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35)
135. 때 아닌 겨울(5)
#135
“···이 정신 나간 늙은이가.”
더럽게 넓다. 그것이 로난이 느낀 첫인상이었다. 새로운 동아리의 모습은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돌로 이루어진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천장과 벽도 굴곡 하나 없이 평평한 석재로 뒤덮여 있었다. 훈련장이라기보다는 이착륙을 위한 활주로 같았다.
방금까지 나비로제와 검을 겨루던 제 1 투기장을 다섯 개 정도 붙여 놓은 것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천장만 높다면 작은 드래곤이 살아도 될 것 같았다.
“당황스럽군.”
그리 중얼거린 로난이 허리춤의 이미르를 뽑아들었다. 캉! 마나를 실어 바닥을 찍어 보았지만 칼날은 옅은 생채기만 내고 튕겨 나왔다.
“하.”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넓고 튼튼했으면 좋겠다는 요구가 이리도 정직하게 받아들여질 줄은 몰랐다.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는 와중,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 내가 놀랄 거랬지!!”
로난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훈련장 한구석에서 마르야가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뒤편에는 원래 본거지로 사용하던 목조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저건 또 어떻게 옮긴 거야 시발.”
크라티르의 소행이 분명했다. 건물 앞에는 연회에 사용되는 기다란 식탁이 놓여 있었다. 맛있는 냄새는 그 위에 차려진 음식에서 풍겨 오고 있었다.
“허허, 70년이 넘는 교직 생활 동안 손꼽히게 극적인 장면이군요.”
“돌아왔나.”
“세상에. 로난 님.”
익숙한 면면들이 테이블 주변에 두런두런 모여 있었다. 동아리 부원 전원, 그리고 2년 전 로난을 배웅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로난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다가온 크라티르가 악수를 건넸다.
“로난 군. 오랜만일세.”
“교장님.”
“간만에 돌아왔는데 아카데미의 꼴이 말이 아니군. 면목이 없네.”
크라티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얼굴의 주름이 한결 깊어져 있었다. 눈그늘이 짙은 걸로 보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격무에 시달리는 듯했다.
틀림없이 겨울의 마녀 사태로 가장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인물일 터였다. 애써 피로감을 떨쳐낸 크라티르가 로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새 동아리는 좀 마음에 드나?”
“···이런 걸 학교 지하에 만들어도 되는 거예요?”
“허허, 겨울이 닥치기 전에 준공을 끝내서 다행이었지. 로난 군이 이룩한 공을 생각하면 두 개 정도 더 만들어 줄 수도 있다네.”
크라티르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피로가 묻어나기는 했지만 인자한 웃음소리였다.
그는 새로운 동아리의 장점과 특이 사항을 물 흐르듯 설명했다. 내구성과 완비된 훈련 시설, 그리고 곳곳에 존재하는 비밀 통로까지. 로난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그래 그래. 자네는 바로 3학년으로 복귀하면 된다네. 이미 조처는 마쳐 놨으니.”
“뭔가 많이 건너뛰었는데···시험 같은 거 안 봐도 돼요?”
“능청은. 이제 와서 그런 게 자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 남은 기간은 아주 바빠질 걸세. 그간 건너뛴 것들을 최대한 주워담아야 하니까.”
아셀이나 마르야를 선배라 부르지 않아도 되서 천만다행이었다. 졸지에 바로 상위 학년이 되었지만 향상된 능력을 생각하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알 속에 있던 시간을 아까워하는 새는 없으니. 회중시계를 한 번 살펴본 크라티르가 입맛을 다셨다.
“그럼, 얼굴도 보았으니 이 늙은이는 가봐야 할 것 같군···같이 못 어울려서 미안하네.”
아무래도 일이 또 있는 모양이었다.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꼴이었지만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작별 악수를 나누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금방 편하게 해 드릴게요.”
“허허···어째 불길하게 들리네만. 여튼, 즐거운 시간 보내시게.”
우웅! 공간이 뒤집히며 크라티르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던 로난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자로딘 교수님도 인사만 하고 가야 하나요?”
“식사할 시간 정도는 있다. 키가 많이 자랐군.”
“그쵸. 또 뭐가 달라졌게요?”
“코어가 생겼다고 자만하지 마라. 내가 알려 준 마나 연공법은 잊지 않았겠지?”
하여튼 마나 관련해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픽 웃은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다시 웨어 자벌레가 된 자로딘이 그곳에 서 있었다.
“···자로딘?”
음푹 파인 볼은 뒤집어서 술잔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은 부지깽이를 연상케 했다. 로난이 불안 섞인 목소리로 질문했다.
“제발 아내 때문에 그렇게 된 건 아니라고 해 줘요.”
“수냐는 아주 잘 있다. 얼마전에는 눈도 떴어.”
자로딘이 나지막한 미소를 흘렸다. 수냐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나아지고 있었다. 신이 나서 아내의 용태를 설명해 주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일이 많아서 그렇다.”
“다행이네요.”
“그렇지. 아내를 다시 잃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그 또한 겨울이 찾아온 이후 일이 몇 배는 늘었다고 설명했다. 겨울의 마녀를 조속히 처리하지 않으면 정말로 과로사할 인물이 여럿 보였다.
“그 괴물···아니, 나비로제는 좀 기운을 차렸나?”
“아,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한테서 가능성을 봤다나.”
“다행이군. 이제 그 꼴값을 안 봐도 돼서. 자이파도 자이파지만, 어찌나 네 걱정을 많이 하던지.”
그는 나비로제가 하루에 한 번 꼴로 로난의 안부를 물었다고 했다. 왜 안 깨어나느냐, 밥 같은 건 안 먹여도 되느냐, 깨어났는데 바보가 되어 있으면 어쩌냐 등등···.
자이파에게 패배한 이후로는 술 상대를 해 주느라 두 배로 곤욕을 치뤘다고 했다. 한숨을 푹 내쉰 자로딘이 로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장담컨데 가장 너를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일 거다. 잘 대해 줘라.”
“알겠어요. 하여튼 정이 많은 사람이라니까요.”
“그건 아니죠, 자로딘 교수님. 학생회장님이 계신데요.”
그때 웬 귀티 나는 아가씨가 불쑥 끼어들었다. 고양이처럼 치켜올라간 눈꼬리가 낯이 익었다. 검보랏빛 머리카락을 귀 뒤쪽으로 넘긴 그녀가 새침하게 말을 이었다.
“아데샨 언니는 거의 매일 편지를 썼어요. 가족이라도 그렇게 못 할걸요?”
“엄청난 정성이긴 하더군. 조교 노릇을 하는 동안 그 괴물을 닮지 않아 다행이다.”
“겨울의 마녀만 아니었어도 하루도 빠짐없이 쓸 수 있었을 텐데···.”
자로딘이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였다. 아데샨의 업적 아닌 업적을 나열하던 여인이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쥐었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르제베트?”
“아, 오랜만이에요. 로난 님.”
그제야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돌렸다. 오래간만에 보는 그녀는 완연한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몸가짐이나 말투 하나하나에서 귀티가 나는 것이 과연 아칼루시아 가문의 영애였다. 에르제베트의 얼굴을 살피던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상처는 뭐야?”
“앗, 한 번에 알아보시다니···.”
에르제베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목에는 붉은 얼룩 같은 것이 번져 있었다.
갖가지 방법으로 다쳐본 로난은 저것이 동상으로 인한 흉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쓴웃음을 지은 에르제베트가 흉터를 쓰다듬었다.
“마녀가 남긴 상처에요.”
“일부러 안 지우는 거야?”
“후후,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그녀는 작년 입학식 당시 겨울의 마녀에게 참패를 당했다. 아운 필라에게 직접 전수받은 화염 마법도 결국 마녀의 얼음을 녹이지 못했다.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보고 있어요. 나름 효과가 괜찮더라구요.”
“강하네.”
“이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는 치료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복수할 기회가 오면 좋겠지만 이제는 근처에 가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에르제베트가 입술을 짓씹었다. 겨울의 마녀가 껍질 안에 들어가 있는 이상 재도전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터였다.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너, 이번에 나랑 같이 가 볼래?”
“네? 같이 가다니요?”
“원래는 아셀이랑만 가려 했는데 한 명 정도는 더 데려가도 되겠지. 그러니까···.”
로난은 자신이 계획한 바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에르제베트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로난의 소매를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말했다.
“갈래요. 데려가 주세요. 네?”
“그래.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우리 동아리에 들어와.”
그리 말한 로난은 타협은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작에 눈독을 들이던 인재였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이미 로난 님네 동아리 부원인데요?”
“엥? 언제 들어왔어?”
“로난 님이 떠나고 얼마 안 지나서예요. 아데샨 언니가 매일같이 개인 지도를 해 주는데 너무너무 부러운 거 있죠. 그래서 홧김에 그냥···.”
에르제베트가 뺨을 긁적였다. 참 솔직한 가입 사유였다. 꽃가게 아가씨를 꼬시기 위해 매일같이 좋아하지도 않는 꽃을 사는 총각과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면야 뭐···.”
“후후, 약속한 거예요?”
거래는 어이없이 끝나 버렸다. 그때 동아리 건물에서 익숙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막 오븐에서 꺼낸 듯한 칠면조 한 마리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에리. 이것 좀 가져가 줄래?”
“선배?”
“아, 왔구나 로난.”
아데샨이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염력으로 칠면조를 테이블까지 옮긴 에르제베트가 콧소리를 내며 그녀에게 들러붙었다.
“세상에, 학생회 일도 힘든데 이런 무거운 걸 들면 어떡해요? 설마 요리도 직접 한 거예요?”
“에리는 너무 내 걱정을 많이 해. 좋아서 하는 일인걸.”
부원들은 건물을 분주히 오가며 음식과 음료를 나르고 있었다. 테이블에 차려진 요리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문득 허전함을 느낀 로난이 어깨를 으쓱였다.
“바렌이 안 보이네요?”
이상했다. 세크리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자리에 빠질 사람이 아닌데. 아데샨이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아, 안 그래도 미안하다 전해달라고 하셨어. 요즘 새로운 포션 개발로 엄청 바쁘시거든.”
“포션 개발?”
“응. 만년설화 진주의 보급형이라 해야 하나···누구나 마실 수 있는 추위 내성 포션을 만들고 계신다 하셨어.”
아데샨은 지금 제도에서 사자와 꿈새 공방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연구를 꾸준히 해나가던 바렌은 마르야의 카라벨 상단과 손을 잡아 대륙 전역에 자신의 특제 포션을 유통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군요. 출세했네.”
동아리 활동 내역에 감명받아 갈기를 쥐어뜯던게 엊그제 같은데, 참 사람 앞날은 모를 일이었다. 소매를 걷어붙인 로난이 주방으로 들어섰다.
“도울게요. 뭐 하면 돼요?”
“앗, 그냥 쉬고 있어. 오늘 깨어나서 피곤할 텐데.”
“2년이면 많이 놀았죠.”
로난이 픽 웃었다. 준비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환영회는 동이 틀 무렵이 되고서야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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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돌란에서 연락이 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대형견만해진 시타가 편지를 전달해 주었다. 로난은 아셀의 기숙사 방문을 따고 들어가서 그를 깨웠다.
“일어나라 아셀. 가자.”
“우으으으···어디를?”
침대에 파묻혀 있던 아셀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의 머리는 양쪽으로 묶여서 축 늘어져 있었다.
어젯밤에 결국 로난이 묶어 버린 것이었는데,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뻗어서 미처 풀지 못한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한테는 안 말해 줬던가.
“로돌란.”
“···응?”
아셀은 그대로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얼어붙어 버렸다. 로난은 5분 내로 준비하지 않으면 프릴 달린 드레스도 입혀 버리겠다는 협박을 남긴 채 방을 떠났다.
“2년 만의 동아리 활동이군.”
로난은 미리 작성한 동아리 활동 신청서를 바렌의 집무실 문틈새에 끼웠다. 더럽게 비싼 그리폰 비공정이 그들의 이동 수단이 되어 주었다.
나비로제가 뭐라 말했는지는 몰라도 인솔자는 딱히 필요 없었다. 엉덩이가 가로로 쪼개질 것 같은 고통을 몇 시간씩 견디자, 마침내 여명해의 지평선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암초인 비명의 요새 로돌란이었다.
“젠장, 죄수 호송 마차랑 다른게 뭐야.”
착륙은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끼익-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불어닥친 사나운 해풍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가장 먼저 내린 로난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뱉어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로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짠내 섞인 바람은 봄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겨울 마녀의 저주가 여명해까지는 미치지 않는 덕이었다. 뒤따라 내린 아셀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 로난···정말 이게 맞는 걸까? 지금이라도···.”
“인마, 너네 잘되라고 데려온 건데 그러면 안 되지. 마녀라는 악명 때문에 그렇지 엄연한 희대의 마법사인데, 어떤 마법적 영감을 받을 수도 있잖아.”
“맞아요 아셀 님. 마법과 수석다운 품위를 보여 주세요.”
마지막으로 내린 에르제베트가 주의를 주었다. 로돌란을 올려보는 아셀은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내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로난이 혀를 내둘렀다.
“사람 한 번 더럽게 많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부두 역할을 하는 암초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전부 겨울의 마녀 문제를 해결하러 온 이들일 터였다.
절벽 아래에는 그들이 타고 온 배가 나란히 정박되어 있었다. 작은 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거대한 유람선이나 군함이었는데, 개중에는 아예 선체끼리 묶어서 구조물처럼 만들어 놓은 것도 있었다.
이쯤 되면 여기가 감옥인지 관광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배를 본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누가 타는 배길래 저렇게 화려해?”
선체를 온통 붉게 물들인 범선 한 척이 파도를 깨부수며 접근하고 있었다. 마스트가 네 개나 달린 초대형 선박이었는데, 과장 안 보태고 로돌란의 죄수들을 모두 태우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들이 요새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차였다. 바닷바람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필레온에서 오신 분들, 이쪽입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제복을 입은 노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새 부리 가면이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었다.
“나비로제 님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마녀의 껍질을 벗길 수 있을지도 모르신다구요.”
“네. 확실한 건 해 봐야 알겠지만.”
아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로난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저희가 어디서 본 적이 있던가요?”
“2년 전에 봤어요. 심문관 카라카.”
“···아아! 그때의 그 소년이군요!”
카라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 그가 로난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랜 벗이라도 반기는 듯한 태도였다.
“너무 멋지게 자라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을의 아가씨들이 잠을 못 이루겠군요.”
“그러면 좋겠네요. 시릴라는 잘 지내요?”
“하하,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광신자 동료들이 워낙에 많이 들어와서 이전만큼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그래도 꾸준히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펴 주고 있죠. 귀를 완전히 자르고 재생시킨 것이 스무 번은 넘을 겁니다.”
그란 카파도키아에서 붙잡힌지도 벌써 2년이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고문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셀이 입을 틀어막았다. 카라카가 로돌란 요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들어가시죠. 겉옷이 없다면 안쪽에서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겉옷이요?”
“마녀 근처에 가면 확 추워지거든요. 따라오시죠.”
세 사람은 카라카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웅! 요새의 문을 열기 무섭게 살을 에는 찬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과 흐느낌이 바람에 골고루 뒤섞여 있었다.
“흐아아악! 하, 하지 마!”
“추, 추워···! 이제 제발 꺼내줘어어!”
“내 다리, 내 다리가···!”
황홀하지 않나요. 그리 중얼거린 카라카가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가면을 뒤집어썼다. 유쾌하던 분위기가 완전히 급변했다. 그가 일행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로돌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