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06)
209. 북부의 왕(3)
#209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찢어지는 비명이 천막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칼자루를 움켜쥔 로난이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데샨과 제이거가 그 뒤를 따랐다.
“이, 이건···?”
“맙소사.”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사악하고 끈적거리는 기운이 피부에 눌어붙고 있었다. 입으로 들이마신 공기에서는 벌레의 내장처럼 쓴맛이 났다.
“으엣···! 고, 공기가···?”
“빌어먹을, 저주가 강해졌어.”
손끝이 저릿거렸다. 건물과 사람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비정상적으로 짙어져 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부족에 내려진 저주가 전체적으로 강해져 있었다. 바르카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건가?
“꺄아아아악!”
“그, 그만둬!”
그 와중에도 비명은 들려오고 있었다. 로난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빠르게 돌아보았다. 기형아 웨어울프들의 몸뚱어리가 꿀렁거리며 변화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부풀거나 이빨이 턱을 찢고 나오는 모습은 썩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륵···! 그르르륵!”
“오빠, 정신 차려! 오빠!”
가족으로 보이는 웨어울프들이 그들을 둘러싼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주의 힘이 강해지면서 신체가 변화하는 것이 더욱 빨라진 것 같았다.
서둘러 해결하지 않으면 굉장히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갑자기 광폭화해서 가족을 찢어발기려 든다던가. 잠시 머리를 굴리던 로난이 큰 소리로 외쳤다.
“시타!”
“뺘잇!”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을 선회하던 시타가 로난의 앞에 착지했다.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낸 로난은 펜으로 짧막한 편지를 휘갈겼다. 그가 옷자락을 시타의 다리에 묶어 주며 말했다.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룬달리안이라는 도시가 있어. 거기서 세크리트 교수님을 찾아서 데려와. 털이 부숭부숭해지기는 했지만 너라면 냄새로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서둘러.”
“뺘!”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시타가 지체 없이 날아올랐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전문가를 데려오는 것이 상책이었다. 로난이 아데샨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는 기형아들이 폭주하는 것을 막아 주세요. 할 수 있겠어요?”
“응. 맡겨만 줘.”
아데샨은 곧바로 기형아들에게 달려갔다. 그림자의 마나가 저주로 얼룩진 공기 속에서 번져 나갔다.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꾸물럭거리던 기형아들이 한순간 얌전해졌다.
“···대단하군.”
놀라우리만치 유연한 상황 대처에 제이거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 인간들이라면 바르카와 대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그의 뒤편에서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
“아으아.”
“음?”
제이거가 고개를 돌렸다. 웬 웨어울프 소년 한 명이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양팔이 축 늘어지고 한쪽 다리를 질질 끄는 것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손톱은 꼭 열 자루의 비수 같았다.
“너도···이 마을 주민인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또한 저주를 받아 태어난 기형아라 생각한 제이거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때 소년이 검지로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제···이거?”
“그래. 내가 제이거다.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어서 건물에 들어가라.”
“···제이거. 제이거.”
하지만 웨어울프 소년은 제이거의 말을 무시한 채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 로난이 소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건?”
지금껏 봐 온 기형아와는 다른 인상을 풍기는 소년이었다. 영문 모를 불길함마저 느껴지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로난이 경고 한 마디를 하려는 차였다. 제이거와 세 발자국 간격까지 다가간 소년의 형체가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깐, 위험해!”
로난이 다급하게 외쳤으나 때는 이미 한 발 늦은 뒤였다. 한순간 흐릿해졌던 소년의 형체가 제이거의 뒤편에서 다시 나타났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제이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제이거. 제이거. 제이거. 제이거.”
소년이 빠른 간격으로 중얼거렸다. 불현듯 제이거의 가슴 위로 길고 붉은 선 다섯 개가 사선으로 그어졌다.
“허억···!”
팔다리를 잘렸을 때와 흡사한 감각에 제이거의 눈이 커졌다. 그가 뭐라 비명을 지르기도 전이었다. 촤아아악! 다섯 줄기의 핏줄기가 자상을 따라 솟구쳤다.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로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발, 제이거!”
“흐어어···억.”
비현실적일 정도의 과다 출혈이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피가 설원을 적셨다. 붉은 웅덩이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제이거는 자신의 내장이 조각조각 잘려나간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쿵! 천천히 기울던 그의 거구가 뒤로 넘어졌다. 회백색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거. 제이거. 제이거. 제이거. 제이거. 그르륵.”
소년은 그 와중에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제이거를 바라보던 그가 오른손을 쳐들었다. 마지막 일격을 날릴 셈인 듯했다. 다시금 소년의 모습이 흐릿해지려는 찰나였다. 단번에 도약해온 로난이 그를 가로막으며 착지했다.
“넌 뭐야, 이 개새끼야!”
“캬르락?!”
로난이 횡방향으로 검을 휘둘렀다. 웨어울프 소년은 뒤통수를 발꿈치에 붙이며 공격을 피했다. 우드득! 척추가 부러지듯 요란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생물체 같지 않은 기괴한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공격 자체가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소년의 목울대 위로 시커먼 선이 그어지며 피가 솟구쳤다.
“캬아아악!”
검격이 워낙에 빠른 탓에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한 듯했다. 목을 쥐어감싼 소년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멀리까지 튀어오른 핏방울 몇 개가 로난의 뺨에 닿았다.
‘차가워?’
이질적인 감각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뜨거워야 할 피는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색도 붉은색보다는 검은색에 가까운 것이 도저히 살아 있는 사람의 혈액 같지가 않았다. 그때 튕기듯이 몸을 일으킨 소년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제이거! 캬아아아!”
“뭐?!”
빠르게 방어 자세를 취한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소년은 로난을 무시한 채 제이거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역시 뭔가 이상했다. 로난은 그를 돌아봄과 동시에 오러를 발동했다. 스아아아···검신이 주홍색 빛을 발하더니 날아가던 소년의 몸뚱어리가 로난의 코앞에 나타났다. 영문 모를 현상을 겪은 소년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깃들었다.
“캬륵?!”
“뒈져.”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허공에 머물러 있는 소년의 배 위로 선명한 직선 하나가 그어졌다. 푸확!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 검은 피가 사방을 적셨다. 반토막난 몸뚱어리가 바닥을 뒹굴었다.
“윽···!”
문득 불쾌한 악취가 로난의 코를 찔렀다. 피와 살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전생에서 질릴 정도로 맡아 온 시체의 냄새였다. 불현듯 발치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갸르락! 제이거어어!”
“뭐야, 시발.”
참으로 기괴망측한 광경이었다. 상반신만 남은 소년은 팔을 다리 삼아 움직이며 제이거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검은 피가 만든 궤적이 서예가의 붓글씨처럼 소년을 따라 그려지고 있었다. 로난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살아있는 시체라 이건가?”
문득 처음에 베었던 목이 눈에 들어왔다. 절반 정도가 잘린 채 덜렁거리는 것이 애초에 살 수 있는 부상이 아니었다.
도약해서 소년을 짓밟은 로난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서걱! 이빨을 딱딱 부딫히던 머리통이 수십 조각으로 나뉘며 파열했다. 썩은 뇌와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남아 있던 신체 부위가 동작을 멈추고 축 늘어졌다.
가까이서 보니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의 체조직에서는 바르카의 마나가 묻어나고 있었다. 육편을 내려보던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놈이 보낸 암살자는 분명해. 아마 용도를 다했으니 치워 버리려고 한 거겠지. 그나저나 이건 꼭···.’
언젠가 들었던 강령술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을 스쳤다. 당장에라도 경위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칼을 집어넣은 그가 곧바로 제이거에게 달려갔다.
“젠장, 지금 죽으면 안 돼.”
“허윽···허어억···.”
제이거는 당장에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깔딱대고 있었다. 가슴팍의 피는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아 있는 상비용 포션을 부어 봤지만, 상처가 너무 깊어서 큰 효과가 없었다.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하필이면 시타가 떠났을 때 이따위 일이 벌어질 줄이야. 별안간 하늘을 바라보던 제이거가 입을 열었다.
“이···봐···.”
“말하지 마 등신아. 상처가 벌어지잖아.”
“내···안주머니를···봐라···.”
“안주머니?”
제이거가 옅게 주억거렸다. 다 죽어 가는 판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던 로난이 어떤 물건 하나를 빼냈다. 팔각형의 나침반이었는데 어느 방향도 가리키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다. 제이거가 말했다.
“아까 주려던 물건···아마 놈은 그걸로 나를···추적했을 거다···빌어먹을···어쩐지 피를 가져가더니···.”
“이게 뭔데?”
“혈계침이라는 물건이지···바늘에 찍어 바른 피의 주인을 가리키는···귀한 마도구다···.”
혈계침은 일정한 범위 내의 추적 대상을 가리킨다고 했다. 제이거는 바르카가 참모로 들어오는 날 자신의 피를 얻어서 혈계침에 바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놈이 나를 믿지 않을 것처럼···나도 놈을 믿지 않았지···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다···.”
그가 피거품 섞인 목소리로 낄낄거렸다. 제이거는 언젠가 몰래 놈의 혈흔을 채취해서 바늘에 피를 묻혔다고 설명했다. 과연 의심 많고 영악한 놈이었다. 혈계침을 챙긴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잘 쓰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극히 미세한 숨소리만이 바람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질 생명의 촛불이었다. 가만히 제이거를 바라보던 로난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에이. 씨발.”
어김없는 개자식이었지만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평화적으로 끝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로난이 아데샨을 돕기 위해 이동하려던 차였다. 별안간 뒤쪽에서 요란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우아아악! 사, 사람 살려!”
“뭐야?”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하늘에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시커먼 윤곽은 시타를 닮았는데 뭐가 조금 더 붙어 있엇다. 머지않아 그것의 정체를 알아본 로난의 눈이 튀어나올듯 커졌다.
“젠장, 세크리트?”
“갸아아아아!”
새하얀 웨어폭스 한 마리가 시타의 등 위에 올라타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깃털을 움켜쥔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우는 자신이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로난을 발견한 시타가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급강하했다.
“뺘아아아앗!”
“마, 맙소사! 세상에! 이럴 수가!”
한층 커진 절규가 울려 퍼졌다. 시타가 네 장의 날개로 급제동을 걸며 착륙하는 순간 세크리트가 굴러떨어졌다. 누워서 숨을 몰아쉬던 그가 시타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이런 못된 새 같으니. 정말로 죽는 줄 알았잖느냐!”
“뺘햐하핳!”
시타는 날개까지 퍼덕여 가며 깔깔거렸다. 얼척 없는 광경을 바라보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요.”
“그래, 나도 안다! 막무가내로 등 뒤에 타라 하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지, 오오, 세상에!”
세크리트가 몸을 일으켰다. 예상했던 것보다 열 배는 빠른 속도였다. 사람도 태울 수 있겠다며 농담으로 말하고는 했는데 정말 태우고 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긴 로난이 제이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맞아, 이럴 때가 아니지. 시타. 이 표백된 호랑이를 좀 고쳐 줘.”
아직 제이거는 살아 있었다. 장담컨데 오 분도 넘기지 못할 터였지만 일단은 살아 있었다. 회답하듯 운 시타가 네 장의 날개를 펼쳤다.
“뺘!”
붉은 안개가 제이거를 감쌌다. 머지않아 출혈이 멈추며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몸 밖으로 흘러나왔던 피가 다시 그의 상처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던 제이거의 주둥이가 벙긋벙긋 움직였다.
“커흑, 정말···신통하군.”
“살아났냐? 입 다물고 누워 있어.”
“···고맙다.”
아무래도 급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감사인사를 한 제이거가 의식을 잃었다. 고개를 돌리자 세크리트는 이미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렇군. 확실히 저주가 강해졌어. 급한 대로 처리를 해야겠구나.”
아무래도 상황 파악은 벌써 끝난 듯했다. 세크리트는 일련의 사정도 묻지 않고 곧바로 해주의 채비에 들어갔다. 로난이 질문했다.
“해주 재료 같은 건 없어도 되는 거예요?”
“있으면 좋지만 이대로도 해 봐야지. 로난, 내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만 해 주려무나.”
“네?”
별안간 세크리트가 마을 한복판으로 달려갔다.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든 그가 눈 위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법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르진카. 라나비엘. 데라도.”
세크리트가 주문을 영창하자 마법진이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마법진에서 스며 나온 백색광은 짙어진 그림자를 조금씩 걷어내며 서서히 확장되었다. 머지않아 주변보다 조금 더 밝은 빛으로 구성된 반구가 부족을 뒤덮었다.
“그, 그르르륵···.”
“딸아. 저, 정신이 드니?”
“이, 이 빛은 뭐지?”
기형아들의 변화가 멈췄다. 사방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잦아들었다. 쓴맛이 나던 공기와 짙어진 그림자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세크리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일단 숨은 돌렸구나.”
“대단한데요. 이걸로 해주가 된 건가요?”
“유감스럽게도 아니란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야. 그보다 잠깐 뭐 하나만 물어보자꾸나.”
로난은 세크리트가 뭘 물어볼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엎어진 채 숨을 몰아쉬는 제이거에게 머물러 있었다.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요. 대신 제 설명을 먼저 듣고 물어봐 주세요.”
“설명?”
“네.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로난은 자신이 겪고 들은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진정한 흑막은 바르카 터르겅이고, 그를 쫓아 헤이란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도. 세크리트의 동그란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떠졌다.
“맙소사. 검성에게 형제가 있었다니. 게다가 그 치가 저주의 술자라고?”
“그것뿐만이 아니라 강령술도 쓰는 것 같아요. 더 궁금한 거 있나요?”
“···아니. 전혀 없단다.”
역시 세크리트도 바르카의 존재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더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은 로난이 질문을 건넸다.
“교수님. 저주를 완전히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시간이 없어서요.”
“···술자에게 저주를 해제하게 시키거나 죽이는 수밖에 없지. 이건 정말이지···말도 안 나오는 일이구나···.”
세크리트는 뭐라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가설과 향후 계획을 확립해 나가고 있었다. 마법사 특유의 지식욕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 아마 한참은 저러고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결국은 피를 봐야 하는군.”
로난은 혈계침을 꺼내 들었다. 아직 바르카가 사거리 내에 없는 탓인지 바늘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일을 마친 아데샨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고생했어요 선배. 어째 일이 커진 것 같네요.”
“···응.”
“뭐야. 괜찮아요?”
평소와는 다른 말투에 로난이 걱정스레 물었다. 이번에는 대답 자체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데샨의 시선은 바르카의 위치가 표기된 혈계침에 머물러 있었다. 큼직한 눈동자는 어둡고 탁한 진회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선배?”
로난이 다시 물었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결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린아이 시체를 살수로 보내는 바르카의 잔혹성도 잔혹성이지만, 송곳니의 밤에 벌어진 학살을 주모한 당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무능했던 지휘관만큼이나 증오스러운 대상일 터였다.
“···응. 괜찮아. 걱정시켜서 미안해.”
뒤늦게 고개를 든 아데샨이 옅게 미소지었다. 다만 그것은 평소처럼 상냥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닌,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누름돌 같은 웃음이었다.
일을 마무리 지은 세 사람과 한 마리는 일단 룬달리안으로 복귀했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웨어울프들이 그들을 배웅했다. 제이거는 부족민 중 몇 명이 나준 산맥에 있는 본거지로 데려갔다.
“그럼, 출발할까요.”
“응.”
말뚝이 박힌 지역 전체에서 저주가 강해지고 있었기에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로난과 아데샨은 룬달리안에서 딱 하루만 묵은 뒤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헤이란. 대륙의 북쪽 끝자락이자, 바르카 터르겅의 근거지가 있는 극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