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17)
117. 피는 모래를 적시고(8)
#117
“그래, 끝내자.”
테라닐의 양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촤아악! 뜨거운 선혈이 절단면에서 솟구쳤다.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던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피했네?”
“허억···!”
테라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본능에 의거한 직감이 그의 목숨을 건졌다.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머리가 날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팔이 잘린 것도 결코 호사는 아니었다.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로, 왼팔은 어깨 바로 아래까지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뒤늦게 찾아온 격통이 전신을 내달렸다. 테라닐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감겨 있던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진득한 혈루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굴를 닦아내고 싶어도 팔이 없어 불가능했다. 호흡을 바로잡은 테라닐이 체내의 마나를 안구로 끌어모았다.
“흐으···흐어어억···!”
각막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시력을 되찾기 무섭게 자신의 목울대를 노리고 날아오는 칼날이 눈에 들어왔다.
“크윽!”
테라닐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후웅! 횡으로 날아든 라만차가 그의 정수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젠 또 보이냐?”
“무슨···무슨 수를 쓴 거냐!”
테라닐이 더듬거리며 외쳤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미미하게나마 돌아온 시력은 로난의 윤곽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지.”
“자, 잠깐!”
심드렁하게 대답한 로난이 칼을 휘둘렀다. 예리한 검격이 노도처럼 쏟아졌다. 쉬익! 이파리 한 장 차이로 귀가 날아가는 것을 면한 테라닐이 입술을 짓씹었다.
“빌어먹을···!”
팔이 잘려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테라닐은 아까보다 훨씬 위태롭게 공격을 피해야 했다. 미처 완전히 피하지 못한 참격들이 몸 곳곳에 크고 작은 상흔을 새기고 있었다.
‘불찰이다. 내가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공수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뒤쫓던 쥐에게 물어뜯기다 못해 불구가 된 꼴이었다. 테라닐이 이를 악물었다. 로난과의 전투를 즐기고 싶어서 임시로나마 시력을 회복시키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기척을 사라지게 하다니···!’
도저히 원리를 파악할 수 없었다. 지금도 로난의 마나는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침음을 흘리던 테라닐이 자세를 다잡았다.
‘불리해. 후퇴해야 한다.’
상처의 열감과는 별개로 머리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후회해 봐도 잘려나간 팔은 돌아오지 않는다.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빈틈을 노리던 테라닐이 숨을 모아 포효했다.
“떨어져라!”
권능이 발동했다. 반투명한 날개가 펼쳐지며 날개가 완전히 펼쳐지며 광풍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바람이 실내를 휩쓸었다. 테라닐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크으으으으···!”
“뭐, 뭐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로난은 날아가지 않았다. 그는 바닥 깊숙이 박아넣은 두 자루의 검을 움켜쥔 채 버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난데없이 불거진 마나의 뿌리가 로난의 몸을 휘감아 바닥과 고정시키고 있었다.
기분 나쁘게 생긴 뿌리는 끊어질 때마다 자라나는 것을 반복하며 로난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이윽고 바람이 가라앉았다. 테라닐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마···말도 안 돼!”
“세 번은 안 당하지.”
히죽 웃은 로난이 두 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테라닐이 서둘러 몸을 물렸으나 조금 늦고 말았다. 서걱! 그의 가슴팍 위로 붉은 선이 십자 형태로 그어졌다. 검흔을 따라 치솟은 피가 로난의 얼굴을 적셨다.
“커헉!”
테라닐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찰나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번 상처는 좋지 않았다. 살을 찢고 파고든 칼날이 내장까지 닿은 것이 느껴졌다.
“주, 주교님?!”
슐리펜과 겨루던 유리아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테라닐은 양팔이 잘린 채 각혈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파, 팔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유리아! 커윽, 후퇴입니다···! 스크롤을···!”
“너네 못 가.”
칼을 한 바퀴 돌려 잡은 로난이 검을 휘둘렀다. 정신을 집중한 테라닐이 기습적으로 지면을 박차며 도약했다. 콰아앙! 거칠게 터져 나온 충격파가 로난을 덮쳤다.
“으윽!”
직격이었다. 로난을 지탱하고 있던 뿌리가 단번에 뜯어졌다. 콰직! 다섯 바퀴를 구르며 나가떨어진 그는 기둥에 부딫히고 나서야 멈춰섰다.
“···빌어먹을.”
아무리 맞아봐도 적응이 안 되는 힘이었다. 침을 뱉자 검붉은 핏덩이가 튀어 나왔다.
사실 로난의 상태도 절대 좋지는 않았다. 충격파가 헤집어 놓은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막 승기를 잡기는 했지만 그전까지 받은 피해는 고스란히 체내에 축적되어 있었다.
“크으···서라···.”
하지만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후들거리며 몸을 일으킨 로난이 달리기 시작했다. 테라닐은 어느새 유리아가 친 별의 가호 범위 내로 들어가 있었다.
“흐···이리 나와라 개자식아! 니가 그러고도 주교냐!”
로난이 외쳤다. 검기가 닿기에는 먼 거리였다. 테라닐은 당연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유리아가 표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있는 대로 쏴붙여.”
“크르르르···.”
그러자 슐리펜에게 쇠붙이를 쏘고 있던 표범이 로난을 돌아보았다. 몸을 한껏 부풀린 표범의 입에서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동시에 표범의 신체 곳곳이 벌어지며 쇠붙이가 발사되었다. 카가강! 캉! 로난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불씨가 사납게 튀어올랐다.
“또 지랄을···.”
발사간격이 좁아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유리아는 막 귀환 스크롤을 꺼내들고 있었다. 그녀에게 기댄 테라닐이 로난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지금부터···허억, 우리의 표적이다. 뤼코포스가···헉, 너를 쫒을거야.”
“닥쳐···거기, 서라고···!”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답이 없었다. 검기가 닿기에는 멀었고, 슐리펜의 공격은 별의 가호를 뚫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쥬라의 코어 또한 기력을 다해가고 있었다.
“얌마···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로난은 슐리펜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교전을 일단락지은 그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맹공을 견뎌낸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왜 저래? 머리라도 맞았나?’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우웅! 그때 스크롤이 펼쳐지며 검푸른 포탈이 생성되었다. 입맛을 다신 유리아가 소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 아쉽게 됐네 도련님들. 조만간 꼭 죽여줄 테니까 그때 보자구.”
“이런···크으, 개 잡놈들이···!”
“조금만 참아요 주교님. 알리브리헤 님이 의수 하나는 또 기가 막히게 만들잖···”
-콰아아아아앙!!
유리아가 테라닐을 먼저 포탈로 안내하려는 차였다. 별안간 세상이 떠나갈 듯한 굉음이 뒤쪽에서 울려 퍼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가 몸을 움츠렸다.
“꺄아악?!”
동시에 강렬한 마나의 파동이 네 사람을 덮쳤다. 제멋대로 몸을 헤집고 들어오는 마나는 여지껏 경험한 어떤 기운과도 느낌이 달랐다.
“우욱!”
로난이 구역질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 포션을 동시에 목구멍으로 때려 붓는 감각이었다. 속이 뒤집히며 공기가 견딜 수 없이 쓰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사람도 마찬가지인듯했다. 강렬한 마나는 별의 가호를 꿰뚫고 유리아와 테라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으에! 으에엑!”
“커어억!”
두 사람은 포탈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오직 슐리펜만이 홀린 듯이 허공을 바라보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문득 몸의 변화를 느낀 로난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건···!’
서서히 호흡이 안정되고 있었다. 역함과는 별개로 마나가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고갈되다시피 했던 두 개의 동력원이 빠르게 맥박치고 있었다.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유적의 한복판에 떠 있던 마석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방대한 마나가 마석으로 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마나로 일그러지는 배경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싸움을 거듭할수록 미약해지던 천장의 조명도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밝아져 있었다. 그때 웬 여성의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보안 시스템 작동] [보안 시스템 작동]“보안 시스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인위적인 목소리였다. 생소한 단어를 들은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영문 모를 일이 연속적으로 벌어져서 도저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우으으으···어라?”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구토를 마친 유리아와 테라닐이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입가를 닦아낸 그녀가 감탄을 흘렸다.
“···왠지 힘이 솟는 거 같지 않아요? 그냥 다 죽이고 갈까?”
“아니, 유리아. 어서···.”
테라닐이 유리아를 채근했다. 그의 부상은 마나 따위로 회복될만한 것이 아니었다.
“네, 네.”
입을 삐죽 내민 유리아가 새로운 귀환 스크롤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기존의 포탈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로난을 돌아본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진짜 안녕.”
유리아가 막 스크롤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로난이 이미르를 움켜쥐었다. 두 개의 동력원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마지막 기회야.’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한번도 시도해본적은 없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별안간 로난의 팔을 타고 황금빛 기운이 올라왔다. 힘을 증폭시켜주는 바렌의 오러였다.
“후우우···.”
로난이 심호흡했다. 우웅! 유리아의 스크롤이 펼쳐지며 포탈이 나타났다. 검끝으로 테라닐을 겨냥한 로난이 팔을 휘둘렀다.
반짝이는 마나를 머금은 이미르가 하얀 꼬리를 끌며 쏘아졌다. 파아앙! 뒤늦은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테라닐이 막 포탈로 발을 들이는 차였다. 푹! 별의 가호를 찢으며 날아온 이미르가 그의 옆구리에 처박혔다.
“커억!”
“주, 주교님!”
테라닐은 날아차기라도 맞은 사람처럼 요란하게 쓰러졌다. 원체 강하게 쏘아진데다 단검의 무게가 육중한 탓이었다.
“아, 안 돼. 이럴, 이럴 수는 없다···!”
이미르의 검신은 손잡이까지 딱 붙어서 파고들어 있었다. 초인적인 집념으로 고개를 치켜든 테라닐이 포탈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로난이 오른발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쾅! 이미르가 있던 자리에서 뻗어나온 뿌리가 두 사람을 휘감았다.
“으익, 이게 뭐야?!”
유리아가 당혹스레 외쳤다. 팔다리를 휘적여 봐도 쉽사리 떨어지지가 않았다. 정체불명의 마나로 강화된 뿌리는 더욱 굵고 무성해져 있었다. 로난은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지.”
파아아- 별안간 테라닐의 옆구리에 박혀 있던 이미르가 빛을 뿜었다. 유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틀림없는 테라닐의 오러였다.
“이, 이건 주교님의···?”
미래를 예측한 테라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남은 마나를 전부 끌어모은 로난이 낮게 읊조렸다.
“못 간다고.”
“크악! 멈춰라!!”
모골이 송연해지는 절규가 울려 퍼졌다. 로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콰아아아앙!! 동시에 발현된 충격파가 테라닐의 몸 속에서 폭발했다.
“꺄아아악!”
갈가리 찢긴 몸뚱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뼛조각에 눈을 찔린 유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반짝이는 뿌리가 뜯겨 나가며 별의 가호가 해제되었다. 방사된 피와 내장이 차가운 금속 바닥 위에 붉은 꽃을 피웠다. 테라닐의 허리 위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너 따위가 감히 주교님을…!”
유리아가 악에 받힌 노성을 터트리며 채찍을 빼 들었다. 화르륵! 대화재를 연상케 하는 난폭한 마나가 그녀의 어깨 위로 솟구쳐 올랐다.
“제기랄.”
“니 머리는 내 책상 위에 장식해 줄게!”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저히 저딴 것을 상대할 기력은 남아 있지 않았다. 유리아가 막 도약하려는 찰나였다. 줄곧 허공을 응시하던 슐리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 쉭.
그는 유리아를 바라보며 검을 휘둘렀다. 사선으로 내려 베는 참격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예상과 달리 검기는 쏘아지지 않았다. 그 흔한 파공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차가운 바람 한 줄기가 유리아의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뭐야?”
뒤늦게 슐리펜의 존재를 눈치챈 유리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벌어지며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이 뒤집혔다.
“…어?”
툭. 유리아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목 없는 몸뚱이가 서서히 기울었다.
그것이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