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41)
244. 용과 함께(1)
#244
그들은 알리브리헤를 따라서 다시 한참을 이동했다. 그는 이번에도 정확한 행선지를 말해 주지 않았다.
아셀은 상의를 탈의한 장발남의 정체가 오르세라는 사실을 알고는 한 번 졸도했다가 깨어났다. 수사망이 본격적으로 넓어져서 그런지 용왕의 부하들과도 심심찮게 조우했다.
“죽어···커어억!”
“여기 있다! 지원을 요청···끄하아악!”
대충 삽십 분에 한 번꼴로 마주치는 것 같았다. 로난과 오르세는 그들을 마주치기 무섭게 처치해 버렸다.
보통 모퉁이를 돌기 전에 기척을 느끼고, 도는 순간 죽여 버리는 방식이었다. 창과 칼이 움직일 때마다 토막난 신체 일부가 공중에서 춤을 췄다.
혹시라도 살아서 돌아갔다가는 본대를 불러올 테니 확인 사살도 확실하게 했다. 한번은 제법 강해 보이는 반룡 병사들이 뒤쪽에서 달려들었다.
“흐야아아악! 나왔다!”
맨 뒤에서 걷던 아셀이 기겁하며 팔을 휘둘렀다. 콰아앙! 보이지 않는 주먹에 강타당한 병사들이 공이라도 된 것처럼 날아갔다.
“커억···!”
콰직! 그들은 서른 걸음도 넘게 떨어진 반대편 벽면에 처박히고 나서야 멈춰 섰다. 반룡들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생사를 확인한 오르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즉사했군. 다섯 명 전부.】
“영악한 살인 기계라고 할 수 있지.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걸. 예쁘장한 외모로 사람들을 홀린 뒤 간을 뽑아 먹는 게 취미니까.”
“나, 나는 그런 적 없어!”
로난이 낄낄거렸다. 출력을 보아하니 자는 동안 힘을 충분히 회복한 듯했다. 아셀은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으나 오르세의 반응은 썩 나쁘지 않았다.
【그거 괜찮군. 살인 기계라.】
“···에?”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들 오게나.”
앞서 걷던 알리브리헤가 미간을 좁혔다. 그들은 한 시간 정도를 걸은 끝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르세와 만난 곳과 마찬가지로 텅 빈 공간이었는데,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콰아아-! 벽면 저 높은 곳에 난 배수구에서는 탁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여기가 어딘지 알 것만 같았다.
“여긴 설마···.”
“그래. 하늘탑의 지하라네.”
알리브리헤가 식량이 담긴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저 벽면의 배수구를 따라 이동하면 하늘탑의 1층으로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의 턱밑에 자리를 잡는다는 건 이런 의미였다. 로난이 말했다.
“이걸 뭐라 해야 할지···어, 진짜 고마워요.”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그럴 필요 없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 내가 자네들의 일에 연루되는 것은 여기까지일세.”
“예?”
뜬금없는 발언에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오르세도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알리브리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자네들을 구하고 도운 것은 선의보다는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일세. 원래 늙으면 여러 가지 일이 하고 싶어지거든. 늙은이는 여기서 물러나도록 하겠네.”
로난의 얼굴이 굳어졌다. 태세 전환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용왕의 의식을 못 막으면 다들 좆···아니, 위험해지는 거 아니었어요? 영감님도 포함해서.”
“맞네. 보통 위험한 게 아니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라고 했던 말, 기억나나?”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는 이것이 오르세를 만나기 전 나눴던 대화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기억나요.”
“그래. 괜히 그 말을 한게 아닐세. 최근들어 교단에 불상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아벨의 계획에 변화가 생겼다고 들었거든.”
“변화···?”
이거 영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알리브리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벨은 분명 별의 도래를 앞당긴다고 했었네. 상황을 보아하니 그 효시를 여기서 쏘아 올릴 생각인 것 같군. 의식이 끝나면, 첫 번째 별이 강림할 걸세.”
“시발.”
로난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별의 도래라면 분명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대머리들의 대규모 등장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별을 강림시킨다니, 이게 무슨 좆같은 소리란 말인가. 알리브리헤가 말했다.
“더 지체했다가는 차질이 생길 수도 있겠다 생각한 거 같네. 유감스러운 일이지.”
“뭔 씨발···애초에 그 거인들은 정체가 뭐죠?”
“그건 나도 잘 모른다네. 오직 교주인 아벨만이 진상을 알고 있겠지. 우리가 권능이라 부른 힘을 빌려 주는, 그 불가해한 존재들의 정체를···.”
잠시 알리브리헤의 얼굴이 굳었다.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는 아벨이 저 하늘 위의 하늘과 소통하는 듯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자세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별이 하늘에 가득 떠오른 밤이었다.
아벨은 아득한 들판의 한복판에 서서 밤하늘을 향해 양팔을 뻗고 있었다. 교단에서 근원으로 삼는 힘의 파동이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고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노래하는 듯한 주문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아벨의 앞에는 날개 달린 거인의 형체가 희미해졌다 선명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비밀스럽게 진행된 의식이었던 터라 자신을 제외한 신도들은 주변에 없었다.
알리브리헤는 거인의 환영이 발산하는 압도적인 힘에 짓눌려 호흡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벨은 목을 부여잡은 채 컥컥거리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었다.
– 멋지지 않나?
알리브리헤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수백 년도 전의 기억이지만 여전히 선명했다. 언젠가 이 괴물이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알리브리헤의 희망이 꺾인 것도 그 무렵이었다. 짧은 반추를 마친 그가 입을 뗐다.
“어쨌든 내가 알려주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일세. 의견도 어느 정도 일치한 것 같으니 잘해 보게나.”
“젠장,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면 다 같이 노력이라도 해 보는 게 맞지 않아요? 그러지 말고···아.”
딱! 알리브리헤를 설득할 수단을 찾던 로난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아직 그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하나를 받았으니 저도 하나를 말해 줄게요. 카인은 아직 살아 있어요. 자세한 건 말 못하지만 아벨의 피를 얻으면 건강해질 수도 있고요.”
“뭣···.”
알리브리헤가 흠칫거렸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감지한 로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알리브리헤는 이내 그 눈을 감아 버렸다.
“그거 잘 된 일이군. 하지만 내 뜻에는 변함이 없다네.”
“뭐야, 진심이에요?”
“그래. 카인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축복해 마땅한 일이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설령 그가 건강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지금의 아벨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네.”
적막이 내리깔렸다. 문득 로난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알리브리헤의 눈은 버려진 정원처럼 텅 비어 있었다. 꽃과 나무가 모조리 시들어서 낙엽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그런.
“나는 지쳤네. 말했다시피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 직접 교단에 반기를 드는 행보를 들키면 일이 배는 귀찮아지겠지. 이것도 종말을 대하는 나름의 방식이라 존중해주면 고맙겠네.”
로난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비틀었다. 알리브리헤의 마음이 완전히 꺾여 있다는 것을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과거에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빌어먹을.’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카인의 생존 사실을 알려도 이렇게 나온다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억지를 부리거나 협박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었으니. 한참이나 머리를 긁적거리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죠. 여기까지 고마웠어요.”
“즐거웠네.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시게나.”
알리브리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로난과 악수를 한 번 나눈 뒤 자리를 떴다.
로난은 그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유달리 처량하게 들렸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별의 도래가 앞당겨졌다는 정보는 근 몇 년 동안 들어온 사실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애인의 임신 소식을 들으면 이런 기분일까.
‘···지금은 크게 볼 때가 아냐.’
생각을 정리하던 로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별의 도래가 예상보다 앞당겨졌다 해도 지금은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용왕의 마법진을 파괴하고, 생포되었을 걸로 추정되는 슐리펜도 구해야 했다.
“이봐···”
고개를 돌린 로난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오르세는 알리브리헤가 가져온 바구니 앞에 팔자 좋게 앉아서 건조시킨 돼지 뒷다리를 뜯고 있었다. 문득 그가 아셀에게 같은 것을 건네며 말했다.
“먹어라. 살인 기계.”
“저, 저기···진짜 괜찮아요. 네. 그리고 제 이름은 아셀···”
“먹으라면 먹어라.”
“히, 히이이! 아, 알겠습니다. 먹을게요···!”
아셀은 울먹거리며 뒷다리를 받아들었다. 거의 그의 머리만 한 것이 드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오르세는 그가 고기를 한 입 물고 삼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식사를 재개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친해진 것처럼 보였다. 벙찐 채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너네 뭐 하냐?”
“지루한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나 보군.”
오르세의 목소리는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뼈다귀를 뒤로 던진 그가 툭 내뱉었다.
“보고도 모르다니 장님이라도 된 건가. 싸우기 전에 배를 채우는 거다.”
“···그래 보이네.”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을 본 로난이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오르세는 자신과는 달리 알리브리헤가 떠난 것에 대해는 별 관심도 없어 보였다. 드래곤답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제안? 설마···.”
“그래. 네놈들과 일시적으로나마 동행해 주지. 영광으로 알도록.”
로난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르세가 말을 이었다.
“네놈도 그렇고 이 마법사도 그렇고 유용한 구석이 있더군. 괜한 힘을 낭비하기 싫으니 너희가 정상까지 가는 길을 좀 터 줘야겠다.”
“이 새끼는 말을 해도···아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말투가 굉장히 싹수 없었지만 로난은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우리끼리 티격태격할 때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저런 발언 자체가 자신과 아셀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드래곤은 빈말을 하지 않으니.
“대신, 발목을 잡는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해줄 테니 그리 알아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로난이 픽 웃었다. 그는 이내 자리에 앉아 남아 있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굶어서 그런지, 워낙에 많이 움직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맛있었다. 뜨거웠던 머리가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그래.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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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나란소니아 님에 대해서 뭐 들은 거 없나? 회복됐다거나, 정신을 차렸다거나···.”
“글쎄···잘 모르겠어. 워낙에 깊게 베이셔서.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
“그 강철의 여제가 한낱 인간에게 당하다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군.”
“우리한테 한 소리 할 때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말이지. 참 착잡해.”
비상 사태가 선포된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방금까지 수색 임무를 마치고 온 두 보초는 하늘탑의 1층에 자리한 화장실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용왕의 의식에 대해 떠들다가 나란소니아에게 지적을 당했던 그 보초들이었다.
인간 기준으로 만들어진 소변기들 위로 마법으로 만든 조명 하나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대소변을 핑계로 농땡이 칠 시간은 짧았으니 곧 돌아가야 했지만, 아드렌 전역이 난리가 난 지금으로서는 이것도 꿀 같은 휴식이었다.
“참, 그 미친놈은 잡혔나? 동료를 대신해서 시간을 끌던···.”
“그래. 간신히 말이지. 내 주인이신 라다반카자 님이 심문을 담당하신다는군.”
“거기서도 많이 죽었나 봐? 듣자하니 나란소니아 님을 꺾은 놈과는 다른 인간이라던데.”
“말도 마. 아직도 시체를 치우고 있으니까. 하늘탑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졌다고.”
뺨에 흉터가 난 보초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이 그 현장에 투입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기어코 동료들을 탈출시킨 인간 청년은 거의 세 자릿수의 인원을 썰어 버리고 나서야 기력이 다해 제압당했다. 턱수염이 난 보초가 코웃음을 쳤다.
“헹, 전부 핑계야. 그깟 인간 하나 잡지 못해 피를 보다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세 놈의 목덜미를 단번에 잡아챘을 텐데.”
“나란소니아 님 앞에서도 바짝 쫄았던 놈이 말은 잘한다. 너는 언젠가 그 허세 때문에 언젠가 피를 한번 볼 거야.”
“웃기지 마. 아무리 그래도 인간한테는 안 지니까. 인간이든, 마룡 오르세든, 올 거면 와 보라지.”
그는 낄낄거리며 창을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흉터가 있는 보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슬슬 복귀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는 찰나였다.
-아셀, 방금 들었냐? 살아 있대.
“···음?”
“뭐야?”
두 사람 모두 분명하게 들었다. 화장실 어디선가 웬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염 난 보초가 제자리에 멈춰섰다.
“이봐. 너도 들었지.”
“그래. 어디서 난 소리지?”
그들은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어디선가 분명히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챙. 그때 어디선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득 흉터 난 보초의 시선이 바닥에 나 있는 배수구로 향했다.
“이 아래에 뭐가 있나···?”
흉터 난 보초가 허리를 숙였다. 그는 배수구에 눈을 들여다 대고 안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딴 곳에 뭐가 있겠냐며 수염 난 보초가 핀잔을 주려던 차였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바닥이 박살나며 아래쪽에서 무언가 튀어 나왔다.
“허, 허어어억!!”
순식간이었다. 수염 난 보초가 주저앉았다. 꼭 작은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았다. 충격으로 인해 바닥을 나뒹굴던 그의 귓가에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이 씨발, 하필이면 화장실로 나오냐. 더럽게스리.”
【추잡하군.】
“히, 히이익! 지, 진짜 여기를 다시 오다니···!”
균형을 잡은 보초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배수구를 살피던 동료는 천장에 상반신이 처박힌 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저마다 다르게 생긴 인간 셋이 박살난 화장실 바닥을 딛고 올라오고 있었다.
“너, 너희는···?!”
보초의 눈이 커졌다. 그들의 인상착의는 자신이 들었던 것과 일치했다. 감히 용왕을 엿보던 침입자 둘과 폴리모프한 마룡 오르세. 저것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불현듯 투덜거리던 로난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아하. 너구나.”
분명히 슐리펜에 대해 이야기하던 놈의 목소리였다. 스르릉! 순식간에 발검한 로난이 그의 목에 칼끝을 겨누었다. 얼어붙은 보초가 헛숨을 들이켰다.
“사, 살려줘. 제발···!”
그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조금 전의 만용은 폭풍 속의 민들레씨처럼 날아가 버렸다. 칼을 뽑는 것이 보이지도 않았다.
오르세와 아셀은 묵묵히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들이댄 로난이 입을 열었다.
“방금 그 심문 얘기, 자세하게 좀 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