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74)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74화(74/599)
결국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은 지크프리트 때문에 내 짧은 휴식은 대련무새들에게 침해 당해야만 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는데 이 놈들은 나를 개만도 못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용무를 마치고 돌아온 라그니스에게 그렇게 하소연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보이는 그녀였다.
“용사가 그런 거까지 말해주다니.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라그니스는 지크프리트가 나에게 직접 그런 조언을 하기 위해 접근했다는 사실보다도, 상당히 정상적인 발상으로 주변의 상황을 관찰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점에 더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도 처음 만나기 전에는 저렇게까지 평가가 박하지는 않았는데, 어릴 적부터 고생을 한 라그니스마저도 지크 놈의 행동을 저렇게까지 부정적으로 여길 정도니 제국에서는 정말 개망나니 취급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그나저나 타국의 방문마저도 알고 있다니, 역시 4황녀가 꾸준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나보네. 벤데 후작의 말로는 황제파들 중에서도 소수만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말이지.”
“음? 오늘 만나고 온 게 그거였어?”
“맞아. 어제는 하루종일 얼굴을 비추지 못했으니까.”
“흐음. 그랬구만.”
“…미리 말해두는데 그냥 평범하게 대화만 하고 온 거다?”
“아니, 그야 그랬겠지.”
“정말이다?”
어째서인지 가벼운 인사와 근황에 대한 담소 정도만 나눴다고 격렬하게 강조하며 시시콜콜한 내용마저 보고 하듯이 말하는 라그니스와 함께 남은 수업을 들으며, 이튿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나를 향한 주변의 격렬한 호응을 제외하면 그래도 나름 무난하게 흘러간 하루였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날에 찾아왔다.
“흠. 네가 용사를 쓰러뜨린 평민이라고?”
정말 딱 봐도 다른 나라에서 왔음을 과시하는 듯한 복식을 갖춘 귀족 놈이 마차에서 내린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대뜸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곱슬거리는 금발에, 보석으로 장식된 검집과 검을 금실로 자수 놓아진 벨트에 고정시키고 손가락 하나하나에 너클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큼직한 보석이 박힌 반지를 끼우고 있는 굉장한 모습의 귀족 놈은 뒤에 세 명의 하인을 거느린 채 거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이며 나를 제단하듯이 훑어보았다.
나를 알아봤다는 건 내 옆에 있는 라그니스가 누구인지도 안다는 소리일텐데 이딴 반응을? 주인 앞에서 수행원을 평가하듯이 대놓고 훑어본다고?
“…누구…”
그 꼴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라그니스가 입을 열려던 찰나, 그야말로 내 기억 속에 있던 중세 귀족과도 가장 흡사한 차림새를 굉장히 조야한 화려함으로 덧씌운 듯한 꼴을 한 놈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의 폼멜을 쓰다 듬으며 말을 이었다.
철저하게 라그니스를 무시한 채 말이다.
“실력을 보고 싶구나. 따라 오거라.”
그러고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내 의사는 확인도 안 한 채 대련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어김없이 사용인들이 깔끔하게 다림질해준 내 와인빛 반망토 안에서 간만에 나쁜 엘드미아와 더 나쁜 엘드미아가 기어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심상 속의 엘드미아들과 함께 어이없는 심정을 공유하며 놈을 바라보며 걸음을 떼지 않고 있자, 낌새를 느낀 녀석이 고개를 돌리더니 대뜸 미간을 찡그리며 언성을 살짝 높인다.
“뭐하느냐. 난 바쁜 몸이다.”
-미친놈인데?
-미쳐버린 무언가인데?
워워. 진정하자고 작은 엘드미아들아. 천문학적인 확률이라도 일단 확인을 해보는 게 참된 현대인의 도리 아니겠냐.
난 당장 모욕감에 시뻘겋게 얼굴을 물들이며 앞으로 뛰쳐나가려는 라그니스를 티 안 나게 억누른 뒤, 놈이 저런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능성을 입에 담으며 물었다.
“황제이십니까?”
솔직히 황제라도 무례한 일이지만 감안 못 할 건 없었다.
반대로 말하면, 황제가 아닌 이상 내 옆에 명목상의 주인인 라그니스가 멀쩡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저딴 식으로 날 지 부하마냥 부리려고 하는 건 상상을 초월한 결례이다 못해 면전에다가 침을 뱉는 수준의 만행에 불과하다.
지금 주변에 이 말도 안되는 꼬라지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목격한 수많은 학생들이 그대로 경악하며 걸음을 멈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좀더 귀족적인 상식이 있는 학생은 자기 일도 아닌데 안색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만큼 씨발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지금. 당연히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황제라고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상황 아니겠냐?
그런 나를 바라보는 놈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흠흠. 내 비록 귀족의 자태가 몸에 몸에 익어있다고는 하나 황제폐하로 오해받을 정도라니. 기분은 좋으…”
엥? 저 병신이 이걸 칭찬으로 받아 들이네?
옘병하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꼬라지를 더 보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말을 끊어버렸다.
“황제조차 아니신데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티스엘의 변경백이자 내 주인이신 라그니스 리엔 다 레비엥님의 명예를 더럽히며 모욕감을 안겨주는 겁니까?”
“…뭐?”
아니. 왜 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건데?
놈은 아예 대놓고 불쾌하고 짜증난다는 듯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
“지금 감히 이티스엘의 귀족따위가 가지는 한 줌짜리 명예를 들먹이며 나를…”
“검을 뽑으십시오.”
“어?”
“당신과 나눌 대화는 없습니다. 검을 뽑으십시오.”
딴 짓거리 못하도록 나부터 검을 뽑은 뒤 결투의 맹약을 위해 똑바로 세워 들었다. 그것만으로 얼음장처럼 굳어있던 주변이 술렁이며 부산한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고 놈의 하인 세 놈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와 귀족 놈을 막아섰다.
“직접 싸울 실력이 안 된다면 대적자를 세우십시오. 주인의 명예에 침을 뱉는 걸 두 눈으로 보고도 막질 못했으니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자리에서 결투 끝에 죽거나 주인의 명예를 욕 보인 당신 혹은 당신의 대적자를 죽여 뒤늦게나마 주인의 명예를 바로 세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내가 맨날 집사 노릇을 하고 다녀서 그렇지 이래봬도 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사 가문인 오가토르프의 집밥을 1년 넘게 먹으며 방랑 기사가 되기 위해 공부까지 하는 몸이다.
방랑 기사 그거 되려면 타국의 기사도까지 다 달달 외워야하는 상상초월의 전제 조건이 있더라.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니까 괜히 다른 국가의 기사들과 이념의 차이로 부딪치지 말라는 건지 뭔지 몰라도 아무튼 다 알아야 한다.
그래서 외웠고,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대륙 어디에서도 이런 대우를 받으면 합법적인 결투다.
내가 당장에 극대노를 하며 바로 정수리를 쪼개버렸는데 알고보니 저 놈의 어느 나라의 공작 정도 된다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정상 참작이 될 정도 합법적이다.
그리고 일주일 간 수행원이자 전속 집사로 고용된 엘드미아 에가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할 줄 아는 참된 지성인으로서 이딴 좆같은 상황을 그냥 넘기지 못 한다.
“지금…”
“나는 엘드미아 에가. 라단 에가와 에비셔 루이나의 아들이자, 오가토르프의 검을 배우며 기사의 길을 걷는 견습이자, 훗날 왕국의 안녕과 인민의 평온을 위해 방랑의 길을 걷기로 맹세한 한 자루 검이다. 주인을 섬기며 지키기로 약조하여 이곳에 이르렀으나 정작 주인의 명예를 향한 모욕을 막아내지 못하였으니, 만신萬神들께 맹세코 반드시 이를 바로 세우리라.”
내 진짜 살다살다 결투 선언문을 낭독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진짜. 내 인생 하루 앞을 알 수가 없네.
그래도 일단 선언문은 마무리 지어야지.
“이 자리에서 주인의 명예를 잃었으니, 이 자리에서 주인의 명예를 되찾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검을 거두지도, 입을 열지도 않겠다.”
구경하는 학생들과 사방팔방 흩어지며 교수를 찾는 학생들로 혼비백산하는 대환장 파티가 시작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도련님. 이미 늦었습니다.”
하인인 줄 알았던 세 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제 주인의 말을 끊는 것을 보아하니 저들도 기사이거나 견습인 듯 싶다. 그래도 확실하게 반응하는 거보면 기사가 아닐까 싶네.
하지만 정작 귀족 놈은 여전히 짜증과 어이가 없음이 공존하는 표정과 어투로 놈들에게 되물을 뿐이었다.
“늦었다니?”
“저 청년은 이미 결투를 선언하고 침묵을 맹세했습니다. 자리를 떠나려 하면 쫓아와서 벨 것이고…황제가 오는 한이 있더라도 결투가 끝나기 전에는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어이가 없군. 용사와 자웅을 겨뤘다길래 실력이나 볼까 했더니 제 주제를 모르고 나를 이리도 모욕한단 말이더냐?”
진짜 입을 열 때마다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만 떠드는 기적같은 놈이었다. 오히려 하인인 놈들이 조금은 제정신이 박힌건지 그나마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죽여라. 가치가 없다.”
“…그럼 제가.”
오러를 못 느낀다는 건 생각보다 불편하다. 저놈이 대체 어느 정도 하는 놈인지 정말 개뿔도 모르겠으니 적당히 힘 조절을 해야할지 전력으로 나서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죽일 거면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귀족 놈을 데리고 뒤로 빠지는 두 놈들이 적당히 거리를 벌리자 세 놈 중 가장 덩치가 그럴싸했던 갈색 머리가 차고 있던 검을 뽑으며 말했다.
“대적자 라그 웬스테라다. 주인이신 자그넬라 뷔스 벨루인 남작님의 장자이자 정당한 후계인 그윌로 뷔스 벨루인의 명예를 위해 검을 들겠다. 네게는…미안하게 되었군.”
뭐지? 자기 과시? 자기가 이길 것이라는 걸 암시하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말에서부터 방심이 뚝뚝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그 꼴이 너무나도 괘씸해서 놈이 간단하게 예를 취하고 자세를 잡는 동안 한껏 마력을 끌어 올렸다.
“간ㄷ…”
그리고 놈이 나직이 중얼거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려 하자마자 파고 들어서 그대로 목을 날려버리며 지나쳤다.
예상대로였고,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 오러가 잘 느껴지지 않는 놈들 대부분이, 작정하고 틈을 파고 드는 내 기습을 막지 못한다는 건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가속 속에서 내 예상보다 훨씬 잘 드는 검에 내심 감탄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검으로는 처음으로 뭘 베어보네. 역시 드워프 장인이 직접 건네주는 검답다고 해야하나? 전에 쓰던 거랑 비교하면 저항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베어지는 게, 이래서 드워프 드워프 하는구나 싶다.
“어…?”
깔끔하게 허공으로 날아간 목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귀족 놈과 남은 하인 둘을 바라보았다.
“라그가…일격에…?”
그리고 저들끼리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그 꼴을 보며 다시 검을 세워들고 처음에 취했던 자세를 다시 잡았다.
그걸 본 하인들의 표정이 사색이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 번의 결투가 끝났기에 내뱉을 수 있는 발언을 입에 담았다.
“대적자의 실력이 형편 없으니, 잃어버린 명예와 저울질 할 가치조차 없다.”
이세계 결투란 지독한 면이 있다. 당사자끼리 끝낼 때는 상관없지만, 대적자를 내세울 경우에는 그 지독함이 두각을 드러낸다.
내가 검을 집어 넣기 전까지 결투가 끝난 게 아니거든.
새로운 대적자를 내세우거나 사죄와 함께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상 안 끝난다. 그나마도 후자는 합당한 배상금이 딸려와야 하지.
그리고 놈들이 사색이 되었다는 건, 저 씹새가 결코 사죄하지 않는 인성의 소유자라는 반증일 것이다.
용사를 딱지 치기로 이긴 줄 알았나? 어디 한 번 갈 때까지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