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28)
231. 바닷길, 용의 도시로(4)
#231
흉악한 기척은 헷갈리려야 헷갈릴 수 없었다. 오로라 스칼에서 보았던 검은 남자의 마나였다. 칼자루를 쥔 팔을 타고 소름이 올라왔다.
‘설마 아직 주변에 있나?’
정체를 모르는 이상 굉장히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로난이 다급하게 아셀과 슐리펜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주변 조사 한 번만 해 줘. 빨리.”
“지, 지금?”
“그래. 급해.”
두 사람은 의아해하면서도 지시에 따랐다. 아데샨과 더불어 필레온 아카데미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탐지망 두 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눈을 감고 있던 아셀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바, 반경 5km 내에는 아무도 없어. 확실해.”
“반경 3km···크흠.”
뒤따라 말하려던 슐리펜이 입을 다물었다. 분하다는 듯이 아셀을 힐긋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탐지 능력은 아셀 쪽이 더 뛰어난 것 같았다.
“다행이군.”
로난은 그 보고를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볼일을 마치고 어딘가로 떠난 모양이었다. 드라하비에의 시체를 내려보던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발, 뭐에 당한 거야?”
목과 몸이 이어지는 부분. 시원하다 느껴질 정도로 뻥 뚫린 구멍 안쪽에서는 피와 바닷물이 울걱울걱 솟아나고 있었다. 구멍을 제외하고 상처가 없는 것을 보아하니 일격에 당한 모양이었다.
덩치로 보나 비늘의 두께로 보나 란도하이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드래곤인데, 이렇게 간단하게 간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가 조금 더 얼굴을 가져다 대려는 차였다.
【커···헉!】
“썅, 깜짝이야.”
저 멀리 늘어져 있는 드라하비에의 머리가 꿈틀거렸다. 고래가 물을 뿜는 것과 비슷한 소리에, 당황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틀림없이 죽은 줄만 알았는데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드라하비에의 목을 밟고 이동한 그가 건너편의 날개 위로 도약했다.
왼쪽 날개가 얼굴 앞에 놓인 형상이라 마주보듯이 구도를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큰 용이었다.
야자 열매만큼 거대하고 샛노란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부터가 중요했다. 목청을 한 번 가다듬은 로난이 입을 열었다.
“드라하비에 님. 괜찮으십니까?”
【그···렇다. 너는, 조직원인가?】
“그렇습니다. 이런 부상이라니,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하신 겁니까.”
【아···아아. 허억, 다행이군. 놈은 떠났는가···.】
로난은 태연하게 녹색 엄니 조직원 흉내를 냈다. 아셀과 슐리펜이 마른침을 삼켰다.
누워 있는 드라하비에는 아직 그의 날갯죽지 위에 쓰러져 있는 아들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피를 왈칵 토해낸 그가 말을 이었다.
【내 아들···란도하이델에게 전해라···아드렌에서 멀리 도망치라고···그 창, 그 창은···.】
“네? 창이라니요?”
【놈은···그걸로, 폐하를 시해할 생각이야···어쩌면···더한 짓도···.】
“폐하? 용왕을 말하는 겁니까? 조금만 더 크게 말해 주세요.”
로난이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윽고 드라하비에는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이 독룡이···바다의 나비여···아아···.】
제정신이 아닌 것이 임종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창? 창이라. 별안간 오로라 스칼에서의 일이 아른아른 떠올랐다.
‘그 상자.’
디디칸의 말에 따르면 검은 남자는 기둥인지 창인지 헷갈리는 무기 하나를 의뢰했다고 했다. 병기가 들어 있는 상자는 장정 여섯 명이 붙어서야 겨우겨우 옮길 수 있었다. 로난은 그가 상자에 핏방울 하나가 묻은 걸로 녹색 엄니 단원 두 명의 머리를 터트려 버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거기에 맞은 건가?’
상자 안을 직접 본 적은 없었기에 확실하지는 않았다. 다만 가설이 맞다면 그야말로 흉악무도한 무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 중 하나라고 알려진 드래곤의 비늘을 종잇장처럼 꿰뚫어 버리다니. 로난이 다소 조급함이 묻어나는 투로 질문했다.
“그 시커먼 놈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누구죠?”
【대업···눈앞인데···후회로···점철된···.】
“이봐, 독룡!”
【란도···하이델···.】
로난이 채근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이름을 읊조린 드라하비에의 눈에서 빛이 사그라졌다. 머리를 긁적거리던 로난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도대체 뭐야, 시발···.”
당췌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검은 남자에 정체불명의 무기, 용왕 시해 계획까지. 하나씩 받아들이기도 버거운 이야기가 우르르 쏟아지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단 아드렌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란도하이델을 살피던 슐리펜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쪽은 즉사했다. 심장이 없는 걸 보아하니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겠군.”
“그래. 아들이 죽은 것을 못 본게 다행이라 해야 하나···.”
란도하이델은 심장과 그 부근이 통째로 도려내 져 있었다. 드라하비에보다 몸집은 훨씬 작은데 구멍의 크기는 같아서 상대적으로 더 심각해 보였다. 두 용의 주검을 바라보던 로난이 혀를 찼다.
“에이, 젠장.”
적으로 돌아서는 것이 예정된 상대가 사라진 것은 호사였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것도 아버지와 아들이 포개져서 죽다니. 적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굉장히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물론 그건 그거고 할 일은 할 거지만. 주검들을 살피며 견적을 뽑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아셀. 빈 병이나 통 같은 거 있으면 죄다 이쪽으로 옮겨 줘.”
“으응? 병은 왜?”
“독을 좀 받아 가야지. 이빨도 뽑고. 아까 보니까 쓸모도 많을 것 같더만.”
“아, 악마···!”
“그럼 장례라도 치러 주랴?”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로난은 칼을 들어 명이 다한 독룡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소재를 챙길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바다 위에서는 독기가 끓어오르고 있었기에 작업이 가능한 것은 로난 뿐이었다. 그는 오크통 다섯 개 분량의 독액, 이빨, 가죽 등의 잡다한 부산물을 챙겼다. 바람으로 독기를 날려 보내던 슐리펜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역시 흥미롭군.”
“음?”
환청이라 해도 좋을 작은 목소리였다. 슐리펜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갑판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감각을 곤두세워 봐도 마찬가지였다.
“···잘못 들은 건가.”
“어이, 바람 좀 계속 보내줘. 독기가 올라온다.”
슐리펜이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작업이 끝난 것은 그로부터 세 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붉은 선풍 호가 다시 출항할 때까지 검은 남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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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난 일행을 태운 붉은 선풍 호는 그로부터 이틀을 더 달렸다. 급작스러운 폭풍우를 마주치는 바람에 시간이 하루 지체되고 말았다.
그래도 엉망이 되었던 선체가 조금은 깨끗해졌다. 거센 비바람은 갑판과 돛대에 묻은 핏자국을 남김없이 씻어냈다.
폭풍이 떠나간 뒤로는 줄곧 맑은 날이 이어졌다. 항해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의 저녁이었다. 순풍을 받으며 나아가던 배가 갑자기 멈춰 섰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군.”
“도착했다고? 아무것도 없는데?”
로난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육지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남국의 석양만이 지평선에 걸린 채 바다를 불사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독을 너무 많이 마신 건가.”
로난 일행은 다시 이타르간드가 그려 준 지도를 살폈다. 세 사람 모두가 장님이 된 것이 아닌 이상 여기가 확실했다. 슬슬 의심의 칼날이 이타르간드를 향해 돌아갈 무렵이었다.
“잠깐만.”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이 로난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거의 모든 용은 날개가 달렸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적란운이 하늘의 반절 정도를 가리고 있었다. 상당히 높이 떠 있는것 같은데도 저 정도의 규모라면 실제 크기는 제대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설마.”
“로, 로난. 내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겠지?”
“맞는 것 같은데.”
무언가를 직감한 세 사람이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허무맹랑한 발상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로난이 아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섬세하게 해 줘.”
“히이이익! 저, 정말로?”
“그럼 딱히 방법이 없잖냐. 너를 안 데려왔으면 정말 어쩔 뻔했나 싶다.”
아셀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로난은 완고했다. 외부 손님 전용 입구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드래곤에게 그런 배려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 그럼 노력해 볼게에···.”
이내 체념한 아셀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터덜터덜 걸어간 그가 마스트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정밀한 조작을 위한 나름의 준비인 것 같았다. 눈을 감은 그가 주문을 영창함과 동시에 선체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로난이 슐리펜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자고.”
“음.”
슐리펜이 회답하듯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상승하던 슬루프는 머지않아 적란운 속으로 진입했다. 자욱한 구름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사방을 경계했다. 공중에서 피습이라도 당해서 아셀의 집중이 깨졌다가는 굉장히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할 터였다. 그들의 무기는 당장에라도 검기를 발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으윽···.”
이십 분 정도를 상승하던 와중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던 아셀이 옅게 신음했다. 떠오르던 슬루프가 살짝 흔들렸다.
“왜 그래?”
“가, 강대한 기척들이 느껴져. 이 너머에 아드렌이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로난이 정신을 집중했다. 과연 주위의 기류가 바뀐 것이 느껴졌다. 대화, 날갯짓, 작은 포효···적란운 너머에서 번져오는 소리가 예민해진 고막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위협은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난 찰나였다. 별안간 사방을 뒤덮던 구름의 장막이 사라지며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정체되어 있던 석양이 갑판 위로 쏟아졌다. 로난과 슐리펜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오, 시발.”
거대한 섬 하나가 하늘 한복판에 떠올라 있었다. 들쑥날쑥 솟아난 웅장한 건물들이 노을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언젠가 로난이 보았던 드리무어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지만 규모에서는 수십, 수백 배의 차이가 났다. 각양각색의 드래곤이 섬 주변의 상공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제야 눈을 뜬 아셀이 감탄을 흘렸다.
“세, 세상에···!”
“고생했다. 아셀.”
로난은 장하다는 듯이 아셀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드래곤들에게 이런 미적 감각이 있었을 줄이야. 멍하니 배를 움직이던 아셀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이제 어디로 가?”
“입국 심사를 받아야겠지. 이건 어딘지 알고 있어.”
이타르간드는 섬의 북쪽에 유일한 입국 심사대가 있다고 했다. 아셀이 손을 움직이자 뱃머리가 돌아갔다. 아직 어린 해츨링들이 배 주변을 따라서 날아다니며 깔깔 웃어댔다.
“아하하, 인간이다! 인간!”
“안녕안녕!”
그들은 한참이나 구름 위를 항해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과연 가교를 연상케 하는 넓고 긴 석조 부두가 북쪽 면의 한복판에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5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새하얀 오벨리스크가 이곳이 특별한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외부에서 온 이들을 검문하는 입국 심사대였다.
부두에는 비공정이나 그리폰 같은 동물을 이용한 탈것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폴리모프를 하지 않은 드래곤도 통과할 수 있을 법한 거대한 대문이 섬과 이어지는 부두의 끝 지점에 드리워 있었다.
아셀은 부두 위에 배를 착륙시켰다. 배가 눕듯이 기운 모습이 추하기는 했지만 비공정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 일주일 만에 하선한 그들은 대문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우리 말고 더 있었네.”
대문 앞에는 먼저 온 걸로 보이는 인간 대여섯 명이 서 있었다. 화려하고 생소한 복장으로 보아 타국의 전령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보초로 보이는 덩치 두 명이 대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머리에 기다란 관을 쓴 노인이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저 노인이 심사관인 듯했다.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슐리펜이 입을 열었다.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군.”
“엉?”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경을 조금 집중해 보니 그의 말마따나 옥신각신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썩 돌아가라. 지금은 외부의 방문객을 받고 있지 않다.”
“그, 그럴 수가! 여섯 달 전부터 잡은 약속이란 말이오!”
“그거 안 됐군. 하지만 들여보내 줄 수는 없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정식으로 항의하겠소!”
전령으로 보이는 사내가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심사관도 드래곤이거나 그 종복일 텐데 겁도 없이 저러는 걸 보면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보초들은 기계처럼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보다 못한 심사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초 사이로 걸어 나온 그가 전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심사관 바나르티에일세.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겐가?”
“이, 이제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타났군. 말했잖소, 우리의 왕에게 직접 명령을 들은 거라고!”
심사관을 본 전령이 목소리를 높였다. 바나르티에라는 노인은 가만히 그의 불평불만을 경청했다. 전령이 몸짓까지 해 가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와중이었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오. 엄연히 국가 간의 결례란 말이오. 우리의 왕에게···!”
“그래. 잘 알았소.”
별안간 심사관의 입이 쩍 벌어졌다. 보초들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콰아아아! 심사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불길이 전령을 덮쳤다. 로난 일행이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히, 히이이이!!”
아셀이 비명을 질렀다. 쇳물처럼 쏟아지던 불길은 삼 초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졌다. 조금 전까지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던 상반신은 흔적도 없이 소멸해 있었다.
쿵. 조용해진 전령이 바닥에 쓰러졌다. 새카맣게 그을린 하반신은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전령의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당장에라도 기절해 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참이나 얼어 있던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버렸다.
아무도 시체를 수습하지 않았기에 불타버린 하반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로난 일행을 돌아본 심사관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다음.”
“···죽이는데.”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과연 악명이 드높을만 한 입국 심사였다. 그가 아셀과 슐리펜을 돌아보며 말했다.
“쫄 거 없어. 우리는 각인이 있잖아.”
“마, 맞지? 그런 거겠지?”
“그래. 우리는 그 유명하신 이타르간드 님의 종복이라고. 겁먹지 마.”
아셀이 울먹거리며 물었다. 슐리펜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린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럼 가기 전에 한 번만 확인하고 가자고. 어디 한 번 각인 좀 보여줘 봐.”
“여, 여기···!”
아셀이 소매를 걷었다. 슐리펜은 말없이 손등을 보여 주었다. 이타르간드를 형상화한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로난이 셔츠를 들췄다.
“좋아, 그럼 나도···.”
꼴에 폼을 잡고 싶어서 등에 새겨 달라 했었다. 심사관은 갑자기 자신을 향해 배를 까는 로난을 그의 등을 확인한 두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
“여기 새긴 게 분명한가.”
“그게 뭔 소리야. 어제까지 너희도 봤었잖아.”
어째 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로난이 등 쪽으로 손을 뻗었다.
각인이 된 부위는 아주 약간 들어가 있어서 촉감으로도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있었다. 등을 더듬거리던 그가 눈썹을 치켜떴다.
“엥?”
각인이 만져지지 않았다. 피부와 그 아래 올라온 근육의 감촉만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아셀과 슐리펜은 텅 비어 있는 로난의 등을 벙찐 채 쳐다보고 있었다. 참다 못한 심사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못 들었나?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