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47)
148. 집중 수련(2)
#148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막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임에도 특급 모험 동아리의 훈련장은 열기로 타오르고 있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로난이 칼을 내지르며 외쳤다.
“더 빠르게!”
“크아아악!”
촤악! 로난의 검끝이 이타르간드의 가슴팍을 얕게 베며 지나갔다. 붉은 피가 상처를 따라 솟구쳤다.
그의 몸 또한 로난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격노한 이타르간드의 동공이 세로로 좁혀졌다.
“이 망할 인간이!”
“헉···육탄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단이야···허억, 상대가 뭘 할지 예측하고 행동해.”
“죽어라!”
이타르간드가 로난을 겨냥하며 팔을 뻗었다. 손목에 휘감긴 팔찌가 찰랑거렸다. 그의 손 앞에 마법진이 그려지며 주홍색 화염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쿠아아아! 주홍색 급류가 로난의 형체를 집어삼켰다. 선글라스를 끼고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던 아데샨이 손을 모아 입가에 가져다댔다.
“이타르간드. 분노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해. 아직 동작에 빈틈이 많아!”
“닥쳐라, 계집. 내게 참견하지 마라!”
이타르간드가 윽박질렀다. 그의 입가로 불티가 흩날렸다. 그때 쏟아지던 화염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타르간드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젠장···! 당하지 않았나.”
“이 새끼야. 내가 저 사람한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저 앞에서 로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타르간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불길을 가르며 날아온 초승달 형상의 검기는 어느새 자신의 눈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크윽!”
주먹을 쥐어 마법을 중단한 이타르간드가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그는 저 검기를 방어막으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촤아악! 검기는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동시에 이타르간드의 등에서 날개가 펼쳐졌다. 육탄전에서는 승산이 거의 없었다. 그가 막 날아오르려는 찰나였다.
“걸렸다.”
쿵! 앞에서 달려오던 로난이 오른발로 땅을 찍었다. 이타르간드의 발아래가 환하게 빛났다.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가 시선을 내렸다.
“빌어먹을, 뭐냐?”
반짝거리는 뿌리가 그의 다리를 단단히 휘감고 있었다. 세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 하얗게 빛나는 단검이 박혀 있었다. 오러를 복사할 수 있는 단검 이미르였다. 이타르간드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아까웠어. 날았으면 또 몰랐을 텐데.”
바로 앞에서 로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타르간드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로난은 이미 한 걸음 간격까지 접근해 있었다. 라만차의 칼날이 그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우웅! 이타르간드의 형체가 일그러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째 날이 갈수록 세지는구만.”
승리를 확인한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팔에도 새카만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치명상을 감지하여 사용자를 이동시키는, 해주 전에 부원들과 훈련할 때도 요긴하게 썼던 공간 계열 마도구였다. 로난이 아데샨을 돌아보며 말했다.
“후···이걸로 전적이 어떻게 돼요?”
“152전 133승이야. 갈수록 이타르간드의 승률이 늘어나고 있어.”
“드래곤은 드래곤이네요.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로난이 픽 웃었다. 숨을 고르던 그가 웃옷을 벗어 던졌다. 한 시간 동안 쌈박질만 해댔더니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데샨이 헛숨을 들이켰다.
“로, 로난···.”
“후우···덥다. 왜 그래요 선배?”
“···아냐. 몸이 많이 좋아졌네.”
아데샨은 고개를 돌린 채 로난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저 정도면 무시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훈련 기간 단련된 육체는 거장이 깎아낸 조각상을 연상케 했다.
원래도 넓던 어깨는 목과 직각으로 벌어져 있었고, 눈에 띄게 굵어진 팔뚝에는 핏줄이 입체적으로 솟아나 있었다. 이 정도면 징벌병으로 구르던 시절과 비슷해진 건가?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좋아졌어. 확실히 괜찮은 거 같아. 네 훈련법.”
“선배랑 저 용 덕분이죠. 이번에는 지적할 거 없었어요?”
로난이 질문했다. 잠시 침음을 흘리던 아데샨이 입을 열었다.
“음···어지간한 기본기랑 기교는 이미 궤도에 올라서. 그 새로 알아냈다는 검법만 조금 신경쓰면 될 것 같아. 다섯 번째 찌르기를 할 때 왼쪽 어깨에 힘을 조금만 빼 볼래?”
“아하. 이렇게요?”
로난은 곧바로 구원자의 검법 2초식을 시전했다. 혜성 같은 찌르기 일곱 발이 허공을 관통한 뒤 검집으로 돌아왔다. 파앙! 뒤늦은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아까보다 움직임이 훨씬 부드러워진 것을 느낀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선배는 천재에요. 이걸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거지.”
“후후, 그냥 남들보다 눈이 조금 좋을 뿐이야.”
아데샨이 눈웃음쳤다. 코치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승낙한 그녀는 매일 새벽마다 로난과 이타르간드를 봐 주고 있었다.
학생회장 일이 바빠서 예전처럼 착 붙어 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차고 넘치게 도움이 되었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친 그녀가 물병 하나를 로난에게 내밀었다.
“참, 이거 마셔야지.”
“아···젠장. 안 마시면 안 되겠죠?”
“응. 꾸준히 마셔야 효과가 나온다고 했잖아.”
병에 든 액체는 물이 아니었다. 아데샨의 굳게 다물린 입술을 보니 타협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어째 몸에 좋은 차라며 들이밀던 누나를 연상케 했다.
“으···.”
마지못해 병을 받아든 로난이 그 안에 든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약간 쓴맛이 나는 액체는 식도를 넘기기 무섭게 형체 없는 에너지로 변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기력이 빠르게 차오르며 몸 곳곳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봄을 되찾아준 보상으로 춤추는 노새 공방에서 받은 포션이었다.
“으, 써.”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은데? 체내에 흐르는 마나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어.”
“이렇게 맛대가리가 없는데 당연히 효과가 있어야죠.”
그때 성난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로난과 아데샨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쾅! 동아리 건물의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젠장!”
부활 지점으로 설정해 놓은 장소였다. 상처투성이의 이타르간드가 씩씩거리며 걸어 나왔다. 두리번거리던 그가 로난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 사기꾼아! 이번에는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사기꾼이라니 말이 심하네. 주어진 도구를 활용하여 허를 찌르는 건 엄연한 인간의 전략이거늘.”
“이번에는 네놈의 그 비열한 술수를 단번에 파훼해 주마. 덤벼라!”
“오늘은 이쯤 하자. 슬슬 수업도 들으러 가야 해서.”
“···빌어먹을!”
수업이라는 말을 들은 이타르간드가 마지못해 물러났다. 로난이 수업은 어떤 일이 있어도 침범받아서는 안 되는 신성한 시간이라 세뇌를 해 둔 덕이었다.
로난이 마신 것과 같은 포션을 단번에 들이킨 그가 훈련장을 벗어났다. 쾅! 쾅! 쾅!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뒷모습을 바라보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저래놓고 오늘 저녁에도 올 거예요.”
“응.”
안 봐도 뻔했다. 아데샨도 이제 익숙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호승심이야말로 이타르간드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었다.
로난의 특훈 방식은 간단했다. 많이 싸운다. 좋은 걸 많이 먹는다. 올바른 자세를 잡는다.
먹을 건 마녀를 물리치며 받은 보상으로 충분했다. 상단이나 연금술 업계에서 온 선물 중에는 값비싼 포션이나 비약이 수두룩했다.
로난은 각고의 노력 끝에 그것들의 양을 절반 정도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약초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왔다.
올바른 자세를 잡아주는 것은 전적으로 아데샨의 도움이 컸다. 그녀는 2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해진 감각으로 로난을 보조해 주었다.
대련 상대는 부원들과 이타르간드가 번갈아 가면서 담당해 주었다. 다들 실력이 굉장히 늘어서 대련할 때마다 배우는 것이 있었다.
특히 아셀은 정말로 강해져서 이제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패배할 수준까지 도달했다. 겨울 마녀의 가르침을 잘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드래곤이 최고야.’
하지만 최고의 대련 상대는 역시 이타르간드였다. 기본적으로 튼튼했고,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배우는 것이 좆나게 빨랐다.
“그 새끼. 벌써 소드 익스퍼트 등급은 넘었죠?”
“응. 칼자루를 처음 쥔 날에 검기를 쐈으니.”
로난이 히죽 웃었다. 한달 전, 노을 지는 거리에서 이타르간드를 꼬신 것은 정말로 훌륭한 선택이었다.
육탄전, 마법, 검··· 이 오만한 레드 드래곤은 가르치는 족족 지식을 흡수하며 슐리펜에 버금가는 로난의 라이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적당히 어린 드래곤이라 수준이 맞는 것도 장점이었다. 만약 성체 레드 드래곤이었다면 훈련이고 지랄이고 잿더미가 되어서 봄바람에 실려 날아갔을 터였다.
로난은 드래곤의 강인함을, 이타르간드는 인간의 싸움법을 배우고 있었으니 여러모로 양쪽이 이득이었다. 문득 슐리펜의 얼굴을 떠올린 로난이 입을 뗐다.
“그 자식은 잘 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랑시아의 소공작이니까.”
“우리 집에도 안 왔었죠?”
“응. 내가 알기로는 그래.”
“얼마나 대단한 훈련을 하길래 얼굴도 안 비춰.”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그는 지난 한달간 슐리펜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수소문을 해봐도 크라티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필레온을 떠났다는 소문만이 어렴풋이 들려올 뿐이었다.
“걱정되면서도 기대되네. 벌써 내일이니까.”
“아, 벌써 그렇게 됐네요.”
로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도 바쁘게 살다 보니 내일이 결판의 날인 것도 잊고 있었다. 아데샨이 말했다.
“오늘은 푹 쉬는 거 어때? 훈련도 좋지만 전날만큼은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게 좋아.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잖아.”
“으음···역시 그렇겠죠?”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하긴 전날에 무리했다가 병이라도 나면 그만큼 억울한 것도 없지. 다시 웃옷을 입은 그가 아데샨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이길 것 같아요?”
“모르겠어.”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 맞춰 봐요. 이런 거 잘하잖아요.”
“진짜로 모르겠어. 두 사람 다 시대에 획을 그을 천재니까. 그런데···.”
별안간 아데샨이 몸을 돌렸다. 손을 뻗은 그녀가 로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건 제법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로난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아데샨이 입을 뗐다.
“나는, 네가 이겼으면 좋겠어.”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문이 막혀서 못했다는 쪽이 옳을 터였다. 문득 아데샨의 얼굴이 사과처럼 달아올랐다. 막상 뱉어 놓고 나니 굉장히 부끄러운 짓을 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그럼 고생해. 나는 가볼게···!”
그녀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로난이 헛웃음쳤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이타르간드와 격하게 치고받고 싸워서만은 아닌 것 같았다.
“···허.”
그는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 있다가 기숙사로 복귀했다. 마지막 날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드디어 내일이었다. 솔직히 검의 제전인지 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해주한 뒤 처음으로 붙는 거군. 망할 자식.’
그 잡놈이 말한 것처럼 죽어도 지고 싶지 않다는 감정만이 남아 빠르게 맥박치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로난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다려라. 이 재수 없는 놈아.”
가슴이 두근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로난은 검을 방향별로 천 번씩 더 휘두르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피로가 그를 깊은 수마로 이끌었다.
네뷸라 클라지에를 전담하던 조직인 여명 부대의 절반이 궤멸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