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5)
105. 백수제(5)
#105
“···젠장!”
뒤늦게 정신을 차린 로난이 도플갱어를 따라 달려갔다. 쏴아아- 거센 밤바람이 숲의 머리를 휩쓸고 있었다. 뒤쪽에서 아데샨의 외침이 들려왔다.
“로, 로난!”
하지만 로난은 그녀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도플갱어의 속도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빨랐다. 피를 뚝뚝 흘리고 있어서 어디로 갔는지 알아볼 수 있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플갱어는 좀 가까워진다 싶으면 다시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로난은 거대한 그루터기를 뛰어넘고, 두서없이 기댄 나무들 아래를 통과하고, 꾸벅꾸벅 졸던 새들을 깨워 가며 내달렸다. 다시 나무 뒤편으로 사라진 도플갱어의 모습에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더럽게 빠르네···!”
핏자국을 따라 달리던 로난이 큼직한 참나무를 제치는 순간이었다. 생소한 구조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서커스에서나 사용될 법한 넓고 뾰족한 천막이었는데, 고개를 젖혀야 할 정도로 지붕이 높았다.
“이건···?”
족히 수십 종류는 될 법한 기척이 내부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로난은 이곳이 백수제에 나올 환상종들을 모아 놓는 장소라는 것을 눈치챘다.
상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천막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핏자국은 그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로난이 막 진입하려는 차였다. 파삭! 뒤쪽의 풀숲이 젖혀지며 아데샨이 튀어 나왔다.
“선배.”
“자, 잡았다···!”
뒤따라온 아데샨이 로난의 앞에서 멈춰 섰다. 어느새 뒤로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땀에 젖은 목덜미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무릎을 짚은 채 숨을 고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으···왜 이렇게···학, 달리기가 빠른 거야···.”
“미안해요. 마음이 급해서.”
“하아···아냐, 그럴 수 있지···그나저나 로난. 도플갱어의 모습이···.”
아데샨이 고개를 들어 로난을 쳐다보았다. 그는 칼자루를 움켜쥔 채 천막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였어요.”
“너···.”
“일단 잡죠. 나머지는 그다음에 얘기해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두 사람이 발걸음을 옮겼다.
천막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형용할 수 없이 강렬한 냄새가 훅 밀려왔다. 칵테일처럼 뒤섞인 짐승들의 체취였다. 머지않아 펼쳐진 실내의 모습에 아데샨이 감탄을 흘렸다.
“와아···여기에 모아두고 있었구나.”
“돈 좀 썼네요.”
천막은 거대한 동굴처럼 일직선으로 뻗은 구조였다. 잘 정돈된 내부는 고급스러운 외양간을 연상케 했다.
천장 높이 매달린 등불이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양측 벽을 따라 늘어선 우리 안쪽에는 갖가지 생물이 들어가 있었다.
불쥐, 나무낙타, 사막 슬라임 등···일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환상종이나 몬스터 수십 종류가 저마다 맞춰진 우리 안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우리 기숙사보다 좋은 거 같은데.’
호화스러운 시설을 본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필히 바렌이 직접 설계를 한 것이 분명했다. 쾌적하게 구성된 우리 중 몇 개는 사람이 지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계속 가죠.”
“응.”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도플갱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핏자국은 끓기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깊게 들어갈수록 위험하고 희귀한 개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상자 내부에서 아롱이는 분홍색 빛무리를 본 로난이 혀를 내둘렀다.
‘페어리까지 데려왔나. 대단하군.’
전생의 발루스가 봤다면 행복해서 기절했을 풍경이었다. 천막의 끝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다른 우리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거대한 우리가 나타났다.
“이건···!”
“커어어억···! 크러어어억!”
우리 안쪽을 본 아데샨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거대한 만티코어 한 마리가 배를 뒤집어깐 채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로난이 픽 웃었다.
“여기서 지내고 있었군. 팔자도 좋지. ”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바렌에게 제압당했던 만티코어가 분명했다. 훈련이 끝나서 그런지 몸 곳곳에 붙어 있던 구속구가 모조리 해제되어 있었다.
꼬리 끝에서 빛나는 독침은 보랏빛을 띠는 액체로 범벅된 채 번들거리고 있었다. 와이번같은 대형 몬스터도 즉사시키는 강력한 맹독이었다.
저런 걸 학생들에게 보여줘도 되는 건지. 로난이 입속말로 중얼거리던 차였다. 옆에 서 있던 아데샨이 그의 소매를 쿡쿡 잡아당겼다.
“로난.”
“네?”
아데샨의 시선은 저 멀리 막다른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인물이 그들을 등진 채 서 있었다. 거한의 목덜미에는 흑갈색 갈기가 풍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바렌?”
영락없는 바렌의 뒷모습이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분명 쪽지로는 다른 곳을 가라고 알려줬는데, 왜 여기에 와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길이 엇갈렸나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의 발치에 묻어나 있는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처럼 시커먼 핏물은 증발하듯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한순간 섬뜩한 소름이 등허리를 타고 내달렸다. 로난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교수님이 아니네요.”
“···응. 도플갱어야.”
아데샨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때 바렌의 몸이 옆으로 허물어졌다. 털썩. 도플갱어가 쓰러진 자리에서 웬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체격의 성인 남성을 세 명 정도 옆으로 붙여 놓은 듯한 거구였다. 적색 수염이 하관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변발을 한 머리 위에는 웬 곰 가면을 얹어 놓고 있었다.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로난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너희는 뭐냐.”
“···!”
아데샨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낮고 울리는 음성에는 사람을 위압하는 힘이 내포되어 있었다.
로난의 허리보다 두꺼운 팔뚝을 타고 붉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큼직한 주먹은 폭발을 앞둔 화산탄처럼 점멸하고 있었다. 여지껏 보아온 것 중에서 손꼽히게 거칠고 흉악한 오러였다.
‘정황상 도플갱어는 저 작자를 보고 변신했겠지. 바렌을 증오하고···저정도 수준의 오러라···젠장.’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통성명을 하지 않아도 이름을 알 것만 같았다. 불길한 예측은 왜 항상 들어맞는 걸까. 그래도 다른 동아리 부원들이 마주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대답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단순한 우연인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아론데일.”
아론데일이라 불린 사내의 눈이 커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바렌으로 변한 도플갱어 위에 오른발을 얹었다.
“나를 아나?”
“대충은.”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떠오른 것이지만, 전생에서도 카리볼로의 삼거수(三巨獸)에 대한 소문은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밀렵 조직의 2인자들. 여지껏 죽여온 동물의 피가 호수를 이룬다는 잔혹한 학살자. 우습게도 당시의 정보 역시 발루스에게 들은 것이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지껄여댔지.’
징벌병 시절의 발루스는 카리볼로의 총대장과 그 바로 밑인 삼거수를 거의 신처럼 찬양했다. 세 짐승이 있는 한 카리볼로는 영원할 것이라 입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아론데일은 상당히 언급이 많이 되는 작자였다. 의도치 않게 오늘 그 힘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난이 말을 이었다.
“너네 계획이 실패한 것도 알고. 지금쯤 니 부하들은 다 뒈졌을 거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나.”
“글쎄다···코리볼로였나, 뭐 그런 이름 아닌가?”
아론데일의 얼굴이 굳었다. 로난이 칼자루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라만차의 시커먼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선을 아론데일에게 고정한 채 속삭였다.
“선배, 기회를 봐서 도망쳐요. 가서 나비로제 교관님이나 바렌을 불러와요.”
“너, 너는?”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미가 자명한 침묵에 아데샨의 얼굴이 굳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녀가 옅게 주억거렸다. 아론데일이 으르렁거렸다.
“꼬마야. 네 가족과 함께 들개 먹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순순히 대답해라. 뭘 알고 있지?”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냐? 그것도 좆같은 밀렵꾼 새끼한테.”
별안간 로난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적거렸다. 아론데일의 관자놀이 위로 불룩한 핏줄이 솟아올랐다. 손가락을 빼낸 로난이 귀지를 아론데일 쪽으로 후 불며 말했다.
“알고 싶으면 직접 꺼내 가 봐.”
로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검신을 타고 붉은 빛무리가 넘실거리며 올라왔다. 뒷걸음질치던 아데샨이 등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벙쪄 있던 아론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아론데일이 별안간 머리에 얹고 있던 가면을 뒤집어썼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로난이 반격 자세를 취했다.
“뭐야?”
“하다못해 꼬맹이들에게 시비를 걸리다니. 아무리 위상이 추락했다지만···.”
하지만 아론데일은 공격해 오는 대신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화아악! 그가 벨트에 손을 얹는 순간이었다. 둥그런 버클로부터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체에 뒤덮인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이게 뭔···.”
로난은 본능적으로 입을 가렸지만 기체를 한 모금 들이마시고 말았다. 찰나 아찔한 졸음이 치밀어 올랐다. 로난은 그제야 동물들이 한 마리도 깨지 않고 잠들어 있던 이유를 눈치챘다. 밀렵꾼들이 자주 사용하는 수면가스였다.
“이런 더러운 새끼가···!”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이었다. 고개를 내저은 로난이 혀를 깨물었다. 송곳니가 혓바닥 깊숙이 파고듬과 동시에 졸음이 달아났다. 입안에 고여 있던 피를 뱉어낸 그가 아데샨을 돌아보며 외쳤다.
“젠장, 입 막아요!”
하지만 아데샨의 형체는 이미 연무 속에 삼켜진 뒤였다. 머지않아 연막이 가라앉으며 쓰러져 있는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아데샨.”
“어디 한눈을 파는 거냐.”
콰앙! 아론데일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거구에서 나오는 속도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간격에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빠르다.’
성벽이 돌진해오는 것 같았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로난이 아론데일을 겨냥했다. 어중간하게 맞섰다간 둘 다 죽을 터였다.
아론데일과의 간격이 열다섯 발자국 정도로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로난이 팔을 크게 휘두르며 검격을 뿌렸다. 콰아아! 초승달 형상의 검기가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검기라. 부질없는 잔재주군.”
아론데일은 목전까지 닥쳐온 검기를 보고도 멈추거나 피하지 않았다. 여지껏 무수히 많은 검객을 상대해 왔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낸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었다.
이까짓 애송이의 검기 따위에는 생채기도 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때 붉은 검기가 아론데일과 충돌했다.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커윽?!”
서걱! 검기는 그대로 아론데일의 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아론데일을 덮쳤다. 직격당한 어깻죽지에서 피가 울걱울걱 솟구치고 있었다.
예상 외의 충격에 돌진의 궤도가 틀어졌다. 콰앙! 아론데일의 어깨가 만티코어를 가둔 철창을 강타했다. 어지간한 나무보다 두꺼운 쇠창살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믿어지지 않는 예리함이었다. 목이나 머리에 맞았다면 그대로 즉사했을 터였다.
몸을 막 빼낸 그가 고개를 돌렸다. 로난의 얼굴이 눈앞에 드리워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라만차가 섬뜩한 적광(赤光)을 뿌리고 있었다.
“뒈져라!”
“뭣···!”
아론데일이 황급히 오러를 발현했다. 화륵! 코어에서 발현된 붉은 기운이 그의 몸을 뒤덮었다. 카가각! 동시에 수십 획의 참격이 아론데일의 전신을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