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10)
110. 피는 모래를 적시고(1)
#110
검수는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도론은 한참이 지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바쥬라의 귀퉁이 조각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구한 게냐?”
“그건 비밀. 어때, 좀 쓸만한가요?”
“쓸만하냐라···확실히 품고 있는 마나가 강대하긴 하더구나. 소재로서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건 부정하지 않으마.”
도론이 수염을 거칠게 주물럭거렸다. 그는 조각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악하다. 이토록 흉흉한 기운은 느껴본 적이 없어. 지옥에서 자라는 나무의 이파리라도 뜯어 온 것 같구나.”
“멋진 비유네요.”
“결론을 말하자면 무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할 수는 있단다. 허나 위험해. 마검이라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뭐야, 그래서 안 쓴다고요?”
“······그래.”
도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타의 알껍데기를 가져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염려가 묻어나는 목소리는 울적하게마저 느껴졌다.
‘날 걱정하고 있군. 그럴 만도 하지.’
로난은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그는 도론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쥬라의 위험성은 알껍데기와 차원이 달랐으니까. 설령 자아가 사라졌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검은 종잇조각에서는 지금도 반짝이는 마나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아셀처럼 얌전히 읽고 공부만 할 거라면 몰라도, 저걸 사용해서 살을 찢고 피를 묻히다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난은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이 늙은이를 뭐라 꼬드길지 고민하던 차였다. 도론의 입에서 나지막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끄흐으으음···.”
그 순간 로난은 도론이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걱정 어린 눈동자 뒤편에는 결코 억누를 수 없는 장인의 열망과 호기심이 타오르고 있었다.
‘영감쟁이. 솔직하지 못하기는.’
꼬드길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불현듯 로난이 그의 손에서 종이쪼가리를 채갔다. 탁! 난데없이 종이를 빼앗긴 도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좋아요 도론. 그만두자고요.”
“가, 갑자기 뭐 하는 짓이냐?”
“그냥 이거 안 쓰고 만들게요. 나라고 칼 한 번 잘못 잡았다가 병신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다짜고짜 가져가는게 어디 있느냐? 이리 내거라. 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다.”
“하···도론. 우리 정직해져 보는거 어때요?”
로난은 도론을 슬쩍 내려보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쥬라에 고정되어 있었다. 쪼그려 앉은 로난이 해쭉거리며 말했다.
“써보고 싶죠?”
도론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머뭇거리던 그가 종이를 채갔다.
“에잇, 그래 이놈아. 늙은이를 이겨 먹으니까 좋으냐?”
낄낄대던 로난이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거예요 도론. 휘두르는 놈의 말로 따위를 생각하는 건 대장장이가 아니죠.”
“말은 잘 하는구나. 그래, 이 흉물로 무슨 무기를 만들고 싶으냐. 검? 창?”
“종류는 전적으로 영감님에게 맡길게요. 나보다 훨씬 잘 아실 테니까. 대신 이것좀 봐봐요.”
“으음?”
스르릉! 별안간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동시에 마나의 동력원을 전환했다. 심장이 다른 박자로 맥박침과 동시에 하얀 빛무리가 검신을 타고 올라왔다.
“이건···!”
“지랄 맞게 밝죠. 뭐든 좋으니 이 힘을 잘 다룰 수 있는 무기면 좋겠어요.”
“말도 안 돼. 기존의 네 마나와는 완벽히 다른 힘이구나. 아까부터 풍기는 인상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싶었는데 이것 때문이었어.”
도론은 눈을 반짝이며 로난이 발현한 마나를 살폈다. 본능적인 기시감을 느낀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음···그런데 어째 아까 받은 종이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이 늙은이의 기분 탓인가?”
“지고의 대장장이다운 눈썰미네요.”
“도대체가···아니, 아니다. 우선 이 힘으로 뭘 할 수 있는지 보여다오. 디디칸!”
“어. 방패 말하는 거지?”
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대장간 구석으로 들어간 디디칸이 웬 방패 하나를 들고 나왔다.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시험용 방패.”
상체를 다 가릴 정도로 거대한 라운드 실드였다. 거울처럼 반질한 표면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로난과 마주 보고 선 디디칸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좋아. 이제 한번 쳐 봐.”
“진심이야?”
“그래. 능력만 좀 보려는 거야. 수수해 뵈도 영감이 제법 공을 들여 만든 물건이니까 걱정 말고 쳐 봐.”
깡! 깡! 디디칸이 자신있게 웃으며 방패를 두드렸다. 로난의 실력을 알고 있음에도 저러는 걸 보면 정말로 잘 만들어진 방패인 듯했다. 주억거린 로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기왕 할 거 제대로 보여줘야겠지. 성공하면 좋겠는데.’
두 번째 시도였다. 로난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슈아아아··· 주변의 대기가 미세하게 진동함과 동시에 코어가 마나의 형질을 바꾸는 것이 느껴졌다. 백색으로 반짝이던 마나가 금색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오오, 신기한데.”
디디칸이 휘파람을 불었다. 로난의 어깨를 따라 내려오던 금빛 잔상이 오른팔을 휘감았다. 난폭한 형태는 사자의 앞발을 꼭 닮아 있었다.
‘성공이군.’
참으로 간만의 성공이었다. 피부를 찢고 튀어나올 듯한 완력이 근육 깊숙한 곳에서 움트고 있었다. 아론데일을 아론과 데일로 쪼개 줬을 때와 동일한 감각이었다. 로난이 염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는게 어때. 바닥에 내려놓은 것만 때려도 능력 정도는 알 수 있잖아.”
“나는 머리가 나빠서 몸으로 느껴봐야 한다고. 그리고 좋은 무기를 만들기 위해 몸을 사리면 좋은 대장장이가 될 수 없지.”
“멋진데.”
로난이 픽 웃었다. 쿵! 별안간 그의 왼발이 바닥을 찍었다. 느닷없이 자라난 반짝이는 뿌리가 디디칸의 다리를 휘감았다.
“엉? 이건 또 뭐야?”
“내가 좀 거들어 줄게. 똑바로 들고 있어.”
“제기랄, 다리가 안 움직이잖아. 도대체 뭐야?”
당황한 디디칸이 몸부림쳤으나 뿌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뿌리는 그의 하체를 바닥에 고정시키며 방어 자세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 포기한 디디칸이 다시 방패를 들었다.
“이봐,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만차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로난의 팔은 금빛 궤적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검신이 방패에 닿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뒤쪽으로 날아간 디디칸의 몸이 대장간 벽에 처박혔다.
“커억!!”
“세상에, 디디칸!”
“꺅!”
도론과 아데샨이 비명을 질렀다. 키가 2m가 넘는 웨어울프가 공깃돌이라도 된 것처럼 날아갔다. 풀썩! 잠시 벽에 박혀 있던 디디칸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커흐···흐흐, 이거 굉장한데···!”
디디칸이 클클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바닥과 이어져 있던 뿌리는 속절없이 뜯겨나가 있었다. 생채기 하나 없이 깔끔하던 방패의 표면에는 아주 가늘고 깊은 선 하나가 남아 있었다. 다가간 로난이 손을 내밀었다.
“괜찮냐?”
“젠장, 괜찮고말고.”
로난의 팔을 휘감고 있던 오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디디칸은 로난의 손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땡그랑. 그 순간 방패를 가로지른 선의 아래 부분이 바닥에 떨어졌다.
“맙소사.”
깔끔하게 양단된 방패의 아랫면은 꼭 하늘에 떠오른 반달을 연상케 했다. 전대미문의 상황을 겪은 디디칸이 헛웃음을 쳤다.
“푸흐흐, 뭘 만들어줘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군. 우리 영감이 고생 좀 하겠어.”
“후···젠장. 역시 마나 소모가 너무 심해.”
심호흡하던 로난이 다시 동력원을 전환했다. 고갈된 두 번째 코어에서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직 검을 한 번 휘두를 만한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가 벙쪄 있는 도론을 내려보며 말했다.
“후, 어때요?”
“···마법이라도 쓴 게냐? 마나를 구분지은 걸로 모자라 각기 다른 두 개의 능력을 다루다니.”
“그러게요. 아무튼 이거 말고도 다른 능력을 더 얻을 수도 있는데, 일단은 이 두 가지가 전부네요. 영감님이 봐서 적당한 무기로 만들어 주세요. 어차피 돈은 그랑시아에서 낼거니까.”
그리 말한 로난이 금속패 한 장을 꺼냈다. 이전에 그란 카파도키아를 구한 보답으로 슐리펜의 아버지에게 받은 어음패였다. 그는 아직도 충격에 빠져 있는 아데샨을 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선배 것도 만들어주는 거 잊으시면 안 돼요.”
“그래···그렇지. 얘야. 잠깐 이리 와 보겠니?”
“아아, 넵!”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데샨이 도론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녀를 찬찬히 뜯어보던 도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느낌이 심상치가 않구나. 혹시나 해서 묻는데, 그림자의 마나를 다루느냐?”
“그, 그걸 어떻게···!”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지. 마지막으로 본 건 백이십 년 정도던가···희귀한 재능을 타고났구나.”
도론이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백 살 먹은 늙은이가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정말로 희귀한 재능인 듯 했다. 그는 한층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필히 범상치 않은 힘을 다루겠지. 그래, 네 능력은 무엇이느냐?”
“저, 저는···전투 계열은 아니고요.”
아데샨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문득 대장간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박쥐들에게 닿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속삭임이 새나왔다.
“이리 와.”
“끼이!”
그러자 천장에 거꾸로 늘어서 있던 박쥐들이 파닥이며 날아왔다. 대형을 갖춰 선회하던 박쥐들이 도론과 아데샨 사이에 일렬로 늘어섰다. 아데샨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생물을 조종할 수 있어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세상에. 혹시 사람에게도 사용이 가능하느냐?”
“아마도···그럴 거예요.”
“이건 정말 위험한 힘이군. 네가 마음씨가 착해 보여 다행이구나.”
도론이 짧게 탄식했다. 소름을 가라앉히려는 듯 양쪽 팔뚝을 쓰다듬던 그가 입을 열었다.
“좋아. 네 무기는 바로 감이 잡히는구나. 상대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면 역시 그 무기지.”
“끝난 거예요?”
“그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 인제 그만 돌아가 봐도 좋단다. 보름 정도면 완성될 거란다.”
“고마워요 영감님. 기대하고 있을게요.”
“나야말로 기대되는구나. 이번에는 도대체 어떤 괴물이 나올지···.”
도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그란 눈동자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반짝이고 있었다. 별안간 망치를 움켜잡은 그가 디디칸을 돌아보며 외쳤다.
“안 되겠군. 바로 작업을 시작해야겠다. 디디칸, 거들어라!”
“젠장, 성격도 급하지. 승강기까지만 바래다주고 올게.”
“잘 있어요 도론. 또 봐요.”
로난이 손을 흔들었다. 아데샨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디디칸이 영감쟁이가 귀가 먹었냐 채근했음에도 도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요란한 망치질 소리가 그의 인사를 대신했다. 깡! 깡! 두 사람은 디디칸의 안내를 받아 다시 들어왔던 승강기로 향했다. 막 올라타려는데, 갑자기 디디칸이 그들을 멈춰세웠다.
“참, 두 사람 한번 나란히 붙어 봐.”
“엉?”
“이번에 새로 개발한 발명품이 있거든. 아직 시중에 선보이지는 않았는데, 보여 주고 싶어서.”
그제야 로난은 디디칸의 왼손에 이상한 상자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눈치챘다. 가운데 짤막한 원기둥이 박혀 있었는데, 둥그런 면이 투명한 수정으로 막혀 있었다. 그 외에도 갖가지 잡다한 부속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어서 도무지 용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자, 여기 봐봐. 찍는다?”
“찍다니?”
펑! 별안간 상자가 섬광을 내뿜으며 사방이 환해졌다. 두 사람이 눈살을 찌푸렸다. 빛은 머지않아 가라앉았다. 로난이 짜증스레 물었다.
“젠장, 뭘 한 거야?”
“기다려 봐. 굉장한 걸 보여줄 테니까.”
디디칸이 껄껄 웃었다. 지이이잉···! 별안간 상자가 진동하더니 아래쪽에 난 홈에서 손바닥만한 종이가 한 장 나왔다.
“이건···?”
“우, 우리 모습 아냐?”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종이에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로난과 아데샨의 모습이었는데, 너무나도 현실에 가까워서 도무지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데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 이렇게 못생겼어?”
“안 못생겼어요. 넌 또 무슨 이상한 걸 만든 거냐?”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지. 이름은 아직 못 지었지만, 근사하지 않아?”
“썩 나쁘진 않네.”
로난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그는 정교한 그림을 구겨지지 않게 잘 펴서 안주머니에 넣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향했다.
“벌써 밤이네요.”
“응···땅속이라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몰랐네. 무슨 무기를 만들어 주실까?”
“그러게요. 나도 궁금하네.”
포목점을 나서는 순간 달빛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밤에 파묻혀 불야성을 이룬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로난과 아데샨은 디디칸이 준 그림을 보며 필레온으로 돌아갔다. 아데샨이 역시 못 나왔다며 투정을 부렸지만, 로난은 끝끝내 그림을 내어 주지 않았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방학식 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고작 열흘 남짓 되는 시간이라 그간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다들 의미 있는 방학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카데미를 떠난 외부에서도 자랑스러운 필레온 아카데미의 일원임을 잊지 않길 바라며···”
크라티르의 상투적인 훈화와 함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9주 동안 재학생들은 등교하지 않고 자택에서 휴식하거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한산하던 필레온의 부지는 귀향하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던 학생이 앞에 나타난 로난을 보며 소리쳤다.
“새, 새치기하지 마세요!”
“안그래도 심란한데 열받게 할래? 난 집에 안 가 인마.”
“네, 네에?”
“못 간다고 해야 맞으려나. 젠장.”
로난은 그대로 줄을 가로질러 동아리 건물로 향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순간 익숙한 면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셀, 마르야, 브라움, 오필리아, 슐리펜까지. 다섯 명의 부원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두런거리고 있었다.
“좋아. 다 모여 있군.”
부원들을 둘러본 로난이 만족스레 미소지었다. 쿵! 그는 문을 일부러 강하게 닫아 주의를 끌었다.
“주목.”
“아, 왔다.”
부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로난과 눈이 마주친 마르야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했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다 모아놓고.”
“별 건 아냐. 그냥 방학 중에 나랑 한 달 정도 여행 갈 사람을 정하려고. 딱 한 명만.”
“여, 여행? 한 달?”
“그래. 아주 길고···재밌는 여행이지.”
부원들의 눈이 커졌다. 로난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의미심장한 웃음은 다소 사악한 인상마저 풍겼다. 기시감을 느낀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히이익···!”
“무, 무슨 여행이길래 그래?”
“와하하! 내가 방학에는 고향에 내려가 봐야 한단 소리를 했던가? 사랑스러운 동생이 여섯 명이나 있다네!”
다른 부원들 역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난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정을 면밀히 고려하던 그가 부원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니가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