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49)
252. 격돌(5)
#252
“큭!”
별의 가호가 슐리펜을 강타했다. 뭘 할 새도 없었다. 밀려난 몸뚱어리가 하늘탑 가장자리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젠장, 슐리펜!”
로난이 외쳤다. 어째 저번이랑은 상황이 반대로 된 것 같았다. 그가 즉시 자신의 오러를 발현해서 슐리펜을 끌어당기려던 차였다. 알론의 입이 나지막이 벌어졌다.
“-광풍이 있을지니.”
“뭐?”
갑자기 알론의 등 위로 반투명한 날개가 돋아났다. 한순간 주변의 공기가 급격하게 응축됐다. 로난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런 씹···”
어디서 많이 본 연출이었다. 로난이 황급히 방어 자세를 취하려고 했지만 조금 늦고 말았다. 파아아앙-! 알론을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광풍이 터져 나왔다.
“커억!”
바람에 직격당한 로난이 공성추에 치인 것처럼 뒤로 날아가 버렸다. 알론은 곧바로 슐리펜을 따라 하늘탑 아래로 뛰어내렸다.
“니미, 기다려!”
로난은 날아가는 와중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대주교라 그런지 광풍의 위력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권능을 이렇게 연달아서 발현하는 것부터가 양심이 없었다.
어쨌든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하늘탑 아래로 추락하고 말 터였다. 코어를 전환한 로난이 두 가지의 오러를 동시에 발동했다.
촤아악! 발치에서 자라난 반짝거리는 뿌리가 하반신을 옭아맸다. 처음으로 훔쳤던 돌란의 오러였다.
이어서 고양잇과 맹수의 앞발을 연상케 하는 잔상이 로난의 오른팔을 휘감았다. 바렌의 오러로 강화된 팔뚝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이 치매 걸린 노친네가!”
노성을 터트린 로난이 땅에 검을 박아 넣었다. 카가가가가각! 하늘탑의 정상에 기다란 선이 그어지며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는 거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멈춰섰다.
“슐리펜!!”
반쯤 삐져나간 발꿈치 뒤로 각종 파편이 떨어지고 있었다. 간신히 추락을 면한 로난은 곧바로 슐리펜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다급하게 고개를 내려 봤으나, 두 사람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썅.”
로난이 입술을 짓씹었다. 알론의 작전을 알 것만 같았다. 그는 슐리펜이 별의 가호를 비롯한 대머리들의 권능을 파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에 말했던 것처럼 한 명을 빠르고 편하게 치워 버리고 여기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악당다운 발상이었다. 하늘탑의 아래를 내려다보던 로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걸 또 언제 내려가냐.’
물론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어찌어찌 낙사를 면하더라도 저대로 내버려 두면 슐리펜은 죽는다. 뒷일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기로 결심한 로난이 탑에서 뛰어내리려던 차였다.
“이걸로, 끝이다···.”
“엥?”
갑자기 바로 아래층에서 슐리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도약하려던 로난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내 귀가 망가진 건가?’
로난이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지만, 누군가 움직이는 인기척과 반짝거리는 마나가 격동하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황급히 몸을 돌린 그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다리에 힘이 들어간 탓에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쾅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지않아 아래층에 도착한 로난이 헛숨을 들이켰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뭔···!”
슐리펜과 알론이 반 걸음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분명 바닥까지 추락한 줄 알았는데 여기에 처박혀 있는 걸 보면 슐리펜이 바람으로 무슨 짓을 한 것 같았다.
“커억…컥···.”
알론의 입에서는 붉은 선혈이 울걱이며 솟아나고 있었다. 슐리펜의 장검이 그의 등을 뚫고 자라나 있었다. 서슬퍼런 검신이 차가운 광채를 흩뿌리고 있었다.
칼날을 타고 흘러내린 핏물이 슐리펜의 손을 적시고 있었다. 심장을 관통당하기라도 한 건지 알론은 그 자세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로난의 입이 벌어졌다.
“너.”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아직 건재한 별의 가호는 알론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실제로 슐리펜의 몸은 그 기괴한 장막에 가로막힌 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만은, 그가 쥐고 있는 그랑시아의 보검만은 별의 가호를 관통한 채 파고들어 있었다. 가만히 알론의 눈을 응시하던 슐리펜이 입을 열었다.
“과거의 악연은 여기서 매듭짓는다.”
“이걸···커윽, 어떻게···.”
알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을 파고든 날붙이의 촉감이 믿을 수 없으리만치 생생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가 자조적으로 클클거렸다.
“아니야···이건 내가 벌을 받은 게지. 순간의 쾌락을 견디지 못한···벌.”
“벌이라고?”
로난이 물었다. 알론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검을 딛고 일어난 그랑시아라면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마땅히 검으로 매듭을 지었어야 하거늘···흐, 권능을 앞세워서 적을 간편하게 처리하는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갈라진 목소리에는 후회가 다분하게 묻어나 있었다. 그래도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무인이 지녀야 할 긍지가 조금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유혹에 넘어가 버린 이상 참작의 여지는 없었지만. 대머리에게 영혼을 판 얼간이에게 보낼 애도는 없었다.
챙그랑. 알론의 양 손에 쥐어져 있던 검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를 둘러싼 별의 가호가 서서히 바스라지고 있었다. 슐리펜과 꼭 닮은 암청색 눈동자에서 서서히 빛이 꺼지고 있었다.
슐리펜은 그가 더는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검을 뽑았다. 풀썩. 대나무처럼 드높던 몸뚱어리가 힘없이 허물어졌다.
자세한 정황은 몰라도 참 허무한 최후였다. 대주교라는 직책이면 그래도 교단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입지일 텐데 설마 이렇게 가 버릴 줄이야. 퉷! 그의 시체 위에 침을 뱉은 로난이 입가를 닦으며 중얼거렸다.
“뭘 어떻게 한 거냐?”
“나도 모른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검을 내질렀더니 그대로 들어가더군.”
슐리펜은 떨어진 당시부터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로난이 예상했던 것처럼, 알론은 권능을 파훼하지 못하는 자신을 따로 처리해 버릴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는 공중에서 슐리펜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으려고 했고, 슐리펜은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알론은 공방이 완벽한 검사였다. 하지만 나를 죽이려 드는 순간만큼은 장막을 다루는 여타 광신도들과 마찬가지로 방어에 신경을 쓰지 않더군. 그 덕분에 심장에 검을 찔러넣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런 말을 한 거였군.”
로난이 주억거렸다. 만약에 슐리펜을 밀쳐낸 알론이 가호가 아니라 순수한 검술로 그를 제압하려 들었다면, 각개격파를 하려는 그의 작전은 높은 확률로 성공했을 터였다.
후회할 만 하군. 입술을 질겅이던 로난이 툭 내뱉었다.
“···뒈질 뻔 했네.”
“동의한다.”
슐리펜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무한 최후와는 별개로 알론은 정말 강했다.
일단 자신과 미래의 제국제일검을 단신으로 감당했다는게 말이 되지 않았다. 아직 몸이 다 자라지 않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오러를 사용한 기습에 성공하고, 슐리펜이 의표를 찔러서 그렇지 정말로 하늘탑이 두 사람의 무덤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간발의 차로 살아남은 것에 대한 여운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으니까. 심호흡한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별의 가호는 어떻게 뚫은 거냐?”
“아까 말했던 대로, 그냥 들어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슐리펜은 말 그대로 휘둘렀더니 가호가 찢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로난처럼 물을 베듯이 하지는 못하고, 굉장히 두꺼운 가죽을 자르는 것처럼 힘이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잘 좀 생각해 봐. 평소랑 다른 점 뭐 없었어?”
“으음···.”
슐리펜이 침음을 흘렸다. 로난이 조바심을 내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과 구원자, 아벨을 제외한 타인이 가호를 파훼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슨 조건을 충족시킨 건지, 슐리펜이 자신도 모르고 있던 새로운 힘에 뜬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이것이 어쩌면 세상을 구할 대발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놈들과 맞서 싸울 수 있다.’
로난은 당시의 참극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로라 하는 강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거인들은 불과 스무 날 만에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국의 군대가, 대마법사가, 천상의 피조물이라 불리우는 드래곤들이 희멀건 대머리들에게 패배한 가장 큰 이유는 그 빌어먹을 방어막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 가공할 파괴력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공격이 안 통하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해야 했으니까.
‘무슨 변수가 일어난 거지?’
로난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생각을 정리해놔야 했다. 평소와는 달랐던 점을 찾아야 했다.
가열된 그의 두뇌가 어제부터 오늘을 통째로 훑었다. 아드렌의 입국과 오르세와의 만남, 용왕과의 신나는 추격전에 이르러 조금 전의 전투까지.
“···잠깐만.”
불현듯 하나의 차이점이 벼락처럼 로난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시선을 내린 그가 슐리펜의 검을 쳐다보았다.
“혹시 오늘 거기에 내 피 묻지 않았냐?”
“뭣이?”
슐리펜이 눈썹을 치켜떴다. 확실히 단서라 칭할 사건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투병 중인 구원자가 낫기 위해서는 형제인 아벨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카인과 아벨, 그리고 로난 본인까지 이렇게 세 명은 별의 가호와 마법을 잘라 버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정체불명의 힘이 혈액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맹랑한 망상에 불과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그가 슐리펜에게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콰아아아앙!! 갑자기 벽이 무너지며 거대한 덩어리가 쏟아지듯 들어왔다. 얌전히 누워 있던 알론의 시체가 역겨운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화들짝 놀란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팔, 뭐야?!”
【커헉, 크억!】
낮고 굵은 기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비늘로 뒤덮인 몸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찢겨나간 날개의 피막을 본 로난이 당혹성을 뱉어냈다.
“오르세?”
틀림없는 마룡 오르세였다. 상처 몇 개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지만, 하얀 얼음이 환부를 감싸고 있는 덕에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 굵직한 목덜미 위에서 익숙한 얼굴이 쏙 올라왔다.
“오, 오르세! 일어나야 해요. 이대로 가다간···!”
【크흐···나도 알고 있다. 마법사.】
오르세가 쿨럭거리며 대답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엉망이 된 아셀의 모습에 로난의 눈이 커졌다.
“아셀?”
“로, 로난?! 슐리펜? 왜 여기에···!”
“그렇게 됐다. 그 여자는 왜 같이 있어?”
로난이 물었다. 그의 시선은 아셀에게 기댄 채 늘어져 있는 여인에게 향해 있었다. 용왕의 심복인 나란소니아였다.
그녀는 의식을 잃었는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등이 흥건하게 피로 젖어 있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나란소니아의 합류를 보지 못한 로난으로서는 정황을 알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그런 걸 물어볼 새는 없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천둥이 소리 내어 말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질없는 저항을 멈춰라.】
세 사람과 한 드래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뻥 뚫린 벽 너머에서, 아마도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드래곤이 날갯짓을 하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너희의 종점이니까.】
아지다하카가 말했다.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운데와 오른쪽 머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위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씨발.”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과거 보았던 거인의 피부처럼 섬뜩한 백색이었다. 심복으로 보이는 드래곤들이 주변을 선회하고 있었다.
서서히 밝아오는 밤하늘 위로는 이질적인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멤돌고 있었다. 비가 아닌 무언가 하늘에서 내려올 것을 암시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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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나바르도제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한 달 만에 취한 수면에서 막 일어난 참이었다. 도저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늘의 요새인 드리무어의 전선 안쪽으로 수십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가 즐비한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외우주의 괴물을 척살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이자 일상이었으니까.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그녀의 눈앞에 깔려 있는 시체들은 괴물들이 아니라 함께 싸우던 불멸자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함께 하늘을 날던 동포들, 평화보다는 대의를 택한 엘프. 약속된 평안함을 등지고 세상을 구하고자 모인 동료들은 모두 갈기갈기 찢긴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혈족마저도. 나바르도제의 시선이 브니하르도에게 향했다.
【내 딸아.】
【어, 어머니···.】
브니하르도가 입을 열었다. 몇 없는 생존자 중 한 명인 그녀는 몸으로 별의 갑옷에 난 구멍을 틀어막고 있었다. 거인이 돌파하며 생긴 균열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들러붙어 제지하려 했지만, 그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키에에엑!”
“카르륵!”
구멍 뒤편에서는 그새 몰려든 괴물들이 또 하나의 검은 벽을 이루고 있었다. 역대 몰려든 것 중 가장 많은 수였다. 예리한 이빨과 발톱이 철컹거리며 비늘을 씹을 때마다 브니하르도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새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몸으로 터진 둑을 막는 소년이 나오는 옛이야기를 연상케 했다. 벙쪄 있던 나바르도제가 가볍게 손짓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브니하르도를 옆으로 밀어냈다.
【어, 어머니! 이러면 균열이!】
그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과연 다음 일은 브니하르도의 예상대로 진행되었다. 콰아아아! 정체되어 뭉쳐 있던 괴물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아!”
“커르륵! 크르렉!”
형용할 수 없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기괴망측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몰려오는 괴물들의 먹구름은 당장에라도 드리무어를 휩쓸어 버릴 것 같았다. 나바르도제가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감히···.】
대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빨려드는 소리가 별빛 아래 번지고 있었다. 서서히 팽창하는 화염 주머니 안쪽으로 잉걸불을 연상케 하는 광채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서, 설마!】
사태를 파악한 브니하르도가 어깨를 움츠렸다. 입으로 불을 뿜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제자리에서 신음하는 생존자들을 요새 안쪽으로 옮겼다.
괴수의 무리가 나바르도제의 눈앞에 당도하는 순간이었다. 다물려져 있던 그녀의 입이 벌어지며 화염의 해일이 쏟아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세상에 처음으로 빛이 탄생하는 순간을 연상케 하는 섬광이 우주 한구석을 밝혔다.
【으윽!】
브니하르도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날개를 활짝 펼쳐 다른 동료들의 망막이 녹지 않게 보호해 주었다. 단말마의 비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시야를 뒤덮어 버린 화룡의 불은 일 초도 지나지 않아 괴물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후우, 폐에 남아 있던 잔불마저 뱉어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이들을 소집해 균열을 막아라. 지금 바로 아드렌으로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