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34)
237. 용왕(2)
#237
【반갑다. 짐이 아드렌을 다스리는 드래곤의 군주-】
【아지다하카다.】
로난 일행이 얼어붙었다. 무시무시한 덩치는 존재만으로 보는 이를 움츠러들게 했다. 이 정도면 진지하게 나바르도제와도 비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적이 감돌았다. 용왕 아지다하카는 멀뚱히 그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뒤늦게 해야 할 일을 깨달은 로난이 고개를 숙였다.
“···로난이외다.”
하마터면 용왕의 인사를 무시할 뻔했다. 조금 더 정중하게 해야 했나 싶었지만 그럴 짬이 없었다. 아셀과 슐리펜도 황급히 그를 따라 했다.
“저, 저는 아셀이라고 합니다···사, 살려···아니, 잘 부탁드려요.”
“아드렌의 군주에게 영광을. 슐리펜 시니반 데 그랑시아가 드래곤 로드를 뵙습니다.”
제대로 예를 갖춘 사람은 슐리펜밖에 없었다. 실수를 깨달은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용왕은 그제야 쳐들었던 고개를 내려 그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진짜 더럽게 크네.’
가까이서 보니 더 박력이 넘쳤다. 황금을 깎아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비늘은 하나하나가 어른 손바닥보다 컸다.
한 머리에 한 쌍씩, 모두 네 개인 뿔에는 보석으로 장식한 띠가 수십 개씩 감겨 있었다. 나바르도제의 복장도 화려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굴은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뿔의 장식과 목소리로 구분할 수 있었다. 두 개의 머리가 입을 열었다.
【아주 잘 싸우더군. 인간이 그 오르세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굉장히-】
【감명 깊었다.】
예상외로 인사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들을수록 신기한 말투였다. 왼쪽 머리가 남자의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면 오른쪽 머리가 여자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로난은 문득 두 개의 머리가 모두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닌데, 고마워요.”
높으신 분들의 칭찬은 언제 들어도 영 부담스럽다. 어울리지도 않는 비단옷을 입는 기분이라 해야 하나. 왼쪽 머리가 픽 웃었다.
【겸손하구나. 하긴 그러니까-】
【인간이겠지.】
【아무튼, 사악한 마룡에게서 내 도시를 지켜준 점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로난은 머쓱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뭔가 들었던 소문에 비해 훨씬 멀쩡한 작자였다. 이쯤 되면 음해를 한 건 이타르간드 쪽이 아닐까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하지만 너는 인간치고는 너무 강해. 짐은 그 비결이-】
【궁금하구나.】
“어···그런 건 딱히 없는데요.”
로난이 대답했다. 실제로도 좆빠지게 칼을 휘둘러댄 것 말고는 딱히 비결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용왕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낮아졌다.
【글쎄, 짐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짐이 왜 그대들까지 불렀다고-】
【생각하나.】
두 개의 머리는 각각 아셀과 슐리펜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두 사람에게는 아직 이타르간드의 각인이 남아 있었다. 서서히 다가온 오른쪽 머리의 목이 세 사람의 주변을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느낌이 안 좋은데.’
“로, 로난···!”
“···기다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로난은 울먹거리며 자신을 힐끔거리는 아셀을 손짓으로 진정시켰다.
슐리펜의 손은 천천히 칼자루 위로 향하고 있었다. 왼쪽 머리가 다시 로난을 돌아보았다.
【과연 짐이 느낀 대로 너희 셋 모두 나바르도제와 그 자식의 힘을 받았군. 화룡의 일족과는 무슨-】
【관계지?】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당연히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마땅한 대책이 없었던, 그래서 가장 걱정하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보통의 드래곤도 나바르도제의 기운을 감지하는 마당에 용왕이 모를 리가 없었다.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탈출 경로를 확인하던 와중이었다.
【순순히 말하는 게-】
【좋을 거다.】
불현듯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아가리를 벌렸다. 화르르륵! 목구멍 안쪽에서 올라온 빛무리가 그들의 입안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이빨 사이로 새나오는 섬광의 일렁임은 꼭 그들이 태양을 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저게 오르세를 격침시킨 광선임을 깨닫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반사광을 받은 금화의 사막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건 정말 좋지 않았다. 칼자루에 손을 얹은 로난이 아셀과 슐리펜을 돌아보았다. 그가 미리 세워뒀던 탈출 계획을 신호하려던 찰나였다. 텁! 당장에라도 불을 뿜을 것처럼 굴던 두 머리가 입을 닫았다.
“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세 사람의 동작이 그대로 멈췄다. 당황 서린 적막이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휘감았던 목을 푼 용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 크하하하!】
【아하하하!】
탑이 흔들릴 정도의 박장대소였다. 남녀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참다 못한 로난이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아하하, 미안. 미안하군···짐 앞에 인간이 선 것은 오랜만이라 그만-】
【장난을 조금 쳐 버렸어.】
“장난?”
로난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원위치한 두 머리가 동시에 주억거렸다.
【그래···단순한 장난이었다. 짐은 오르세에게서 도시를 지킨 용사들을 해칠 만큼 몰상식한 자는 아니야.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너, 너, 너무해애···.”
털썩. 다리를 후들거리던 아셀이 결국 주저앉았다. 로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징벌병으로 살면서 별 좆같은 장난을 다 겪어 봤지만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촤르륵! 별안간 용왕이 파묻혀 있는 금화 더미가 무너져 내렸다.
‘음?’
그가 웃으면서 몸을 들썩거리는 바람에 무너진 것이었다. 우연히 감춰져 있던 부분을 본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두 목의 뿌리 부분은 검지와 중지처럼 같은 몸에 이어져 있었다.
‘···두 명이 아니라 머리가 두 개 달린 거였나.’
쌍두룡을 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머리가 여러 개인 드래곤은 날개가 여러 개인 드래곤보다 희귀하다고 들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음?’
문득 위화감을 느낀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쪽 목의 좌측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꼭 뭔가 자라나다 만 것처럼.
그리고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분명 단면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뭐지? 로난의 눈이 가늘게 좁아지던 차였다.
【이런···.】
쾅! 몸이 드러난 것을 눈치챈 용왕이 금화 속으로 잠수했다. 황금으로 된 파도가 넘실거리며 일어났다.
‘씁, 분명히 뭔가 있었는데.’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로난이 혀를 찼다. 뭔가 중대한 정보를 찾아냈다는 직감이 들었다. 뒤늦게 웃음을 멈춘 용왕이 입을 열었다.
【밖에서 무슨 말을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짐은 더 이상 나바르도제를-】
【경계하지 않는다.】
엥?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을 뿐더러 저 말을 자신의 입으로 내뱉을 줄은 몰랐다. 과거에는 나바르도제를 의식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게 되었으니까. 로난이 뭐라 질문하려던 차였다.
【아무튼, 너희에게는 상을 내리겠다. 오르세를 쫓아낸 공. 그리고 그의 친우라는 점을 치하하지. 여기 있는 짐의 보화를 재량껏-】
【담아 가도 좋다.】
일행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설마하니 로난 본인이 아니라 아셀과 슐리펜에게도 상을 내릴 줄이야. 과연 아드렌의 군주답게 통이 컸다.
“아, 감사···.”
【그리고 내일 아침이 밝는 대로 아드렌을 떠나라. 오르세 때문에 치안도 불안정하고, 원래대로라면 입국을-】
【금지한 기간이니까.】
“네?”
로난이 멈칫거렸다. 말 그대로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상을 받거나 죽을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축객령이라니.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어···그래도 오르세가 아직 남아 있는데 잡을 때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인간이 드래곤을 걱정하다니. 마음은 기특하나 신경쓰지 마라. 알현은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멋대로 말을 맺은 용왕이 고개를 돌렸다. 아셀과 슐리펜의 얼굴에도 난처함이 드리웠다.
“로, 로난. 어쩌지?”
“···곤란하군.”
아무래도 좆된 것 같았다. 용왕의 머리는 벌써 금화 속으로 파묻혀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이대로 쫓겨날 수는 없었다. 로난이 말했다.
“저기, 폐하.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말하라.】
용왕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 승부였다. 심호흡한 로난이 입을 열었다.
“네뷸라 클라지에라는 조직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로난이 질문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과감한 선택이었다. 어색한 적막이 감돌던 와중이었다. 왼쪽 머리가 말했다.
【···알고 있다. 헌데 그런 걸 왜-】
【묻는 거지?】
안다는 말에 로난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래, 나바르도제가 직접 편지를 썼는데 양심상 모른다고는 못 하겠지. 그가 말을 이었다.
“나바르도제 님이 아드렌에 전갈을 보냈다고 하셨거든요. 놈들을 경계하라고. 그여기 있는 드래곤을 다루는 것은 용왕님 소관이잖아요.”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다. 놈들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하찮은-】
【미물일 뿐이니까.】
하지만 좋았던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용왕은 그 말만을 툭 남기고는 다시 로난을 등졌다.
“아니, 잠깐만···”
【이만 돌아가라.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은 없으니.】
당혹한 로난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가라앉던 두 개의 머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재보만이 남은 공간 속에서 용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님들을 방으로 모셔라-】
【나란소니아.】
“네. 폐하.”
곧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나란소니아가 나타났다. 응접실과 이어진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그녀가 세 사람에게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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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난 일행은 별다른 저항 없이 알현실을 떠났다. 그들은 알현실에서 땡깡을 부려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보는 고사하고 용왕에게 살인 광선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란소니아는 황제도 울고 갈 으리으리한 침실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녀는 내일 해가 뜨는 대로 모시러 오겠다는 말과 함께 방을 떠났다.
혹시라도 방을 나설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경고도 덧붙여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로난이 툭 내뱉었다.
“좆됐군.”
아셀과 슐리펜은 침묵으로 긍정의 뜻을 표했다. 벌써 자정에 근접해 있었으니 추방당하기까지는 채 6시간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각자의 침대 옆에는 화려하고 거대한 궤짝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내부에는 용왕이 하사한 금은보화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아들에 손자까지 놀고 먹어도 될 양이었지만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까짓 금붙이를 얻기 위해 아드렌까지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로난이 말했다.
“역시 새벽에 한번 나가야 할 것 같다.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괘, 괜찮을까? 들키기라도 하면···.”
“잿더미나 꼬챙이나 둘 중 하나가 되겠지. 뭐 당연한 걸 묻고 있어.”
“히에에엑···!”
아셀이 기겁했으나 로난은 담담했다. 물증은 없었지만 뭔가 구리구리한 냄새가 났다. 나바르도제를 ‘이제는’ 경계하지 않는다는 용왕의 말과 그의 몸에서 자라나던 종기 같은 덩어리가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가야 해. 이 새끼들 분명히 뭘 숨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동의한다.”
“슈, 슐리펜마저 그렇게 말하다니.”
침묵을 지키던 슐리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듯했다.
아셀은 여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로난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러면서 할 건 다 하는 놈이었으니까. 슐리펜이 말했다.
“일단 조금이라도 잠을 청해라. 먼저 불침번을 설 테니까.”
“오···기특한 새끼.”
로난이 픽 웃었다. 확실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루종일 쌓인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쉬어 줘야 했다.
유별나게 고생을 한 로난과 아셀은 더더욱. 마룡과 싸우거나 범선을 하늘까지 띄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좋아. 그럼 3시 정도에 움직여 보자고.”
그리 말한 로난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눈치를 보던 아셀도 주춤거리며 누웠다. 두 사람은 침대에 머리가 닿기 무섭게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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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난.”
“그래. 나도 눈치챘어.”
눈을 뜬 로난이 곧바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슐리펜이 깨우기 전에 이미 일어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과 마주친 아셀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로, 로난. 이, 이건···.”
아셀도 이미 일어나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자신과 마찬가지로 일어난 지 얼마 안 된것 같았다. 로난이 물었다.
“지금 몇 시냐?”
“정확히 세 시 오분 전이다.”
“···내 촉이 아직 죽지는 않았나 보네.”
로난이 읊조렸다. 슐리펜의 목소리보다 먼저 두 사람을 깨운 것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격렬한 기척이었다.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거대한 무언가 위층에서 맥동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을, 용왕이 춤이라도 추는 건가?”
“자,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정도의 기운이라면···.”
아셀이 말꼬리를 흐렸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로난은 두 사람보다 조금 더 짙은 확신을 품고 있었는데, 네뷸라 클라지에 특유의 반짝거림이 대기 중에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이 새끼들, 탑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