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97)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98화(598/599)
[598화] 지크프리트는 웃지 못한다.대뜸 라이카가 엘드미아의 비룡과 함께 하늘 저 너머로 사라졌을 때, 라그니스는 놀라지 않았다. 저 영특한 마검이 어떤 존재인지 꽤 잘 아는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근방에 엘드미아가 있다는 의미였던 터라 오랜만에 들떴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원래도 지휘관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 몸가짐에 신경 쓰는 라그니스였지만 전장이라는 특성상 씻는 건 며칠에 한 번 정도로 만족했던 그녀가, 매일 같이 직접 목욕물까지 준비해가며 씻었다는 건 레니사 정도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기대한 덕에 지긋지긋한 행군과 자질구레한 업무, 하루가 멀다 하고 후방에서 신경을 건드리는 지원군의 탈을 쓴 고문관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똑같이 이어졌음에도 평소보다 더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대뜸 도끼 없이 정체 모를 마족 하나만 덜렁 태운 채 태연하게 귀환한 비룡과 라이카를 맞이하게 된 순간, 라그니스는 형언키 어려운 혼란을 느껴야 했다.
“엘드미아는 어디 가고…?”
그건 같이 기다리고 있었던 아실리에나 셰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라그니스를 통해 상황을 전달 받은 두 사람 역시 비룡과 함께 엘드미아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온데간데없고 장거리 비행으로 다 죽어 가는 마족 하나만 덜렁 왔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추궁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인식이 따라가지 못해 내뱉고만 셰릴의 한 마디에 라그니스가 뻘쭘해 하는 사이, 그나마 엘드미아의 기행을 가장 오래 겪었다고 할 수 있는 아실리에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라이카를 살펴봤다.
“라이카, 엘디가 우리에게 주라고 한 거 없니?”
양손 도끼는 사라졌고 마족은 마법적인 수단까지 섞어서 아주 단단하게 결박되어 있다. 일단 엘드미아와 만난 것은 확실하니, 직접 오지 못한 것에 대한 무언가의 흔적 정도는 남겼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아니나 다를까, 짧게 고개를 끄덕인 라이카는 펄쩍펄쩍 뛰며 비룡의 안장에 달려 있는 주머니를 가리켰고 아실리에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라이카를 쓰다듬어 준 뒤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대충 접혀 있는 쪽지를 열자마자 미소에 경직이 일어났다.
“아실리에…?”
어린 시절을 오그웬에서 함께 지내 왔기에 그 이변을 가장 먼저 눈치챈 라그니스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러본다.
상대가 엘드미아이기에 또 무슨 기행을 저질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아실리에가 매번 엘드미아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음에도 불구하고 대뜸 용을 잡니 마니 하는 상상 초월의 기행을 새롭게 갱신하는 그였기에 이번에도 방심할 수 없었다.
“으음, 라그니스. 우선 이거부터 받아. 쏘르에서부터 온 문서라고 적혀 있네.”
이어지는 아실리에의 목소리는 비룡이 관측되어 그녀를 처음 불렀을 때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가라 앉은 상태다. 엘드미아에게 뭔가 일이 생겼으면 저럴 수 없을 것이고, 무난하게 오고 있다 하더라도 저런 반응을 보일 이유는 없을 터이니 이는 곧 그가 또다시 뭔가 요상한 사건 사고에 휘말렸음을 암시했다.
“저 마족은 중간에 조우한 마왕군 순찰대장이라는데, 반드시 정보를 캐낼 것이라고 적혀 있어.”
“…레니사, 실력자들로 병력을 편성해서 마족을 레비엥으로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리며 아실리에게 받아 든 문서를 펼쳐본 라그니스는 순간 저도 모르게 상황마저 잊고 휘파람을 불고 말았다. 마왕군 입장에서 본다면 변절과 다름없는 선택을 한 쏘르가 보내준 것은 레비엥과 쏘르 사이에 있는 마왕군들의 숙영지 및 동선, 보급 경로 및 규모가 적혀 있는 지도와 서류들이었다.
왕실과 황실은 쏘르 영주를 아직 완전히 신뢰하기 힘든 인물이라 칭했는데 만약 이 정보가 정확하다면 충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도 남을 것이다. 당장 라그니스의 일이 편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게 전부 사실이라면 마왕군이 피눈물을 흘리겠군요. 쪽지에 뭔가 다른 내용은 없습니까?”
뻔히 있을걸 알면서도 넌지시 돌려 물어보는 라그니스에게 돌아온 대답은 쪽지와 함께 뻗어진 아실리에의 손이었다. 조용히 있다가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와서 고개를 기웃거리는 셰릴과 함께 보기 쉽게 받아 든 쪽지 끝자락에 적힌 글귀는 익숙하면서도 단순했다.
[근방에 리치인지 데미리치인지 알 수 없는 놈이 있음. 마왕군과 계약했다고 함. 잡고 감.]하지만 그 내용이 안겨 주는 충격은 결코 적지 않았다. 라그니스는 세 번을 다시 읽은 다음에야 뒤늦게 밀려오는 현기증에 고개를 들었고, 셰릴은 그런 라그니스에게서 쪽지를 받아 든 채 한참을 고민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용보다는 낫네.”
누가 봐도 라그니스와 아실리에를 신경 써서 입에 담은 빈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어색한 한 마디였다. 정작 그 말을 입에 담은 당사자조차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어서 더욱 신빙성이 없다.
“용하고 싸운 것도 엄청난 격전이었다고 수인들이 그렇게 떠들었는데 성치도 않을 몸으로 대체 뭘…!”
순간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질 뻔한 라그니스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목소리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있는 병사들과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제국의 용사 지크프리트 일행 덕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변경백님, 집 나갔던 비룡이 돌아왔다는 이야기 듣고 왔…는데, 형님은 어딨습니까?”
제국에 있을 때는 동생이네 뭐네 했었던 관계가 언제 역전되었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살가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지크프리트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하다. 그 역시 엘드미아의 귀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엘드미아조차 인정하는 하렘의 주인공답게 여성의 기분 변화를 귀신같이 캐치한 지크프리트는 비룡 정거장의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순식간에 입가의 미소를 지워 없앴다. 그리고 자신의 애인들에게 잘못했을 때 눈치를 보는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눈동자를 굴리며 돌아오는 반응에 대응하고자 바짝 집중했다.
“…도중에 마왕군과 협력 중인 리치의 거처를 파악해서 이를 처리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예? 리치요?”
“예, 쪽지를 보낼 당시까지만 해도 리치인지 데미리치인지 정확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만…”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거니 라고 하고 싶어도 용부터 시작해 유독 쉴 틈도 없이 굵직한 사건들과 엮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은 라그니스의 미간이 절로 좁혀진다. 그러면서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양쪽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뇌하는 지크프리트였다.
“리, 리치라고…? 그것도 데미리치일지도 모르는? 용도 잡았는데 리치까지?”
심지어 매우 걱정스럽다는 태도로 말이다.
유독 친한 척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걱정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워졌었던 걸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의외의 일면을 보게 되어 의아해하는 사이, 뭔가 번뜩인 것처럼 고개를 든 지크프리트가 대뜸 손뼉을 치며 외쳤다.
“제가 도우러 가겠습니다!”
“…예?”
“아무리 마신교와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고는 하나 지난번 용도 그렇고, 무리를 하고 있는 건 자명하지 않습니까? 필시 격전을 치렀을 터인데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리치와 대치하게 된다면 패배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교전 후에 여러모로 위험에 노출된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 그래서 도우러 가시겠단 말입니까?”
“응당 그래야지요!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같은’ 용사 아니겠습니까!”
이리도 적극적으로 협조의사를 드러낸다는 게 당혹스러운 것과 별개로 굉장히 끌리는 제안이었다. 당장 라그니스뿐만 아니라 셰릴의 눈이 번쩍이고 아실리에의 귀가 움찔거린 게 그 증거다.
부대는 라이카가 비룡과 함께 날아간 이후로도 꾸준히 진군 중이었으니, 실제 엘드미아와의 거리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위해 행군 속도를 조절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별동대를 꾸리자니, 만에 하나 리치를 상대하게 되었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실력자들을 골라 차출하는 것은 부대를 지휘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은 결단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레비엥의 비룡 부대처럼 소수 정예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용사파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셰릴도 함께 하게 될 터이니 개인적으로 중간 과정을 전해 듣기에도 수월할 뿐더러 군대는 낼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직접 부탁하는 게 아니라 자진한다는 점이 너무나도 완벽한 조건이다.
사적으로 병력을 유용한 게 아닌 용사의 부탁이었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라그니스 안에서 예상치 못한 조력자가 된 지크프리트에 대한 평가가 수직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몰랐다. 지크프리트는 엘드미아를 쥐뿔만큼도 걱정하지 않고 있음을.
용살자의 이름을 달고서 용조차 잡지 못한 마당에, 그들의 전생에서는 용과 비견될 수 있는 몬스터로 그려지기도 하는 데미리치까지 엘드미아가 일방적으로 잡아버리면 그가 돌아왔을 때 무슨 놀림을 당하게 될지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진 탓에 시도한 발버둥이라는 사실을.
이미 한발 늦었다는 현실을 뒤늦게 목도하게 된 지크프리트가 엘드미아의 놀림 아래 소리 없이 오열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