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93)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93화(593/599)
[593화] Demi-긴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했으나, 동시에 긴 시간 동안 잔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고 아주 잠깐은 스스로를 타네벨로 비스탈이라 여겼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무너지는 육체를 느끼면서도 고민을 멈출 수 없었고, 자신의 이마에 검이 박히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신성력이 통제를 잃고 날뛰는 만큼 틈이 생긴 상태이니, 그 틈을 마력으로 채운 뒤 지속적으로 신성력을 방출하여 지배력을 높인다는 발상 아래 타네벨로 비스탈은 움직였었다.
큰 맥락에서 보면 딱히 틀린 발상은 아니었으나… 그건 그저 사실에 불과할 뿐, 방법이 아니다. 비스탈은 스스로의 무지가 닿지 못한 이론과 계산의 영역을 추상적인 추측과 명확하지 않은 스스로의 재능으로 점칠하며 등한시했을 뿐이다.
나는 성공하지 못했… 나는?
“선생님 성함은 아리스토클레스일 거 같습니다.”
그 순간, 대뜸 자신의 이마에 검을 박아 넣은 필멸자의 목소리에 의식이 기울어졌다. 분명 신성력에 밀리고 있을 텐데도 어떻게든 버티며 검을 부여잡고 있는 그는 어째서인지 자신에게 신성력을 불어 넣고 있었다.
비록 검을 꽂긴 했지만 신체神體에 신성력을 불어넣는 행위는 절대 적대적인 행위가 아니다. 이에 저도 모르게 ‘나는 타네벨로 비스탈이 아닌 건가?’ 라고 생각하자, 분명 순식간에 무너졌던 육체가 다시금 재구성되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했다.
그 흐름을 가로막은 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본능이었다.
[[내가 타네벨로 비스탈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아리스토클레스가 아니다.]]“그러면 플라톤은 어떨까요.”
[[그 역시 아니다.]]그리 말하며 무의식중에 뻗은 손으로 필멸자를 밀어내자 신성력이 응집했다.
“씨발, 안 통하… 네!?”
단순한 손동작이 하나의 성법과도 같이 작용하며 거대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는 걸 인지함과 동시에 필멸자가 검과 함께 저 멀리 날려졌다. 본인이 행한 일에 크게 놀라면서도 느껴지는 감정과 생각은 복합적이다.
당연한 일인데 왜 놀라는가, 어찌 이 힘을 필멸자에게 함부로 썼는가. 이게 신체가 지닌 잠재력의 일부인가 등등. 뒤죽박죽인 의식 속에서 미간을 찡그리는 짧은 순간에 다시금 손이 무너지고 육체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렇군.]]동시에 조금씩 강해지는 것은 스스로가 타네벨로 비스탈이라는 자각. 비스탈이자 비스탈이 아닌 자의 위치에서 상황을 이해한 신체는 스스로에게 신경을 집중하여 육체를 수복한 뒤 결론 내렸다.
[[마력과 신성력의 균형. 그게 어긋나기에 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자아를 상실하게 되는 건가. 신성력이란 생명체에게 이런 형태로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였군.]]이전에는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부분이었지만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리치가 된 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나마 악마와의 계약이라는 형태로 다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그였기에 멋대로 뻗어나가 일대를 성역으로 만드는 신성력을 견디고 신체에 접근이라도 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의 법칙이라는 마지막 끈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바닥이 무너지고 신성력이 터져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 소멸했을 게 분명하다.
타네벨로 비스탈로서 거기까지 판단을 내린 신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금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필멸자, 엘드미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다시 한번 손을 움직여 그대로 그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다.
비스탈의 정신은 순식간에 엘드미아의 사지를 분질러 무력화하고자 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신의 잔재는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르려는 비스탈의 의사에 강하게 반응하며 속박하는 선에서 그쳤다.
덜컥 멈춰버린 엘드미아의 모습에서 안도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면서도 사고思考는 계속 이어진다.
신성이 생명체에게 이런 작용을 한다면 성직자들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과정조차 다시 봐야 한다. 지금까지 대외적으로는 신이 일방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힘이라 여겨지고 있었지만, 어찌 보면 교단을 세우고, 규칙을 만들고, 규율을 엄수하는 과정을 통해 신이 지닌 생각과 의사를 흉내 내고 유사성을 얻게 되어 힘이 깃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생겨나는 거니까.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강대한 신성력을 내보였던 성자, 성녀들이 세속적인 것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것 역시 어쩌면 이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아니, 예로부터 아무리 신성력이라 하더라도 과한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모든 교단이 입을 모아 경고했으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신성력을 주입했던 거였어. 마력을 밀어내어 타네벨로 비스탈의…?]]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할 뿐, 제대로 알려진 바는 없다.
[[…나일지도 모르는 자아를 약화하거나, 그대로 소멸시키려고.]]수많은 반신과 영웅들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이에 대한 정보는 조금도 기술된 적 없다. 수천 년을 이어온 역사조차 그랬는데 불과 수백 년 사이에 극적인 변화가 발생해서 이게 보편적인 지식으로 남았다고 보기엔, 상황이 너무 절묘하다.
[[어떻게 알고 있었지?]]전혀 다른 형태의 호기심이 또 한번 의식을 잠식한다. 연구를 위한 재료로 엘드미아를 보는 비스탈과 달리 신체는 엘드미아를 잠정적 승천자로 여겼다. 그의 안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편린이 그 근거에 확신을 더하기도 했다.
그러니 의도는 서로 갈릴지언정 자세한 내막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내면에 자리 잡은 두 의식 모두 동일했다. 솔직히 정말 의식이 두 갈레로 나뉜 상태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일단은 그리 느꼈다.
“네가 그대로 소멸해준다면 알려주지.”
그러나 겉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과정은 물과 기름처럼 엇갈린다. 신성력과 마력이 뒤엉키는 과정에서 엘드미아의 신체를 억압하는 강도가 시시각각 변화한다. 처음엔 분명 압도적이었던 신성력이었지만 초단위로 시간이 흐를 때마다 점점 마력이 더 크게 작용하며 압박이 심해졌다.
[[그럴 생각은 없다.]]하지만 그 과정은 온전히 타네벨로 비스탈이 신체를 지배하는 게 아닌, 안에 담겼던 신성이 비스탈의 혼에 융화되는 것에 가깝다. 이미 긴 세월 시간이 흐른 탓에 주인이었던 신의 특색조차 바래지게 된 잔여물이 그저 방치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필멸자들에게 꾸준한 개량을 거치며 변질되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비스탈의 의지가 좀 더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말았다.
[[이렇게 하지. 순순히 말한다면, 내 영역을 벗어날 때까지는 목숨을 살려주겠다.]]성공했다는 안도. 우위를 점했다는 확신. 그 속에서 드러난 비스탈의 편린은, 한평생을 근거 없이 비대해지기만 한 자신감과 자존감이었다.
살고 싶다면 너도 기어라.
명백하게 우위를 점한 자만이 제시할 수 있는 오만한 거래. 조금 더 명확해진 의식 속에서 엘드미아를 쥔 힘을 당겨 제앞까지 끌고 온 비스탈은 자신이 당했던 ‘모욕’을 그대로 제시하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충분히 그럴만한 위치에 있다고 여겼다.
“하.”
하지만 정작 그 제안을 들은 엘드미아의 입에서 나오는 건 헛웃음이었다.
“정정하지.”
비스탈은 삼류가 맞다.
그는 있지도 않은 재능을 있다고 믿으며 역사가 쌓아 올린 지식을 무시하고 폄하한 끝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지도 않은 이론을 증명하고자 도시 하나를 파멸로 몰아넣은 악인이다.
그럼에도 이 도박에 가까운 시도와 리치가 된 이후의 긴 삶을 바친 연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게 본인이 그렇게나 갈구하고 확신에 차 떠들던 자신만의 이론이 아니라 일개 ‘과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불멸 따위, 애초부터 그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던 연구 주제다.
그런 것에 자신의 ‘주장 씩이나’ 들어갈 가치는 없다.
그리 여겼기에 비스탈은 이제는 없어진 교단과 관련된 마법사들의 비밀스러운 연구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마법에 입문했던 그 시절처럼 아무런 자기주장없이, 순수하게 지식만을 좇으면서 말이다.
“난 뒈질 새끼 한테 자기소개만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뭘 알려 주는 수고 자체를 안 해.”
하지만 그 기계적인 행위가 낳은 기적을 제외한다면 비스탈은 분명 삼류다.
그렇기 때문에 마력 덩어리인 악마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신성력을 쏟아내며, 더 나아가 승천의 편린을 품은 자가 얼마나 큰 위협이고 변수일 수 있는지 예측을 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위기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랬기 때문에 분명 자신의 통제 아래에 있었던 마력과 신성력이 덜컥 멈추는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엘드미아가 쥐고 있는 검이 닿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방심하고 있었기에, 그 검에 담긴 신성력과 마력이 자신과 연결되어가는 과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더 나아가… 이를 눈치챈 뒤에도 대체 그게 무슨 원리인지 고민할 뿐, 전능감에 심취하여 연결을 끊어내거나 다른 대책을 강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콰득!
그랬던 비스탈이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건 느닷없이 자신의 이마에 다시금 엘드미아의 검이 박힌 뒤였다.
[[…?]]움직임은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실제로 엘드미아는 꼼짝도 못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검이 제멋대로 움직여 날아들었다.
[[어떻게…?]]하지만 위협조차 안 되는 발악이다.
끝까지 자신의 우위를 믿어 의심치 않은 비스탈은 그저 의문만을 표했다. 엘드미아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기껏 해봤자 다시 신성력을 불어넣는 게 고작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분명 신상에 박혔을 때 신성력을 빨아들이는 기행을 보이기는 했으나 아무리 용사라고 하더라도 신체의 신성력을 전부 빨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저 검이 무한하게 신성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제정신이라면 선택지는 결국 그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융화를 마친 그에게 신성력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딱히 모난 구석 없는 추측이었으나 비스탈에겐 참으로 애석하게도…
“에스테, 빨아들여.”
엘드미아는 제정신인 행동을 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