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9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94화(594/599)
[594화] Demi-애초에 신성력 빨아먹는 성검이라는 것 자체가 유례없는 물건인지라 어디 비교할 곳은 없지만, 에스테가 빨아들일 수 있는 신성력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오히려 대체 이만한 크기 어디에 그렇게 많은 신성력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용량이 큰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신체에 비빌 수는 없다. 그 격차는 호수와 머그컵만큼 거대하다.
흡수한 에스테의 신성력을 내 몸으로 옮기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하지만 바다랑 이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번 시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핵심 요소는 신성력을 흡수해서 에파가 님의 신성력으로 치환하는 에스테의 정화(?)기능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는 못했으나 에스테에겐 죽은 악신의 잔재 정도는 무리 없이 흡수하여 에파가 님의 것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다. 내가 이번에 시도하려는 건 그 신성력을 신성력 폭주 때 통제를 잃고 끝없이 흘러나올 뻔한 신성력의 근원에 역으로 주입하여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어, 엄마?]이변을 눈치챈 에스테가 얼빵한 말을 떠들었지만 신경 쓸 틈은 없다. 지금의 나는 에스테가 흡수하기 시작한 신성력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신성력의 근원에 꽂아버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뒤늦게 이상을 느낀 돌팔이가 다시금 신성력을 움직이고 거리를 두며 검을 뽑아내려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과거 악신의 잔재와 접촉했을 때 그것들이 날 장악하려고 했던 감각을 되살려 이번엔 내가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격이 다르니 완전하게 놈의 행동을 장악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신성력의 근원에 연결하여 흡수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초단위로 상황이 급변했다. 아무래도 에스테가 반응했던 것처럼 에파가 님께서 힘을 보태주고 계신 듯하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묻고 있잖아!!]]결국 지금까지 큰 감정적 변화 없이 마네킹처럼 굴던 돌팔이가 당혹감마저 내비쳤지만, 나는 나대로 여유가 없었기에 그 반응을 즐기기는커녕 잔뜩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씨발 더럽게 아프니까 말 걸지 마라!”
지금 상황은 호수의 물이 파이프를 통해 바다로 맹렬히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 문제는 그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게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을 통해 만들어진 압력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며, 그 상태가 유지될 수 있도록 단단히 버티고 있어야 하는 파이프가 바로 나라는 점이다.
처음 신성력이 넘어가는 순간 주마등처럼 떠오른 것은 어릴 적 저질렀던 멍청한 실수였다.
초등학교에서 전기 플러그를 만드는 실습을 하고 결과물을 든 채 집에 돌아왔던 그날, 나는 내가 만든 전기 플러그가 정말 제대로 통하는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저 학년이었던 당시의 내게는 전압을 확인하는 기계 같은 전문적인 도구에 대한 지식따위 존재하지 않았고, 한참을 호기심에 고통받던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전기 플러그를 그대로 콘센트에 꽂은 뒤 잘린 전선 끝자락에 손가락을 대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아직도 당시 귓가에 울리던 우우웅! 하는 소리는 잊혀지지 않는다. 펄쩍 놀라 손가락을 뗄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쥐어서 확인하려고 했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신성력이 내게 안겨 주는 느낌이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 난 돌팔이의 신성력이 다 떨어지기 전까지 절대 손을 놓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점과, 그 어린 시절엔 아프지 않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진짜 존나 아프다는 점이다.
오장육부가 뒤집힌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힘든 격통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 상태로 정신줄까지 붙잡고 신성력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자마자 손발을 동원하며 구질구질하게 덤비는 돌팔이까지 방해해야 하니 절로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심지어 코앞에서 떽떽 거리며 시끄러운 돌팔이의 목소리는 두 번 듣기 싫을 정도로 처참하다. 고문이 따로 없다.
[[이거 놔! 이, 이럴 순 없어!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한낱 필멸…필…]]그리 여기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티던 와중에 갑자기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돌팔이가 버벅이며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 필멸자처럼 생각하고 있었어!]]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눈을 부릅 뜨는 돌팔이의 모습만 보더라도 내게 이로운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이에 어떻게든 대응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 세우는 사이, 놈이 갑자기 주저앉다시피 자세를 낮췄다.
[[이 몸까지 얻어놓고서 필멸자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얼핏 보면 단순한 도약을 준비하는 듯하지만, 이리저리 억지로 움직이는 신성력은 결코 그렇지 않다. 놈은 말 그대로 한줄기 빛이 되다시피 하며 하늘로 치솟았다.
멀리서 봤다면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승부도 여기서 갈렸겠지. 아무리 놈의 이마에 에스테를 박아두었다 하더라도 인지조차 초월하는 속도 앞에서는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뭐, 뭐냐?]]하지만 돌팔이에겐 매우 애석하게도, 나는 놈에겐 참신하기 그지없는 이 방법을 이미 몸소 체험했다.
라이토르에서 소하를 잡겠답시고 신성력을 폭주시켜 날뛰었을 때 말이다.
[[네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따라왔…]]어느새 시간이 한참 흘러 석양이 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뒤에서부터 쏟아지는 붉은빛과 청명한 바람이, 지금까지 우리가 나뒹굴고 있었던 늪지와 지하의 퀴퀴함을 걷어낼 기세로 쏟아진다.
“뭐긴 뭐야, 너보다 먼저 뛰어본 사람이지.”
또다시 목숨을 걸고 폭주를 시킬 필요는 없었다. 에스테가 뽑히지 않고 나와의 연결이 끊기지 않는 이상, 놈의 신성력은 곧 내 것과 다름없으니까.
물론 컵에다가 물 좀 따르겠다고 댐이 무너지며 쏟아지는 물줄기에 손을 뻗는 수준의 행위지만 뒈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바람도 쐤으니 다시 내려가 볼까.”
놈의 발버둥 덕에 곱절로 아파진 만큼 에스테를 쥐고 있는 손아귀에도 절로 힘이 들어간다. 당황하는 놈의 머리통을 반대 손으로 잡고 좀 더 힘을 주니, 칼날이 좀 더 깊숙이 박힐 정도로 말이다.
“내려갈 땐 좀 아찔할 거다.”
슈퍼히어로 랜딩을 니 대가리로 하게 될 테니까.
뒷말은 삼키며 다시 한번 신성력을 훔쳐 쓰기 시작하자 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자, 잠깐…!]]놈의 다급한 외침이 이어졌지만 난 삼류 악당처럼 유예를 뒀다가 역전 당하는 취미 따위 가지지 않았기에 즉각 행동에 나섰다.
라이토르에서의 감각을 되살리며 저 멀리 발 아래에 위치한 구멍을 향해 조준을 마친 나와 돌팔이는 그대로 한줄기 유성이 되어 떨어졌다.
◈
이건 악몽이다. 아주 끔찍한 악몽.
“흐, 흐윽. 이젠 싫어…”
평생 꿈과는 인연이 없는 악마였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라디우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며 바닥을 기었다.
칼 칸시는 에밋뿐만 아니라 마왕군까지 둘러메고 도망치는 의리를 보여줬으나 악마들에게는 가차없었다. 그 결과 세닛히구아와 잉글라디우는 신상이 신성력을 뿜어내는 그 순간부터 바닥을 기다가, 그 바닥이 무너지며 튀어나온 신성력에 휘말려 볼품없이 날아가 처박히는 그 순간까지도 꼼짝 못 했다.
저 미친 리치 놈이 죽은 신체로 이딴 걸 준비하고 있는 줄은 잉글라디우도 몰랐다.
연구의 근간이 되는 정보와 재료들이 과거 신전이었던 이곳에서 나왔다는 것은 알았지만 딱 거기까지. 물론 당시에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계약을 안 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도, 도망쳐야 해…”
잉글라디우는 지하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신체나 이를 두고 치러지는 격전보다, ‘저’ 엘드미아가 신체를 두고 개짓거리를 벌인 리치와 자신이 거래했음을 걸고 넘어질 미래가 더 두려웠다. 다른 악마들이 봤다면 어처구니없어 하고 세닛히구아가 알았다면 저도 모르게 동정했을 상황이다.
신실하기로는 이단심판관보다 더한 놈이 엘드미아다. 그런 놈 앞에 무려 인족을 위해 제 신성과 목숨까지 포기해가며 지상에 현신하여 싸우다 죽은 신체가 연구 소재로 쓰이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모른다고 해도 믿을 리가 없다. 저딴 놈과 계약해서 도와 줬냐고 또 내구도 실험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미, 미친 새끼. 도시를 제물로 바칠 때 알아 봤어야 했는데…”
잉글라디우는 몰랐다. 악마인 자신이 ‘감히’ 신체를 연구하고 이용해 먹으려고 한 인족을 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도 모르는 사이 속으로 불경한 놈, 상종할 가치도 없는 놈 등등의 욕과 함께 비스탈을 씹어대며 엉금 엉금 움직이던 잉글라디우는 팔자 좋게 기절한 채 벽에 처박혀 있는 세닛히구아를 보며 불현듯 허탈함을 느꼈다.
도망이라니, 어디로 간단 말인가.
애초에 만마전에서 기어 나온 이유부터가, 저 미친놈이라면 진짜 무슨 수를 쓰든 간에 만마전까지 찾아와 기어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것 같았기 때문이잖은가.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신성력이라면 몰라도 잠시나마 제어권을 잃고 주변을 성역화 하려던 수준의 신성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된 몸이 제기능을 발휘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잉글라디우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신성력에 좀 먹히는 기분을 느끼며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그리 여기며 눈물을 뽑는 순간 지하에서부터 역겨우리만치 거대한 신성력이 폭발하며 한줄기 섬광이 하늘을 향해 그어졌다.
소음도 폭발도 없었지만 잉글라디우에겐 치명적이었다. 온몸이 바늘로 찔리는 것 같은 격통 속에 몸부림치던 잉글라디우는 크게 당황하면서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하늘로 옮겨졌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저 하늘에서 소름 끼치는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아악!!”
-콰아앙!!
이번엔 지상으로 쏘아진 신성력은 어김없이 아무런 충격도 동반하지 않았으나, 그 신성력의 중심이 되는 두 인물의 착지는 달랐다. 볼썽사납게 바닥을 구르며 밀려난 잉글라디우가 본 것은 바닥에 머리통부터 틀어박힌 신체와, 그 신체의 이마 깊숙이 검을 찔러 넣은 자세로 올라타고 있는 엘드미아였다.
“쓰읍, 조준이 좀 빗나갔네.”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그리 중얼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는 엘드미아를 보며 잉글라디우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