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20)
223. 오로라 스칼(3)
#223
“그러니까···.”
“이건 명백히 독룡 드라하비에 님에 대한 모욕이다!”
누가 말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목청 한번 요란했다. 한순간 벙찐 세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로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뭐야 시발.”
뭔가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엄습했다.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한 아데샨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디디칸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드라하비에? 방금 드라하비에라고 했나?”
“맞는 것 같은데. 왜, 아는 놈이야?”
“이거 낭패로군. 아직 납품 준비가 안 되어 있을 텐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디디칸이 왔던 통로로 달려갔다. 발걸음이 다급한 것이 생각보다 위급한 상황 같았다. 로난이 말했다.
“독룡이라고 했었죠.”
“응. 그렇게 들었어.”
“독을 쓰는 드래곤인가? 용들이랑 얽히면 피곤해지는데···에잇.”
그가 투덜거리며 통로로 들어갔다. 아데샨이 재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상황을 좌시만 하는 것은 영 취향에 맞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소리가 커졌다. 사건은 처음 여기 와서 봤던 중앙 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름 정갈한 인상을 풍기던 홀은 완전히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가 우습나! 엉?!”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발 진정을···!”
난장판의 중심에 있는 것은 두 덩치와 한 청년이었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애송이 냄새가 풀풀 나는 청년은 조금 전에 로난의 그리폰을 마구간에 넣어 준 사람이었다.
그는 키가 2m는 될 법한 여인에게 멱살 잡힌 채였다. 교수형 당한 시체처럼 다리가 대롱거리는 꼴을 보기가 안쓰러웠다. 얼굴을 바짝 가져다댄 여인이 다시금 윽박질렀다.
“다시 말해 봐라. 우리는 분명 대가를 지불하고 한 달이라는 기간을 기다렸어. 그런데 왜 무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거지?”
“마, 말씀드렸잖습니까. 신 수인 연합이 장인들을 납치해서 차질이 생겼다고요. 게다가 그건 적어도 세 달은 걸릴 양이라고 의뢰하실 당시에도 말씀드렸습니다···!”
“헛소리! 나는 분명 한 달이라고 들었어. 그렇지?”
코웃음친 여인이 옆에 있는 동료를 쳐다보았다. 염소수염이 자란 덩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확실해.”
“봐라, 그럼 내 동료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냐?”
“그, 그럴 수가!”
청년이 절규했다. 대장간 사람들은 그들을 둥글게 에워싼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태연한 것은 저 구석자리에 앉아 상자 안을 쳐다보고 있는 검은 남자 뿐이었다. 저 자식, 간 줄 알았는데 아직 안 갔네? 맨 앞줄에서 디디칸을 발견한 로난이 그에게 다가갔다.
“어이, 디디칸.”
“···왔냐. 면목이 없네.”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저런 시정잡배들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릴 만큼 격이 낮은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동네 대장간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 저항도 못하고 행패를 바라보고만 있는 모습도 비슷했다. 디디칸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맞는 말이지.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아. 독룡의 부하들이 지금 올 줄이야.”
“드라하비에가 뭐 하는 놈인데?”
“용의 도시 아드렌에 기거하는 드래곤이야. 녹색 독니라는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기도 한데, 한 달 전에 오백 명 분의 극광 무기를 만들라고 멋대로 의뢰를 넣었지. 터무니없는 요구야.”
지금 장인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 있는 사람만으로는 드라하비에라는 뒷배를 감당할 수 없었다.
“허.”
이야기를 듣던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다른 종족도 아닌 드래곤이 범죄 조직을 만들다니, 이건 또 처음 듣는 경우였다.
“드래곤이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고? 그 잘나신 종족이 왜 굳이?”
“나야 모르지. 원래는 파샨티 군도가 주 활동지였는데 대륙으로 슬금슬금 영향력을 뻗치고 있어. 아드렌의 용왕이 한번 제재할 만도 한데···.”
디디칸의 설명이 이어졌다. 녹색 독니의 구성원은 대부분 인간이나 수인 등의 필멸자 종족이었다. 그들은 드라하비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보상으로 금품이나 각인을 받는다고 했다.
“각인?”
“그래. 드래곤이 자신의 힘을 나눠 주는 거야. 흡혈귀가 권속을 늘리는 것과 비슷한 행위지. 저 문신이 그 증거야.”
디디칸이 손가락을 뻗어 덩치들을 가리켰다. 모가지가 기다란 드래곤의 형상이 그들의 목덜미와 팔뚝에 새겨져 있었다. 녹색 독니의 간부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으로, 드래곤 입장에서는 지극히 미미한 힘만 나눠 줘도 충분한 효과가 나왔기에 가성비가 매우 좋은 보상이라 했다.
불현듯 검은 남자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분명 첫 번째 불에게 각인을 받았느니 어쩌니 했었다. 첫 번째 불이라면 나바르도제를 칭하는 말일 텐데.
‘이것도 각인으로 쳐야 하나?’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극히 미미한 힘을 나눠주었다기엔 당시의 나바르도제는 상당히 힘들어했었다.
‘일단 문신이 없는 걸 보니 각인은 아닌 것 같은데. 애당초 그 시커먼 자식은 뭐지?’
로난이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큼직한 은촛대 하나가 아데샨을 향해 날아왔다.
“뭣···!”
화들짝 놀란 그녀가 몸을 숙이려는 차였다. 로난의 모습이 잠시 흐려졌다. 콰직! 직선으로 날아오던 촛대가 공중에 멈췄다. 아데샨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로, 로난?”
로난이 어느새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핏줄이 불거진 손에는 은촛대가 쥐어져 있었다. 청년의 멱살을 잡고 있던 여인이 기가 막힌다는 투로 말했다.
“하, 막았어?”
촛대를 던진 것은 그녀가 한 짓이었다. 로난의 입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새나왔다.
“뭐야.”
“운 좋게 막았으면 당장 네 옆에 있는 계집 면상 치워! 나는 예쁜 것들을 보면 부숴 버리고 싶으니까!”
여인이 아데샨을 가리키며 외쳤다.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좆됐음을 감지한 디디칸이 로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 이봐. 진정해. 아무리 미미한 양의 힘만 받았다지만 일단은 용이라고.”
“맞아 로난. 나, 나는 괜찮아. 지금은 무기도 없잖아, 응?”
아데샨도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이미 로난의 머릿속에서는 무언가 끊어져 있었다. 잘못했으면 그녀가 다칠 수도 있었다 생각하니까 참을 수가 없었다. 땡그랑. 손 모 양을 따라 우그러진 촛대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돼지새끼가.”
“돼, 돼지? 설마 그거 나한테 한 말이냐?”
여인이 헛웃음을 쳤다. 옆에 있던 염소 수염이 팔뚝을 걷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돌로 이루어진 바닥이 패임과 동시에 로난의 형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디디칸이 헛숨을 들이키는 찰나였다. 콰아아앙! 멱살을 쥐고 있던 여인이 공성추에 치인 것처럼 뒤로 날아났다.
“커어억!!”
“뭐, 뭐야?!”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몸이 앞으로 접힌 채 날아가던 여인은 탁자와 의자를 비롯한 가구들을 때려부수며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겨우겨우 상체를 일으킨 그녀가 피를 토했다.
“커헉, 허어억! 이, 이게 무슨···!”
“일어나. 돼지년아.”
로난이 말했다. 잠시 사라졌던 그는 조금 전에 여인이 있었던 자리에 서 있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른 다리 위로 금색 잔상이 일렁이고 있었다. 힘을 강화시켜주는 바렌의 오러였다. 발차기에 직격당한 여인의 복부는 로난의 신발 모양으로 음푹 꺼져 있었다.
“돼지 둘 잡는 데는 칼도 필요 없어. 덤벼.”
“내,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커억!”
몸을 일으키려던 여인이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못 일어날 만 했다. 갈비뼈가 박살나는 감촉이 발끝을 타고 선명하게 느껴졌었으니까. 아데샨이 외쳤다.
“로난! 조심해!”
“뒈져라!”
로난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염소 수염의 주먹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거센 풍압이 앞머리를 뒤집었다. 마나를 듬뿍 머금고 있는 것이 맞았다가는 틀림없이 얼굴이 곤죽처럼 변해 버릴 터였다.
‘맞는다면 말이지.’
로난이 픽 웃었다. 그는 고개를 비트는 것으로 가볍게 주먹을 피했다. 염소 수염이 당혹성을 내뱉었다. 곧바로 몸 전체를 회전시킨 로난이 그의 옆구리에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허억.”
염소 수염이 피를 토했다. 콰아아앙!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몸뚱어리가 홀의 구석에 처박혔다. 감촉으로 미루어 보건데 저쪽도 성치는 못할 것 같았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킨 여인이 경악을 터트렸다.
“네, 네놈이 감히!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그러게 왜 사람 얼굴에 촛대를 던지고 그래.”
바닥에 침을 뱉은 로난이 여인에게 다가갔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두들겨 줄 생각이었다.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오냐, 이렇게 된 이상 다 죽여주마. 드라하비에 님의 힘을 목도해라!”
“오?”
한순간 여인의 목덜미에 있던 문신이 빛을 발했다. 얼굴이 뒤틀리며 주둥이가 길게 튀어 나왔다. 두꺼운 꼬리, 급속도로 팽창한 육체가 옷을 찢으며 튀어 나왔다.
하지만 딱히 꼴리지는 않았는데, 원래 못생긴 돼지인 것도 있었지만, 파충류를 연상케 하는 비늘이 몸 곳곳을 뒤덮고 있어서였다. 흉측한 몰골을 본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으.”
“흐하하! 어떠냐!”
머지않아 변신을 마친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크업한 웨어 악어처럼 변한 그녀의 키는 못해도 4m는 되어 보였다. 배의 상처는 어느새 완전히 나아 있었다.
‘이건 뭐 하나 들어야겠는데.’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육탄전으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체급 차이가 많이 났다. 기운도 몇 배나 강해진 것이, 안전하게 잡으려면 고기 써는 칼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죽어라! 네놈 때문에 이 대장간은 망하는 거다!”
“에이, 귀찮게.”
웃어젖히던 여인이 팔을 쳐들었다. 로난이 바닥에 떨어진 유리 파편 하나를 집어 드는 차였다. 불현듯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끄하아아아아악-!!”
“뭐야?”
여인과 로난이 동시에 멈춰섰다. 내장을 산 채로 뽑아야 날 법한 소리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소리가 난 곳으로 쏠렸다. 여인의 동료였던 염소 수염이 무릎을 꿇은 채 비명을 질러 내고 있었다.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저건···!”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어느새 일어선 검은 남자가 왼손으로 그의 얼굴을 움켜쥐고 있었다. 붉은 눈동자 속의 동공은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저 덩치를 한 손으로···!”
“거, 검은 남자 맞지? 그 난리를 피워도 안 나타나던 친구인데.”
“왜 갑자기 화가 난 거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농성전에도 침묵하던 사내가 노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진짜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문득 의문을 품던 로난의 시선이 그의 뒤편에 놓인 커다란 상자로 향했다.
“설마.”
“잡룡의 부산물이 감히 더러운 피를 묻히다니···.”
검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로난이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왠지 저 작자가 나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급스러운 상자의 표면에는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너, 너는···?”
여인의 눈이 커졌다. 누군지 정체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그때 얼굴을 쥐고 있던 사내의 손에 굵은 힘줄이 불거졌다. 빠드득! 얼굴뼈가 으깨지는 소리가 중앙 홀에 울려 퍼졌다.
“흐아아악! 어, 얼굴이!”
염소 수염은 거품까지 물어가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 처절한 비명이 여인의 정신을 돌려 놓았다. 그녀가 쿵쿵거리며 달려들었다.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덩치에 비해서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였다. 남자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여인을 힐끔 바라본 검은 남자가 얼굴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푸확! 염소 수염의 머리가 물풍선처럼 폭발했다.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그라함!”
극악무도한 광경을 본 여인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아무래도 그라함이 사내의 이름이었던 것 같았다. 동료를 잃은 그녀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노기 어린 포효를 내지른 여인이 몸을 웅크렸다.
“네놈이 감히-!!”
비늘 돋은 몸뚱이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자세를 보아하니 몸을 용수철처럼 펼치며 돌진할 심산이었다.
결국 어디 하나를 부술 생각인가. 준비 동작을 마친 여인의 몸이 앞으로 쏘아지려는 찰나였다. 검은 남자의 손이 흐릿해지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
로난의 눈이 커졌다. 한순간이지만 동작을 놓치고 말았다. 돌진하려던 여인의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새나왔다.
“···컥.”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은으로 만든 촛대 하나가 그녀의 뒤통수를 부수고 빠져나와 있었다. 벌어진 아가리 깊숙이 쑤셔박힌 촛대는 여인이 아데샨에게 던졌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커···억.”
쿵! 천천히 기울던 여인의 몸뚱어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두 구의 시체를 바라보던 검은 남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버러지들이.】
적막이 내려앉았다. 그는 코트 앞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 묻은 손을 닦기 시작했다.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한순간이지만 카탄의 작업실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운이 새나왔다 사그라졌다.
“우웁···!”
“이, 이건 정말 너무하군.”
곳곳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손을 전부 닦아낸 검은 남자가 상자를 열었다가 닫았다. (당연하게도)내용물에는 이상이 없었는지 더 이상의 지랄을 떨지는 않았다. 우연히 그와 마주친 로난이 입을 열었다.
“···당신, 드래곤이지?”
“네게는 흥미가 생겼다. 기억해 두지.”
“뭐라고?”
로난이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검은 남자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침묵은 그가 오로라 스칼을 벗어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쿵! 출입문이 닫히고 나서야 겁에 질린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