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95)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95화(595/599)
[595화] Demi-돌팔이의 머리통을 에스테와 함께 바닥에 꽂자마자 혹시나 싶어 내 몸을 확인해봤지만 다행히 신성력을 끌어다 쓴 후유증이라고는 격통뿐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끔찍할 정도로 아팠지만… 그래도 데오니 성녀님이 안 계신 이 자리에서 폭주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 아주 약간이나마 위안이 됐다.
하지만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돌팔이의 의식이 날아간 것인지 다시금 제어를 잃은 신성력이 주변으로 퍼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도무지 끝이 안 보이네.”
악신과의 전쟁 막바지에 죽음을 맞이하고 여기에 안치되었다 하더라도 최소 수백 년은 신성력을 빼앗겼을 신체다.
아까 부서지며 날아오른 오만가지 장치들이 신체의 생명 유지장치 같은 거였다면 굳이 신상과 연결되지도 않았을 터이니, 긴 세월을 신도라는 이름의 기생충들에게 신성력마저 빼앗기며 지내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나 방대하고 압도적이다. 새삼 실감하게 되는 신체의 힘에 불현듯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마왕은 분명 이놈에게서 가능성을 봤기에 투자했을 텐데, 회귀 이전의 돌팔이는 완전한 융합에 성공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 방해가 없었어도 지금처럼 어중간한 이중인격같은 상황을 유지하다가 신체에 잡아먹혔을까.
당장 내 이성과 계산은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완벽하게 신체를 장악하지 못했을 거라 여기고 있지만…
“끄으응, 어쩌면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던 것일지도.”
악신의 신성조차 주워다가 써먹는 놈이 이런 곳에 감춰진 신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했을 리가 없다. 돌팔이의 뒤통수를 쳐서 연구와 신체 모두 꿀꺽하려고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돌팔이를 종속시키는 형태로 방향을 잡았겠지.
좀 더 다양하게 생각해 보고 싶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는 통증 때문에 더 이상 이성적으로 고민할 여유가 없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해결책이 아닌 기절한 두 악마년놈들의 한심하기 그지없는 꼬락서니뿐이었다.
“하여간 악마라는 새끼들은 인생에 도움이…!”
그대로 두든 정신을 차리게 하든 하등 도움이 안 될 상황이라 그냥 방치하기로 마음먹은 찰나, 멋대로 흘러나오던 신성력이 다시금 통제되기 시작하더니 신체가 움찔거렸다.
“음, 무겁군.”
지금까지 들려왔던 기분 나쁜 소리가 아니라 너무나도 정상적인 목소리가 신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놈의 눈을 살펴보자, 방금 전에 보여줬던 다채로운 감정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시선이 나를 마주한다.
솔직히 이마에 검이 박힌 채 저렇게 바라보니 조금 소름 끼쳤지만, 그보다도 저 달라진 반응이 더 신경 쓰였다.
“…누구십니까?”
연기인가, 아니면 결국 신성에 밀린 것인가. 여의치 않을 경우 단검이라도 때려 박아 방해하려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영 맥 빠지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군.”
“그럼 비켜드리기가 매우 힘든데.”
“흠… 그것도 그렇겠군.”
덤덤하게 대답한 신체는 날 떨쳐 내는 걸 포기한 게 아니었다.
신체는 되려 순식간에 내 연결을 끊고, 신성력을 흡수 중인 에스테의 영향에서 벗어나더니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으로 날 쥐어 떨어뜨려 놓았다.
“이런 미친…”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탓에 뭐 하나 제대로 대응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당황하든 말든 신체는 그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먼지와 상처 하나 없는 몸으로 돌아가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을 거라 생각되네만.”
일말의 공격 의사없이 멀뚱히 바라보며 말하는 신체에게, 나는 어떠한 반문도 하지 못했다.
분명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은 내 팔을 멋대로 움직이며 에스테를 검집에 꽂아 놓고, 먼지를 털어 주고, 사람처럼 어깨를 두드린 다음에야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라도 된 듯한 기분 속에서 한참 동안 눈을 굴린 내가 꺼낼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그, 혹시 신이십니까?”
대관절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돌팔이가 먹혔다.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기? 그 잠깐 사이에 저만큼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면 내 목을 비트는 게 더 빨랐을 것이다. 그럼 어떠한 반항도 못 하고 닭목 비틀듯 비틀어졌겠지. 무엇보다 이마에 계속 자리 잡고 있던 돌팔이의 핵이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다.
내 질문을 들으면서 자신의 이마를 쓰다듬는 신체의 표정은 여전히 덤덤하다. 그러는 사이 방금까지 격전을 치르면서 찢기고 부서졌던 장비가 복구된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모습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으려는 순간, 신체가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계속 생각해봤지만, 아니었네. 나는 신성에 깃든 사념이야.”
◈
냉철한 결론만큼이나 무덤덤한 반응으로 내뱉은 그 대답은, 나에겐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리치의 기억을 읽어보니 그대는 신체에 대한 지식이 있는 듯해 보이는군. 그렇다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면 다른 문제가 있는 건가?”
내 반응만 보고 신체가 내놓은 추리는 정확했다. 당장 눈앞에서 스스로를 사념이라고 말하는 신체는 문제도 아니다. 저 멀리 마왕군의 손에 의해 제멋대로 이용당하고 있는 악신의 잔재가 진짜 문제지.
“리치의 혼은… 신체의 전 주인처럼 그릇이 된 겁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 확인차 던진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정확하네. 이를 견뎌 내기 위한 모종의 수가 있었던 모양이네만… 자네와 충돌하는 동안 너무나도 급격히 변화하는 신성력에 휩쓸려 버렸더군. 아, 본인이 자초한 것도 좀 있고.”
애초에 신체는 신이 깃들기 전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혼은 신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 되고, 육체는 신의 권능을 담는 그릇이 됨으로써 신체가 완성된다.
거기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신이 죽고 신체만 남으면 당연히 빈 껍데기일 줄 알았다. 신성이 어느 정도 생명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추측했다고 한들 그게 잔류 사념과도 같은 형태로 영향력을 끼칠 줄은 몰랐으며, 그게 수백 년 살아온 리치의 정신보다도 더 강대하고 확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통제권을 가져갈 거라고는 생각하조차 못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멀쩡히 의사소통까지 가능하다고?
이 태도와 반응은 신체의 원래 주인인 신이 지녔던 성격의 잔재인 거 같은데, 만약 죽은 악신도 이런 형태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민하는 것보다 대답이 더 빠르게 튀어나왔다.
“죽은 악신의 잔재를 이용해 신성을 넘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건 심각하군.”
솔직히 분노로 눈이 돌아가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놓고 불편한 기색 정도는 내비칠 거라 여겼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듯 말하는 것치고 신체의 반응은 여전히 덤덤하다.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 눈치군?”
오히려 내 표정을 읽고는 질문해도 괜찮다는 듯 턱을 까딱여 말해 보라고 재촉한다. 그러고는 적당히 큼직한 석재를 예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들고 와 의자 대용으로 쓰는 여유까지 내비친다.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주면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거 같아서 나는 그냥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화나지 않으십니까?”
“음? 무엇이?”
“신도와 필멸자들을 위해 지상에 내려와 싸우다가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음… 그릇이 되는 혼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희노애락이라는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인지했겠지만 하필 수백 년을 버틴 리치인지라 그마저도 여의치 않군. 잘 모르겠네.”
덤덤한 대답이지만 위태위태한 대답이기도 했다. 감정뿐만 아니라 선악의 개념조차 희미하다면 눈앞의 신체는 언제든지 유사 악신으로 변할 수 있다는 소리니까.
덕분에 다시금 바짝 긴장하게 되는 몸의 반응을 읽은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함을 표현하던 신체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내저었다.
“오해는 말게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감정뿐만 아니라 지금의 내 상태조차 잘 모르겠네.”
“상태라 하심은…?”
“죽은 신체에 새로운 혼이 깃든 경우도, 그 혼이 신성에 먹혀 사념이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경우도 없었거든. 막연하게 느껴지는 거라고는 내가 죽은 뒤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전쟁이 끝났는지에 대한 궁금증 정도라네.”
“…남아 있는 악종들을 처단하겠다는 생각은 안 드시구요?”
“당시엔 신체를 통해 전쟁에 나선 신들이 적지 않았네. 그만큼 죽는 신들도 많았지. 그들이 죽을 경우 어떻게 했었는지 알고 있나?”
뜬금없는 동문서답이라 느꼈지만, 상대는 신의 사념이 깃든 신체였기에 딴지를 걸지 않고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아 신체를 불사르고 신성을 나눴다네. 그런 형태로나마 남아 있는 신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말이야. 모두가 전쟁에 나서기 전에 동의했던 내용이지.”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던 신체의 눈동자에 이채가 깃드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신체는 옅은 미소 비슷한 것을 지어 보였다.
“사념은 사념일 뿐이지. 어쩌다 보니 다른 혼을 그릇삼아 생각하고 있을지언정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내가 할 일은 자네 말마따나 분노하고 궐기하여 악종들을 처단하는 게 아닌, 나의 죽음을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하네.”
더할 나위 없이 자비로워 보이는 그 미소는 스스로의 죽음을 입에 담는 자가 지어 보이는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평온하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는 노인의 그것과도 달랐다. 오히려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의 미소에 가까웠다.
그래서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듯하니, 도움을 좀 받고 싶네.”
나는 신체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