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07)
107. 백수제(7)
#107
사건은 깊은 새벽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텅 비어있던 소연회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었다.
네 명과 한 마리는 특급 모험 동아리의 부원들이었고, 나머지 아홉 명은 모두 백수제의 관계자였다. 정확히는 관계자 ‘였던’ 사람들.
“아으으으···으윽···.”
“우, 움직이지 마세요. 더 크게 다쳐요.”
아셀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수위의 갑옷을 입은 사내 세 명이 등을 맞댄 채 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을 움켜쥐고 있었다. 마르야가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코웃음을 쳤다.
“내버려 둬. 지들이 자초한 일인걸.”
“이 계집···거인족의 혼혈이라도 되는 거냐? 무슨 힘이···.”
“아저씨들이야말로 너무 약한 거 아냐? 어른이 그렇게 힘이 없으면 어떡해.”
마르야가 깔깔거렸다. 사내들의 갑옷은 거대한 순록에게 들이받힌 것처럼 우그러져 있었다. 마르야의 대검술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중격(重擊)은 단 두 합만에 사내들의 갈비뼈를 부숴 놓았다.
“갑자기 쪽지를 받았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로난 걔는 이런 걸 어떻게 안 거지?”
“나, 나도 잘 모르겠어.”
사내들은 모두 수위로 위장한 밀렵꾼이었다. 갑자기 바렌의 집무실이 있는 13번탑으로 가라는 쪽지를 받았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가 보니 정말로 이 두 명이 집무실의 문을 따던 중이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브라움이 언짢은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이 신성한 배움의 전당에 밀렵꾼이 침입하다니. 통탄할 일이군!”
“그래도···미리 알아서 다행이야.”
“뺘앗.”
옆에 서 있던 오필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시타 또한 동의하듯 날개를 파닥였다.
오필리아와 브라움, 시타는 따로 한 조가 되어 도플갱어를 훔치기 위해 대기하던 밀렵꾼들을 처리했다. 전원이 전투원이었던지라 제법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제압할 수 있었다. 오필리아의 발치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여인이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흐아아아···흡, 흡혈귀···.”
“쉿.”
오필리아가 검지를 입술 위에 올렸다. 여인의 목에는 작고 붉은 구멍 두 개가 나 있었다. 비록 그녀뿐만이 아니라도 오필리아 조가 데려온 밀렵꾼들은 어딘지 모르게 핼쑥해져 있었다. 여인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필리아가 브라움을 올려보며 말했다.
“나쁜 사람들이었잖아···그치?”
“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응···고마워. 배가 너무 고팠거든···.”
브라움은 고장난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땀이 그의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는 오필리아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사흘에 한 번씩은 온몸의 피를 빨리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이제 다 온건가? 로난 빼고.”
“아, 아직 한 명 남았어.”
“누구? 아~그 사람도 우리 부원이었지.”
아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별안간 소연회장의 문이 열리며 암청색 머리칼의 소년이 들어왔다. 슐리펜은 부스스한 몰골의 다른 부원들과는 달리 완벽한 교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넥타이까지 바짝 당겨 멘 꼴을 본 브라움이 헛웃음을 쳤다.
“하하, 역시 대단하군.”
“귀족다운···귀족이야.”
오필리아도 동의하듯 주억거렸다. 슐리펜의 오른손에는 정장을 입은 노인의 목덜미가 쥐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옷이 피로 물들어 있는 걸로 봐서 일처리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았다. 노인의 얼굴을 알아본 마르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할아버지는 꽤 유명한 사람인데?”
수배범의 명단을 뒤적이다 우연히 본 기억이 있었다. 밀렵은 물론 연쇄살인으로 상당한 악명을 떨치던 범죄자였다. 오러 각성의 경지에 올라 있어서 절대 학생이 잡을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성큼성큼 걸어온 슐리펜이 다른 밀렵꾼들 앞에 노인을 내던졌다. 아셀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 안 다쳤어···요? 피가···.”
“내 피가 아니다.”
무미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그의 몸에는 흠집 하나 나 있지 않았다. 찬찬히 소연회장을 둘러보던 슐리펜이 입을 열었다.
“모두 열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왜 아홉 명뿐이지.”
“그, 그게···한 명은 로난이···.”
“그렇군. 죽였나.”
슐리펜이 주억거렸다.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반응이었다. 주머니를 뒤적이던 아셀이 쪽지 한 장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으, 응···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밀렵꾼을 다 잡아들였을 무렵에 로난에게서 추가로 받은 쪽지였다. 마찬가지로 까마귀가 들고 온 쪽지에는 아론데일과의 결투와 오메가 도플갱어를 포획했다는 정보가 적혀 있었다.
아론데일이라는 이름을 들은 슐리펜이 눈썹을 으쓱였다. 설마 나머지 한 명이 그였을 줄이야.
가장 강한 놈이니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치라고 지령을 내린 주제에 자기가 잡은 꼴이 우스웠다. 슐리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너도 계속 올라가고 있군.”
“응···?”
“아니다. 나는 가겠다.”
용건을 마친 슐리펜이 막 발걸음을 돌리려는 차였다. 쾅! 별안간 이중문이 활짝 열리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소년 한 명이 들어왔다.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다들 모여 있었냐?”
“···로난?”
“오랜만이다. 재수 없는 놈아.”
느닷없이 나타난 로난의 모습에 부원들이 흠칫거렸다. 슐리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된 그는 웬 기다란 밧줄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소연회장을 둘러본 로난이 감탄을 흘렸다.
“하나 둘 셋 넷···오, 전부 잡았네?”
잡으라고 지시했던 밀렵꾼들이 모조리 포획되어 있었다. 한 명 정도는 놓칠 줄 알았는데 전부 다 잡을 줄은 몰랐다.
학교 밖에서 대기하던 운반조는 나비로제가 모두 쓸어 버렸으니 이제 필레온에 남아 있는 밀렵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낄낄거리던 로난이 부원들을 한 명씩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했어. 다친 사람은 없지?”
“으, 응. 아무도 없어. 혹시 로난, 그···오메가 도플갱어는?”
“아, 그거. 안 그래도 소개시켜 주려 했지. 그리고 오는 길에 예상외의 소득을 올렸거든.”
“예상 외의 소득···?”
“보면 알아. 자, 들어와라.”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로난이 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쿡쿡 잡아당겼다.
–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어.
– 나는 널 사랑해.
머지않아 문 뒤편에서 두 명의 사내가 소연회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밧줄에 꽁꽁 묶여 있는 사내들은 로난을 가운데 두고 양 옆에 섰다. 부원들의 눈이 튀어나올듯 커졌다.
“로, 로, 로난이 세 명···?!”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뺘잇?!”
마르야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로난에게 날아가던 시타가 공중에 멈춰섰다. 원본 로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쾌한 웃음만 흘렸다.
“어때, 비슷하냐?”
부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머지 두 사람의 얼굴은 로난과 똑 닮아 있었다. 총 세 명의 로난이 나란히 부원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두꺼운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있어서 자세한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틀림없는 로난이었다. 원본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가리개 채운 건 이해해라. 오메가가 바렌이랑 마주치는 바람에 드레이크로 변신했었거든. 그 사자는 뭐 그딴 괴물하고 척을 져서는···.”
로난과 바렌은 드레이크로 변신한 도플갱어를 잡느라 다시 진땀을 빼야 했다. 눈가리개는 도플갱어들이 행여나 다른 골치 아픈 존재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세 로난은 제각기 다른 생김새를 취하고 있었다. 왼쪽의 로난은 어른처럼 덩치가 거대한데다 제국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고, 발밑으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오른쪽의 로난은 지금의 로난과 똑같이 생겼으나 황태자나 입을 법한 멋들어진 제복을 입고 있었다. 아셀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 그새 알파까지 잡은 거야? 언제?”
“뭐, 그냥 어쩌다 보니. 오는 길에 있더라.”
“···알파랑 마주친 게 누구야?”
별안간 마르야가 도끼눈을 뜨며 로난을 째려봤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 부원들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윽고 로난이 입을 열었다.
“나.”
“뭐?”
“젠장, 나라고.”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든 아데샨을 업고 본관으로 복귀하는 도중 웬 북슬북슬한 강아지 한 마리와 마주쳤다. 귀를 쫑긋거리던 강아지는 갑자기 로난으로 변신했다. 문득 자괴감이 든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나는 아마도···나를 좋아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게 무슨···.”
사랑하는 사람 같은 건 없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 이딴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마르야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자, 이제 들어가라.”
로난은 오메가 도플갱어를 궤짝에 집어넣었다. 인간보다 몸이 훨씬 말랑말랑해서 수월하게 집어넣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알파 도플갱어를 집어넣으려던 차였다. 문득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랑하는 이로 변하는 생물이라니. 틀림없이 백수제 당일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하게 몰려서 구경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그래도 기왕 잡았는데 좀 놀아볼까? 어이, 제국의 샛별.”
“뭐지?”
슐리펜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로난이 알파 도플갱어의 눈가리개를 풀었다. 도플갱어와 슐리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알파 도플갱어의 몸이 부글거리며 백은발의 여인으로 모습을 변모했다. 밧줄로 묶인 이릴이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와아, 슐리펜 씨! 안녕하세요!
“이 무슨···!”
슐리펜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로난이 소연회장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이릴의 얼굴을 본 다른 부원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평정심을 완벽하게 잃은 슐리펜이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외쳤다.
“무례한···감히 이릴 양을 밧줄 따위에 묶지 마라!”
“지금 그게 중요하냐? 너 우리 누나 진짜 좋아하는구나. ”
“이놈!”
“네. 네. 그럼 다음은 우리 찌질이.”
로난은 도플갱어의 몸을 아셀 쪽으로 돌렸다. 눈을 깜빡이던 도플갱어가 다시금 거품처럼 끓어올랐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아셀이 비명을 터트렸다.
“아, 안돼에에에에!”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도플갱어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며 밧줄이 팽팽해졌다. 순식간에 마르야로 변신한 알파 도플갱어가 아셀을 보며 웃었다.
-귀염둥이! 누나랑 같이 살까?
“아, 안 돼···!”
다리에 힘이 풀린 아셀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르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가 아셀을 내려보며 말했다.
“귀, 귀염둥이 너···.”
“마, 마르야! 이건 그러니까, 이건···!”
“···나 좋아했어?”
습관적으로 아셀의 머리를 쓰다듬던 마르야가 손을 멈췄다. 아셀이 얼어붙었다. 언어기능을 상실한 그의 입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그게···우아···으아아아···.”
“아하하, 조금 당황스럽긴 하네···.”
마르야가 뺨을 긁적이며 웃음지었다.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감돌았다. 두 명의 마르야를 번갈아서 쳐다보던 아셀의 눈동자에 급격하게 눈물이 차올랐다.
“우으···으으으···으아아앙!!”
갑자기 몸을 일으킨 아셀이 소연회장을 뛰쳐나갔다. 서글픈 울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벙찐 채 서 있던 마르야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귀염둥이가···나를···.”
“네. 마르야 아가씨, 이쪽 보세요.”
허나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로난은 곧바로 도플갱어를 마르야 쪽으로 돌렸다. 초인적인 반응 속도로 얼굴을 가린 마르야가 빽 소리쳤다.
“하, 하지 마! 그거 나한테 보여주면 죽여버릴 거야!”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쪽 봐. 눈이 마주쳐야 변하더라고.”
“하지 말라고! 꺄아악!”
비명이 이어졌다. 로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르야는 끝내 도플갱어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소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로난은 브라움과 오필리아에게도 도플갱어를 보여주려 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창문을 통해 탈출한 뒤였다. 맥이 빠진 로난이 입맛을 다셨다.
“에이, 재미없게시리.”
슐리펜도 어느새 자리를 뜬지라 소연회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창밖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성이 뒤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말소리와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 철이 부딪히는 소리···사태를 수습한 사람들이 백수제를 준비하는 소리였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나저나···자신을 증오하면서 사랑하는 게 되나?’
로난이 증오하는 것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전생의 자기 자신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이로 변하는 알파 도플갱어가 자신으로 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턱을 매만지던 로난이 알파 도플갱어 앞에 섰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도플갱어의 형체가 일그러지며 변형이 시작되었다.
“음?”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윤곽이 조금 전과는 달랐다. 금색이었던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고, 고개를 살짝 들어야 할 정도로 키가 커졌다.
끝내 변형을 마친 도플갱어는 자신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 않았다. 사무칠 정도로 그리운 목소리가 소연회장에 떨어졌다.
-상병.
“···허.”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예상치도 못한 모습에 불현듯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소매로 눈가를 한 번 닦아낸 로난이 도플갱어를 올려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쪽을 존경하긴 했나 봐요.”
전야제는 끝났다. 검푸르던 하늘이 서서히 묽어지고 있었다. 백수제의 날이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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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일어났던 소란은 철저한 비밀로 부쳐졌다. 두 시간 정도를 잔 로난은 날이 밝기 무섭게 자로딘이 있는 41번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린 지 머지않아 잠옷 차림의 자로딘이 그를 맞이했다.
“로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다짜고짜 찾아와서 미안해요. 길 좀 열어줘요.”
“길···?”
“그 왜, 있잖아요. 세크리트 교수님 집무실이랑 이어진 통로요.”
방금 자다 깬 자로딘의 머리는 까치가 방금 신축한 가옥처럼 삐죽삐죽 솟구쳐 있었다. 그가 눈을 반쯤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아아···세파라치오 말이군. 모처럼 축제인데, 즐기지 않는 건가.”
“즐겨야죠. 이것만 처리하고요.”
“그렇게 하지···참 바쁘게 사는군.”
두 사람은 집무실 벽의 책장 앞으로 향했다. 자로딘이 책 몇 권을 빼고 주문을 외우자 책장이 물러서며 길이 나타났다.
“카쉬파, 루나지에, 델피림.”
“고마워요. 조금 이따가 봐요.”
짧은 감사인사를 남긴 로난이 통로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 한 명이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로난을 알아본 세크리트가 손을 흔들었다.
“오오, 로난. 오랜만에 보는군.”
“간만이에요, 세크리트.”
“그래, 무슨 일로 이 늙은이를 찾아왔나?”
세크리트는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을 겪는듯했다. 가만히 침묵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해주를 해야겠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