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91)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91화(91/599)
사람은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뭐, 가끔 자기는 척 보면 안다고 하는 인간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모르는 법이다.
상대와 대화나 활동을 이어 나가며 두고 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건, 너무나도 일반적이고 대수로울 거 없는 사실인 것이다.
그런데도 종종 본의 아니게 그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말이지.
던전에 진입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짐덩이에 불과했던 세 명의 구타유발자들을 냉대했던 내가 그랬다.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나 크나큰 즐거움을 줄거라고는 단 1도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라 그런지 더할 나위 즐겁기 그지없다는 점은 장점이긴 하다.
“요, 용사님! 도와주십시오오오!”
“우, 우오오옷! 죽어라 괴물아!!”
“으아아악!”
무기조차 없어서 결국 아카데미 측이 사전에 예비로 마련해 놓은 검과 방패를 챙겨 들고서 우리를 따라 들어온 놈들은 지금 고블린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난이도 측정을 적급이라 해 놓고 겨우 고블린인가 싶지만, 그게 스무 마리가 넘는 고블린 무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파티원이 5명이나 되면 잘해봤자 청급 수준의 난이도일 것이다.
그래서 아카데미는 우리가 전송될 장소를 고블린들의 거처로 지정했다.
이동이 완료되자마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고블린 무리라는 상황은 충분히 적급의 난이도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와 지크가 세 마리 빼곤 다 몰살 시켰다. 그런데 저 놈들은 남은 세 마리하고 각각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도 저렇게 곡소리를 내고 있으니 안 웃길 수가 있나.
팝콘이 없는 게 한이다.
“엉덩이 뒤로 빠진 거 봐라! 고블린한테 구애라도 하냐! 똑바로 안 서?”
“사, 살려주십시오!”
“그거한테 죽으면 영혼이 되어서도 쪽 팔려서 한 번 더 죽어야 해 임마! 대가리 깨지겠다! 막아!”
용사와 내가 녀석들을 엿 맥이겠다는 심보로 이러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 미립자만큼이나마 덜 쪽 팔리라고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장 다른 조보다 먼저 중앙에 도착해 징표인지 뭔지를 가져와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시답잖은 놀음을 할 리가 없잖은가?
그 과정이 겁나게 웃길 뿐이다.
“검 한 번 기가 막히게 잡는군요. 저런 근력으로 대체 방패에 롱 소드는 왜 챙겼답니까?”
“순 겉멋만 들어서 숏소드는 궁색해 보였나보지.”
사이좋게 돌 더미에 걸터앉아 주변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들을 모아 두고 놈들에게 위기가 닥칠 것 같으면 하나씩 던져서 서포트를 하는 게 지금 나와 지크가 하는 일이었다.
아예 기초마저 안 잡혀있는 탓에 나조차 녀석들에게 위기가 닥칠 것을 두 수 앞에서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고, 덕분에 제 딴에는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놈들은 아무런 생명의 위협도 없는 안전한 상태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따악! 하고, 지크가 던진 돌이 고블린의 눈에 명중한다.
덕분에 산왕국 사절이 어설프게 허리를 높게 들어 생긴 빈틈을 노려 그의 발등을 찍어 버리려던 고블린은 목적을 완수하지 못한 채 얼굴을 부여 잡아야 했다.
“오크랑 싸우냐 짜식아! 무릎이랑 허리 안 낮춰? 네가 들고 있는 게 타워 실드냐? 라운드 실드지?”
“헤엑. 헤엑…!”
“어이구 모지리 새끼들 진짜.”
입으로는 험한 말을 뱉지만 지크 역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장장 10여분 간 더 사투를 펼친 뒤에야 고블린을 이긴 세 놈은 무슨 삼 일 밤낮으로 싸운 군인마냥 초췌했다.
당연히 우리가 보기엔 정말 같잖고 꼴사납고 한숨만 나오는 꼬라지다. 지들도 이런 개고생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누가 보면 던전 들어온 지 일주일은 지난 줄 알겠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신청한 거냐.”
사절의 참여는 전적으로 자율 참여니까 빼도 박도 못한 자기 과실이다. 그걸 알기에 놈들은 울상을 지을 뿐 뭐라 반박조차 못한 채 숨을 헐떡였다.
“그 긴장감 잊지 말고 잘 따라와라. 사주 경계 똑바로 하고.”
“조, 조금 쉬었다가 가면 안 됩니까?”
“니들 몸뚱이로 지금 쉬면 퍼져서 못 일어나. 귀환 스크롤 찢고 포기하고 싶으면 그러던가. 말리진 않는다.”
지크의 호감을 사는 것도 실패한 마당에 기세 좋게 참여했다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튀어나왔다고 하면 그들의 왕국에서 참으로 좋아라 할 거다. 놈들은 아무 말없이 나와 지크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인공적인 느낌이 없군요. 시간을 들여서 자연적으로 생태계가 구성되게 만드는걸까요?”
“글쎄. 전문 마법사를 불러서 만들었다는 것만 알지 나도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네 말대로 인공적인 냄새가 전혀 안 나는 것만큼은 사실이지”
그래도 우리를 고블린 소굴에 때려 박은 걸 봐서는 관리 정도는 하면서 지형을 파악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다는 건 결국 시설의 유지 관리 및 보수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니, 관리가 되지 않으면 쉽게 망가져 버리는 부류의 함정도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바닥 함정 같은 게 있을 수 있으니 제가 앞장서죠.”
“오, 그런 것도 할 줄 아는 거야? 대단한데.”
“배울 시간은 많이 있었으니까요”
전문 강사 아실리에에게 실전 압축 교육을 6년 남짓한 시간 동안 알뜰살뜰하게 시간을 쪼개가며 배워 온 이 몸이다. 어중간한 모험가들하고는 급이 다르지.
나는 주변 환경과 학생들의 수업 등을 고려하여 예상되는 함정들을 추려 낸 뒤, 행동을 시작했다.
결과? 말해 뭣하겠는가. 당연히 적중률 100%를 자랑하며 지크의 감탄을 이끌어냈지.
“이건 엄청 도움 되는 지식인데? 역시 척후는 중요하다니까. 우리는 척후가 없어서 이런 부분에는 영 약하거든.”
“용사님 파티요? 엘프 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걔 마법 검사야. 활 못 쏴.”
“아니, 활 못 쏘는 엘프가 말이 됩니까?”
이 무슨 망치 못 드는 대장장이 같은 소리? 하지만 지크의 표정에는 농담도, 거짓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학교에서야 잠잠하지만 워낙 왈가닥이거든. 아직 엘프들 기준으로는 어리다 보니 고향에서 떼를 쓰며 검이랑 마법만 배웠대. 활은 답답해서 못 쓰겠다더라고.”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네요.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제국에 부탁해서 한 명 정도는 찾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하러? 여기 있잖아.”
믿음직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두드리려 하길래 황급히 몸을 피하며 거절의사를 밝혔다.
“고생길이 훤한데 미쳤다고 거기에 낍니까? 꿈도 꾸지 마시죠.”
“어차피 네 목표도 고생길이 훤한데 오히려 우리랑 같이 다니는 편이 더 빨리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
“용사님이 언제 전선에 나설지 알고 그걸 기다립니까? 내년만 되더라도 당장 방랑기사 서훈을 받은 뒤 그 잡것의 행적을 찾아다닐 예정입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갑자기 눈을 번뜩이는 지크의 반응에 뭔가 말실수를 한 거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지만, 딱히 별다른 일 없이 우리는 무난하게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사이사이에 두어 마리의 오크라던가, 고립된 놀 집단 같은 것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싸울 이유조차 없기에 적당히 피하며 움직였다.
내가 길을 뚫고 있긴하지만 사실 치트키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아실리에에게 배운 게 언제 어디서나 잘 먹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 나야 나쁠 거 없지만 너무 싱겁게 끝난다는 건 좀 그렇구만.
그래도 이거 그 수정구 같은 걸 통해서 홀로그램마냥 생중계하는 거 같던데, 우리가 나아가는 건 그들이 보기에 지루하기 그지없을 게 분명하다.
“싸우는 소리네.”
그렇게 우리는 태연함 속에서, 세 짐덩이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이동하던 와중에 저 멀리 어딘가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몬스터일까 사람일까?”
“숲속이라면 좀 알 수 있겠는데, 저도 인간인지라 여기서 그걸 구분하긴 힘드네요.”
던전이나 동굴 같은 내부는 울림이 너무 심하다. 엘프와 드워프들이야 쉽게 구분하겠지만 난 거기까진 못한다.
“결국 지나갈 길이긴 합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선택지가 있나?”
“냅다 달려가서 한창 교전 중인 상대를 기습하는 선택지와 교전이 끝날 낌새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가가서 습격하는 선택지가 있죠.”
“후자가 꽤 재밌을 거 같은데, 숨어서 관찰할 만한 지형이 나오려나?”
“그럼 일단 가까워질 때까지 가보고 지형이 괜찮으면 구경하고 아니다 싶으면 들이받아 버릴까요?”
“그거 마음에 드네. 가자!”
역시 싸움 구경과 불구경은 못 참지.
게다가 그게 고수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보다 실력이 모자른 하수의 싸움일 수 있다? 없는 팝콘조차 영혼을 팔아서 챙겨 오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구경거리일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지크 역시 그런 부분은 나와 비슷한 감성을 소유한 것인지 싱글벙글 웃으며 최대한 몸을 낮추고 소리를 죽인 채 소음이 발생한 곳을 향해 나를 따라 움직였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 간의 교전이라는 게 확실해져서 기대감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 우리는 길을 막고 있는 벽 너머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 아깝네. 몰래 구경할 공간은 없어 보이지?”
전투가 그사이에 끝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나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던 지크가 실망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리고 정말 슬프게도, 나 역시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이런 건 꼭 뜻대로 안 되는 법이란 말이죠. 이 벽 정도는 뚫을 수 있죠?”
“박살을 내줄까 아니면 가루가 돼서 무너지게 해줄까?”
역시 마법에도 능통한 사람답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그를 향해 난 검을 뽑으며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당연히 튀어 나간 파편에 맞을 정도로 박살을 내버려야죠.”
“그래. 기습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지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은 뒤 검을 꺼냈기에 나도 마찬가지로 웃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기습은 언제나 옳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