말.
‘허나 그것만으로는 이쪽도 조금은 손해이니… 자네의 이번 연구가 완성된 다음부터 우리 마왕군을 위해 간간이 일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떤가? 지금은 자네의 영역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땐 이야기가 다를 테니 그리 무리한 부탁은 아니라고 생각되네만.’
심지어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라 의혹을 품을 것까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추가 제안까지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안에 비스탈이 말을 아끼니 되려 자신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 다음을 기약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제안은 분명 암막공이 먼저 해왔으나 결국 그를 붙잡은 건 비스탈이었다.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는 안 물어 봤나?”
뚱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닛히구아가 엘드미아라 부르던 인족의 질문이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던 비스탈의 정신을 깨웠다.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더군.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굳이 물어서 좋은 관계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 중요한 것도 아니기에 그대로 흐지부지 넘어갔다.”
이미 이야기를 진행하는 동안 암막공이 무엇을 제시했는가와 어느 정도의 병력을 이끌고 어떻게 도착했는가를 물었기에 비스탈의 발치에는 한 쌍의 팔찌가 놓여져 있었다. 생전에 즐겨 사용했던 팔찌 형태의 마도구는 한 쌍이어야 내재되어 있는 효과를 발현할 수 있었지만, 한 짝씩 성물함으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회수된 성물함은 이제 다섯. 엘드미아가 자신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어 하는 것인지 얼추 눈치챈 비스탈은 있지도 않은 피부 위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놈은 마왕군의 뒤를 캐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비스탈에겐 더 이상 그들과 관련된 정보가 없었다. 기껏 해봤자 어떤 형태로 도움을 주기로 약조했는지에 대한 내용이 고작일 텐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봐서는 놈이 그걸 궁금해할 것 같지 않았다.
질문에 답하지 못해 돌려 받지 못한 성물함을 놈이 그냥 내버려둘까? 그럴 거였으면 진즉에 첫 성물함도 회수했겠지. 장담컨대 나머지는 가치가 없다면서 직접 파괴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암막공의 얼굴은 봤나?”
“아니. 별칭대로 얼굴에 무슨 천을 두르고 다니더군. 그때 이후로 본 적도 없다.”
이것도 대답으로 쳐줄까 기대했지만 넘어오는 성물함은 없었다. 세닛히구아가 들고 있는 남은 네 개의 성물함을 바라보는 엘드미아를 예의 주시하며 불안해하는 비스탈에게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엘드미아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놈이 데려왔다고 했었던 스무 명의 인상착의는?”
“…기억 난다.”
“기억하는 대로 묘사해서 내놔. 그럼 나머지 성물함을 모두 넘겨주지.”
이번에도 달리 선택지가 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나마 비스탈에겐 다행이었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기억이고 비스탈이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엘드미아의 제안에 부응할 방법은 있었다.
“…기억 추출 마법을 기반으로 인상착의를 종이에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내 은신처에 물품들이 있으니 이 결계만 풀어 주면 거기서 내어주겠다.”
“캬루베로스. 풀어.”
그게 비스탈이 나머지 성물함을 두고 도망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의거한 판단인지, 그대로 도망치든 저항을 하든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주변에서 정말 그래도 되는 거냐는 눈빛을 보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엘드미아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반발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자신을 옭아매던 마법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비스탈은 바닥에 떨어진 성물함들을 주섬주섬 모은 뒤 덤덤하게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라는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
“어떻게 할 생각이야 손님?”
돌팔이를 따라 폐신전으로 향하는 동안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온 칼 칸시의 질문에,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 되물었다.
“뭐가?”
“유물함을 다 돌려주고 정보만 얻기로 계획을 바꾼 거야?”
“그럴 리가.”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는 그래선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악마에게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려는 리치가 머지 않아 불멸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살려둘 이유가 어딨겠는가.
“이전 세상에서 놈은 어떤 형태로든 불멸이라 부를 수 있는 유사 경지까지 도달했던 게 분명해. 그 형태가 초월 내지는 승천에 근사한 것이라서 마왕군이 접근한 거겠지. 잠재적인 위험도만 놓고 보면 지금 없애버리는 게 정답인데 이제 와서 방생할 이유는 없어.”
돌팔이의 도주를 우려하고 감시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라 멀찍이 떨어져 이동하고 있었던 덕에 우리의 대화가 놈의 귀까지 들어가는 일은 없었지만 옆에서 동행하던 캬루베로스의 귀까지는 충분히 들어간 모양이다.
“예? 그럼 유물함은 왜 돌려주신 건가요?”
“너라면 유물함 다 박살 나고 남은 건 죽는 것만 남았는데 방금까지 들었던 정보들 다 말하라고 하면 말했겠냐?”
“어… 그건 아니지만…”
놈이 유물함을 쥐고 있어서 더 강해지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애초에 유물함을 찾아서 파괴하는 동안 저 돌팔이가 꾸준하게 훼방을 놓는 게 귀찮은 거였지 녀석이 위협적인 게 아니다. 돌려 준다고 했지 놓아준다고 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돌팔이 역시 그 정도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어차피 죽일 거 정보를 더 얻어내려고 희망을 주신 거라는 말씀…”
“어, 맞는데.”
내 즉답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캬루베로스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린다. 그 표정이 마치 사탄도 기립박수 칠 법한 악랄한 것을 봤다는 듯하여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깔 뜨는 거 봐라. 왜? 내가 니네들처럼 행동하는 거 같아서 웃기디?”
“어, 어…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도 그렇게 악랄한 방법으로 농락하진 않는다고 해야 할까…”
가까스로 말을 고르면서도 진실되게 대답하는 캬루베로스의 모습이 기가 차서 가차 없이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니넨 장기적인 계약의 신뢰성과 즐거움을 위해 교묘하게 그런 거고. 저 돌팔이가 내 의도를 모르겠냐?”
아무리 우리 모두가 입을 모아 삼류에 돌팔이라고 부른다한들 결국 한 분야의 연구 성과를 뽑아내기 직전이었던 마법사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것과 같은 이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타네벨로 비스탈이라는 리치는 절대 멍청이가 아니다.
이 유물함들이 전부 자신의 손에 넘어가는 그 순간이 제 삶의 종지부가 될 거라는 걸 모르고 있지 않을 거라는 소리다.
“너랑 잉글라디우까지 내멋대로 움직이는 걸 코앞에서 본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 꾹 닫고 죽는 게 아니라 계속 거래에 응하는 건 아직도 이 상황을 타파하려는 의지가 가득하다는 소리겠지.”
“그냥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깔끔하게 죗값을 치르려는 것일지도 모르잖아?”
옆에 조용히 듣던 칼 칸시가 던진 질문에 나는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내저으려 했지만 캬루베로스가 대놓고 빵 터질 뻔한 바람에 인상부터 찡그렸다.
악마 새끼와 생각이 겹쳤다는 게 매우 불쾌했기에 녀석의 뒤통수를 한 번 더 후려친 다음에야 나는 칼 칸시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했다.
“그럴 놈이었으면 몇 명이나 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제물 삼아 리치가 되지 않았겠지.”
최소 수백, 많게는 수천이다. 어쩌면 놈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이 폐허가 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그들 모두를 제물로 바쳤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계약의 당사자인 잉글라디우에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겠지만… 녀석은 어째 아까부터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라서 일단 미뤄뒀다.
“설령 죄를 뉘우치려고 한다 하더라도 그전에 머리통을 터트리고 지옥으로 보내버려야지.”
폐신전 안으로 사라지는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걸 들은 칼 칸시는 헛웃음을 터트렸고 캬루베로스는 열심히 눈을 굴리며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