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67)
168. 검의 제전(11)
#168
“너희가 좀 식혀 줘야겠다.”
몬스터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었다.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그는 검신에 마나를 모으면서 몬스터들이 사거리 내로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아직 미숙한 코어가 폭발할 기세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최대한 크게.’
어느 싸움이 안 그렇겠냐만은, 일대 다수의 전투에서는 특히나 기선 제압이 중요했다. 상대가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몬스터들의 선두가 스무 걸음 안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로난이 횡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넓은 검격을 뿌렸다. 라만차의 검로를 따라 붉은 초승달 하나가 쏘아졌다. 검기의 지름이 고작 2m에 달하는 것을 본 관중들이 탄식을 터트렸다.
“바보 같은, 고작 저걸로 뭘 어쩌겠다고!”
“실망인데. 대인전에서만 강했던 거야?”
노도처럼 몰려오는 몬스터 앞에서 그의 검기는 무모하게마저 보일 지경이었다. 기껏해야 정면에서 오는 두세 마리를 해치우는 것으로 그칠 터였다. 몬스터들의 눈에도 우습게 보였는지, 선두를 달리던 자이언트 보어와 블랙 오크들은 피하기는커녕 더욱 저돌적으로 박차를 가했다. 그 모습을 본 로난의 한쪽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병신들.”
불현듯 초승달의 형태가 바스라졌다.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진 검기가 부채꼴로 흩어졌다. 하나하나가 예기를 극도로 압축시켜 만든 산탄이었다. 파바박! 넓게 분산된 검기의 파편이 몬스터들의 몸에 쑤셔박혔다.
“크에엑!”
“꾸익!”
벌집이 된 오크와 보어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재수없게 심장이나 머리를 맞은 놈들이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표면적은 작았지만 관통력이 강해서 적중 당하는 순간 치명상을 입었다.
가죽을 헤집고 들어간 붉은 물방울은 근육과 뼈와 내장을 난도질한 뒤 빠져나와 그 뒤에서 달려오던 몬스터에게까지 적중했다.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양 측면의 몬스터들 또한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 어린 표정으로 외쳤다.
“맙소사!”
“거, 검기를 저렇게 사용할 줄이야···!”
난생 처음 보는 검기 운용법이었다. 방금의 일격으로 최소한 3할은 줄어든 것 같았다. 발이 뒤엉킨 몬스터들의 기세가 한층 늦춰졌다. 숨을 고른 로난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마나를 많이 소모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쓸만했다.
“나쁘지 않군.”
이것으로 서른 걸음 이내의 적까지 검기로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저주에 힘을 억제당하고 있는 로난이 나비로제나 슐리펜 같은 천재들을 따라잡기 위해 개발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같은 검기를 한 번 더 쏘아낸 그가 불현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아직 모자라.’
하지만 로난이 최종적으로 베어야 하는 것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인이었다. 구름 위쪽에서 창을 퍼부어 대는 대머리들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훨씬 사거리가 길어야 했다.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한 로난이 세 번째 초승달을 발사하려던 찰나였다. 저 멀리서 털이 북슬북슬한 설원 트롤 한 마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그와아악!”
“젠장, 뭐야?”
덩치가 3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놈이었다.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걸로 봐서 아직 살아 있었다. 로난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요격하듯 쏘아져 나간 검기가 트롤의 허리를 양단했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피가 로난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시야가 트이자 저 멀리서 포효하고 있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눈에 들어왔다.
“크워어어억!”
“그아아아아!”
누가 봐도 저 자식이 던진 거였다. 폭스 나이트를 폭스 카펫으로 만든 놈이었다. 검기의 산탄에 상처라도 입었는지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코어의 마나가 거의 소진된 것을 확인한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 팔자가 이렇지.”
이렇게 된 이상 난전에 돌입해야 했다. 물론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별 상관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트윈 헤드 오우거를 상대하는 건 벌써 세 번째였다. 로난이 몸을 웅크렸다. 쾅! 남아 있는 마나로 다리를 강화한 그가 지면을 박차며 도약했다.
그 동작이 워낙 순식간에 이루어진 터라 오우거는 그만 로난의 형체를 놓치고 말았다. 두 개의 머리가 사라진 적수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찰나였다. 작은 그림자가 오우거의 얼굴 위로 드리웠다.
“그륵?”
“그웍!”
두 개의 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새 바로 위까지 도달한 로난이 제비를 돌며 강하하고 있었다.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낀 오우거가 다급하게 몽둥이를 쳐들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허나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참나무 몽둥이를 두부처럼 가른 라만차가 두 머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걹?!”
촤아악! 붉게 물든 칼날이 오우거의 가죽을 종방향으로 가로질렀다. 로난이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검흔이 벌어지며 선혈이 솟구쳤다. 산사태처럼 쏟아져 나온 내장이 바닥을 뒤덮었다. 가장 귀찮은 놈을 단번에 치워 버린 것은 좋았으나 자축할 시간은 없었다. 로난은 곧바로 측면으로 몸을 굴렸다. 푹! 2m는 되어 보이는 장창 세 개가 그가 있던 자리에 날아와 박혔다. 저 후방에 위치한 리자드맨들이 던진 창이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로난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조소했다.
“파충류 새끼들.”
“크르릭.”
리자드맨들이 입을 길게 찢으며 클클거렸다. 거리가 멀어서 마음을 놓고 있는 모습이 영 보기 아니꼬웠다. 로난은 말없이 단검 이미르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아직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는 우리 안쪽으로 투척했다. 칼날이 무언가 파고드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쩌렁쩌렁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워아아악!!”
관중과 몬스터의 이목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동시에 거대한 만티코어 한 마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뛰쳐나왔다. 덤불 같은 갈기를 흩날리는 사자의 오른쪽 눈에는 반짝이는 단검 하나가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로난이 픽 웃었다.
“대장이 앞으로 나서야지. 가장 세다고 놀고만 있으면 쓰나.”
이번 시험에서 지명할 수 있는 몬스터 중에서 가장 강한 개체였다. 날벼락을 맞은 만티코어가 날뛰기 시작했다. 괴물 사자는 발톱과 독침이 달린 꼬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주위에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로난에게 창을 던졌던 리자드맨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다가 단번에 독침에 몸이 꿰뚫렸다. 그 튼튼한 몸이 삼 초도 지나지 않아 검게 썩어들어가는 것이 역시 무시무시한 독이었다.
로난은 만티코어와 함께 몬스터를 도륙했다.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튀어오르는 각양각색의 피가 얼굴을 적셨다. 함성을 내지르던 놀의 팔다리를 단칼에 날려 버리고, 등을 찌르려던 고블린의 골통을 발차기로 부쉈다.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는 손발톱과 이빨, 흉악한 날붙이는 전부 피하거나 쳐냈다. 그 어느 하나 로난의 몸을 스치지 못했다.
결국에는 질려 버린 몇몇 몬스터가 등을 돌려 달아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로난은 패주병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쿵! 그가 오른발을 구르자 자라난 반짝이는 뿌리가 도망치던 임프들의 몸을 옳아맸다.
“흐에엑! 개, 개물!”
“끼에에엑! 사려져!”
인간의 아이와 유사하게 생긴 마물들은 울음까지 터트려 가며 목숨을 구걸했으나 그때는 이미 로난의 검격이 목울대를 가르며 지나간 뒤였다. 발치에 떨어진 임프의 머리를 밟아 터트린 로난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코를 넘어서 뇌를 찌르는 아찔한 혈향. 산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단말마의 비명.
로난은 이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피에 취한 동안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크와아아아!”
그때 로난을 발견한 만티코어가 날개를 펼치며 포효했다. 전에 백수제에서 바렌이 데려온 만티코어와는 달리 비행 능력이 제한되어 있지 않았다. 이크, 날면 곤란하지. 그리 중얼거린 로난이 코어를 전환했다. 그리고 날아오른 만티코어가 투기장의 정점에 달하는 순간 테라닐에게서 훔친 오러를 발동시켰다. 코어와 공명한 이미르가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콰아아앙! 검신을 중심으로 터져 나온 강력한 충격파에 만티코어의 머리가 산산이 조각났다.
쏴아아아··· 피와 뇌수의 폭우가 투기장 전역에 쏟아졌다. 트롤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머리가 반쯤 날아간 만티코어가 굉음을 일으키며 추락했다. 우레 같은 환호가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다 죽여버려!”
이제 로난의 안위나 행적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초적인 흥분과 희열이 투기장을 휘감고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 상식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피의 향연이 군중을 광란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감독관의 입술이 나지막이 벌어졌다.
“···저게 정말 인간인가.”
짚더미 속에서 춤추는 불길 같았다. 로난은 그 와중에도 열심히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붉은 빗속을 헤집고 다니며 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근면하다는 인상마저 주었다. 백 마리가 모두 소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변이 잠잠해진 것을 확인한 로난이 칼을 내렸다.
“후.”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넓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늪처럼 변해 버린 투기장에는 오직 로난만이 서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핏물로 절여진 그의 모습은 지옥에 흐르는 강에서 헤엄을 치고 막 나온 사람을 연상케 했다.
로난은 손바닥으로 대충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고개를 들자 벙쪄 있는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슐리펜과 나비로제, 린은 모두 비슷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없이 주먹을 들어 올린 그가 다시 한 번 검지와 중지만을 뻗어 보였다. 만티코어의 머리가 폭발했을 때보다 배는 커다란 환호성이 투기장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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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시험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길어졌는데, 남은 참가자들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아란 파르잔 측에서 몬스터를 공수해 와야 했던 탓이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피에 홀린 감독관은 다음 순서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몬스터가 부족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정확히 두 사람 뒤에 시험을 치르게 된 슐리펜도 백 마리를 지명했지만 그만한 몬스터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56마리의 몬스터를 바람으로 난도질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따라서 우선 지명권은 자연스레 로난의 차지가 되었다.
다시 거점으로 돌아온 것은 스무 명의 합격자 뿐이었다. 개중에는 나비로제나 린, 러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식당으로 향했다. 잔이 부서져라 건배를 한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로난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정말 대단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 겨울의 마녀를 베었다는 것이 허풍이 아니었군!”
“누가 몬스터인지 모르겠더군. 도대체 정체가 뭔가?”
“다음 주에 저희 가문의 성에서 연회가 있어요. 아직 파트너를 못 구했는데 나랑 춤 좀 춰 줘요. 설마 거절하지는 않겠죠?”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외와 호감을 표출했다. 영입을 제안하던 귀족들은 세 번째 시험이 끝나기 전보다 배는 더 좋은 조건을 제안했다. 로난은 넌지시 웃음을 흘리는 것으로 대부분의 답변을 대신했다. 거절의 의미도 있었지만 일단 좆나게 피곤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젠장, 더는 안 되겠군.’
가슴 속의 흥분은 사그라지지 않았으나 몸이 피로를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내일 있을 변수를 위해 힘을 아껴 둬야 했다. 그가 막 사람들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려던 순간이었다. 식당의 문이 열리며 조금 전에 나갔던 주인장이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그가 로난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저기, 저···로난···님?”
“엉?”
로난은 고개를 돌렸다. 멧돼지를 굽느라 늘상 달궈져 있던 주인장의 얼굴이 눈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왜 그래요?”
“밖에···그···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손님?”
“네, 네에. 잠시 용건이 있으니 반드시 혼자 나오라고 하시더군요···.”
주인장의 목소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꼭 숲을 거닐다가 유령이라도 마주친 사람 같았다.
“뭐야, 누군데 그래요?”
“자, 자세한 건 직접 가보시는 게···저, 저는 분명 전달했습니다!”
그리 외친 주인장은 도망치듯 주방으로 숨어들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일단 손님이라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다녀온다는 말을 남긴 채 식당을 나섰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그를 흔쾌히 보내 주었다. 후우웅! 문을 열기 무섭게 불어닥친 찬바람이 앞머리를 뒤집었다. 눈밭과 은하수, 산 아래로 펼쳐진 끝내주는 풍경을 제외하고는 딱히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뭐야, 아무도 없잖아.”
로난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인장이 아무리 간이 커도 이런 발칙한 장난을 칠 작자는 아닌데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때 그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군.”
한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태산처럼 낮고 깊은 목소리였다. 몸을 돌린 로난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식당 지붕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처마 아래로 흘러내린 꼬리가 낚싯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림자의 정체를 유추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숨을 고른 로난이 입을 열었다.
“자이파.”
“얼굴을 보니 잘 지낸 것 같군. 일이 있어서 좀 늦었다.”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던 자이파가 훌쩍 뛰어내렸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발소리가 없다시피 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가 로난의 목전에서 멈춰 섰다.
“줄곧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한참 위에서 빛나고 있는 붉은 눈동자는 마치 재앙을 알리는 흉성처럼 보였다. 말없이 로난을 내려 보던 자이파가 입을 열었다.
“따라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