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59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599화(599/599)
[599화] 지크프리트는 웃지 못한다.지크프리트는 생각한다. 자기 정도면 꽤 괜찮은 용사에 속한다고.
엘드미아가 들었다면 일단 도끼눈부터 뜨고 보게 되는 자신감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으나, 의외로 이건 굉장히 객관적인 평가이자 겸손한 축에 속하는 평가였다.
용사로 각성하여 황실의 품 안에 들어가게 된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용사다운 일’만큼은 열심히 해온 그였으니까.
비록 그를 성장시키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제국의 인재들이 모여 설계하고 예측하고 준비한 싸움들이었다고 할지언정 지크프리트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생색을 내지도, 스스로에게 심취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제국 내부에서도 성질머리에는 하자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가 용사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드는 이들은 굉장히 극소수였다.
그런 세간의 평가에 볍씨 한톨만큼의 자부심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건 지크프리트가 자신을 이런 세상에 사전 동의 없이 때려 박은 여신에 대한 불만과 별개로 멀쩡히 용사로서 활동하게 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용사가 되어 이 세상에 떨어진 것도 억울한데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온갖 권력층과 세상들이 자신을 억까하면 용사가 아니라 마왕이 되어도 무죄 아니겠는가.
비록 제국의 보살핌 아래 상대적으로 무난무난한 성장을 하더라도 나쁠 건 없다. 오히려 안전하고 좋지 뭐. 지크프리트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며 지냈었다.
“엘드미아가 용을 잡기 전까지는 말입니까?”
“바로 그거야!”
전생에 대한 이야기는 뺀 채 자신이 최근 느끼고 있는 불편한 압박감에 대해 논하는 지크프리트의 얼굴에 불쾌감은 없으나 초조함만큼은 분명하게 담겨 있다.
“나도 내가 용사가 되며 받은 권능이 어떤 형태인지 좀 더 명확하게 안 뒤로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거든? 아, 이것도 형 덕이긴 한데 아무튼. 진짜 하루가 다르게 열심히 발전한단 말이지? 근데? 형이 냅다 먼저 용을 잡아버리네?”
제국 용사파티와 엘드미아 수색 작전에 나선지 하루도 채 되지 않은 날 밤.
모닥불을 두고 둘러앉아 지크프리트의 신세 한탄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셰릴의 눈동자가 열심히 허공을 방황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건 사실이다. 용사와는 조금 궤가 다르지만 그녀 역시 왕국에서 내로라 하는 천재였으니까.
누구보다 앞에 있고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기에, 셰릴은 대뜸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무언가가 자기가 선두라고 여기고 있었던 길 위에서 육포를 뜯어먹으며 뚱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안겨 주는 당혹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이해와 친분은 별개다.
자주 본 것도 아니고 기껏 해봤자 아카데미 지하에서 대악마를 상대했을 때 잠깐 마주한 게 가장 긴 만남이거늘, 대뜸 이렇게 몇 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살갑게 구는 건 낯설기 그지없다. 아예 엘드미아에게 시기와 질투같은 구질구질한 감정을 드러내는 거였다면 용사고 뭐고 뒤통수부터 후려치고 혼자 갔을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나중에 뭐라고 놀릴지 감도 안 오는데 리치라니. 그것도 데미리치일지도 모르는 놈을?”
지크프리트의 초조함은 그런 형태가 아니다. 그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단순하게 엘드미아가 자신이 용을 잡지 못했다는 걸로 두고 두고 놀릴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리 엘드미아가 기행을 많이 벌인다고는 하지만 대체 세상 어느 미친놈이 용을 못 잡았다고 사람을 놀리나 싶은 생각부터 들었지만 지크프리트의 반응이 너무나도 진심이라서 그런 단순한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달리 뭐라 하기도 애매한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반응을 못 하는 셰릴을 그녀를 돕고자 에셀루아 황녀가 이야기에 끼어들고 나서야 지크프리트의 이야기에 제동이 걸렸다.
“지크, 엄연히 타국의 귀족인데다가 아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거리감 없이 대하면 어색해 하시잖아요.”
“아 그런가? 미안, 형이랑 친하다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높아져서.”
즉각 사과하는 그 모습에 역시 악의는 없다. 어차피 세릴 본인도 이런 자리에서 격식을 차리는 건 원치 않았기에, 에셀루아의 배려에 조용히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화두를 던졌다.
“괜찮습니다. 그리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조금 주저했을 뿐입니다. 헌데… 지난번에는 엘드미아를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아카데미에서의 기억을 조심스레 떠올리며 꺼낸 주제는 의외로 지크프리트를 제외한 다른 세 여성들의 관심까지 끌었다. 분명 지크프리트의 애인이라 알고 있는데, 저 사람들도 모르는 건가? 그냥 용을 잡아서 형님으로 모시기 시작한 건가 싶어서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맞아요. 지난 전장에서 엘드미아 님의 도움을 받은 뒤로 갑자기 지크프리트 답지 않게 저 자세가 되었었죠?”
“답지 않게라니… 그, 뭐시냐, 엔티레가 다쳤을 때 도움받은 것도 있고, 그 뒤로도 꾸준히 이것저것 조언을 받다 보니 뭐…”
“거, 거짓말이에요.”
“이런 대화에서까지 성법을 써?!”
크게 당황하는 지크프리트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그런 지크프리트의 반응을 보며 밝게 웃었다. 일상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에서 그들이 쌓아 올린 유대감을 느낀 셰릴은 씁쓸하게 웃으며 따뜻하게 데운 차를 홀짝였다.
엘드미아도 용사가 되었으니 자신도 노력하면 언젠간 그와 함께 이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던 적도 있긴 했었다. 실제로 지난 아카데미 사건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아 이렇게 용사파티에 임시로나마 합류할 기회를 얻었으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엘드미아아 용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혼자 부질없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라그니스처럼 권력을 쥐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실리에처럼 유년기를 함께 하여 유대감을 쌓은 것도 아니다. 오가토르프라는 이름이 엘드미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며, 검술은 이전에도 한 번을 넘어보지 못했거늘 지금은 더욱 멀어져만 가는 중이다.
불과 몇 년 사이, 너무 많은 것이 바뀌고 말았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눈앞의 용사마저 조바심을 느끼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왜 그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런 생각에 빠져 조용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던 셰릴의 의식을 깨운 것은 엘프 전사 엔티레였다. 어느새 에셀루아와 성녀 테네아시 사이에서 심문을 당하고 있는 지크프리트를 뒤로한 채 자신을 바라보는 엘프의 질문에 셰릴은 저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우울해 보였습니까?”
“예. 아, 딱히 티가 났던 건 아니고. 장수한 엘프들은 감정 변화가 옅어지는 경향이 좀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묘한 변화도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래도 아카데미 지하에서 잠깐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 엔티레는 꽤 자연스럽게 거리를 좁혀왔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지크프리트에게 박혀있지만, 귀만큼은 쫑긋 움직이며 셰릴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게 무관심한 빈말이 아니라 그녀 나름대로의 배려라는 것을 이해한 셰릴은 한참 고민한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모든 거요?”
“예. 용사 님도, 여러분도, 그리고… 엘드미아도.”
사실은 엘드미아만 신경 쓰였지만 그리 말하자니 뭔가 부끄러웠기에 사족을 덧붙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도 왕국 내에서는 천재라 칭찬받으며 왕국을 이끄는 인재 중 하나라고 불립니다. 이런 전장에 호위없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순전히 제 실력에 기인하는 거라 당당하게 말할 정도는 돼죠.”
이미 아카데미에서 셰릴의 검술을 봤었기에 엔티레는 셰릴의 자기 평가에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티스엘 왕국 검술의 상징이라고도 불리는 오가토르프 가문의 소가주 입에서 나올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소심하다고 여긴 탓이었다.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셰릴은 그저 단순히 말 몇 번 오고 간 것으로 파티에 임시로나마 합류할 수 있게 된 게 아니다. 제국은 용사와 관련된 일들을 그렇게 안일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과거 루드라에서 온 미친놈이 아카데미에서 저지른 만행 이후로 더더욱 엄격한 심사와 검증을 거쳐 ‘문제 없음’ 판정이 난 게 바로 셰릴이었다.
애초부터 돌려 말하는 거에는 취향이 없고 뭐든 직접 들이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엔티레였기에, 그녀는 직접 셰릴에게 저평가의 원인을 물어보고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셰릴을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대답을 예측할 수 있었다.
“용 때문에 그래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그랬었을 때랑 반응이 비슷해서요.”
모를 수가 있나. 자신도 그랬는데. 당시의 엔티레가 딱 지금의 셰릴같은 기분이었다.
용이라는 존재를 두고 싸우는 것을 가정한다고 했을 때 누군들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겠냐마는, 그중에서도 가장 답답한 건 전사일 것이다.
모든 걸 다 떠나서 단순히 물리적인 크기에서부터 답이 없다. 방패를 지켜 들어도 용의 비늘 하나보다 작고, 검은 용의 발톱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법은커녕 대충 휘두른 꼬리에 잘못 맞는 것만으로도 사경을 헤매야 할 것이다.
엘드미아가 잡은 용이 제아무리 타락하고 격이 떨어졌다고 한들 그 정도 크기는 됐다. 소드 마스터라든가 훨씬 나이 많고 숙련된 전사가 잡았다면 그나마 나았을 테지만 하필 나이도 비슷하니 ‘용사니까.’ 라는 말 하나만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다잡기에는 무리가 있다.
“당신은 엘드미아 님의 곁에서 싸우고 싶었던 거군요?”
그러기엔 너무나도 가까운 존재이고.
대등한 위치로 곁에 서서 함께 하고 싶었던 존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