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96)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96화(596/599)
[596화] Demi-순식간에 상황을 일단락시켜 버린 사념 님은 자신의 베이스라고 할 수 있는 신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걸 알아내는 것까지 포함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군.”
“혹시 기억이 온전치 않으신 겁니까?”
안 그래도 기억이 뒤죽박죽인데 돌팔이의 기억까지 덧붙여져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그렇지 않네. 섬기는 이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자들조차 남지 않은 채 오래전에 잊혀진 신이라 그렇지.”
너무나도 휘황찬란한 외형을 어느 정도 너프시키면서 덤덤히 말하는 사념 님과 달리 듣는 나는 꾸역꾸역 올라오는 한숨을 열심히 참아야 했다. 이전까지는 마냥 개쌍놈들로 보였던 교단이 어쩌면 전혀 다른 의도를 지녔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다.
섬기는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신성력은 꿈도 꿀 수 없는 세상이다. 내가 뜬금없이 미트볼 스파게티 교단을 창설한다고 해도 신성력은 생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너무나도 신성이 가까운 시대이기에, 신성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성직자들은 사이비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섬기던 신의 숭고한 희생을 모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를 이어 나가면서 당시의 성직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의 희생따위는 알 바 아니고 자신들이 지닌 사회적 권력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런 식으로라도 교단을 유지해서 신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길 기도했던 것일까.
전혀 몰랐던 사실을 기반으로 생각의 나레를 펼치는 내 정신을 잡아 끈 것은 이리저리 옷을 바꾸던 사념 님의 목소리였다.
“음, 이 정도 복장이면 평범해 보이려나?”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니, 매우 잘 싸울 것처럼 갑옷을 갖춰 입은 미인이 사라진 대신 매우 평범한 시골 아낙네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미인이 있었다.
그렇다. 분명 옷은 평범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눈에 띄는 골 때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 복장은 평범하신데… 아닙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돌팔이의 의식이 비대해졌을 때 해골 대가리만 남았던 걸 떠올려 봤을 때, 신체의 외형은 자아를 지닌 대상을 형상화 하는 구조일 것이다.
아무리 모습을 감추기 위함이라고는 해도 이름마저 잊혀진 자에게 차마 외모까지 바꾸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음, 다행이야. 그런데…”
그런 내 반응에 옅은 미소로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여 준 사념 님의 시선이 구석에 쓰레기처럼 처박혀 있던 잉글라디우와 캬루베로스에게로 향한 건 그때였다.
“아까부터 저 악마들이 눈에 밟히는군. 달리 용무가 없다면 내가 치워도 되겠나?”
‘아니, 아까 악종들을 처단하는 건 할 일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아, 저것들은 악종으로 취급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길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 정도로 비치는 거구나.’ 라는 깨달음이 머리를 강타한다. 심지어 말하면서 그대로 치워 버릴 것처럼 손을 들어 올렸기에 난 의도치 않게 다급한 목소리로 사념 님을 멈춰 세워야 했다.
“그, 송구스럽지만 저 두 잡것들은 제가 따로 써야 해서…”
“악마를? 대체 어디에?”
마치 먹을 수 없는 폐기물로 요리를 해 먹겠다는 사람을 본 것 같은 반응은 지금까지 사념 님이 보여줬던 모든 감정 변화 중 가장 극적인 것이었다.
그야말로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녀야할 모범적인 반응이었지만 하필 지금 내가 거기에 동조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게 슬플 따름이다.
“저 녀석은 노예 계약으로 부려 먹어야 하고, 저 녀석은 원래 돌… 리치 녀석과 계약을 맺은 녀석인지라 선생님께서 나서지 않으셨다면 저놈을 이용해 리치놈과 한 계약을 무효로 뒤집으려고 했었죠.”
“…리치가 되기 위해 제물을 바치고 악마와 계약했다는 이야기로군? 그런데 그게 그렇게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바뀔 수 있는 것이었나?”
“저놈이 이것저것 많이 뱉어내야 했겠지만, 죽기 싫으면 해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그 반동으로 잉글라디우는 죽지 못해 사는 수준까지 역풍을 맞았겠지만 내 알 바인가? 그간 놈이 살아오면서 해왔을 개짓거리에 비하면 양반이지. 그리 생각하며 당당하게 말하자 사념 님은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아, 과연. 그건 또 참신한 고문법이로군. 이해했네.”
“예, 맞습…”
……어라?
방금 사용법이 아니라 고문법이라고 한 거 같은데? 내가 뭐 잘못 설명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내 곁을 지나간 사념 님은 가볍게 손을 휘둘러 신성력을 발휘해 잔잔한 미풍을 일으켰다. 우리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바람에 불과한 신성력이었지만, 악마 놈들에겐 상처에 소름을 뿌리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준 모양이다.
“끼야아악?!”
“으아아악!!”
분명 기절하고 있었던 두놈이 펄쩍 뛰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걸 보면 말이다. 그녀의 호의 덕분에 수고를 덜게 된 나는 제대로 말조차 못하고 침이나 질질 흘리는 두 년놈들의 뒷덜미를 잡아 이끌며 사념 님과 함께 폐신전 밖으로 걸어 나왔다.
다 무너진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보인 것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폐신전을 주시하던 칼 칸시와 눈을 질끈 감은 채 마법으로 탐색을 시도하는 에밋 그리고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용하게 도망치지 않은 자진 납세자였다.
마침 눈이 마주쳐셔 대충 끝났다는 의미로 손을 흔들자, 순식간에 화색을 띤 칼 칸시가 에밋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외쳤다.
“어?! 에밋 선생! 손님 나왔… 엥? 그쪽은 누구야?”
그나마 돌팔이라고 오인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너무나도 잘난 외모 덕이려나. 일단은 사념 님이 에밋조차 쉬이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을 잘 감췄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쪽은… 신성 전쟁 당시 돌아가셨던 신의 신체에 깃든 그분의 사념 님 되시겠습니다.”
최대한 핵심을 요약해서 설명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반응은 묘하게 싸늘했다.
◈
다행히 에밋과 칼 칸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략적인 개요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런 곡해없이 받아들여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뜸 신성 전쟁 당시의 신체까지 엮이게 된다는 점에서 당혹스러울 법도 할 텐데 자진 납세자만 그런 반응을 보일 뿐, 다른 두 사람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빠른 속도로 침착을 되찾더니 평온하게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게 다 그 동안 쌓아온 신뢰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깨가 으쓱한 것도 잠시, 내가 기쁨에 취할 틈도 주지 않고 내뱉은 칼 칸시의 한 마디가 내 감동을 걷어차 버렸다.
“하긴, 용도 잡았는데 뭐.”
단순히 과거의 전적이 화려하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반응.
그 말을 들은 에밋은 덤덤히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이번엔 값진 물건이 없는 게 아쉽구먼.’ 이라는, 그야말로 이명에 걸맞은 혼잣말이나 중얼거렸지만 자진 납세자는 기겁을 하며 나를 다시 바라보았고, 잉글라디우와 캬루베로스 역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라는 반응을 보인다.
“자네는 용도 잡았나?”
그리고 그건 사념 님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새삼 놀랐다는 정도의 반응인지라 차라리 나았지만, 그 대화의 주제가 용이다 보니 오히려 괴리감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 예. 뭐…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잡힐 용이 세상 어디에…”
“그, 옛날에는 흔하지 않았습니까? 요즘은 용이 흔하지 않다 보니 잘 안 잡히는 거죠 뭐. 그놈이 유독 격이 떨어진 것도 있습니다.”
스스로 해 놓고도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변명이었지만 마지막만큼은 사실이기도 했다. 이에 사념 님은 내 궤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단 신기한 생명체를 본다는 듯 작게 웃으며 화제를 전환해주셨다.
“아무리 격이 떨어지더라도 비룡을 용이라 부르지는 않을 터, 우연의 일치라고 할지라도 부탁하는 입장에서는 든든하기 그지없군. 우선 이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나도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만, 괜찮겠나?”
“예, 뭐든 물어보시지요.”
아무리 돌팔이가 그릇이 되어 놈의 기억이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월이 공백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냉동 참치 상태였다가 해동된 미국 대장을 따위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긴 세월이었을 테니, 일천 하고도 하나의 엘드미아들과 다른 일행 및 찌끄래기들의 집단 지성을 이용해 최대한 대답하고자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마족이라는 종족은 어떻게 생겨난 종족인가?”
하지만 이어진 질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순간 뭘 잘못 들었나 싶어서 내 귀도 의심해 보고 당사자인 에밋과 자진 납세자도 바라봤지만 그들 역시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란 상태로 굳어 있다.
“죄송하지만 질문의 요지를 저희가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만…”
“음, 말 그대로일세. 내 원본이 되는 신께서 계셨을 때에는 그런 종족이 없었다네. 꽤 긴 세월이 흘렀음은 자명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만한 종이 새로이 탄생하고 문명을 꾸려나갈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르진 않았단 말이지.”
그래서 물어본 것일세. 마족들은 누구이며, 마신은 또 누구인가?
태연하게 물어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사념 님과 달리 충격으로 인해 굳어 버린 우리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