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92)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92화(592/599)
[592화] Demi-타네벨로 비스탈은 신과 종교에 대한 환상을 품지 않는 부류다.
그랬기에 한때 융성隆盛했던 교단이 자신들이 섬기던 신의 죽음을 감추고 신체에 깃든 신성력을 통해 수백 년간 대대적인 사기를 쳐왔다는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에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가 필멸자들의 손에 놀아나는 죽어버린 신의 편린을 보고 느낀 건 그저 ‘아, 쓸모 있겠다.’ 정도의 감상뿐이었다.
어떠한 절박함도 없이, 그저 마침 잘됐다는 느낌. 그게 당시의 비스탈이 느꼈던 감정의 전부였으나… 지금의 비스탈은 그 누구보다 간절히 신체를 바라고 원했다.
삶을 통 틀어서 그가 시도했던 모든 무모함과 무계획을 합쳐도 지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도시 전체를 제물로 바치는 그 순간마저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행동했었다. 누구도 그를 방해할 수 없었고, 설령 방해하려 했다고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했다.
필멸자였을 때조차 그랬거늘, 어째서 더 강대한 리치로 살아가던 와중에 이렇게 된 것인지 비스탈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마왕군과 거래를 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어그러진 것인가…]]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신성력의 파도 속을 유영하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비스탈은 더 이상 신성을 마주한 언데드 특유의 저항으로 고통받지 않았다.
무엇 하나 겪어보지 못하고 공부하지 못한 영역의 문제들이었기에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비스탈은 이 현상을 긍정적으로 여겼다. 단순히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인이 신성력과의 융화를 성공적으로 이어 나가고 있는 방증으로 봤기 때문이다.
비록 전신의 뼈는 바스러지고 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저 신체에 자신의 핵을 심어넣고 견뎌 내기만 하면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될 것이니까.
그런 것보다는 지금 자신의 머리 위에서부터 뛰어내려 신성력을 가르며 떨어지는 엘드미아가 더 두려웠다.
더 위로 나아가기 위한 고난과 역경이라고 하기엔 너무 불합리하다. 비스탈은 이미 스스로가 많은 역경을 헤쳐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이상의 고통과 방해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굳게 믿었다.
이젠 좀 순탄할 때도 되었지 않은가.
무거운 돌덩이조차 하늘로 띄우는 신성력 덕분에 쉬이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엘드미아를 예의 주시하면서 열심히 신체를 향해 나아가던 비스탈이 그리 생각하기가 무섭게, 엘드미아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려 조소 비슷한 것을 짓더니 쏘아 붙였다.
“너 이 새끼, 지금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어떻게 해골에 불과한 자신의 속내를 저리 정확하게 파악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번만큼은 어째서인지 비스탈 역시 엘드미아의 의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놈은 지금 온몸으로 비스탈에게 ‘넌 억울할 자격이 없다.’ 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느닷없이 산산이 부서진 성검은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과는 다른 무언가로 엮이며 거대한 빛의 대검으로 승화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응집된 신성력을 폭포수처럼 쏘아내며 엘드미아가 비스탈을 향해 떨어질 수 있도록 길을 연다.
그 이해를 넘어선 광경을 보고 나서야 비스탈은 자신이 놈에게서 느끼는 두려움의 근원을 이해했다.
놈은 미지未知이자 비스탈의 무지無知를 상징하는 존재이자, 자신의 재능을 무시하고, 업신이 여기며 핍박하고, 방해하던 주변의 모든 것들처럼 세상이 자신을 방해하기 위해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 놓은 부조리였다.
리치가 되기 전에도 항상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리치가 된 이후에는 겪을 일이 없다고 굳게 믿었던 불합리함이, 형태를 지닌 채 다가와 자신을 덮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 파괴적인 시도는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놈으로 인해 비스탈은 리치의 삶을 바쳐 만든 성물함을 전부 포기해야 했고, 예정보다 훨씬 빠르고 준비가 미흡한 형태로 신성과의 융합을 시도해야 했으며, 그마저도 실패해서 이젠 신체를 지배하지 않으면 죽는 일밖에 남지 않은 지경까지 이르렀다.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실패’일지도 모르기에, 비스탈은 엘드미아가 두려웠다.
동시에 한 켠에서 잊고 있었던 오기가 치솟는 걸 느꼈다.
[[도시의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조차 나를 막지 못했다!]]본디 신체에서 신성이 뿜어져 나오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신성과 마력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엘드미아의 접근이 너무 빨랐기에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놈이 마법처럼 쏘아대는 정체불명의 성법도 위협적이고, 접근을 허용하는 건 더 위협적이다. 저런 위협 요소를 그대로 방치하면서 완벽한 균형을 맞추려는 것부터가 욕심이었다.
그러니 4할, 못해도 3할. 그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 마력을 전부 폭발시켜 놈을 한 번 더 날려 버린다.
[[아무리 용사라 하더라도 겨우 한 명의 인족에게! 이 타네벨로 비스탈의 삶이! 종지부를 찍을 리 없다!!]]다른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를 다 잡기 위해 외치면서 신체와의 거리를 잰 비스탈은 주저 없이 자신의 핵을 폭주시켰다.
-콰드드득!
“이건 또 뭔…!”
엘드미아가 이변을 눈치채고 황급히 아까처럼 건틀릿의 방어막을 발동시켰지만 온전하지 못했다. 비스탈에게 주먹다짐을 하는 동안 너무 많이 파괴된 게 원인인 듯했다. 불완전한 방어막과 함께 휘둘리고 방향을 잃는 엘드미아를 보며 자신이 성공했음에 기뻐할 틈도 없이, 비스탈의 두개골이 무너지며 안에 담겨 있던 핵이 신체로 쏘아졌다.
신체에 닿기까지 얼마 되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시간으로 깎여 나가는 핵이 죽음의 공포를 상기 시켰지만, 정작 그의 머리는 남은 거리와 깎여나가는 정도를 비교하며 자신이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심장에 닿으면 빈 껍데기에 불과한 신체를 장악할 수 있다. 그리 생각함과 동시에 비스탈의 핵이 신체에 박혔고, 그는 여전히 기이한 성법을 쏘아대며 자신을 방해하려드는 엘드미아의 부질없는 움직임을 비웃으며 신체를 장악하기 위해 의식을 펼쳤다.
[[성공했…]]그와 동시에, 폭풍처럼 몰아치던 신성력의 폭주가 멈췄다.
◈
신성력을 폭주시키고 침대 신세를 지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한 고민은 당시의 내 상태에 대한 거였다.
내가 아닌 것 같은 감정 상태와 사고. 지금 돌이켜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우선순위. 마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신성력이 가져온 유사 반신화를 두고 에스테는 승천에 이르는 이들과 비슷하다 말했지만, 한참이 지난 뒤에 내가 세운 가설은 조금 달랐다.
당시 넘쳐나는 신성력은 에파가 님의 것이었다. 에파가 님께서 말씀하셨던 내 안의 편린같은 게 아니라 오롯이 에파가 님의 신성말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넘치는 신성이 성역을 생성한다는 점이다.
그게 정말 성역이라 불리는 지형에만 국한된 변화일까?
어쩌면 일대의 법칙과 섭리를 제멋대로 조정하는 그 변화가, 사람의 신체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게 아닐까? 그래서 그 힘을 쓰면 쓸수록 나는 점점 ‘나’라는 자각을 잃고 에파가 님처럼 행동하거나 생각하게 되는 거라면?
세상의 법칙마저 바꾸는 힘이 사람 하나 바꾸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최종적으로 신성력 폭주를 봉인하기로 결정한 계기는 그 가설에 있었다. 내 뇌피셜에 불과하긴 하지만 직접 에파가 님을 뵙고 속 시원하게 답을 구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염두에 둘 만한 요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돌팔이의 마력 폭주에 휘말려 다시 위로 말려 올라가면서 이딴 생각을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무리 돌팔이라고 평가절하했다고 한들 놈은 최소 수백 년을 산 리치였고, 마법 실력은 병신일지언정 분명 그에 걸맞은 마력은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놈이 신체와의 융합을 시도하려고 정자 같은 꼴로 허공을 헤엄치는 걸 병신 헛짓거리라 여기지 않고 위협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방금의 마력 폭발은 결코 마력 조금 써서 생겨나는 수준의 위력이 아니었다. 일대의 신성력과 반쯤 박살 난 건틀릿이 꾸역꾸역 펼쳐준 방어막 덕분에 무사한 것이지, 만약 놈이 우리와 처음 만난 그 순간 저 지랄을 했다면 칼 칸시나 자진 납세자는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당시에 그러지 않았다는 건, 아무리 리치라고 하더라도 저만한 마력을 저렇게 막무가내로 터트리는 건 놈에게 있어 큰 부담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내 의문이 시작된다.
“저 새끼 저러고도 융합에 성공할 수 있는 게 맞아…?”
몸이 만전이었어도 균형이 맞을까 말까 한 게 신체다. 저만한 마력을 소비하고도 균형을 유지해서 데미리치가 될 수 있다고? 오히려 내가 겪었던 것처럼 역으로 신성에 지배되어 자아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까?
[[성공했…]]갑자기 뚝 끊겨 버린 신성력의 폭주는 시체에 불과했던 신체가 의식을 찾았음을 의미한다. 그대로 두면 추락해서 어디 하나 크게 다칠 높이였기에 다급하게 바늘을 붙잡고 천천히 낙하하며 확인한 신체는, 곱게 누워 있던 방금과는 달리 자신의 두 다리로 멀쩡하게 서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돌팔이 새끼 반응을 돌이켜 보면 이 정도 도박에 성공해 놓고서 저렇게 아무런 반응도 없을 리가 없거늘 지금은 놀라우리만치 고요하다. 그렇다고 그냥 누워 있던 시체가 서 있는 시체로 바뀌었을 뿐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표정은 분명 의식 있는 사람의 그것이었으니까.
허나 내 입장에서는 놈이 성공했어도 문제고, 실패해서 자아를 잃었어도 문제다.
성공했으면 데미리치가 되는 거니 일이 복잡해지는 거고, 자아를 잃었으면 신성에 잠식되어 죽은 신처럼 행동하는 무언가를 상대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테니까.
[[나는…]]의식이 생겼기에 신성력의 폭주는 멈췄지만 원래 신성력만 존재했던 신체에 마력이 섞여 들어간만큼 상태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차라리 금방이라도 균형이 무너져서 자폭하길 바라며 숨 소리조차 죽인 채 바닥에 착지하여 에스테를 고쳐쥐는 동안, 심장 언저리에 박혔던 돌팔이의 핵이 점점 가슴팍과 목을 타고 위로 올라 이마로 향한다.
[[나는… 타네벨로 비스탈……인가…?]]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빛나는 핵이 정확히 이마에 위치하자마자, 신체가 녹아내리는 것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진짜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끔찍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딴 거에 경악하고 자빠질 틈이 없었다.
“씨발.”
순식간에 하얀 두개골만 남는, 데미리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꼬라지가 완성되는 것보다 빠르게 달려 나가 거리를 좁힌 나는 그대로 놈의 핵을 향해 에스테를 찔러넣었다.
“제발 제 추측이 맞길 바랍니다 에파가 님.”
그리고 그대로 에스테와 내 안에 있는 신성력을 놈에게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