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56)
157. 성지를 향해(4)
#157
“아마 신참 사냥꾼일 거다. 검의 제전의 참가자를 걸러내는 체 중 하나지.”
나비로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는 ‘옆집 개가 오늘은 큰 뼈다귀를 먹더라.’ 정도의 감정밖에 실려 있지 않았다. 로난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법 자주 있는 일인가 보죠?”
“그렇지. 나름의 자정 작용이니 그냥 내버려 둬라. 보통은 물건만 빼앗고 끝내지 죽이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정 도와주고 싶다면 가도 상관은 없다만.”
로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로서도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는 멍청이들을 도와줄 의사는 없었다. 약하면 털릴 정도의 각오는 하고 왔어야지. 그때 재차 비명이 울려 퍼졌다.
“흐어엉, 제발 검만큼은 뺏어가지 마세요! 전 재산을 털어서 산 거란 말이에요!”
“아니에요, 다 드릴 테니까 목숨만 살려 주세요! 흐억! 증조 할아버지가 물려 주신 방패가!!”
전부 같은 놈이 내지르는 소리였다. 어찌나 목청이 큰지 뺏는 놈들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평균적인 톤이 높은 걸 보니 아직 애새끼 같았다. 비명이 들려올 때마다 로난의 눈가가 움찔움찔 떨려왔다. 나비로제가 검지로 그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지 말고 그냥 다녀오는 게 어떠냐.”
“됐어요. 얼른 돌아가요.”
로난이 나비로제의 손을 떼어 냈다. 그는 최대한 매정해 보이려고 노력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막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따흐악! 그, 그건 아버지의 유품인데···! 안돼요오!”
“씨발.”
로난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개새끼. 거 목청 한번 크네.
“전에도 말했지 않느냐. 선한 본성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시끄러워요.”
“나는 먼저 돌아가 있으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와라.”
나비로제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그녀가 인사하듯 팔을 들어 보였다.
“오늘 고마웠다. 그래도 말하니까 한결 낫구나.”
“됐어요.”
“고마운 거랑 별개로 이건 압수다. 아직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비로제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손때 탄 담뱃대가 끼워져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모습이 나무 너머로 사라졌다. 뺨을 매만지던 로난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부디 회복하면 좋으련만.’
겨우 이런 걸로 상처가 나을 리는 없을 터였다. 화살이 빠져도 구멍이 남는다는 말마따나 그녀의 뱀은 여전히 죽은 채일 것이다.
로난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뱀은 생명력이 질긴 동물이니까. 날이 따뜻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어나서 독니를 드러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
로난은 괜스레 울적해진 마음을 다잡은 뒤 고개를 돌렸다. 그 이후로 비명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가 정신을 집중했다. 시각과 청각을 비롯한 감각이 서서히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지 않아.’
기껏해야 수백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방향을 잡은 로난이 호수를 등지고 달려 나갔다. 팡! 마나로 강화된 다리가 땅을 찍자 흙과 낙엽이 거칠게 튀어올랐다.
‘어떤 새낀지 얼굴 좀 보자.’
괜히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든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무와 산새의 울음소리가 빠르게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머지않아 나무 사이에서 아롱이는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한발 늦었나?’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현장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야영 도구로 보이는 장비와 잡동사니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모닥불 속의 장작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보니 불을 피우자마자 습격을 당한 듯했다.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챙길 건 전부 챙겼지?”
“그래.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어.”
“퉷, 처맞으니까 좀 조용해지는군.”
로난이 시선을 돌렸다. 모닥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세 명의 거한이 석상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장대한 기골과 결이 잡힌 코어로 미루어 보아 보아 단순한 산적은 아닌 듯했다.
‘신참 사냥꾼.’
그들은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흉기를 들고 있었다. 두 명은 양손망치에 한 명은 대검이었는데, 무기도 흔한 양산품이 아닌 제법 쓸만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아으···아···.”
거한들 사이에는 웬 허약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로난의 예상대로 아직 수염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애새끼였다.
퉁퉁 부은 얼굴과 걸레짝이 되어 버린 옷을 보아하니 이미 신나게 두들겨 맞은 듯했다. 부러진 코에서 흘러나온 피가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바들 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거한들에게 호소했다.
“끄윽···제,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러세요···? 제발 그만···.”
“뭘 잘못했냐고? 너 같은 놈도 참가자랍시고 설치니까 우리까지 욕을 먹는 거 아냐.”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고 집에 가라. 네 물건은 우리가 잘 써줄 테니까.”
대검을 든 덩치가 발을 들어 올렸다. 잠시 허공에 머무르던 발은 그대로 소년의 앞에 놓여 있던 샌드위치 위로 떨어졌다. 콰작! 빵이 으깨지며 양념과 채소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년이 쩌렁쩌렁한 비명을 토해냈다.
“끄아아아악! 그, 그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건데!”
다시 새들이 날아올랐다. 진짜 더럽게 큰 목소리였다. 저 정도면 마르야나 브라움도 한 수 접고 들어갈 것 같은데.
“아우, 시끄러워. 큰형. 그냥 이거 죽여 버릴까?”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망치를 든 두 놈이 질렸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어째 셋이 비슷하게 못생겼나 싶더니 형제인 모양이었다. 대검의 칼자루를 매만지던 나머지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첫 살생이군.”
“아, 안 돼! 살려줘!”
“그 우렁찬 목청을 원망하면서 죽어라!”
대검을 들어올린 거한이 수직으로 검을 내리 벴다. 소년이 양팔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터트렸다. 거대한 칼날이 그의 정수리를 쪼개 버리려는 찰나였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대검이 멈췄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 소년이 천천히 눈을 떴다.
“히윽···히에엑···! 다, 당신은···?”
“형제가 사이좋게 도적질이나 하고, 잘 하는 짓이다.”
못 보던 거한이 그를 등지고 서 있었다. 억센 손에는 잠자리의 날개처럼 얇은 검이 쥐어져 있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바스라질 것 같은 검은 우악스러운 대검과 맞닿은 채 비적이고 있었다. 느닷없는 불청객의 등장에 대검을 든 사내가 눈을 부라렸다.
“너는 뭐야?”
“그건 댁이 알 바가 아냐. 그나저나 뭐 하나만 물어보자.”
거한이 위협하듯 으르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난이 말을 이었다.
“첫 살생이라는 말이 진짜냐? 그러면 팔 하나씩 내놓고 가는 걸로 봐 줄 의향이 있어.”
“이거 완전히 미친 놈 아냐.”
거한이 코웃음쳤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로난이 들고 있는 라만차에 향해 있었다. 시커먼 검신은 단순히 검격을 막아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대검 속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엄청난 명검이었다. 게다가 눈앞의 애송이는 한 팔로 자신의 검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꼼짝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거야?’
거한의 관자놀이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재빠르게 형제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듯했다. 심호흡한 거한이 로난을 보며 웃었다.
“이봐. 알만한 친구 같은데 이쯤에서 그만하지. 우리같은 신참 사냥꾼이 저런 어중떠중이를 걸러 주기 때문에 검의 제전이 그나마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갑자기 점잖아졌네. 왜, 주제를 파악하니까 불알이 쪼그라드셨나?”
“그렇다기보다는 쓸데없는 피를 보지 말자는 거지. 내 말은···흐야아압!!”
한순간이었다. 말을 잇던 거한이 갑자기 포효를 내질렀다. 라만차에서 떼어내진 대검이 로난을 향해 날아들었다.
“츠얍!”
“건방진 새끼, 죽어라!”
동시에 눈치를 보던 나머지 두 덩치도 달려들었다. 마나를 머금은 검신과 망치 머리가 푸르스름한 호를 그리며 날아왔다. 로난이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자존심이 참 무서운 거야···.”
찰나 라만차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쉬리릭! 휘파람을 부는 듯한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덩치들의 양쪽 팔뚝 위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신나게 참격을 그은 라만차가 제자리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촤아아악! 여섯 개의 팔이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쳤다. 거한들의 눈이 커졌다.
“아?”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곧바로 파악하지 못했다. 어깨 아래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후두둑. 허공에서 몇 바퀴를 회전하던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깔끔한 절단면에서는 피가 울걱울걱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직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팔들은 여전히 무기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이상하다. 저 문신은 내가 제도까지 가서 새긴 거였는데.
“내 팔.”
대검을 들고 있던 사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불현듯 지지는 듯한 통증이 세 사람을 덮쳤다.
“흐, 흐아아아악!”
거한들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누가 형제 아니랄까봐 비명을 지르는 타이밍도 거의 일치했다.
한참이나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던 거한들이 숲 속으로 달아났다. 소년에게서 빼앗은 물건은 물론 본인들의 짐도 모두 내던진 채.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병신들아. 그러니까 한 짝으로 끝낼 수도 있었잖아.”
피로 이루어진 길 여섯 개가 그들이 도망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래도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놈들이니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평생 검을 휘두르지는 못할 터였다.
납도한 로난이 소년을 돌아보았다. 그는 도적들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멍하니 로난을 올려보고 있었다.
“어이.”
“···핫!”
로난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년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로난의 손을 움켜잡은 그가 울먹이며 말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됐어. 몇 살이냐?”
“오, 올해로 열다섯이 됩니다!”
“아직 거시기에 털도 안 난 애새끼가 여긴 왜 왔냐? 그렇게 뒈지고 싶어?”
로난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손을 피로 더럽힌 것보다는 소년의 무모함에 화가 났다.
살고 싶어 했음에도 죽은 놈들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걸까. 목숨이 두 개인양 행동하는 부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겁먹은 듯 어깨를 움츠린 소년이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무슨 일이 있어도 파르잔까지 가야 했거든요.”
“그러니까 왜. 너도 성검인지 뭔지를 찾으려고 온 거냐?”
“아, 아뇨! 그건 바라지도 않아요. 저는 그냥···제전에 참가하는 사람 중 한 명에게 물건을 전해 주려고 왔어요.”
“물건을 전해 준다고?”
예상치 못한 용건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소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머리가 아래위로 팔락거릴 때마다 핏방울이 튀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세상에 어떤 멍청이가 그딴 이유로 파르잔까지 와?”
“거, 거짓말이 아니에요. 평소에 행방을 종잡을 수 없는 분이라···보세요!”
별안간 소년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보따리 하나를 집어들었다. 분명 도적들이 챙겼던 물건이었다.
거의 소년의 키만큼 두껍고 기다란 보따리였는데, 저걸 들고 여기까지 온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냐?”
“제가 전달해 드려야 할 물건이에요.”
소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두꺼운 천이 걷히자 고급스러운 상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의 겉을 쓰다듬던 소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빼앗기지 않아서 다행이에요···정말로···.”
목소리에 다시 물기가 묻어나는 걸로 보아 정말로 중요한 물건인 듯했다. 소년이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파아아-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비단으로 마감 처리가 된 상자 안쪽에는 하얀 빛을 뿜는 롱소드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건···.”
로난이 흥미로운 듯 눈썹을 으쓱였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정말로 좋은 검이었다. 당장 도론이 만들었다 해도 믿을 만한 품질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소리를 빽빽 질러댈 만 하네. 그래서 이걸 누구한테 주려고?”
로난이 질문했다. 검을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검성 자이파 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