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70)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70화(70/599)
나를 향한 광기어린 찬양은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마냥 검술로만 이긴 것도 아니고 실상 따지고보면 나도 마력을 썼으니 여러모로 편법에 불과해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문제니까 그냥 그러려니하고 적당히 호응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 시달리는 동안 결국 예상했던대로 수업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채 끝나 버리고 말았다. 아니, 지들리 저놈은 지가 교수면서 같이 휘둘리면 어쩌자는거야? 저렇게 이상하게 허술한 부분이 있으니까 라드넬반데스가 엄하게 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알아서 찾아갈테니 적당히 돌아다니고 있으라고 엘드미아.”
지크프리트는 매우 유쾌하게 웃으며 다음 수업으로 넘어갔다. 그런 반응을 전혀 예상 못한 건지, 용사에게 붙어다니는 세 여자들마저도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뒤를 따라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내 옆으로 라그니스가 다가와서 물었다.
“쟤 왜 친한 척이야? 기분 나쁘게.”
이기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막상 용사가 별 타격도 안 받은 거 같아서 묘하게 심술이 난 상태인 그녀였다.
“생각보다 멀쩡한 놈일지도 모르겠더라.”
“…대련이 끝난 다음에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거 같더니, 그 사이에?”
“좀 더 이야기를 해봐야 알겠지만…저거 방탕해보이는 게 반 정도는 연기 같더라고.”
물론 그렇다고해서 검술에 기본이 안 되있거나 싹퉁바가지가 살짝 부족한 것까지 연기인 건 아니었지만,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위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제국 운운할 때 바로 반응하는 걸 보면 의심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흐응…그나저나. 이겼네?”
“기본 능력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수준인데 기초가 너무 부족 했어. 몬스터나 도적들 상대로는 아무런 위협도 못 느꼈을거고, 아카데미 내부에서도 학생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먹히는 수준이다보니 그런거겠지.”
전생자니까 아카데미에서 교육받던 시간 동안 마법에 빠져 살았을 가능성도 있다. 나도 어릴 때 대뜸 마법부터 익히고자 했었으니까. 벽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누군가랑 한 번이라도 겨뤄봤으면 자각했을지 모르겠는데…의도적으로 저런 상황에 방치해둔 것인지 아니면 용사라고 애지중지 키운 것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공간 마법을 이용해서 저렇게 엄청난 대련장을 만들 정도로 교육에 힘쓰는 제국이 왜 용사에게는 약점을 남겨두고 있었을까.”
당장 떠오르는 모든 게 용사를 이용해 먹으려는 의도로 밖에 귀결되지 않아 의견을 구할 겸 라그니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미간을 찡그린 채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는 거야.
“그걸 눈치 챘다고? 마법을 파훼한 것도 그렇고. 오늘 어째 너한테 물어볼 게 좀 많을 거 같다?”
아. 그것도 색 때문에 알게 된거니까 보통은 모르겠구나.
“일단 수업이나 따라가고 나중에 이야기 합시다.”
“…나중에 꼭 이야기 해야 한다?”
“아무렴.”
딱히 못 해줄 이야기도 아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다. 그나저나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마안 같은 걸 끼얹나?
◈
아카데미의 수업은 4시에 얼추 정리되었다. 비록 가는 수업마다 용사를 이기고 무영창을 시전했다는 소문이 쫙 퍼진 다음이라서 나나 라그니스가 진이 빠질 정도로 학생들에게 시달려야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아카데미에서의 첫날을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알던 아카데미는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나와 달리 왕립 아카데미를 한창 체험 중인 라그니스조차 문화적 차이를 이기지 못 하고 널부러지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 다했지. 결국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그렇게 시달리는 동안 여학생들이 열성적으로 추천한 디저트 카페에 앉아 커피와 당분을 섭취하고 있었다.
“제국에 비하면 왕국은 그냥 촌 동네였네.”
“귀족으로서 부정하고 싶지만 딱히 할 말이 없네.”
당장 카페에서 파는 커피 값이 동화 한 개고 작은 케이크 값이 동화 두 개다. 심지어 둘 다 전생의 기억 탓에 나름 고급진 미각의 소유자인 내 입에도 괜찮게 느껴질 정도의 품질을 뽐냈다.
왕국에서 이런 케이크 한 조각 먹으려면 동화 6개는 내야했을 걸. 커피도 이거보다 흙탕물 같은 커피가 동화 두 개를 받아먹는 게 보편적이고. 내가 오죽하면 그냥 커피콩을 들고 다니겠어?
“역시 땅이 크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나중에 잉여 물자가 넘치게 되면 왕국도 득 좀 보려나?”
“…넌 아카데미도 안 다니면서 어디서 그런 걸 공부하고 다니는 거야?”
“다 방법이 있지.”
물론 그런 방법이 정말로 있을 지언정 나는 모른다. 그냥 전생의 기억에 불과한거지. 내가 별 달리 자세한 설명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라그니스는 요즘 따라 자주 보여주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 아까 대련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설명해줘”
“그게 딱 이거다 하고 구체적으로 말하기 참 미묘한 감각인데 말이지…”
어차피 상대는 라그니스였기에 난 있는 그대로 다 말해주었다. 어차피 내가 오러가 아닌 마력을 운용하던 놈이라는 걸 알고 있는 마당에 굳이 감출 필요도 없고 말이지.
사실 마력을 느끼는 건 비단 시력 뿐만 아니라 오감 전체가 반응하지만 그나마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시각적인 부분이라서 거기까지만 설명해주었다.
“그래서…마나의 흐름도 그 색으로 보이게 되고, 마법을 쓰면 시전 중인 마법에 빨려들어가는 마나가 보인다고?”
“대충 그렇지?”
“그게 보인다고 그냥 베면 베어져?”
“그건 아니고. 검에도 몸에 마력을 두르는 것처럼 좀 기교를 부린 뒤에야 벨 수 있지.”
“어렵지는 않고?”
“좀 미묘하네. 대련장에서는 좀 수월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환상으로 구현된 검이다보니 마나의 일부라서 쉽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새 검을 얻은 뒤에도 여러 번 시도를 해봤지만 그렇게 빨리 되지는 않았다.
“그, 그럼 그게 마나나 오러를 두르는 것만으로도 가능할까?”
“그으을쎄에? 난 오러도 마나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까 말이지. 근데 설령 벨 수 있다 하더라도 안보이면 힘들 걸? 그게 바람에 날리는 실타래 처럼 흐느적거리긴 하는데 더럽게 빨라.”
디스펠이라던가 술식에 직접적으로 간섭해서 마법을 파훼하는 것은 마법사들끼리의 수 싸움으로 쓰일 정도로 흔한 축에 속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못 들어봤다.
마나를 두르는 것만으로도 됐다면 누군가가 인챈트한 검을 막 휘두르다가 마법 한 두개 정도는 터트려 먹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연구하는 사람이 나왔을 법도 할텐데 그런 이야기도 없고 말이지. 애당초 오러는 무기에 두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로 굳혀져 있으니 그 부분은 고민할 가치도 없고.
“무기에 이런 짓이 가능하다는 것조차 나도 최근에 알았으니까. 네가 알고 있는 상식과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다 합쳐도 이걸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 같다.”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데.”
라그니스가 걱정하는 건 뻔했다. 지금까지 없던 기술이 튀어나왔으니 온갖 집단에서 진상을 규명하고 나라는 놈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눈독을 들일 수 있는 점을 우려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라고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걸 대놓고 선 보인 게 아니다.
“그냥 검에 디스펠 주문 하나 장전 되어있다고 대충 속이면 되지 뭐.”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뻔한 거짓말을? 이미 엄청나게 소문이 퍼지는 중일텐데 그걸 믿는 사람이 있을까?”
“당장 서른 명되는 학생들이랑 교수 한 명이 입을 모아 봤다고 하더라도 의심부터 하는 사람이 지천에 널렸을 거다. 이런 건 알고 봤더니 대수롭지 않은 거더라. 그냥 잘 숨기고 있었던 거였다. 정도로만 두고 별 반응 안 하면 대부분 해결 된다.”
당장에 지들리만 하더라도 라드넬반데스 선에서 해결 될 테니 나머지 소문은 그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 그랬던건가?’ 정도로 의구심만 들게 하면 된다. 용사까지 이긴 마당에 전혀 있을 수 없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것보단, 그만큼 치밀하게 전투를 준비했다는 쪽이 더 현실성있으니까.
“너무 태평하게 생각하는거 같은데…”
“에이, 믿어 보라니까. 우리가 떠날 때 즈음엔 용사를 이긴 사실에만 관심을 가지고 마법을 파훼한 건 언급도 안 될걸?”
그다지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라그니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주었다. 그렇게 별 거 아닌 담소를 나누며 커피 한 잔을 다 비워갈 때 즈음, 카페의 문이 열리며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드미아! 밥이나 먹으며 이야기 할까!”
양 쪽에 여자를 끼다 못해 뒤에도 한 명을 더 붙이고 나타난 지크프리트는 주변 눈치 따위 보지 않는 당당함 속에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제발 눈치 안 보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애들 가슴이나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오는 건 좀 봐줬으면 좋겠다. 라그니스가 더럽게 민망해 하잖아.
“하아…용사님. 아니 이건 용사님 문제가 아니다. 아가씨들은 그렇게 밖에서 막 주물러져도 아무 상관 없습니까?”
아까는 수녀와 에셀루아를 끼고 있었고, 지금은 에셀루아와 엘프를 끼고 있다. 항상 에셀루아만큼은 붙잡고 있는 걸 보니 나름 정실이라는 걸까?
물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정작 저 쪽도 내가 한 말을 듣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반응이라서 돌아버릴 거 같다.
“지크가 좋아하면 저도 좋습니다. 뭐,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타인의 시선보다는 이 쪽이 더 좋으니까요.”
“나도 딱히 상관없는데.”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대답하는 엘프와 에셀루아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녀였다.
돌겠네 진짜.
“짜식아. 이게 용사님의 위용이야. 그래도 변경백이랑 널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번 만큼은 봐주지.”
“지, 지크?”
“역시 아까 싸울 때 뭐 잘못 맞은 거 아니야?”
오히려 지크프리트가 둘의 신체에서 손을 떼고 좀 과장되게 예를 갖추자 세 여자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기겁하고 있다.
대체 저 놈은 이세계에서 어떤 삶을 지내온걸까.
“아무튼. 일단은 밥이다.”
하하하하 하고 웃어보이는 놈은 사납게 웃는 건 여전했지만 처음과 달리 호쾌한 것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라그니스도 아까와는 전혀 다른 지크프리트의 태도에 적잖게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그 태도에 아무런 적의도, 짜증도 남겨있지 않기 때문인거 같다.
“지크. 그렇게 말하면 다른 이들은 모른다니까요. 그놈의 밥이 대체 뭐길래 자꾸 식사를 밥이라고 하는 거에요.”
“아. 그랬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질 않아. 식사다 식사. 내가 살게.”
딴 건 몰라도. 저 놈 저거 분명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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