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32)
235. 검은 남자(3)
#235
【마룡 오르세, 너를 밀입국 및 보초 살해 죄로 이 자리에서 체포한다!】
바나르티에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던 부산스러움이 단번에 사그라졌다. 고양이의 방울 소리를 들은 쥐들이 숨죽이는 것처럼.
【크으으···!】
오르세는 여전히 블루 드래곤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채였다. 그가 몸부림치며 으르렁거리는 노성만이 적막 속에 번득이고 있었다. 창대를 움켜쥔 보초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 오르세라니···정말 내가 아는 그 마룡인가.”
“틀림없이 죽은 줄 알았는데.”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발론의 초대 황제에게 패배한 오르세는 레어를 버리고 서쪽으로 떠났다.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은 오르세의 패배담을 역사보다는 전설에 가깝게 풍화시켜 놓았다. 가만히 그를 노려 보던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퍼즐에 들어맞는 용의자는 한 명뿐이었다. 다만 그것이 너무 허무맹랑한 존재라 기가 막혔을 뿐이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오르세를 만나게 될 줄이야.
“다친 곳은 없나? 저 마룡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다니, 자네도 배짱이 여간내기가 아니군.”
“뭐야, 저 자식이 오르세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처음 가게에 들어온 순간 놈인 것을 눈치챘지. 원래 블랙 드래곤은 기척을 감추는 데 능하지만, 오르세의 기운은 한 번 경험한 사람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거든.”
“그건 그렇죠.”
로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르세의 흉악한 마나는 딱히 구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했다. 주인장이 말을 이었다.
“천 년도 더 지났는데 왜 이제 와서 모습을 드러낸 건지 모르겠군. 또 무슨 흉악무도한 짓을 저지르려고···.”
“그러고 보니 오르세가 왜 아드렌에 출입을 금지당한 거죠?”
“동포를 너무 많이 살해한 탓이지.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오르세가 제국에게 패배했을 당시였는데, 놈을 영입하기 위해 찾아간 아드렌 소속의 드래곤 다섯을 그 자리에서 찢어 죽였어. 그야말로 비극이었다네.”
“미친놈.”
로난이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질이 더러운 놈이었다. 갑자기 급발진하는 면모에서 예상하기는 했는데.
문득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스쳤다. 눈앞의 노인은 천 년도 전의 일을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설마 이 사람도 드래곤인가? 티가 전혀 안 나는데. 팽배한 긴장감이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크으으으···.】
불현듯 몸부림치던 오르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의식을 잃거나 탈진한 것 같았다. 그를 움켜쥐고 있던 블루 드래곤이 피식 웃었다. 벙어리가 되어 있던 병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기, 기절한 건가?”
“그럴 만도 하지. 약화에 구속 마법을 다섯 개씩 채웠는데.”
“방심하지 마라. 조금씩 포위해!”
그들은 창으로 오르세를 겨눈 채 슬금슬금 다가갔다. 심사관 바나르티에가 미간을 좁혔다. 거리의 잡음이 다시 커져가던 무렵이었다. 버들잎처럼 늘어진 오르세의 머리카락 아래로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술이 깼잖나. 버러지들이.】
【뭐?】
블루 드래곤의 눈이 커졌다. 찰나 오르세의 어깨 위로 시커먼 마나가 들불처럼 솟아났다. 그를 구속하던 마법진이 당장에라도 파열할 기세로 점멸하고 있었다.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이봐, 구속을···!】
이상함을 느낀 바나르티에가 뭐라 외치려던 차였다. 콰아아앙! 범람하던 마나가 한순간 응축되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블루 드래곤의 입에서 격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하아악-!】
쿵! 오르세를 붙들고 있던 손가락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비늘 돋친 손가락은 하나하나의 크기가 어지간한 나무만 했다. 뜯겨 나간 단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건.”
로난의 미간이 좁혀졌다. 독룡의 시체에서 본 것과 동일한 흔적이었다. 그때 구속에서 풀려난 오르세가 바닥에 착지했다. 자이파의 언월도와 비슷한, 기둥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대한 창 한 자루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노, 놈이 정신을 차렸다. 모두 위치로!”
“위치로!”
【오르세···!】
병사들이 응전 자세를 취했다. 바나르티에가 이를 악물었다. 본인의 머리카락 색 만큼이나 새카만 창은 기마병들이 사용하는 랜스를 연상케 했다. 나선형으로 굽이치는 창체가 그 주인의 흉악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죽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그 뒤에 나바르도제의 행방을 알아내야겠다.】
오르세가 읊조렸다. 몸 위로 넘실거리던 살기와 마나가 회오리치듯 창체에 휘감겼다. 굉장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왼손을 잃은 고통에 신음하던 블루 드래곤이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크아아악! 네놈!】
파지직-! 거대한 손아귀 가운데서는 푸른빛을 띠는 전격 덩어리가 요동치고 있었다. 넝쿨 같은 전류가 사방으로 확장과 수축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척 봐도 건물 열댓 채 정도는 날려 버릴 위력으로 보였고, 그게 문제였다. 바나르티에가 다급하게 외쳤다.
【잠깐, 라라타시안. 여기서 그런 마법을 썼다가는···!】
이런 좁은 곳에서 쓰다가는 아군까지 싹 날려 버릴 터였다. 하지만 라라타시안라는 이름의 드래곤에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가락이 발치를 나뒹굴고 있는 마당에 그딴 게 대수란 말인가.
【죽어라!】
라라타시안이 외쳤다. 동시에 전격을 휘감은 손아귀가 거친 호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오르세는 피하지 않고 랜스를 들어 응수했다. 콰가각! 산을 밟아서 으깨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라라타시안의 손이었던 고깃덩이가 찢어지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허억···!】
라라타시안이 굳었다. 오른손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촉매를 잃은 전류가 흩어지고 있었다. 곧바로 도약한 오르세가 창을 내질렀다. 푸확! 랜스 끄트머리가 라라타시안의 가슴을 파고드나 싶더니 그의 등 위로 폭발이 일어났다. 검은 빛줄기가 밤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오르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파란 놈들. 피부가 무른 건 여전하군.】
【라, 라라타시안!】
바나르티에가 경악했다. 가슴팍에 뚫린 구멍 너머로 아드렌의 야경이 보였다. 콰광! 천천히 기울던 라라타시안의 몸뚱어리가 거리 위로 쓰러졌다. 뿔이 난 머리통은 노인이 운영하던 주점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아.”
주인장이 머리를 쥐어싸맸다. 지시를 받은 병사들의 몸이 팽창하며 반룡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서른 명 정도 되는 반룡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오르세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쾅! 블루 드래곤의 몸을 걷어차며 도약한 그가 바나르티에게 쇄도했다. 창끝을 앞세우고 날아오는 오르세의 모습은 인지하기조차도 어려울 만큼 빨랐다. 로난이 소리쳤다.
“어이, 심사관!”
【이런···!】
바나르티에가 헛숨을 들이켰다. 가까스로 공격을 눈치챈 그의 뿔이 하얗게 빛났다. 모두 일곱 겹의 방어막이 두 드래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나하나가 고위 마법사들이 수십 분에 걸쳐서 시전할 만한 상급 마법이었다.
‘대단해.’
로난이 감탄했다. 허나 오르세의 능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후욱! 한순간 그의 신형이 안개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방어막이 작동하는 구간을 건너뛰고 바나르티에의 코앞에 나타났다. 바나르티에의 얼굴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블링크라니, 하등 생물이나 쓰는 마법을···!】
【익숙해지기까지 제법 걸렸지.】
오르세는 주저 없이 랜스를 내질렀다. 피하거나 막을 수 없는 거리였다. 보다 못한 로난이 반사적으로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젠장, 귀찮게시리!”
선명한 노을의 색채가 검신을 타고 올라왔다. 나선형으로 뒤틀린 창날이 바나르티에의 심장을 꿰뚫으려던 찰나였다. 스아아···! 주홍색 빛무리가 오르세의 몸을 감쌌다. 로난의 앞으로 끌려온 그가 눈을 치켜떴다.
【뭣이···!】
오르세는 황급히 몸을 회전시키며 반격을 시도했다. 허나 로난의 검은 이미 붉은 꼬리를 끌며 날아오고 있었다. 검이 살갗을 가름과 동시에 피가 튀었다. 오르세가 상처를 쥐어 싸며 몸을 뺐다.
【크으!】
열 걸음 정도를 물러난 오르세가 이를 악물었다. 예리한 자상은 그의 가슴께부터 왼쪽 옆구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붉은 선혈이 코트의 찢어진 틈새로 울걱울걱 솟구치고 있었다. 로난은 곧바로 파고드는 대신 공수 전환을 능란하게 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검 끝으로 오르세를 겨누며 읊조렸다.
“그쯤 해.”
【···특이한 능력을 쓰는군.】
오르세가 이를 악물었다. 처음 보는 힘이라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성검 특유의 소름 끼치는 감촉이 그의 옛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폴리모프 마법의 구성이 무너지며 몸 군데군데 비늘이 일어나고 있었다. 홍채를 둘러싼 흰자가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평정을 되찾은 오르세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감히 내 몸에 ‘그걸’닿게 하다니···!】
“얌마, 그렇게 말하면 내가 좆이라도 비빈 것 같잖아.”
로난이 픽 웃었다. 허나 여유로운 태도와는 반대로 그는 극도의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분명히 제대로 휘둘렀음에도 칼날이 근육을 자르지 못했다.
‘마룡은 마룡이라 이건가.’
강적이었다. 독룡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때 기회를 포착한 병사들이 오르세에게 달려들었다.
“인간이 기회를 만들었다! 잡아라!”
“사살해도 상관없다!”
비늘 달린 덩치들은 발밑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왔다. 그들의 갑옷과 무기는 바나르티에의 마법으로 강화되어 하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이윽고 오르세의 모습이 가려지려는 찰나였다.
【비켜라!】
병사들의 등 너머로 노기 어린 포효가 터져 나왔다. 창을 양손으로 쥔 그가 바닥을 내리찍었다. 위협을 감지한 로난이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니미···!”
동시에 검은 기운이 오르세를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분해된 건물과 담장이 가루로 화해 날아갔다. 갈가리 찢긴 병사들의 몸이 쌀알처럼 튀었다.
살의로 점철된 마나의 격류는 라만차의 칼날에 닿는 순간 좌우로 갈라졌다. 폭발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바나르티에가 탄식했다.
【맙소사.】
북적거리던 뒷골목은 지름이 10m 정도 되는 공터로 변해 있었다. 참혹하게 분해된 병사들의 시체는 아직도 자신의 마법으로 강화된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서서히 가라앉는 포연 너머로 여전히 건재한 오르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순간 흐릿해졌던 그의 형체가 로난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 더러운 쇠붙이를 내 앞에서 치워라!】
“그럴 줄 알았다. 이 씹새끼.”
로난은 당황하지 않고 공격에 응했다. 카아아앙-! 창과 검이 격돌하며 토해낸 금속음이 아드렌의 상공 위로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검격을 주고받았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강하다. 정말 강해.’
얼핏 보기에는 비등한 승부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늘이 내린 무재가 오르세의 공격을 받아치고, 가끔은 상처를 내는 것을 허락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체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세상에 씨발, 내가 그 마룡과 검을 겨루다니.
【크아아아!】
게다가 오르세는 전투가 진행될수록 더 난폭해지고 있었다. 머리의 양옆으로는 검은 뿔이 자라나고 있었다. 서서히 본모습에 가까워질수록 랜스의 움직임은 더 빠르고 강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물러났던 두 사람이 다시 격돌하려는 차였다. 오르세의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멈춰라.】
웬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법진 안쪽에서 강철로 이루어진 가시들이 솟구쳤다. 맹금류의 발톱처럼 휘어진 가시는 하나의 크기가 어지간한 건물보다 높았다.
【흥!】
오르세는 수직으로 도약하며 공격을 피했다. 캉! 그가 있던 자리에서 맞물린 가시들이 금속음을 토해냈다. 상승하던 그의 몸이 잠시 느려지는 순간이었다. 강철 가시가 산산이 바스라지며 수백 개의 파편으로 변모했다. 철컥! 공중으로 솟구친 파편들이 오르세의 팔다리에 들러붙었다.
【큭···!】
꼭 수갑과 족쇄를 채운 것 같았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오르세가 바닥에 추락했다. 동시에 아까와 동일한 마법진 수십 개가 그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카가가각! 비처럼 쏟아진 강철 가시들이 오르세의 주변을 꿰뚫으며 임시 감옥을 만들었다.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입니다. 오르세.】
로난이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복을 입은 여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굉장히 차가운 인상의 미인이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회백색 머리카락은 눈으로 뒤덮인 강철을 연상케 했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여인의 정체가 여지껏 전투에 임하지 않았던 또 한 마리의 드래곤이라는것을 눈치챘다.
얼핏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바나르티에나 라라타시안보다 훨씬 강한 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옴짝달싹도 못하게 된 오르세가 입을 열었다.
【···너는 기억에 있는 얼굴이군. 별명이 강철의 창부였던가.】
【여제였지요. 지금은 다른 분을 모시고 있어서 내려 놓은 이명이지만.】
【그게 그거지. 헌데 네년은 이따위 잡기술로 나를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오르세가 클클거렸다. 그는 파리를 쫓아내듯 가볍게 창을 휘둘렀다. 콰장창! 빼곡하던 가시들이 단번에 부서져 내렸다. 이런 시발. 그럴듯하게 생겨서 저게 뭐야. 로난이 그녀의 무능함에 대해 한 마디를 하려던 차였다.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간을 끌려고 왔을 뿐이니까.】
【뭐?】
영문 모를 말에 오르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순간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온 금빛 광선이 오르세의 가슴을 관통했다. 콰아아아아! 망막이 녹아내릴 정도의 섬광에 거리의 그림자가 잠깐 사라졌다.
【허억···!】
반응할 틈은 없었다. 오르세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로난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기로 인한 광풍이 앞머리를 젖혔다.
“니미, 이건 무슨···”
광선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오르세의 배에는 사람의 머리통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로난은 광선의 발원지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렴풋한 빛의 잔흔이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용왕?”
로난의 눈이 커졌다. 잔상의 반대편 끝은 도시 한복판의 고탑과 이어져 있었다. 자신이 알기에는 분명 용왕이 기거하는 장소였다.
【크헉!】
비틀거리던 오르세가 피를 토했다. 검붉은 핏물이 거리 위로 쏟아졌다. 그 순간 탑의 한복판에서 다시 한 번 광선이 쏘아졌다. 이번에는 궤도가 보인 탓에 적중하지 않았다. 쾅! 간발의 차로 광선을 피한 오르세가 탑을 노려보았다.
【감히···!】
붉은 눈동자가 타오를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치명적인 중상에도 기세는 여전했으나 몸이 받쳐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로난과 여인을 노려본 오르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두고 보자.】
“도망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네.”
아무래도 달아날 속셈인 것 같았다. 물론 로난은 오르세를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로난이 오러를 발동하려는 차였다. 갑자기 옆에 있던 여인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뭐야?”
난데없는 제지에 로난이 멈칫거렸다. 오르세의 몸이 안개처럼 흐릿해졌다. 아차 싶어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여인의 손을 쳐낸 로난이 짜증스레 말했다.
“젠장, 놓쳤잖아.”
【따로 추적대를 편성해서 쫓으면 됩니다. 이미 아드렌 전체에 방어막을 발동해서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더 급한 사안이 있습니다】
여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름 합리적인 주장이라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심호흡한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게 뭔데요?”
【우리의 왕께서 그쪽을 뵙고자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