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rb only the power of the wicked and become the strongest on Earth RAW novel - Chapter (253)
제253화. 에필로그 (1) – 못 오를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랬다
“흐흐흐…!”
듣는 입장에서는 매우 수상하게 들릴 법한 낮은 웃음소리.
그것은 마신, 단틸리온의 아공간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깃털 펜을 문서에 휘갈겨 쓰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계약자 한 명 잘 만났더니,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없구만! 흐흐흐…!”
깃털 펜을 휘갈기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단틸리온의 모습.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행동을 멈췄다.
“…응? 뉘야?”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확인한 단틸리온의 눈이 커졌다.
“…엥? 바알?”
‘흑기사’라는 모습의 설명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건장한 남성.
바로 마신의 리더이자 마계의 책임자, 바알이 인간형으로 변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자네가 내 아공간에 찾아온 건, 내가 탄생하고 난 후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여기 앉으면 되나?”
단틸리온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며 바알은 소파가 놓인 곳까지 성큼성큼 걸어왔다.
당당하게 상석에 앉는 그의 모습에,
“…나 원, 참.”
단틸리온은 황당하다는 듯이 허탈한 웃음을 자아냈다.
잠시 후.
둘은 커피 잔 하나를 탁자 앞에 놓은 채로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수프레모 등급 원두로 만든 블랙커피다. 중간계의 차 맛치고는 꽤 괜찮은 놈이지.”
“그냥 쓴맛인데.”
“쯧쯧쯧. 입맛조차 재미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내가 알기로는, 원래 자네도 중간계 음식은 안 좋아했던 것으로 아는데.”
“아아, 얼마 전까지는 그랬지.”
얼마 전이라는 단어에, 바알은 바로 정답을 알아냈다.
“김진성이 알려줬나?”
“뭐….”
단틸리온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바알의 시선이 집무를 보는 테이블 쪽으로 향했다.
“아까 말한 계약자의 정체 역시 김진성인 것 같던데, 뭐가 그렇게 즐거운가?”
“아, 고 녀석이 요즘 다른 중간계 차원 정보를 계속해서 갖다 주거든.”
김진성 얘기를 꺼내자마자 단틸리온의 표정이 절로 밝아졌다.
“정보도 아주 자세하게 가져다줘. 생김새, 신체 능력, 고유 능력, 지형뿐만 아니라 언어, 좋아하는 음식, 생활 취미, 특기, 기호 물품 같은 아주 자세한 걸 말이야.
학자 입장에서 이렇게 흥미진진한 정보가 계속해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응?”
“김진성과의 계약은 끝난 게 아니었나?”
“끝났지. 그냥 가끔 놀러 올 뿐이야. 그때 정보를 가져다주는 거고.
뭐, 놀러 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잖아? 중간계 놈이 운 좋게 그만큼 강해진 걸 우리 입장에서 어쩔 수도 없고 말이지.”
단틸리온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에도 바알은 대답 없이 계속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전례 없던 바알의 방문에 그의 의중을 헤아리던 단틸리온이 이내 눈치를 챘다.
“설마, 김진성 때문에 찾아온 겐가?”
바알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역시 쓰군.”
“그래도 계속 손이 가긴 하나 봐? 큭큭큭.”
“아까 천계에서 사신이 한 명 왔다.”
단틸리온의 눈이 커졌다.
“사신?”
“김진성, 그놈의 행방을 쫓고 있더군.”
“왜?”
“무슨 일이 있어도 제거할 예정이라 하더군.”
단틸리온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그놈이 살아 있으면, 천계와 마계 양측 모두에게 큰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고로, 천계와 마계가 힘을 합쳐서라도 그놈만큼은 제거해야 한다.
…이게 사신의 전언이었다.”
“푸핫!”
바알의 말을 끝까지 들은 단틸리온이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날, 김진성한테 세라핌을 포함해 천사들이 전멸당한 게 꽤 충격이 큰 모양이지?
그러게 좋게좋게 말로 해결하고 불가침 조약이나 할 것이지, 왜 중간계 생명체라 무시하고 힘으로 짓누르려고 했어? 푸하하핫…!”
“좋아하기엔 꽤 심각한 문제다, 단틸리온.”
차가우리만치 냉정한 표정으로 말하는 바알의 모습에, 단틸리온 역시 폭소를 멈추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라. 당분간 천계 놈들은 중간계에 직접 권한을 행사하지 못할 거다.
그러기엔 세라핌을 포함해서, 천계의 핵심 전력 대부분이 소멸 직전까지 갔어.
그들이 완전히 힘을 회복하려면, 최소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단틸리온이 바알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즉, 10년 동안은 제2차 천마 대전이 열리는 게 무서워서라도 직접 중간계에 간섭하지 못할 거라는 얘기지.
지금 당장 천마 대전이 또 열리잖아? 이번에는 무조건 천계의 패배로 이어진다.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하지.”
“…확실한가?”
“그럼! 내가 당시 김진성의 활약상을 두 눈 뜨고 똑똑히 지켜봤다니까!”
호언장담하는 단틸리온의 표정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간계 신(god)이 개입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어지는 바알의 질문에 단틸리온이 바로 대답했다.
“세라핌도 처참하게 패한 마당에, 중간계 신 따위가 어떻게 김진성을 이겨?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다음에 사자가 오면 불가침 조약이나 계약서로 작성하라고 해.
이건 김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계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단틸리온은 진지한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정도로 김진성은 강하다. 그놈을 적으로 돌리면, 어떤 차원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천계, 마계를 다 포함해서 말이지.”
그 말에 바알은 단틸리온을 바라본 채로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알 수 없는 표정의 그에게서 시선을 뗀 단틸리온이 돌연히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무릎을 쳤다.
“아! 그래, 그나마 한 놈 있군. 만약 중간계에서 환생했다면, 어쩌면 김진성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가 말이지.”
“그게 누군가?”
바알의 질문에 단틸리온은 대답했다.
“메가라포라(Megarapora)”
* * *
G-17 구역 근처에 있는 한 붉은 포탈 앞.
수많은 헌터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한 명의 헌터가 갑자기 고개를 포탈 쪽으로 돌렸다.
붉은 포탈 중앙에서 시작된 작은 파동을 발견한 것이다.
“대장님! 포탈이 일렁입니다!”
그의 보고에 경비대장 역시 포탈을 확인했고, 이내 큰 목소리로 지시했다.
“레이드 팀이 돌아온다! 전원 호송 대열 위치로!”
“위치로!”
헌터들이 다급히 포탈 양쪽으로 늘어서는 동안, 포탈 내 파동은 더더욱 심해졌다.
그러더니, 이내 수많은 이들이 포탈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충성!!”
경비대장이 레이드 팀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이를 향해 절도 있는 자세로 경례를 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경례를 받은 뒤, 쓰고 있던 최첨단 투구를 벗어 들었다.
동시에 흑발의 긴 머리가 흘러내리며 아름다운 홍현진의 외모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
“와….”
마치 그림 같은 그 장면에 일부 신입 헌터들은 멍한 눈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홍현진은 경비대장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별일 없었죠?”
“넷.”
“고생했어요. 모두 본사로 귀환하겠습니다.”
“넷. 전원 시동을 걸어라!”
경비대장이 포탈 반대편에 정차해 있던 수송 차량 쪽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곧, 홍현진을 포함한 백두 클랜의 정예 레이드 팀을 태운 차량이 경비 헌터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센터 구역 내 드넓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와! 현진 님이다!”
“현진 님!”
“와, 진짜 예쁘다…!”
“꺄아아악! 현진 언니이이!!”
도로 양쪽에서 걸어가던 시민들이 제일 앞 차량에 탄 홍현진을 발견하고는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홍현진은 투명한 창문을 통해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그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이었다.
“그만 인사하시고 좀 쉬시지요.”
보조석에 타고 있던 경호 팀장, 손동건이 그런 홍현진을 나무랐다.
“정확히 26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 않으셨습니다.”
“괜찮아요. 경지가 높아져서 그런가, 아직도 하나도 안 피곤한걸요?”
“그래도….”
홍현진은 아직 잔소리가 남았다는 듯 뒷말을 이으려던 손동건을 보며 재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요즘 들어 점점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일반인들이 많아진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에 손동건 역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금 홍현진을 향해 환호하는 사람 대부분이 헌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예전에는 신대륙 길거리를 차 없이는 못 다녔다면서요? 몬스터들이 언제 등장할지 몰라서요.”
“그렇습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이래야 점점 도시에 활기가 생기죠.”
홍현진은 바깥에서 환호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진성이 천계의 책임자를 ‘설득’한 이후.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대륙에 자리 잡았던 시련의 탑과 마계던전은 온데간데없이 흔적을 감추었다.
동시에, 전 세계에 끊임없이 생성되던 일반 던전 포탈들도 하나둘씩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몬스터들도 더는 지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김진성이 원하던, 몬스터와 던전이 없는 세상이 찾아온 것이다.
‘…아쉽게도, 완벽하게 평화로운 세상은 아니지만.’
속으로 생각한 홍현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운전사를 향해 말했다.
“본사로 가기 전에 파인더 클랜 본사에 잠깐 들러요.”
“알겠습니다.”
대답한 운전사는, 방향을 바꾸거나 하지 않고 계속해서 본사 쪽으로 차를 몰았다.
왜냐하면, 파인더 클랜 본사는 백두 클랜 본사 바로 옆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파인더 클랜 본사에 들어온 홍현진, 손동건은 헌터들의 극진한 안내를 받으면서 마스터실로 향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하하하!”
안에서 업무를 보던 박도준이 환한 표정으로 둘을 맞이했다.
“신대륙의 총장 자리에 오르실 귀한 분이 이 누추한 곳까지 행차하시다니요?”
“누추하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물품들이 너무 다 최신식 아닌가요?”
“저도 사고 싶어서 샀나요? 요즘 거래되는 정보들을 처리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고요. 어휴, 저것들 산다고 쓴 돈이 얼마인지, 정말….”
“제 앞에서까지 엄살 부릴 거예요? 파인더 클랜 분기별 수익이 얼마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데요?”
“아, 맞다. 죄송. 하핫.”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웃는 박도준의 모습에 홍현진은 피식 웃었다.
“요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가 봐요? 지난주에 자른다는 머리가 그대로인 걸 보니.”
“어휴, 말도 마십쇼. 2주 전에 직원을 그렇게 많이 뽑았는데도 일손이 모자라 죽을 지경입니다.”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도준.
현재 신대륙 최고의 정보 집단으로 자리 잡은 파인더 클랜은, 사실상 신대륙에 들어오는 모든 최신 정보를 전부 손에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정보를 사기 위해 전 세계에서 거래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실정이니, 박도준은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렇게 바쁘려고 성공한 게 아닌데 말이죠. 제 평생의 원칙이 ‘조금 일하고 많이 벌자’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원….”
“아직 클랜을 설립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죠, 뭐. 자리 잡으면 편해질 거예요.”
“그러길 바라야죠. 에휴…. 아, 근데 어쩐 일로? 복장을 보아하니, 설마….”
“맞아요. 그거예요.”
홍현진은 손동건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고, 손동건은 바로 품 안에 있던 아공간 주머니를 박도준에게 건넸다.
“가우르 행성 레이드로 얻은 각종 전리품이에요 자세한 설명서도 적어 넣어놨으니 참고하세요.”
“오오! 감사합니다.”
박도준은 두 눈동자를 반짝거리면서 아공간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가우르족 놈들의 힘의 원천에 대해 조사 중이었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겠군요!
특히 신체 능력 강화라면 죽고 못 사는 러시아 애들이 환장하겠어….”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박도준의 모습에, 홍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렇게 좋을까?
“그러면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직접 연락하시고요.”
“아, 네. 들어가세요.”
곧 몸을 돌려 마스터실의 문을 여는 홍현진.
“아! 저기….”
박도준의 부름에 홍현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의 그녀를 한참을 우물쭈물 바라보던 그는,
“…아, 아닙니다. 제가 착각했네요. 들어가십시오.”
라고 인사를 했다.
홍현진은 ‘뭐야?’라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면서 이내 마스터실을 나섰다.
그녀의 뒤를 따라나서며 자신을 흘깃 쳐다본 손동건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박도준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이내 닫힌 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박도준은,
“휴우…. 그래,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랬어.”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책상 뒤에 앉았다.
그러고는 머리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어 잡념을 떨친 뒤,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 * *
현재 홍현진의 숙소는, 이전에 대한 클랜 본사 내 용한길이 묵었던 숙소 건물의 최상층이었다.
샤워 후 가운만 입은 채로 거실로 걸어간 그녀는, 창밖의 노을 진 아름다운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폰을 집어 들었다.
“후우….”
갑자기 긴장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쉰 그녀는 이내 번호 하나를 검색한 다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몇 번 흐르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네.]들려오는 목소리에 홍현진의 표정이 절로 밝아졌다.
“저예요, 진성 씨.”
[아, 네. 레이드는 무사히 마치셨습니까?]“네. 생각보다 쉽더라고요.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어요. 가우르족 중 일부가 신체 강화 약물을 사용했더라고요.”
[그 괴물들이 신체 강화 약물까지요?]“네. 그래서 얼마나 고전했는지 몰라요. 처음에는….”
그렇게 한참을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하는 홍현진.
평상시 절대 볼 수 없는 편안한 미소가 지금 그녀의 얼굴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되었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설마 활약상 자랑하려고 전화하신 건 아니죠?]“풋, 왜요? 그런 목적으로 전화하면 안 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닌데, 본인이 그런 이유로만 전화한 적이 없잖아요?]홍현진은 자신도 모르게 볼을 긁었다. 그랬었나?
“흠~.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렇다면, 이번에도 목적이 있어서 전화한 거였군요. 그리고 아마 새로운 차원 좌표를 알려달라는 거겠죠?]“…혹시 독심술이라도 쓰시나요?”
[비밀입니다.]“어머.”
[…진짜 믿는 건 아니죠?]진짜 믿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진성이라면 솔직히 무슨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진짜 아니길 바랄게요. 그러면 정말 무서워질 테니까.
지난번에 말씀하신 라이노족이 사는 차원의 좌표가 필요해요. 이번에 가우르족 행성에도 라이노족이 몇 명 넘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더라고요.”
[…그 행성도 마기에 완전히 지배당한 모양이군요.]“그런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좌표 보내드릴 테니, 언제나처럼 현진 님도 저한테 보내주세요.]“이번 레이드를 통해 얻은 정보 말이죠?”
홍현진은 폰을 귀에 댄 채로 계속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저희가 얻은 정보는 바로 파인더 클랜 통해서 드릴게요. 그리고 보너스도 하나 더 드릴 테니 요긴하게 쓰세요.”
[보너스요?]“네. 아마 좋아하실 거예요.”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감사드립니다.]“아니에요. 진성 님한테 받은 은혜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수준인걸요.”
이건 진심이었다.
김진성 한 명의 활약상 덕분에, 홍현진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강 클랜의 마스터로 우뚝 서지 않았는가.
“오히려 진성 님이 원한 평화로운 세상이 오지 않아서 그게 더 아쉬운걸요.”
“그래도요.”
대답하는 홍현진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감돌았다.
김진성이 원하던 대로 모든 던전과 몬스터는 사라졌다.
이후 다시금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변수가 생겨났다.
던전이 사라진 자리에, 기존 연합들이 드나들었던 타 중간계 차원의 포탈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하나같이 모두, 이전에 센터 구역에 자리 잡았던 메이저 클랜들에서 점령했던 차원들이었다.
그 포탈 안으로 들어가면, 마기에 완전히 지배된 이종족들이 몬스터들처럼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들었다.
기존 메이저 클랜들이 자신들을 위해 토착 이종족들을 모두 ‘오염자’로 변화시킨 것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래도 포탈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처럼 국가가 전복되거나 하는 일은 없어졌으니까요.]“그러게 말이죠. 아무래도 기존 메이저 클랜원들에게 훈련을 받은 탓이겠죠?”
[그게 가장 신빙성이 높죠.]이를 증언할 수 있는, ‘오염자’를 만드는 데 일조한 이들은 대부분 실종되거나 자결한 상황이다.
전 세계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마당에 증언을 해봐야 최소 사형이라는 결말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모두 눈치챈 것이다.
에클라 연합 측에서는 실종된 인원 전부를 수배했지만, 아직 한 명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애초에 다들 신대륙 내에서도 한 가닥 하던 헌터들이라,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정체를 감추고 살아갈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들 처지에서도 나쁘지 않은 상황 아닌가요? 만약 타 중간계 차원 포탈이 생성되지 않았다면, 신대륙에서 손가락만 쪽쪽 빨고 끝났을 텐데요.]“…뭐, 부정은 안 할게요.”
솔직한 홍현진의 대답에, 수화기 너머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고생하십시오. 저는 내일 정오쯤에 파인더 클랜을 방문하겠습니다.]“네, 그 전까지 정보 보내 드릴게요.”
[네. 그럼.]“아, 잠깐만요.”
전화를 끊으려던 김진성을 붙잡은 홍현진은, 잠시 망설였다.
“…아니에요. 다음에 또 통화해요.”
[네.]곧 전화가 끊기는 소리를 들은 홍현진은 아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완전히 어두워진 밤의 풍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했어.”
해가 완전히 넘어간 서쪽 산을 바라보며 홍현진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