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31)
234. 검은 남자(2)
#234
“그래···끄윽, 나바르도제는 어디 있나?”
검은 남자가 말했다. 과음 탓인지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로난은 칼자루를 가볍게 쥔 채 입을 열었다.
“뭐라고?”
“시치미는···네가 그 여자의 힘을 받은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크으···처음에는 각인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예 불씨를 옮겨 받았더군.”
로난의 눈이 커졌다. 아주 그냥 나바르도제랑 관련 있는 사람이라고 광고를 해대고 있었다.
뭐라 대답하려던 그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가게가 소란스러워서 목소리가 새나가지는 않았다.
‘뭐지, 이 새끼?’
다만 한 명은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말없이 컵을 문질러 닦던 주인장이 갑자기 식재료가 든 찬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찬장을 살피던 그가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라디안 치즈가 떨어졌군요. 잠깐 나가서 사 오겠습니다.”
“그냥 있어요 영감님. 저 술 더 마실 거니까.”
“가장 잘 나가는 안주라 어쩔 수가 없어서요. 금방 오겠습니다. 여기 병째로 둘 테니 자유롭게 따라 드시고 계십시오.”
뭐라 말릴 새도 없었다. 주인장은 브랜디 병 하나를 바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가게를 나섰다. 로난이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젠장.’
대화를 듣고 신고하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나바르도제의 관련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겠지. 다급하게 몸을 일으킨 로난이 검은 남자에게 말했다.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도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끅···그러지 말고 앉지. 술도 아직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거 급한 일이 있다니까. 주정은 적당히 부리고···.”
【두 번 말할 생각은 없다. 앉아라.】
불현듯 남자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들불처럼 일어난 위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로난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이 개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쉬릭!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든 로난이 남자의 목을 겨누었다. 범인들은 인지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라만차의 칼끝은 그의 목울대와 종이 한 장 간격을 두고 멈춰 섰다. 시선을 떨군 남자가 검지로 칼날을 톡톡 두드렸다.
“좋은 검이군.”
“계집애처럼 머리나 기른 놈이 어디서 자꾸 무게를 잡아. 한번 해 보자는 거냐?”
로난이 으르렁거렸다. 강해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무시했던 건데, 계속 이딴 식으로 나오면 참아줄 생각은 없었다. 한참을 큭큭거리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역시 재밌는 놈이군. 끄윽, 내게 칼을 겨누다니. 거기다가 싸움도 불사하겠다라···.”
“농담 아니야. 한 번만 더 협박 조로 말해 봐. 너 아니면 나는 죽을 테니까.”
“크크···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무례를 용서해 주마. 일단 앉아라.”
검은 남자가 턱 끝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납도한 로난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금은 어울려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미친놈인 거 같은데. 정보라도 캐내 볼까.’
로난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어차피 지금 주인장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고, 나바르도제를 찾는 걸 보면 뭔가 사정이 있는 듯했다.
나바르도제는 아드렌과도 밀접한 영향을 가진 인물이었으니 어쩌면 쓸만한 정보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로난이 잔 하나를 집어 브랜디를 따랐다. 그리고 남자의 방향으로 미끄러트리듯 건넸다.
“그래. 어디 대화나 해 보자고.”
“그렇게 나와야지.”
검은 남자가 잔을 받았다.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로라 스칼에서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술을 마시면 사람이 변하는 유형인가. 브랜디를 한 모금 마신 남자가 감탄을 흘렸다.
“···이거 괜찮군. 여기 와서 먹은 것 중에 가장 훌륭한데.”
“그거 잘 됐네. 아드렌에는 언제 온 거야?”
“너희랑 같이 왔다. 배가 아늑하니 제법 괜찮더군.”
“뭐가 어째 시발?”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잔을 완전히 비운 남자가 입가를 닦았다. 그는 자신이 붉은 선풍 호에 숨어서 밀항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빌어먹을, 언제 숨어든 거야?”
“글쎄다···어쨌든 네게는 감사하고 있다. 사정이 있어서 아드렌에는 못 들어오는 몸이거든. 끄윽.”
“이상한 놈이네 이거.”
뭐 하는 놈이길래 출입 금지까지 당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 것 같았다. 잔을 채운 로난이 말을 이었다.
“나바르도제, 나바르도제···그 유부녀는 왜 자꾸 찾는 거야? 입국까지 금지당할 정도면 용왕의 끄나풀은 아닐 거 아냐.”
“나는 지금 용왕이 누군지도 모른다. 관심도 없고. 보나 마나 별 볼 일 없는 잡룡이겠지.”
“그렇다면 왜?”
“죽이기 위해서지. 별다른 게 있나.”
남자가 무미건조하게 내뱉었다. 잠시 찾아온 적막 속에서 주변의 소리가 크게 들렸다. 로난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죽인다고? 나바르도제를?”
“뭘 두 번 묻는 거냐. 말 그대로 죽이기 위해서다. 내 목표의 가장 큰 걸림돌이니까 말이지.”
“···진심으로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나바르도제를 직접 본 적은 있어?”
술이 독해서 그런지 헛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로난은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주정뱅이도 제법 강해 보이기는 했지만 절대로 나바르도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 누님은 카인이나 아벨처럼 무언가 규격을 벗어난 존재였다. 검은 남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없지만 그 일족이라면 한 명 죽인 적이 있지. 이름이···가르가렌스였던가.”
“가르가렌스?”
로난의 눈이 커졌다. 분명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구원자 카인의 기억을 여행할 때 보았던 레드 드래곤. 나바르도제의 혈족 중 한 명이자, 구원자에게 뿔을 썰리고 도망친 못난 용이었다.
“그래. 시비를 걸어오길래 죽여버렸지. 뿔도 없는 놈이 제법 싸우더군.”
“···아무런 제재도 안 들어왔나?”
“흥. 제재 따위가 있었을 리가. 누구든지 으름장을 놓으러 왔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을 거다.”
검은 남자가 잔을 비웠다. 일족을 소중히 여기는 나바르도제가 왜 제재를 가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드리무어에서의 일이 바빴거나 뭔가 일이 있었겠지.
‘생각보다 거물인데.’
다만 가르가렌스를 잡은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었다. 아무리 뿔을 잘리고 모지리가 되었다고 해도 레드는 레드였으니까. 물론 나바르도제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지만.
“힘 좀 쓰나 보네. 그래도 나바르도제를 이기지는 못해.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 여자 가슴 한 쪽이 너보다 셀 걸.”
“그건 붙어 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지···끅, 내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비장의 무기?”
“그래. 너도 봤을 텐데.”
로난은 그가 오로라 스칼에서 만든 무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기둥만 한 창 이랬던가.
그 큰 걸 어디에 감췄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처참하게 살해당한 두 독룡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그 비장의 무기라는 걸로 드라하비에와 란도하이델을 죽인 거냐?”
“드라···뭐? 잡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않아서.”
“너무하네. 초록색 용 두 마리 있었잖아.”
“···아아, 그래. 시비를 걸어오길래 성능을 실험해 봤지. 나쁘지 않더군.”
검은 남자가 클클거렸다. 역시 독룡 부자를 죽인 것은 이 새끼 짓이었다. 듣고 보니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드라하비에와 나바르도제의 비늘 두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겠지만, 일단은 드래곤의 비늘과 몸체를 단번에 꿰뚫어 버린 무기였으니. 로난이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나바르도제는 왜 죽이려는 거야. 계획이 뭐길래?”
“나는 발론 제국을 멸망시킬 거다.”
“···뭐?”
“정확히는 그 땅을 향유하는 모든 이를 불구덩이에 처넣는 것이 내 목표다. 오래도 걸렸지. 나바르도제는 제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이니 먼저 치워 두고 시작하려는 거다.”
로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리를 공성추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바르도제를 단순한 장애물로 취급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는 둘째 치더라도, 목표 자체가 너무 뜬금없었다.
“갑자기 제국이 왜 나와···?”
“개인적인 원한이다···끄윽, 그리고 아까부터 신경쓰이던게 하나 있었는데 말이지···.”
별안간 남자가 브랜디를 병째로 들이켰다. 목울대가 한 번 껄떡일 때마다 내용물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정확히 다섯 모금 만에 병을 비운 사내가 입을 열었다.
“푸하···그 검은 어디서 난 거냐.”
“검? 이거?”
로난이 라만차를 들어 보였다. 남자가 병을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쨍그랑! 힘을 이기지 못한 술병이 산산조각나며 유리 조각이 튀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이리 내 봐라.”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드는데.”
【닥치고 내놔라. 확인할 게 있으니까.】
한순간 남자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검은 코트 위로 일어난 살기가 주점을 뒤덮었다. 로난을 자리에 앉으라 위압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커억···!”
“이,이봐 정신 차려!”
그 위압감을 이기지 못한 손님 서너 명이 거품을 물며 졸도했다. 주점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로난의 얼굴이 사납게 굳어졌다.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냐?”
【두 번 말하지 않겠다. 검을 이리 내라.】
로난이 칼자루를 쥐었으나 남자는 완고했다. 흘러나오는 살기 때문에 온몸의 뼈마디가 저릿거릴 지경이었다.
‘갑자기 왜 지랄이지? 베어야 하나?’
로난이 한창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주점 곳곳에서 손님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남자의 어깨 위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볼 수 있었다.
“이봐, 장난이 심하군.”
“술이 다 깼잖아. 싸울 거면 나가서 싸울 것이지, 뭐 하는 짓이야?”
척 봐도 주먹깨나 쓰게 생긴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하나같이 크고 화려한 각인을 새긴 것이 눈에 띄었다. 그들을 슬쩍 돌아본 검은 남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끼어들지 마라, 잡룡의 찌꺼기들아. 죽고 싶은 거냐.】
로난이 흠칫거렸다. 이제 남자의 태도는 오로라 스칼에서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지고 있었다. 잠시 벙쪄 있던 손님들이 헛웃음을 쳤다.
“자, 잡룡의 찌꺼기? 나의 주인 라비엔테라 님을 감히 잡룡이라 부른 거냐?”
“보자보자 하니까. 선을 넘는군. 척 보니 외부인 같은데 어디서 행패야?”
“잡아! 두들겨 패 주자고!”
결국은 이 사단이 났다. 성난 손님들이 하나둘씩 달려들었다. 전방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돌진해오는 사람들은 꼭 물소 떼처럼 보였다. 가만히 그들을 노려보던 검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죽고 싶다면···그렇게 해 주는 수밖에.】
“이런 미친.”
한순간 검은 남자의 손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카아아앙-!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가장 앞에서 달려오던 사내의 눈이 튀어 나올 것처럼 커졌다.
“허, 허어억!”
라만차와 검은 남자의 손이 코앞에서 맞물린 채 비적거리고 있었다. 하얗고 창백한 손은 먹이를 문 상어처럼 칼날을 쥐고 있었다.
털썩. 사내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린 다리 사이로 누런 오줌이 새나왔다. 이 청년이 막아 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분명히 죽었다. 극광의 색채를 머금은 칼날은 남자의 손바닥을 옅게 파고들어 있었다.
‘단단하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슐리펜의 미스릴 롱소드와 격돌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라만차를 응시하던 검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역시 성검이군.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너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로난이 기가 막힌다는 투로 말했다. 성검인 것을 말하지 않았는데 들킨 것은 처음이었다. 강렬한 궁금증이 하나둘씩 고개를 쳐들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제기랄, 쉽지 않군.’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남자에게 잡힌 칼날은 어디 바위틈에 깔리기라도 한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싸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로난이 칼자루를 움켜쥐자 검이 진홍색으로 물들었다. 촤악! 그가 팔을 잡아당김과 동시에 피보라가 튀었다. 짧게 신음한 검은 남자가 뒷걸음질치며 물러섰다.
【큭···!】
“나는 경고했어. 너 아니면 나는 죽는다고.”
로난이 으르렁거렸다. 검은 남자의 손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긴 자상이 그의 손바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내 피부에 상처를 내다니. 역시···!】
검은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법 쓰라릴 상처임에도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달려들던 손님들은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어 있었다. 심호흡한 로난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와중이었다. 불현듯 웬 소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도망쳐.]“···린?”
로난의 눈이 커졌다. 틀림없는 성검 린의 목소리였다. 이전에 오로라 스칼에서 산통을 깬 이후로 처음이었다.
[지금의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어서.]린의 말투는 다소 급하게까지 느껴졌다. 얘가 오랜만에 와서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위험한 놈이라고?
‘잠깐.’
불현듯 어떤 존재의 이름이 로난의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까지 주어졌던 정보가 딱딱 들어맞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의 강함, 검은 코트, 제국에 대한 증오.
“너···설마···.”
【계속하지. 나바르도제의 행방은 팔다리를 뽑은 후에 다시 묻겠다.】
검은 남자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 아래 빛나는 적안은 증오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로난이 뭐라 말을 이으려던 차였다. 콰앙! 갑자기 주점의 천장이 부서지며 거대한 드래곤의 손이 튀어 나왔다. 얼어 있던 손님들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뭐, 뭐야?!”
“드, 드래곤?!”
푸른 비늘로 뒤덮인 손은 황소를 쥘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감이 한순간 깨졌다. 바람처럼 날아든 손아귀가 검은 남자의 몸을 움켜쥐었다.
【찾았다!】
【커억···!】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거대한 손은 그를 쥔 채로 빠져나갔다. 휑하니 뚫린 구멍 너머로 웅대한 블루 드래곤의 몸체가 보였다.
“시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로난이 주점 밖으로 뛰쳐나갔다. 쾅! 그가 문을 걷어참과 동시에 병사 수십 명과 세 마리의 드래곤, 치즈를 사러 나갔던 주인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난과 눈이 마주친 주인장이 소리쳤다.
“젊은이, 괜찮은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아, 최대한 서둘렀는데 무사한 것 같아 다행이군. 설마 저 놈이 우리 가게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네.”
주인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리자 드라하비에와 비슷한 크기의 블루 드래곤이 검은 남자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손아귀 안에 사로잡힌 사내가 이를 한껏 악물고 있었다.
【놔···라···!】
【저항해도 소용없다. 희망을 버려라.】
블루 드래곤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세히 보니 손아귀뿐만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마법진 서너 개가 남자의 몸을 족쇄처럼 감고 있었다. 아무래도 구속 계열의 마법인 것 같았다. 그때 병사들의 뒤편에 있던 화이트 드래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뻔뻔하게도 들어왔군. 몰래 숨어 들어올 거라면 자취를 제대로 감췄어야지. 네놈의 그 오만함이 일을 그르쳤다.】
“심사관?”
로난의 눈이 커졌다. 온몸이 새하얀 용의 목소리는 심사관을 담당하던 노인과 일치했다. 한껏 긴장한 병사들이 창으로 남자를 겨누고 있었다. 본모습으로 돌아온 바나르티에가 검은 남자를 향해 외쳤다.
【마룡 오르세, 너를 밀입국 및 보초 살해 죄로 이 자리에서 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