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ly Do Not Touch Eldmia Egga RAW novel - chapter (98)
절대 엘드미아 에가를 건드리지 마라-98화(98/599)
육하원칙에 입각한 온갖 의문들이 의식을 가득 채우는 순간, 생각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검을 뽑을 틈도 없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뛰쳐나간 후에야 지금 일어난 상황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온다.
지크를 비롯한 학생들이 모두 넘어간 다음에 게이트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실시간으로 게이트에 개입할 정도로 실력 있는 마법사가 주변에서 몰래 활동하고 있다는 뜻임과 동시에 에스뮈에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당장 눈에 띄는 이상행동을 하는 이는 포착되지 않는다.
은신? 아니면 마족이 아예 모습을 감추고 잠입했나? 만일 그렇다면 멀쩡히 열려 있는 게이트에 개입해 좌표를 바꾸면서도 들키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라는 게 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인거지? 혼자서 한건가? 조력자가 있나?
적의 목표는 에스뮈에의 납치인가? 아니면 죽음인가.
내 입에서 나와야 할 경고를 누구에게 전달해야하는가? 어딘가에 숨어있을 친위대? 아니면 눈에 보이는 황실 근위대? 에스뮈에?
그녀를 부른다고 치면 호칭은? 공식적인 상황에 맞춰야 하나? 아니면 경각심과 자극을 위해 이름을 불러야하나?
내 머리로는 판단할 시간이 부족하다.
“에스뮈…!”
맞는 선택인지 확신조차 세울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끼치는 감각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카앙!
미처 다 뽑히지도 못한 검이 내 몸통을 양단할 기세로 휘둘러진 누군가의 검을 정확하게 받아 냈다. 검집과 검이 맞물려 버틸 수 있었던거지, 어중간하게 다 뽑았으면 옆구리에 상처가 났을지도 모를 정도의 힘이다.
그대로 세 걸음 정도 옆으로 날아가다시피하다가 겨우 자세를 잡고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니 황금빛으로 빛나는 갑옷과 투구를 차려입은 황실 근위대가 내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왜 막았는지는 당연했고, 나를 단칼에 베어 죽이려는 것으로 보아 에스뮈에의 친위대조차 아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에스뮈에를 지키려는 듯 가로 막으며 추가적인 공격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난 그가 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갑자기 무슨…”
그랬기에 그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목청 껏 에스뮈에를 부르짖기로 마음먹었다.
“에스뮈에! 게이트에서 물…!”
하지만 그 시도마저도 사람들 사이로 갑자기 내리꽂힌 무언가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풍압에 의해 몸이 뒤로 가볍게 날려가는 순간,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을 초토화 시키면서도 고요히 땅에 내리박힌 ‘누군가’와 어디선가 나타나 에스뮈에의 주변을 포위하고 가로막은 검은 갑옷의 친위대들이었다.
소리는 그다음에야 터졌다.
-콰아아아앙!
“씨발!”
고막이 터져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몸과 뇌를 흔든다.
마법인지, 단순히 육체만으로 이뤄낸 결과인지는 알 수 없어도 놈이 착지한 자리에 있던 일부 사람들이 피떡이 되어버렸다는 건 확실했다.
충격파만으로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면서도 겨우겨우 자세를 잡은 나의 시야에, 이미 나는 안중에도 없다시피한 황실 근위 기사와 에스뮈에를 보호한 채 갑작스러운 침입자를 견제하고 있는 친위대들이 들어온다. 사지가 멀쩡한 대부분 사람들의 상황도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지금 이 순간 대부분의 시선은 정체불명의 내방자와 그 주변의 참상에 향해 있었다.
머리에 있는 두 개의 뿔만으로도 저게 마족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고,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자기가 떨어진 곳 일대를 피바다로 만들며 등장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저기에 휩쓸린 사람들 중 아는 얼굴은 없다는 것 정도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놈에게서 겨우 시선을 돌려 바라본 에스뮈에가 아직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한 것도 잠시,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놈이 느닷없이 나를 바라보며 왼손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댔다.
“쉿.”
너무나도 초연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취한 제스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뽑아 든 검을 몸 중앙에 똑바로 세워들고 전력으로 버티는 것뿐이었다.
휘둘러진 건 분명 방금까지는 평범했던 놈의 손에서 갑자기 자라난 손톱.
하지만 그게 휘둘러지며 검에 부딪쳤을 때 느껴지는 건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통증과 충격이었다.
-카카각!!
“크흡…!”
도저히 손톱이 검에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는 금속음과 함께 놈의 그림자가 내 옆을 스쳐나갔다.
“이걸 막아?”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 내 눈으로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가속이다.
하지만 검을 후려치고 지나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릴 정도로 여유가 있음에도, 놈은 바로 방향을 틀어 내 뒤를 노리지 않고 한참을 더 나아갔다.
“변수가 너무 많이 생기는군.”
“뭐라는 거냐 씨발.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가…!”
모든 스펙이 나보다 위에 있지만, 화살 같은 놈이다. 다른 공격이 어떨지는 몰라도 조금 전의 일격은 미세한 컨트롤이 불가능한 게 분명했다.
혹시라도 조금이나마 더 시간을 끌거나 뭐라도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 욕지기와 함께 말을 뱉어 봤지만 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틀어지기 전에 서둘러야겠어.”
“게이트를 막…!”
다시 한번 달려드는 마족의 일격이 이번엔 왼쪽 허벅지를 노렸지만 가까스로 늦지 않게 검을 움직여 튕겨낼 수 있었다.
이 새끼. 게이트에 대해 경고하는 걸 막으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놈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에스뮈에를 향해 시선이 옮겨지려던 순간.
“잡아라.”
더할 나위없이 침착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함께 에스뮈에의 명령이 떨어졌다.
황급히 바라본 그녀는 내 충고를 이해했는지 아까 전보다 게이트와 거리를 둔 채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뎠고, 그녀를 보호하는 여덟 명의 친위대들은 마치 그녀와 일심동체인 것처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그대로 행동을 시작했다.
거기엔 구호도, 수신호도 없다. 마치 모든 상황을 상정하고 맞춰 놓은 것처럼 친위대는 침묵 속에서 역할을 분담했다.
“쳇.”
충격과 공포가 잠식한 주변에서 유독 놈의 목소리만 잘 들리는 기분이다. 그래도 저 정신 나간 놈조차 혀를 찰 정도로 친위대가 강하다는 반증이라 생각하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렇군. 이티스엘의 엘드미아 에가. 용사를 이긴 소년.”
그리고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자세를 풀고 있지않던 근위 기사가 이제야 알아봤다는 듯 중얼거리며 검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나니 다시금 스멀스멀 긴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니, 진짜 이 상황에 그렇게까지 안심한다고?
“자네가 황녀님을 해하려 했다면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었겠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황녀님을 지켜 주려고 한 거였군. 귀공의 뜻을 이해못해 하마터면 큰 실책을 저지를 뻔했네.”
하지만 그런 내 불안과 달리 그는 황금 갑옷을 번쩍이며 다가와 반쯤 무릎 꿇고 쓰러지다시피 한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분명 저 뒤에서 친위대들이 한 번 한 번에 살의를 담아 검을 휘두르고 마족 놈은 그걸 또 피하거나 막거나 반격해가면서 살벌하게 싸우고 있는데도 그는 이미 상황은 정리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 근간에 친위대를 향한 믿음과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내 처지에서는 저 갑자기 튀어나온 마족 놈이 친위대 다섯을 상대로 박빙으로 싸우는 게 자꾸 눈에 들어와서 전혀 안심이 되질 않는다.
“경의 의무를 다 하셨을 뿐이지요. 죄송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닌지라 인사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싶군요.”
투구 속으로 보이는 강직한 인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담긴 걸 보아하니 내 태도가 딱히 거슬리진 않았나보다.
그래도 일단 놈의 노림수가 에스뮈에인 건 확실하니 그의 도움을 받고 일어나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엘드미아여. 괜찮은 게냐?”
그런 나를 바라보며 몸을 돌린 에스뮈에의 뒤편에 있던 친위대 한 명이 마족과의 싸움을 바라보다 말고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손을 뻗는다. 얼핏 보면 자리를 벗어나는 에스뮈에를 제지하려는 듯한 움직이었지만, 작은 그녀의 키 덕에 내겐 기사의 손이 아주 잘 보였다.
마치 게이트로 밀치려는 것처럼 안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에스뮈에를 향해 뻗어져 있는 오른손이 말이다.
그래, 게이트에 개입하는데 배신자 하나둘 정도는 있는 게 정상이겠지!
식상하게 이름을 부르짖을 틈도 없이 다시 한번 가속하며 전력으로 거리를 좁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자기 떳떳하지 못한 행동에 신중을 기하는 탓에 녀석은 오롯이 에스뮈에만 바라보는 듯했다. 마치 그녀만 게이트에 넣을 수 있다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처럼.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가속중인 사고가 그 행동에 의문을 가지기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인지 그녀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일지언정 저만한 실력을 지닌 친위대가 되기까지 한평생을 쏟아부었을 텐데, 대체 왜 배신을 한 걸까.
하지만 의문을 가졌다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지금 중요한 건 난 저 사람을 모르고, 에스뮈에와는 입술을 빼앗긴 정도의 사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진짜 친위대가 아니라 투구 쓴 마족일지도 모르지.
그런 와중에 당연히 생판 남보다는 지인을 우선시 하는 게 정상이 아니겠냐?
“손 치워! 이 새끼야!”
이어지려는 사고를 끊고 에스뮈에에게 뛰어들며 손잡이의 폼멜을 쥔 채 검을 휘둘렀다.
라그니스를 구할 때 딱 한 번 써 보고 그 뒤로는 쓸 일이 없던 꼼수였으나, 내가 느끼기에도 깔끔하게 호를 그리며 친위대의 목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갑옷의 틈바구니를 지나 정확하게 살을 베었음이 손끝을 타고 느껴졌다.
배신자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카학!”
못해도 절반 정도까지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슬아슬하게 닿은 검 끝은 경동맥을 파고드는 정도에 그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작정하고 배신한 배신자의 각오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기에 녀석은 기어이 에스뮈에를 밀쳤다.
온 힘을 다해 에스뮈에를 게이트로 밀어 넣는 터라 내게 베인 녀석의 목에서 핏줄기가 치솟는 걸 볼 틈도 없이 뛰어올라 온몸으로 에스뮈에를 막아 선 나는, 뒤따라 달려오고 있던 황금의 기사를 향해 에스뮈에를 밀쳐 냈다.
친위대 중 누가 또 배신자일지 알 수 없다. 이래 놓고 저 자마저 배신의 낌새가 있었다면 절망적인 상황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정도였다.
비록 허공에 뜬 채로 무리하게 행동을 취하는 바람에 내가 게이트로 넘어가게 되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게이트 너머에 뭐가 있을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되겠지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