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19)
20. 피와 알(3)
#20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로난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직 흙 위에 남아 있던 핏물이 꿀렁이며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마치 피부를 찢고 나온 혈관 같았다. 자세히 보니 수많은 핏줄기가 땅을 헤집으며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기괴하기는 해도 궁금증을 자극하는 광경이었다.
로난은 피의 행렬을 따라 홀린 듯이 걸었다. 수천 갈래의 핏줄기는 모두 한 방향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그가 찾고 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제자리에 멈춰선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돌겠네 진짜.”
모든 피는 검붉은 웅덩이 안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로난이 따라온 핏줄기도 마찬가지였다.
마르페즈의 알은 웅덩이의 중앙에 둥둥 떠 있었다.
웅덩이의 수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괴물 같은 알이 피를 흡수하고 있었다.
로난을 뒤따라온 아셀이 소리쳤다.
“저, 저게 뭐야?!”
“나도 몰라 인마. ”
성큼성큼 다가간 로난이 알을 집어들었다. 웅덩이에 고여 있던 핏물이 불룩불룩 일어나며 위쪽으로 샘솟기 시작했다. 마치 알을 돌려달라고 항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너가 한 거 아니지?”
“다, 당연하지.”
로난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알을 바라보았다. 마나로 모자라서 이제는 피?
도대체 무슨 생물의 영향을 받았길래 저런 걸 낳은 거지?
-툭.
그 순간 알이 살짝 움직였다. 로난이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다시피하며 외쳤다.
“우, 움직였다!”
“정말?!”
“그렇지 인마! 슬슬 깰 때도 됐지!”
아셀이 쪼르르 달려왔다. 로난의 말마따나 알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흥분에 찬 두 소년이 주먹을 콱 쥐었다.
-톡. 톡톡.
“나만 들리는 거 아니지 이거?”
“응, 나도 들려···!”
알 안쪽에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것이 무언가가 나오려 하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로난이 알껍질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감질나게 하지 말고 얼른 나와 인마, 뭐 하는 괴물인지 낯짝 좀 보게.”
톡톡! 회답하듯 두드림이 돌아왔다. 헌데 몇 분을 기다려도 그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아셀이 입을 열었다.
“혹시 영양이 부족한 거 아닐까?”
“음?”
“아직도 마나를 엄청나게 흡수하고 있어.”
아셀의 눈에는 보였다. 알은 여전히 주위의 마나를 게걸스레 빨아들이고 있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신의 마나까지 뺏길 것 같았다.
“사람도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나잖아. 이 알도 껍질을 부수기 나오기 위해서 피나 마나가 더 필요한 걸지도 몰라.”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싸한 말이었다. 로난은 알을 다시 웅덩이에 살짝 담궈 보았다. 웅덩이는 순식간에 말라붙어 버렸다.
“역시 마법사 나리라 그런지 머리가 좋군. 그럼 피를 더 줘야겠네.”
“그치. 내 생각에는 아까···.”
아셀이 뭐라 말하려는 차였다. 로난의 발치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쿠구구구···.
아셀은 눈치채지 못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로난이 고개를 쳐들었다.
“뭐야?”
“왜 그래 로난?”
“아니···무슨 소리가 나는데.”
“그래? 나는 못 들었는데···아무튼, 아까 공터에 동물들이 죽어 있었잖아. 거기를 한번···읍!”
“잠깐 아셀. 아무래도 이상해.”
로난이 아셀의 입을 막았다. 진동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물소리라기에는 탁하고, 바람이라기에는 끈적한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저건?”
그때 저 멀리 무언가 붉은 것이 로난의 시야에 들어왔다. 높다란 수풀 위로 일렁이는 그것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셀.”
“응?”
“피로 목욕을 하면 무슨 기분일까?”
“가,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
아셀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로난은 말없이 손가락을 뻗어 공터가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이제 그것은 아셀의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콰콰콰콰!
피로 이루어진 급류가 수풀을 깔아뭉개며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끼아아아악!”
아셀은 천둥에 놀라는 소녀처럼 비명을 질렀다. 검붉은 물살은 자아를 가진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까 공터에 죽어 있던 짐승들의 피가 모조리 몰려들고 있었다.
“이, 인비저블 핸드!!”
아셀의 지팡이가 다급하게 바닥을 찍었다. 두 사람의 몸이 공중으로 훅 떠올랐다.
“우웁···!”
아셀이 구역질했다. 알이 실시간으로 마나를 빼앗아 가고 있는 탓에 마법이 계속해서 불안정해졌다. 그는 고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집중했다.
-콰콰콰!
소용돌이치던 혈류는 이윽고 나선뿔의 형상을 이루며 알을 향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셀은 알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핏물을 거세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툭, 툭툭툭.
“이 새끼도 제정신은 아니네.”
알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로난이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놈이 하는 짓거리 치고는 지나치게 요란했다.
“그래, 한 번 마셔 봐라.”
그는 손에 집힌 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혈류의 한가운데에 떨어뜨렸다. 알은 퐁당 소리를 내며 핏물 속으로 사라졌다. 나선뿔의 형태가 뭉그러지며 흡수가 시작되었다.
“니미, 저걸 진짜로 다 마신다고?”
로난과 아셀은 공중에 뜬 채 그 경이로운 순간을 감상했다. 서서히 변모하던 혈류는 이제 거대한 구체의 형상을 이루며 소년들의 발밑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던 구체가 소멸하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피가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이 바닥에 착지했다.
“끄, 끝났나?”
“그런 거 같은데.”
그 많은 피를 들이키고도 알의 외형에는 변화가 없었다. 로난은 바닥에 나뒹구는 알을 집어들었다. 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염병, 뭐야?”
로난이 집어든 것은 빈 껍데기였다. 무언가 뚫고 나간 듯한 커다란 구멍이 알의 표면에 보란 듯이 나 있었다. 슐리펜도 흠집조차 내지 못한 껍질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알맹이는 어디 갔어?”
로난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딱! 어디선가 날아온 물체가 로난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씨발!”
로난이 뒤통수를 쥐어싸맨 채 주저앉았다. 뇌에 직접 주먹질을 하는 듯한 충격이었다. 화들짝 놀랜 아셀이 지팡이를 쥔 채 달려왔다.
“로, 로난···괜찮아?”
“아니!!”
“뭐, 뭐에 맞은 거야?”
아셀이 두리번거리리며 주위를 살피던 도중이었다. 딱! 다시 날아온 무언가 아셀의 머리를 강타했다.
“아악!”
아셀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눈을 뒤집으며 그대로 기절했다. 몸을 일으킨 로난이 칼을 뽑아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어떤 놈···!”
말을 끊은 로난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쐐액!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무언가가 그의 뺨을 스치며 지나갔다. 카리볼로의 밀렵꾼들이 쓰던 화살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젠장.”
스친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로난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진짜로 더 맞다가는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쉬이익!
기척을 종잡을 수 없는 것을 보니 투사체가 아닌 생물 같았다. 눈으로만 봐서는 잡을 수 없었다.
“진짜 별 거지같은···하···.”
한숨을 내쉰 로난이 정신을 집중했다. 시야가 좁아지며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정체 모를 생물은 소리를 찢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로난이 팔을 휘둘렀다.
탁! 무언가 푹신한 것이 손에 잡혔다.
“이 새끼! 잡았다!”
칼을 역수로 고쳐 잡은 로난이 손에 잡힌 물체를 겨누었다. 칼을 그대로 내리꽂으려는 순간이었다.
“빠얏!”
“엥?”
로난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사과만한 생명체가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외모였다.
“설마 여기서 나온 게 너냐?”
“뺘?”
로난은 손에 들린 알껍데기와 정체불명의 동물을 번갈아서 쳐다봤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짐승이 알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저히 원래 존재하는 동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뭐 이렇게 생겨 먹었어?”
깃털은 자라 있었지만 골격이 새의 것이 아니었다. 비슷하게 생긴 걸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아셀이 머리를 문지르며 깨어났다.
“으···으으···방금 뭐였어···?”
아셀의 머리에는 볼록한 혹이 솟아 있었다. 로난은 말없이 손에 쥐어져 있는 괴생명체를 들이밀었다. 아셀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드..드래곤?!”
“뺫!’
“드래곤이라고?”
로난은 그제야 한 환상종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드래곤의 유체인 해츨링.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도감에서 본 것과 아주 닮아 있었다.
“듣고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네. 부모랑 닮은 구석이라고는 깃털 뿐이구만.”
튼튼한 네 다리는 막 태어났음에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축 늘어져 있는 두 쌍의 날개는 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다만 헤츨링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비늘이 나 있어야 할 자리에 깃털이 나 있었다는 점이었다. 얼굴만 제외하고. 유일하게 마르페즈를 닮은 푹신한 깃털은 밤처럼 어두운 검은색을 띠었다.
“그래도 일단은···꿈새로 쳐야겠지?”
목을 긁어 주자 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꿈새를 만지던 로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얼굴은 반반하게 생겼군.”
그것은 덩굴 같은 꼬리를 살랑이며 로난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양이처럼 큼지막한 눈망울 속에서 로난의 얼굴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 자식아, 뒈질 뻔 했잖아.”
“뺘?”
로난은 고개를 돌려 뺨에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줄곧 얌전히 있던 꿈새가 갑자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로난이 손에 힘을 슬쩍 풀자, 꿈새가 로난의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뭐야? 뭐 하게?”
꿈새는 로난의 상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셀의 눈이 커졌다. 꿈새의 눈앞에 자그마한 마법진이 생기더니 피가 흐르던 로난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로, 로난! 상처가 나았어!”
“뭐?”
뺨을 쓸어내린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매끈해진 뺨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처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꿈새가 로난의 뺨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이거 죽이는데.”
“귀, 귀엽다···로난 널 좋아하는 거 같아.”
살아 있는 포션이 따로 없었다. 그때 꿈새의 날개가 서서히 펼쳐졌다. 까마귀를 연상케 하는 네 장의 날개가 완전히 펼쳐짐과 동시에 인근의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
마나 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주변에 남아 있던 핏물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푹신한 깃털에 스며들고 있었다. 아셀과 로난의 옷에 묻어 있던 핏자국이 한 곳으로 모이며 방울의 형태로 떨어져 나왔다.
“이건 도대체 무슨 요술이냐, 아셀.”
“나, 나도 모르겠어···.”
아셀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마나 뿐만 아니라 피를 매개삼아 사용하는 마법이라니. 듣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기괴하고 어찌 보면 불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로난은 이 괴상한 생명체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로난이 팔을 내밀었다. 꿈새는 날개를 접고 그의 손바닥에 올라탔다.
로난은 꿈새를 마주보며 말했다.
“나랑 같이 갈래?”
“뺘아!”
꿈새가 짧게 울었다. 꼭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로난이 시험 삼아 팔을 휙휙 휘둘렀지만, 발톱으로 손가락을 콱 움켜잡은 꿈새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동의한 걸로 하고.”
로난이 손을 뻗어 꿈새를 집어들었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눈만 깜빡이는 모습이 상당히 깜찍했다.
“이름을 지어 줘야겠지. 뭐가 좋을까···.”
로난은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그래도 힘들게 부화시킨 건데 대충대충 짓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로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시타로 하자.”
“뺘앗!”
시타가 회답하듯 울었다. 꼭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별안간 시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으아악!”
트라우마가 생긴 아셀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쌌다. 하지만 시타는 소년들의 머리를 노리지 않았다.
-쐐애액!
불현듯 용수철처럼 쏘아져 나간 시타가 저 먼 곳의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충돌음과 함께 숨이 끊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악!”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 로난과 아셀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