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46)
147. 집중 수련(1)
#147
“대신 조건이 있다. 남은 한달간 너희끼리의 대련을 금한다.”
“엥? 왜요?”
예상치 못한 발언에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슐리펜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멈칫했다. 나비로제가 말했다.
“확실히 우열을 가려야 하니까. 너희 둘의 실력은 정말 비슷하다. 평소처럼 대련으로 훈련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봐라.”
“다르게요?”
“그래. 남은 한달간 상대를 확실히 찍어누를 수 있는 성장법을 강구해 보는 거다.”
“아하.”
그제야 나비로제의 말을 알아들은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이건 또 참신한 제안이었다. 목청을 가다듬은 그녀가 대놓고 뜻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력이 야망을 따라가지 못해 좌절한다. 너희처럼 축복받은 이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
“그건 교관님도 마찬가지잖아요.”
“시끄럽다. 나는 너희가 이번 기회로 평범한 이들의 절박함과 집념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불사하는···.”
나비로제가 입꼬리를 올렸다. 미소가 섬칫한 것이 꼭 흥미로운 실험체를 관찰하는 학자 같았다.
내가 댁의 원숭이인줄 아냐고 소리치며 바닥에 침을 뱉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곧 죽어도 슐리펜에게 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로난이 손을 들며 질문했다.
“그런데 저희가 정말 ‘무슨 짓이든’ 하면 어떡하죠? 갓난아기의 피를 마셔서 근력을 향상시킨다든가.”
“그럴 놈들이면 시키지도 않았다. 이미 내 손으로 죽였겠지. 선한 본성을 부끄럽게 여기지 마라.”
“윽···.”
로난의 얼굴이 붉어졌다. 불과 엊그제 자신이 에르제베트를 보며 했던 말이었다. 나비로제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강하다. 둘 다 기량은 충분해. 솔직히 말해서 거기 있는 어중떠중이들의 7할 정도는 너희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 자부한다.”
“그래도 공인된 자리인데 그렇게 등신들이 많아요?”
“그래. 하지만 얼간이들만 모여 있는 건 아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으니까. 남은 3할 중에는 너희를 찍어 누를 정도로 강한 검사가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비로제가 말꼬리를 끌었다. 시선을 돌린 채 입술을 짓씹던 그녀가 다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그 늙은 고양이를 밀어낼 차기 검성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름다운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 있었다. 역시 본인은 자이파를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아직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쉽게 치유될 상처가 아니지.’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검성은 둘중 한 명이 되어야 한다고. 잠시 침묵하던 나비로제가 입을 뗐다.
“그럼 해산해라. 너희는 남은 한 달간 수업에 나오지 않아도 좋다.”
공지는 끝났다. 로난과 슐리펜은 투기장을 떠나 교정으로 나섰다. 첨탑들 사이로 스며든 노을이 거리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슐리펜이 입을 열었다.
“너한테 질 생각은 없다.”
“누구는 그러냐.”
“부디 전력을 다해줬으면 한다 로난. 나도 그럴 테니까.”
앞을 보며 걷던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슐리펜은 이미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매사에 진지한 놈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한층 더 얼굴이 진지해 보였다. 부담스럽기도 하지. 로난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냐? 성검을 찾기라도 하려고?”
“성검을 찾아내는 것이 그랑시아의 숙원 중 하나기는 하다.”
“진짜였네···그 성검이라는게 도대체 뭔데 그래?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데, 진짜로 존재하기는 하는 거야?”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지. 그게 무슨 힘을 품고 있는지 모를 뿐이다.”
슐리펜은 성검이 존재한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었다. 이쯤 되면 뭐 하는 칼인지 슬슬 궁금해졌다.
아무나 쥐어도 별의 가호를 찢을 수 있는 검이면 좋을 텐데. 그러면 나 대신 이 새끼가 굴러도 문제 없고 말이지. 슐리펜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그것과는 무관하다.”
“그러면 왜 그러는데?”
“네게 지고 싶지 않다. 그게 전부다.”
“솔직하셔서 좋군.”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이게 이 자식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이미 높은 곳에 올랐을지언정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 암청빛 시선은 언제나 저 위를 향해 있다.
“그런데 어쩌냐, 필레온에서 손가락이나 빨게 될텐데.”
로난이 낄낄거렸다. 슐리펜은 대답하는 대신 옅게 웃었다. 중간 정도 지점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별안간 슐리펜이 방향을 틀었다.
“나는 볼일이 있어서 다른 길로 가 보지. 건투를 빌겠다.”
“한달동안 열심히 발버둥쳐 봐.”
슐리펜이 떠나갔다. 로난은 혼자서 기숙사와 이어진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길게 늘어난 그림자가 그와 발을 맞추었다.
“시발.”
태연한 척을 했지만 막상 혼자가 되니 이런저런 고민이 닥쳐왔다. 나비로제의 제안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해주로 인해 몸이 가벼워져서 그런지, 시간에 증오가 마모된 건지는 몰라도 예전에 비해 독기가 누그러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도 지금 저 자식은 나보다 강하겠지.’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지금의 슐리펜은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 수도 있었다. 아니, 강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해주로 종양 하나를 떨궈 내고 몸이 성장했다 할지언정 2년이라는 공백은 쉽사리 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요행을 바라는 유형도 아니고 말이지.’
저 재수 없는 천재가 2년 동안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 예측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도 분명 악착같이 훈련에 매진하겠지. 왜냐하면 저 새끼는 슐리펜이니까.
생각해 보면 이 승부는 슐리펜에게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랑시아 가의 장남이라 함은 원하는 모든 것이 손을 뻗으면 집히는 자리였다. 온갖 좋은 것을 처먹고 온갖 지원을 받으며 집중적인 단련을 할 터였다.
‘확실히 찍어 눌러야 해.’
반면 로난의 사정은 그토록 여유롭지는 못했다. 한 달이라는 기간 내에 슐리펜을 찍어 누를 정도의 발전을 거두려면 밥 먹고 똥 싸는 시간까지 아껴야 했다. 그가 찬찬히 계획을 짜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난.”
익숙한 미성이었다. 로난이 고개를 들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상공에서 잘생긴 청년 한 명이 석양을 등진 채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너는···.”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청년의 등에 솟아난 붉고 거대한 날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퍼덕이고 있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바람에 그의 백금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병신같지만 멋진 광경이었다. 거리를 오가던 학생들의 이목은 온통 청년에게 쏠려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마법인가?”
“신입생 중에 저런 애가 있던가···?”
“되게 잘생겼다.”
주변이 점차 소란스러워지고 있었으나 청년은 담담했다. 드래곤이라는 족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마를 짚은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내려와라.”
“내게 명령조로 말하지 마라.”
“빌어먹을···내려와 주겠어?”
고개를 끄덕인 청년이 로난의 앞에 착지했다. 날개가 접히며 몸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주 그냥 전교생을 다 불러모을 기세였다.
“이타르간드. 아카데미 안에서는 가급적 걸어 다녀. 용이라고 이마에 써 붙여 다닐 게 아니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젠장, 강해지고 싶다면 인간처럼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노력이야 상관없지만 네 정체가 까발려지면 배우는 데는 상당한 지장이 있을걸?”
이타르간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알려줘야 하는 것이 막막할 따름이었다. 참아야 한다. 심호흡한 로난이 말을 이었다.
“너는 드래곤이잖아. 반대로 생각해 봐. 내가 용으로 폴리모프 하고 너희 도시에 갔는데 인간인 걸 들키면 어떨 거 같냐?”
“그렇군. 알아들었다.”
다행히도 이타르간드는 머리가 좋았다. 그는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것을 들키면 학생들이 자신을 껄끄러워하거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것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이해했다. 이타르간드가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입학 수속을 처리하고 왔다. 이러면 정말로 강해질 수 있는 건가.”
“당연하지. 안 될 리가 없어.”
로난이 자신 있게 주억거렸다. 그는 이타르간드에게 필레온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을 종용했다. 강해지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크라티르는 기겁하긴 했지만 어찌어찌 그의 입학을 받아들였다. 로난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자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드래곤이 수업을 못 들을 이유가 있냐면서 그를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덕분에 이타르간드는 1년 동안 필레온 아카데미를 다니게 되었다. 개교 이래 첫 드래곤 신입생이었다.
“네 말처럼 이곳의 인간들은 제법 수준이 높더군. 다른 열등한 것들하고는 달라.”
“그야 대륙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너의 제안을 따라 보겠다. 찰나와도 같은 시간 동안 무엇을 일궈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이타르간드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에게 있어서 일 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며칠과 다를 바가 없을 터였다.
로난이 제시한 방법은 배우고 노력하라는 것이었다. 단순명쾌하다 못해 인간이 들으면 살인 충동마저 느낄 답변이었다.
하지만 노력과 학습은 기본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드래곤이라는 족속과는 꽤 드문 개념이었다. 어찌 보면 조금 전에 나비로제가 말했던 ‘축복받은 부류’와도 비슷했다.
육신의 재능은 이미 말할 필요 없이 훌륭했다. 레드 드래곤. 그것도 나바르도제의 직계 자손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로난은 이타르간드가 마음가짐만 제대로 갖춰도 다른 드래곤들보다 훨씬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좋다. 그럼 한 달 뒤에 보도록 하지.”
“한 달? 왜?”
“크라티르라는 작자가 교수진들과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야 하니 잠시 쉬고 오라더군. 마침 어머니에게 다녀와야 했는데 잘 된 일이지.”
이타르간드가 담담히 말했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차근차근 완성되던 훈련법의 마지막 조각을 발견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한 달 동안 시간이 남는다 이 말이지?”
“그래.”
이타르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난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래곤, 빠른 성장 속도, 슐리펜을 대신할 만한 대련 상대.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그들은 나란히 동아리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그날 이타르간드는 용의 도시 아드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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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상처투성이가 된 로난이 칼을 내지르며 외쳤다.
“더 빠르게!”
“크아아악!”
촤악! 로난의 검끝이 이타르간드의 가슴팍을 얕게 베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