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35)
238. 용왕(3)
#238
“이 새끼들, 탑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맥동하는 기척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원지가 한참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
‘드래곤들이 난교 파티라도 하는 건가.’
심상치 않았다. 대기 중에 묻어나는 반짝거리는 마나가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었다. 오직 로난만이 볼 수 있는 이 고유의 현상은 네뷸라 클라지에가 여기 있다는 증거였다.
‘확실해. 이 탑 안에 있다.’
이런 식으로 물증을 잡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탑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끝나기 전에 자료를 수집해야 했다. 침대에서 일어난 로난이 입을 열었다.
“좋아. 바로 나가자.”
“으응. 그, 그런데 문제가 있어.”
“문제?”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셀은 손을 뻗어 방 한구석에 자리한 문을 가리켰다. 응접실에서 알현실로, 알현실에서 여기 침실로 그들을 데려다 놓은 요술 문짝이 굳건하게 닫혀 있었다.
“저, 저 문이 유일한 출입구야. 다른 곳은 없었어.”
“그래서?”
“문에 보안 마법이 수십 중으로 걸려 있어. 아, 아마도 우리가 도중에 나갈 걸 예상한 것 같아.”
아셀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로난의 미간이 구겨졌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문고리 안쪽으로 이질적인 마나가 잔류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그냥 베어 버리면 안 되냐?”
“그, 그러면 사라지기야 하겠지만 ‘문’의 기능도 상실할 가능성이 있어. 경보가 울릴 수도 있고. 원래 이런 마도구는 굉장히 설계가 복잡해서···.”
아셀이 말꼬리를 흐렸다. 이렇게 빨리 난관에 봉착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어떻게 문을 연다 쳐도 들킬 위험이 다분했다.
이런 조치를 해 놨을 정도면 문 앞에 경비들이 대기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아셀이 말을 이었다.
“하, 한 시간 정도면 마법 해독이 가능할지도 몰라. 그렇게라도 해 볼까?”
“그럼 너무 늦어. 제기랄, 무슨 방법이···.”
로난이 침음을 흘렸다.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천천히 방 안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멎었다.
화려한 커튼이 서쪽 벽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불현듯 로난의 머릿속에 한 줄기 바람이 스치며 지나갔다.
“어?”
“왜, 왜 그래?”
“기다려 봐. 설마···.”
들어올 때부터 방이 어두침침해서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천천히 벽으로 다가간 로난이 커튼을 잡아당겼다.
화아악! 고즈넉한 달빛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높은 아치형을 이루는 창문 너머로 휘영청 한 보름달이 떠올라 있었다. 로난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얌마, 제대로 찾아봤어야지. 여기 버젓이 출입구가 있잖아.”
“서, 설마···.”
아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뭔가 다음으로 벌어질 일을 알 것만 같았다. 히죽거리며 다가온 로난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우리가 아드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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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는 아직도 안 내려오셨나?”
“그래. 이걸로 벌써 한 달 째군. 매일 밤마다 꼭대기에서 뭘 하시는 건지.”
“이번에도 하얀 옷을 입은 인간들이 함께하더군.”
보초들의 대화소리가 달빛 아래 울려 퍼졌다. 그들의 임무는 하늘탑의 73층에 있는 계단을 지키는 것이었다. 위층이나 아래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꽤 중요한 임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경계 근무 특유의 따분함은 사명감으로도 지울 수 없었지만. 뺨에 흉터가 있는 보초가 투덜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인간들이 마음에 안 들어. 수상하단 말야. 폐하께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가 뭐라 말을 이으려던 차였다. 별안간 계단 아래에서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보초들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뚜벅. 뚜벅. 머지않아 계단 위로 올라온 여인이 그들 앞에 멈춰 섰다.
【말해 봐라.】
“나, 나란소니아 님. 그게 아니라···.”
겁에 질린 보초가 말을 더듬었다. 창문을 통해 스며든 달빛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하필이면 나란소니아에게 걸릴 줄이야. 강철의 여제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는 용왕의 수족 중에서도 가장 충성심이 높고 깐깐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우리의 임무는 폐하의 뜻에 따르는 것 뿐이다. 내 말이 틀렸나.】
“아닙니다. 제가 주제넘은 소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보초는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용왕을 모욕하다가 나란소니아에게 꼬챙이가 된 드래곤과 종복을 여럿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추가적인 질책은 들어오지 않았다. 가만히 계단을 바라보던 그녀가 앞으로 나섰다.
【잠깐 비켜라.】
“어엇···.”
보초들이 양옆으로 비켜섰다. 나란소니아가 손을 뻗었다. 카가각! 거대한 강철 가시들이 바닥과 천장에서 솟구치며 아랫층과 이어진 계단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그것이 보안 조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보초 한 명이 당황하며 물었다.
“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확실하게 해야지. 폐하의 의식이 끝나는 대로 제거할 테니 근무에 임하도록. 여기 말고 다른 곳을 순찰해도 좋을 것 같군.】
그 말을 남긴 나란소니아가 윗층으로 올라갔다. 카가각! 동시에 위쪽으로 이어진 계단에도 강철 가시들이 자라났다.
“···순찰 가자.”
“응.”
조그맣게 쑥덕거리던 보초들이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그들이 창문에서 보이지 않게 될 무렵이었다. 로난이 질린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햐, 지독한 년. 안쪽에서 올라가려 했다가는 좆될 뻔했네.”
“응···그러게.”
아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슐리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무언의 긍정을 표했다.
그들은 나란소니아와 보초들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안쪽이 아닌 창문 밖에서.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작은 말소리도 잘 들렸다.
“좋아. 이제 다시 올라가자. 절대로 아래 보지 말고.”
“으응. 아, 알았어.”
아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휘이잉! 서늘한 밤바람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고 있었다. 아셀이 손짓함과 동시에 세 사람의 몸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창문을 통해 침실에서 탈출했다. 아드렌에 입국하던 상황에서 착안한 발상이었다.
아주 밀봉을 해 놓은 문과는 달리 보안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다. 하긴 이런 높이에서 탈출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터였다.
아셀이 어제저녁에 배운 투명화 마법이 그들의 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래서 세 사람은 어깨가 닿을 정도로 뭉쳐 있음에도 서로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단기간에 습득한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능에 로난이 감탄을 흘렸다.
“몇 번을 봐도 끝내주는구만. 이거 배우는 데 얼마나 걸렸다고 했지?”
“두, 두 시간 정도.”
“똥이 굵어서 좋겠군.”
로난이 고개를 내저었다. 천재를 상식으로 이해하려 들면 안 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기특하다는 듯이 아셀의 어깨를 주무르던 그가 질문을 건넸다.
“맞다. 마나는 안 부족해?”
“아, 아직은 괜찮아. 마르야가 준 포션도 남아 있고.”
“정신 바짝 차려. 너가 실수하면 우리는 다 죽는 거니까.”
로난이 신신당부했다. 굵직한 침을 삼킨 아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구는 것 같아서 미안했지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아셀의 집중력이 깨지거나 마나가 고갈되면 모든 게 끝이었다. 발밑을 슬쩍 내려본 로난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것도 아주 끔직하게 말이지···.”
아드렌은 벌써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도시의 경계 바깥으로는 드넓은 구름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높이로 보아하니 시체 수습은 커녕 붉은 얼룩이 되어 아드렌에 새겨질 터였다.
그래도 아셀의 심신 미약을 제외하면 딱히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들이 이십 분 정도를 더 상승하던 와중이었다. 위를 쳐다보던 슐리펜이 입을 열었다.
“···불쾌하군.”
“너도 그러냐?”
로난이 긍정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마나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었다. 침실에서 어렴풋이 느꼈던 불길한 기척도 여실하게 강해지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마나도 마찬가지였다. 갈수록 빛이 강해져서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은하수에 들어가면 이런 기분일까. 그때 벽처럼 솟아나던 탑이 끊어지며 정상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이런 시발.’
그가 얼어붙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을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탁 트인 원기둥의 윗면은 필레온의 대광장에 필적할 정도로 넓었다. 그 중앙에 용왕 아지다하카가 하늘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온전히 드러난 쌍두룡의 몸뚱어리는 탑이 무게를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크고 육중했다. 그 주변을 살피던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저 씹새끼들.’
하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스무 명 가량 모여 있었다. 칼자루를 쥔 로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부정할 수 없는 네뷸라 클라지에의 기운이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원도 인원이었지만 하나같이 쟁쟁해 보이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그들의 면면을 뜯어 보던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뭐 저렇게 우르르 몰려 왔어?’
머리카락이 새하얗고 눈동자가 주홍색인 사람이 다섯, 소매에 별 모양 뱃지를 찬 사람이 세 명 있었다. 전자는 교주 직속 암살 부대인 뤼코포스. 후자는 주교들이었는데, 하나같이 교단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강자들이었다.
‘설마 교주도 왔나?’
혹시나 싶어서 살폈지만 아벨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금의 인원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은 차고 넘치게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아무래도 조금 더 가까이서 봐야 할 것 같았다. 로난 일행은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그들에게 접근했다.
용왕의 자세는 꼭 달을 바라보는 늑대를 연상케 했다. 꼿꼿이 쳐든 두 개의 머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의 발밑에는 거구를 온전히 담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느린 간격으로 점멸하는 것이 꼭 생물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탑 전역을 뒤덮는 반짝거리는 마나는 거기로부터 스며 나오고 있었다.
‘어?’
불현듯 용왕의 몸통에 시선이 닿은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왼쪽 모가지 옆에 솟아 있던 살덩어리가 꾸무럭거리며 자라나고 있었다.
“저건···.”
솟아나는 살덩어리는 용왕의 다른 목처럼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다만 황금색이 아닌 별빛처럼 푸르스름한 백색 비늘이었다.
세 사람이 넋을 놓은 채 그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운 광경을 바라보던 와중이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던 용왕이 입을 열었다.
【언제나 경이로울 지경이구나.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내게 이 힘을 전해 주는 자가-】
【누구지?】
여전히 웅장한 목소리에 아셀이 어깨를 움츠렸다. 다행히도 집중력이 깨지지는 않았다. 옆에서 대기하던 주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위대한 별의 힘입니다.”
【그래. 들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구나. 이토록 강대한 힘이-】
【존재할 줄이야.】
“하하···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먼지에 불과하지요. 저 하늘 위의 하늘, 저 아득한 천상에서 힘을 빌려 오는 겁니다.”
별이라는 말을 들은 로난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대머리 거인들의 얼굴이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이 의식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건가? 용왕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 의식은 언제쯤-】
【끝나는 거냐.】
“이제 길어야 이틀입니다. 세 번째 머리가 완성되는 순간이 기대되는군요. 장담컨데 나바르도제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겁니다.”
머리를 숙이며 예를 표한 주교가 뒤로 물러났다. 용왕은 그 말이 듣기에 나쁘지 않았는지 넌지시 웃음을 흘렸다. 아지다하카의 날개가 천천히 펼쳐졌다.
【기다려지는구나. 나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황금빛 날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길었다. 밤하늘의 빛을 머금은 비늘이 오묘한 색채를 흩뿌리고 있었다. 용왕의 목소리가 아드렌의 상공에 울려 퍼졌다.
【전쟁까지 앞으로-】
【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