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25)
228. 바닷길, 용의 도시로(1)
#228
“커억! 커어억”
로난이 구역질했다. 위장을 걸레처럼 쥐어짜는 것 같았다. 원래는 상쾌해야 할 바닷바람도 구정물처럼 역겹게 느껴졌다. 옆에서 비틀거리던 슐리펜이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
“······역시 신체에 부담이 가는군.”
“우에에에! 우에!”
아셀은 나무를 붙잡은 채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있었다. 이걸로 세 사람 중 구토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물 섞인 침을 뱉은 로난이 사납게 중얼거렸다.
“제도로 돌아가면···허억, 이 스크롤을 만든 놈의 다리를 부러뜨릴 테다.”
“우으···우으으으···너무해···이건 정말···.”
아셀이 울먹거렸다. 세 사람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남부의 탄드레이 항에 도착했다.
미리 준비한 다섯 장의 스크롤은 남김없이 소모되었다. 스크롤을 펼칠 때마다 변화무쌍하게 변모하던 풍경의 잔상이 아직도 눈앞을 떠다니는 듯했다.
하지만 일찍 도착한 것이 무색하게 그들은 벌써 삼십 분가량 같은 자리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연속된 공간 이동 마법으로 말미암은 부작용 탓이었다.
로난은 크라티르나 나바르도제의 공간 마법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부작용을 고려하더라도 다른 이동 수단과는 비할 바 없이 편리했지만.
“어쨌든, 도착했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여명이 막 움트려는 검푸른 하늘 아래로 탄드레이 선착장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밤바다와 야자수, 제도보다 한결 후텁지근한 공기가 그들이 목적지를 올바르게 찾아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저 총각들은 아직도 저러고 있군. 어디 아픈가?”
“아니,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니까!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몇몇 이들이 로난 일행을 보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항구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야성미 넘치는 행색으로 미루어 보아 대부분은 어부 같았다.
중간중간 그들의 아내나 딸로 보이는 여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역시 남부 출신이라 그런가 여러모로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구릿빛 피부와 양감의 조화란! 로난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역시 나는 남부에 태어났어야 했어.”
“나, 나쁘지 않았을지도.”
아셀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내들의 유대감이란 그런 법이었다. 오직 슐리펜만이 번뇌를 떨쳐 내려는 것처럼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다. 푸른 피의 고결함이란.
그들은 곧바로 선착장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마음만 같으면 남부의 밤 문화에 발이라도 담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머지않아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로난이 손을 흔들었다.
“어이, 이르.”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타르간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다소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부둣가 앞에 서 있었다. 세 사람에게 배를 넘겨 주기 위해 미리 온 탓이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정말 내가 안 가도 괜찮은 건가.”
“그래 인마. 이걸로 차고 넘치게 충분하니까 공부나 열심히 하고 있어.”
로난이 손사래를 쳤다. 애초에 이타르간드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한창 바쁠 시기인 신입생이라는 것은 제쳐 두더라도 나바르도제의 혈족이라는 지위상 아드렌에서는 무조건 눈에 띌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말뜻을 눈치챈 이타르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확실히 그게 바른 판단 같군.”
“마음만 받을게. 그래서 이게 우리가 타고 갈 배냐?”
로난이 이타르간드의 뒤에 있는 범선을 가리켰다. 기껏해야 스무 명 정도를 태울 법한 작은 슬루프였다. 그가 이전에 타고 다니던 붉은 갤리온과 비교하면 검독수리와 병아리 수준의 크기 차이가 났다.
“취향이 검소해졌네. 하긴 전에 타던 건 너무 요란했지.”
“얕보지 마라. 크기만 컸던 지난번의 나무토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배니까. 나의 붉은 선풍은 선원이 한 명도 없어도 자동으로 모든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이타르간드가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이 붉은 선풍이라는 슬루프야말로 마도 공학의 결정체이자 항해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라 설명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잘 모르겠지만, 재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로 좋은 배인 것 같았다. 로난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맙구만. 이런 좋은 배를 빌려주다니.”
“네 몸이라 생각하고 타라. 생채기라도 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
“그래 그래. 걱정하지 마.”
로난이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험하게 다룰 생각은 없었다. 아드렌까지는 기껏해야 여드레가량이 소요된다는데, 설마 그 짧은 기간 안에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그와 일행이 막 승선하려던 차였다. 이타르간드가 말했다.
“잠깐, 한 가지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뭔데?”
“나도 아드렌에 간 지 오래되서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나의 종복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떠들고 다니지 않는 편이 좋을 거다.”
표정과 말투가 진중했다.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유치한 정치 문제다. 지금의 용왕 아지다하카는 어머니께 굉장한 열등감을 품고 있는 인물이거든. 어머니의 부재가 길어진 지금이라면 괜한 트집을 잡아 너희를 괴롭힐 가능성이 있다.”
“드래곤 로드의 트집이라. 그것참 무섭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라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숙식 거부나 강제 추방에서 끝나면 다행인 수준이겠지.
“요, 용왕이?”
“좋은 소식은 아니군.”
뒤에서 듣던 두 사람도 반응을 보였다. 물론 별다른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군말 없이 배에 올라탔다. 출항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다녀올게.”
“종복 된 자로서 내 명예를 더럽히지 마라. 원하는 바를 이루고 돌아오기를.”
로난이 이타르간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부둣가에 묶인 홋줄을 푸는 순간 천천히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한 태양이 바다의 동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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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렌이 자리한 곳은 백경해라 불리는 바다의 한복판이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남녘의 바다와는 달리 공허하게마저 느껴지는 야청색이 물결치는 곳이었다.
로난 일행은 출항 후 닷새째 아침에 백경해에 진입했다. 육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햇살이 갑판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고대의 성처럼 거대한 적란운이 지평선 위를 부유하고 있었다.
“젠장, 이 더위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로난이 투덜거렸다. 상의는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소금기 섞인 바람이 맨살에 부딪히고 있었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피부는 나비로제와 비슷한 구릿빛으로 익어 있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제도와는 달리 남국의 바다는 여름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 기둥 옆에서 책을 읽던 아셀이 입을 열었다.
“여, 여기로 오면 시원한데···.”
“그건 낭만이 없잖아. 낭만이.”
로난이 쯧쯧 혀를 찼다. 전생에도 이런 먼 바다까지 나와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이 항해를 날것으로 만끽하고 싶었다. 순풍에 부푼 돛을 바라보던 로난이 감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건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그 도련님이 자신 있던 이유가 있어.”
“으응. 진짜로.”
아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타르간드의 말마따나 이건 정말 굉장한 배였다.
조타나 돛을 접고 펴는 것처럼 일상적인 행동은 물론, 폭풍우나 큰 파도를 조우하는 것처럼 돌발적인 사태에도 알아서 척척 대응했다. 이미 아드렌이라는 목적지가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이 신경 써야 하는 것은 혹시 모를 적의 기습이나 그날 먹을 식사밖에 없었다.
“계, 계속 이러면 좋겠다.”
“그러게나 말이다.”
아셀이 중얼거렸다. 로난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출발할 당시 품은 비장한 각오도 닷새간 이어지는 같은 풍경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해이해지기 마련이었다.
간간히 마주치던 어선이나 무인도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고래나 날치 떼 같은 해양 생물과의 조우만이 변주곡 역할을 해 주었다.
세 사람은 이 평화가 썩 마음에 들었다. 아드렌에서 개고생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적어도 가는 동안에만큼은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기울어가던 해가 정수리 위에 걸릴 무렵이었다. 뱃머리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슐리펜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섬이다.”
“엉? 정말로?”
해먹에 누워 있던 로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의 서쪽 난간에 가 보니 정말로 암녹색 덩어리들이 지평선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진짜네. 그것도 꽤 큰데.”
“이름이 있는 섬처럼 보이는군.”
덩어리가 여러 개인 걸로 보아하니 군도였다. 아쉽게도 붉은 선풍의 항해 경로와는 벗어나 있었다. 뒤늦게 다가온 아셀이 자신의 몸통 만한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파샨티 군도라는 곳이래.”
“파샨티 군도?”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언젠가 한 번 스쳐 지나가듯 들은 이름이었다. 머지않아 오로라 스칼에서의 일을 떠올려낸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하.”
분명 독룡 뭐시기의 부하라는 놈들의 본거지 되는 섬이었다. 조직 이름이 녹색 엄니였던가. 섬을 바라보던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은 놈들.”
드래곤이 보스로 군림하는 범죄 조직이라니, 엮이는 것을 상상만 해도 넌더리가 났다. 나머지 두 사람에게 녹색 엄니와 독룡의 이야기를 해 준 그가 입을 열었다.
“뭐, 그런 배경을 가진 섬이더라고.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그냥 조용히 가자.”
“으, 응.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아셀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배는 아드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였다. 로난이 하얗게 질려 있는 그의 등을 두들기며 웃었다.
“너무 쫄지 마 인마. 별일이야 있겠어?”
“으, 응. 역시 그렇지···?”
아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간 세 사람이 하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슐리펜은 검을 손질했고, 로난은 물구나무를 선 채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아셀이 읽던 부분을 마저 읽기 위해 바쥬라를 펼치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앙!! 고막이 파열될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선체가 요동쳤다.
“흐이야아아악!”
“시발, 뭐야?!”
아셀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올랐다. 로난과 슐리펜은 거의 동시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배의 중심을 담당하는 마스트는 보이지 않는 야수가 물어뜯은 것처럼 음푹 패여 있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바닷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포, 포, 포, 폭탄?”
아셀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때 천천히 기울던 마스트가 갑판 위로 쓰러졌다. 쾅!! 아름드리나무보다 두꺼운 기둥은 갑판과 선실 지붕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로난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생채기라도 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던 이타르간드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니미.”
“뭐, 뭐지?! 어디서···!”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른 아셀이 미어캣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휘리릿-! 어디선가 휘파람과 비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슐리펜이 검을 휘둘렀다. 콰광! 배와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상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바다 저편을 응시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섬 쪽이다. 기척을 감추는 데 능숙하군.”
“뭐?”
로난이 그의 옆으로 달려갔다. 과연 파샨티 군도 쪽에서 세 척의 범선이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전부 붉은 선풍보다 몇 배는 덩치가 큰 갤리온이었다.
모든 배의 앞머리에는 지독히도 못되게 생겨 먹은 드래곤의 선수상이 떡하니 붙어 있었다. 단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챈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 시발.”
“여기는 독룡 드라하비에 님의 영해다! 앞서 가는 배는 당장 멈춰라!”
그의 예상을 방증하듯 범선 측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대한 조용히 지나간다 했는데 설마 이걸 걸릴 줄이야. 포탄도 저쪽에서 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 된 이상 조져 놓거나 따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셀은 가쁜 호흡을 내쉬며 부러진 마스트를 원위치로 복구시키고 있었다. 한숨을 푹 내쉰 로난이 슐리펜을 돌아보며 말했다.
“후···내가 할까. 아니면 니가 할래.”
“이미 한 척은 끝냈다.”
“뭐라고?”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황급히 시선을 내린 그는 슐리펜이 쥐고 있는 칼자루에 검신이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눈치챘다.
로난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스각-! 바람이 한결 거세게 불어오나 싶더니 선두에서 오던 범선이 세로 방향으로 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