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11)
214. 북부의 왕(8)
#214
“그래. 자이파의 아들, 아라단 터르겅이다.”
할 말을 잃어버린 로난이 입을 다물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불쾌한 기시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야성적인 본능에 근거하여 행해지는 아라단의 검술은 자이파와 굉장히 닮아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던 아데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조카를···강령술로 되살린 거야?”
“그래. 아라단은 내 숙원을 이뤄줬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일생일대의 역작이다. 무예에는 영 재능이 없는 나와는 달리 형님의 자질을 그대로 물려받았지.”
“어, 어떻게 그럴 수가···어떻게···.”
“틀림없이 아라단도 기뻐할 거다. 자신을 죽인 원수와 물렁해진 아비를 직접 벌할 수 있으니까.”
바르카의 담담한 목소리에서는 실오라기만큼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명이 다한 아라단의 눈동자는 서늘한 안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치를 거스르고 되살아난 시체 특유의 귀기였다. 그 눈을 쳐다보던 아데샨이 입을 틀어막았다. 방심하는 순간 구토가 나올 것 같았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기에, 추악함으로 어그러진 적막 속에서는 칼 부딪히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묵묵히 응수하던 로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니가 그러고도···.”
“크아아아아!”
문득 아라단의 아가리에서 지성 없는 포효가 터져 나왔다. 한층 난폭해진 검격이 로난을 향해 쏟아졌다. 독니처럼 곤두선 칼날 두 개가 그의 목을 꿰뚫으려던 찰나였다. 로난이 칼자루를 부서질 듯 움켜쥐며 소리쳤다.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이 개새끼야!!”
“커엉?!”
아라단의 눈이 커졌다. 급가속한 라만차가 날아오던 검 두 자루를 동시에 쳐냈다. 카창! 산산이 부서진 칼날 파편이 눈꽃처럼 흩날렸다.
“저리 비켜!”
로난은 곧바로 다리를 뻗어 아라단의 복부를 걷어찼다. 내장을 터트리고 척추를 부수는 감각이 발끝을 타고 전해졌다. 콰앙! 각종 실험 도구를 부수며 날아간 몸뚱어리가 연구실 벽면에 처박혔다.
“···하여튼 무식한 놈이군.”
지켜보던 바르카가 고개를 내저었다. 바렌의 오러로 강화된 로난의 다리는 금색 빛무리에 휘감겨 있었다. 로난이 그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네게는 반드시 지옥을 보여 주마.”
두 번의 삶을 살아가는 중에도 이 정도의 혐오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구더기가 들끓는 야전병동이 차라리 더 깔끔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죽여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고통스럽게. 로난이 막 오러를 발현하려는 차였다.
“좋을 대로 해라. 그래도 하던 승부는 끝내야 하지 않겠나?”
“뭐?”
영문 모를 소리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찰나 아라단이 처박힌 곳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좌우로 찢어졌다. 머리보다 먼저 움직인 팔이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는 순간이었다. 쾅!! 벼락처럼 쇄도해온 그림자가 로난과 충돌했다.
“크륵! 크아악!”
“이런 니미···!”
시선을 올린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곡도를 연상케 하는 다섯 개의 발톱이 라만차를 붙들고 있었다. 송곳니를 드러내며 포효하는 아라단의 모습은 놀라우리만치 건재했다.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분명 척추를 부러뜨렸는데 어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발차기에 맞은 복부는 아직도 푹 꺼져 있었다. 아무리 언데드라 해도 몸이 망가지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텐데.
원인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아라단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자세를 다잡은 그가 측면으로 회전하며 팔을 휘둘렀다.
“커허어엉!”
완벽한 회전에서는 일말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본능과 살의만으로 행해지는 동작이라 믿기 어려웠다. 바람을 찢으며 날아드는 손아귀는 로난의 머리는 물론, 상반신을 통째로 날려 버릴 터였다.
“기운 한 번 좋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정면으로 받아치다가는 어깨가 부서질 터였다. 안정적인 거리까지 물러선 그가 반격을 준비하던 와중이었다. 촤악! 갑자기 눈앞까지 늘어난 손톱이 로난의 얼굴을 후려치며 지나갔다.
“큭?!”
뺨이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분명 가늠했던 것보다 사거리가 늘어나 있었다. 접촉 직전에 얼굴을 돌려서 스치는 것에 그친 것이 다행이었다. 아라단에게 시선이 닿은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저건···!”
“크륵! 커르륵!”
실제로 아라단의 왼팔은 손끝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어져 있었다. 팔꿈치 안쪽에 벌어진 상처 안쪽으로 시커먼 촉수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단순히 숨만 붙여서 되살린 건 아닌 것 같았다. 바르카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포기해라.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개자식아, 애새끼한테 무슨 개수작을 부렸길래 이런 괴물이 된거야?”
“은혜를 베푼 거지. 내 조카는 누구보다 강한 전사가 되고 싶어했거든.”
바르카는 흑마법과 각종 실험으로 아라단을 진정한 전사로 만를어 주었다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로난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저 목을 치고 싶었지만 아라단이 순순히 길을 비켜 주지 않았다.
“놈들을 처리하고 돌아와라.”
바르카는 고전하는 로난을 뒤로 하고 등을 돌렸다. 여유로운 말투와는 달리 발걸음은 촉박했다. 연구실 곳곳에서 시체 몇 구가 일어서더니 그를 호위하듯 둘러쌌다.
“그에에엑···!”
“그르럭, 그륵.”
전투력이 거의 없어 보이는 개체들은 순전히 로난의 오러를 막기 위한 고기 방패였다. 그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이끌며 연구실 한구석에 나 있는 쪽문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비켜!”
조급해진 로난이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그의 손이 한순간 흐릿해지더니 아라단의 가슴 위로 검은 선이 생겼다. 촤악! 시커멓게 썩은 피가 로난의 안면을 적셨다.
“씨팔, 더럽게 단단하네.”
“그르륵!”
하지만 아라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압정에 찔린 수준의 반응을 보인 웨어타이거는 곧바로 자세를 잡고 로난에게 달려들었다. 틀림없이 늑골을 베어낸 것이 느껴졌는데, 아무리 시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생명력이었다.
“적당히 하자. 응?”
“캬아아아아!”
당연한 일이었지만 로난이 기대하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라단은 이미 한참 전에 죽은 시체였다. 온갖 악의로 절여져서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
“이러면 정말로 죽여야 하잖아.”
로난이 쥐어짜내듯 중얼거렸다. 아라단은 정말 강했지만, 사실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자이파의 자식이라는 점이 그의 검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이걸 끝장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육편을 만들어서 갈아 버려야 할 텐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자이파의 편지를 읽지 않는 거였는데. 문득 쪽문으로 진입하려던 바르카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같지도 않은 미행은 그쯤 하는 게 어떤가.”
“윽···!”
서서히 걸음을 옮기던 아데샨이 이를 악물었다. 설마 이 소란 중에 눈치챌 줄이야.
그녀는 로난이 아라단의 주의를 끄는 동안 바르카에게 몰래 접근하고 있었다. 바르카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내 정신세계에 침입하려 하더군. 위험한 힘을 갖고 있어.”
“바르카!”
잠행을 그만둔 그녀가 석궁을 뽑아들었다. 이미 시위에 걸려 있던 비장의 한 발이 쏘아졌다. 캉! 정확히 바르카의 미간 앞까지 도달한 화살이 벽에 맞은 듯 튕겨 나갔다.
“아!”
“그래도···내가 아무리 꼴이 우습게 되었다 한들 너 따위에게 당하겠느냐.”
바르카가 코웃음쳤다. 별의 가호가 그의 몸 주변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아데샨의 얼굴이 절망으로 굳어졌다. 등을 돌린 바르카가 손가락을 튕겼다.
“치워라.”
“이, 이런···!”
아데샨은 즉시 다음 쇠뇌를 격발했다. 본체에 피해를 못 입힌다면 천장이라도 무너뜨려서 막아야 했다. 그때 로난과 싸우던 아라단이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쾅! 아데샨의 앞을 가로막은 그가 쇠뇌를 쳐냈다.
“크라라락!”
“마, 말도 안 돼!”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비현실적인 반응속도였다. 위험 요소를 제거한 아라단이 발톱을 내질렀다.
“커헝!”
“이런···!”
피하기에는 늦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채찍을 쳐들었다. 콰직! 비수 같은 발톱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심장이 아닌 채찍에 적중했다. 하지만 온전하게 방어에 성공했다 볼 수는 없었다. 뒤로 밀려난 채찍이 그녀의 상반신에 처박혔다. 동시에 충격으로 튕겨 나간 그녀의 몸이 바닥을 뒹굴었다.
“어헉!”
아데샨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날카로운 철편 다섯 개가 그녀의 가슴부터 옆구리까지를 파고들어 있었다. 살갗 안쪽에 있는 내장이 다친 것이 느껴졌다.
바르카는 어느새 쪽문 안쪽으로 사라진 뒤였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기력을 짜낸 아데샨은 방어하거나 피하는 대신 바르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쇠뇌 한 발을 더 쏘았다. 이번에는 아라단도 반응하지 못했다. 푹! 저 어둠 너머에서 화살촉이 파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큭!”
명중이었다. 바르카의 신음이 그 뒤를 따랐다. 다행히도 별의 가호가 사라진 직후를 파고든 듯했다. 이걸로 로난의 추격이 한결 더 쉬워지리라.
“후우···.”
한 번에 많은 피를 흘려서 그런지 눈앞이 빠르게 흐릿해지고 있었다. 소명을 다한 그녀가 균형을 잃고 엎어졌다. 팔을 치켜든 아라단이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는 차였다.
“아데샨!”
로난의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아라단의 뒤편에서 석양이 쏟아졌다. 상대를 끌어당기는 오러는 순식간에 아라단을 로난의 눈앞까지 끌어당겼다.
“커허엉!”
아라단은 당황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아데샨에게 날리려던 일격은 자연스레 로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로난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개새끼야, 저리 비켜!”
주홍색으로 아롱이던 검신이 붉게 물들었다. 라만차가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로난의 귀를 스치며 지나간 손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아앙! 돌바닥이 파괴되며 얼음으로 구성된 지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라아아악!”
무승부였다. 아라단이 재차 공격하려 했으나 앞에 있어야 할 로난이 보이지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무시한 채 아데샨에게 달려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륵?”
그때 아라단의 몸 위로 붉은 선 수십 개가 그어졌다. 감각이 단절되어 가는 것을 느낀 그가 뭐라고 짖으려던 차였다. 퍼억-! 정확히 스무 토막이 난 몸뚱이가 폭발하듯 무너져 내렸다.
검은 피와 내장, 덩달아 토막난 촉수가 바닥에 쏟아졌다. 고기 방패용 시체들을 단칼에 해치운 로난이 아데샨에게 달려갔다. 벽에 기대앉아 있는 그녀는 여전히 채찍을 몸에 박아 넣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로, 로난···.”
“말 하지 마요. 지금 바로 치료할 테니까.”
상처가 깊었다. 로난은 즉시 채찍을 뽑고 상비용 포션을 환부에 들이부었다. 냄비의 물이 증발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피가 멎고 살이 아물기 시작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아데샨이 자신의 팔을 깨물었다.
“윽, 으으윽···!”
“빌어먹을,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거에요? 당신답지 않게.”
로난이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이 한발만 늦었더라면 아데샨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터였다. 언제나 이성적이던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다리에 맞췄으니까 멀리 못 갈거야···하아, 어서 놈을···쫓아가자.”
“아데샨.”
“로난, 나는···.”
갓 태어난 사슴처럼 후들거리던 아데샨이 몸을 일으켰다. 물끄러미 시선을 돌린 그녀가 별안간 로난의 등 뒤를 가리켰다.
“저걸···봐.”
“네?”
아라단을 구성하던 고기조각은 꿈틀거리며 한 자리에 모여들고 있었다. 절지동물의 다리처럼 뻗어 나온 검은 촉수가 절단된 신체를 이어 붙이고 있었다.
“씨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무래도 완전히 끝낸 게 아닌 것 같았다.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 되었음에도 아라단은 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한창 사랑받을 시기에 살해당한 소년이 죽어서도 고통받고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아데샨이 입을 열었다.
“나는 바르카를···용서할 수 없어.”
끓어오르는 분노와는 달리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잿빛 눈동자가 평소와 다른 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들려오던 내면의 목소리가 그녀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래.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