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51)
254. 강림(2)
#254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스스로를 두아루라 칭한 거인이 날개를 펼쳤다. 다시금 불어닥친 광풍에 대기가 요동쳤다. 충격에 사로잡혀 있던 드래곤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저, 저 놈은 뭐야?】
【일격에 하늘탑을···!】
믿을 수 없는 위력이었다. 하늘탑이 기울고 있었다. 용의 도시가 세워졌을 적부터 존재하던, 영원토록 그 곧은 몸을 세우고 있을 것 같던 구조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하늘탑은 단순히 높기만 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용왕을 비롯한 드래곤들, 셀 수 없이 많은 종복의 거처로 사용되는 고탑은 아드렌의 상징이자 자긍심이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들은 두아루와 무너지는 하늘탑 중 어디를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결론이 지어졌다. 드래곤의 무리가 두 개로 갈라졌다.
【우리가 놈을 처치하겠다. 붕괴를 막아라!】
【아, 알았다.】
그들은 인원을 나눠서 한쪽은 거인에게, 다른 한 쪽은 하늘탑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동했다. 미리 연습한 것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원래 용의 세계에서 무리 행동 따위는 저급한 생물이나 한다고 여겨지고는 했지만, 지금은 그따위 알량한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었다.
부서져 가는 도시 위를 용의 그림자가 가득 메웠다. 두아루의 신형이 수십 마리의 드래곤에게 둘러싸여 가려졌다. 파괴적인 마법이 작렬할 때마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
머지않아 다른 한쪽도 하늘탑에 도착했다. 거인의 창이 폭발을 일으켰던 자리는 상어에게 물어뜯긴 고래의 옆구리를 연상케 했다. 절대 가벼운 파괴는 아니었지만, 기우는 속도가 느려서 아직은 붕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래곤들이 탑을 둥글게 에워쌌다. 마력을 끌어모은 그들의 뿔이 각자의 비늘과 같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이들부터 행동을 개시했다. 몸이 바위와 광석으로 뒤덮인 어스 드래곤들이 발을 굴렀다.
【하늘탑은 우리의 긍지다. 무너지게 두지 마라!】
【제기랄, 내 알이 아직 저 안에 있다고!】
쿠구구궁! 산을 방불케 하는 크기의 암석들이 호수의 수면을 찢으며 솟아났다. 숲 드래곤이 날개를 펼치자 여기저기서 두텁고 억센 식물이 자라나며 탑의 외벽을 휘감기 시작했다.
마법 하나하나가 경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소리 없는 주문이 영창될 때마다 발현되는 마법이 하늘탑을 지탱하거나 보강하고 있었다. 힘이 강한 드래곤들은 직접 탑을 밀거나 덩굴을 문 채 기우는 반대 방향으로 당기고 있었다.
워낙에 탑이 거대한 탓에 효과는 미비했다. 그래도 조금씩은 기우는 속도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쿠구구구···천천히 기울던 하늘탑이 한순간 정지했다.
【머, 멈췄다!】
드래곤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실패할 줄 알았는데, 이걸 어찌어찌 해낼 줄이야.
【저쪽은 아직인가?】
【뭔가 조용한데. 이미 잡은 게 아닐까 싶군.】
하늘 저편에서 울려 퍼지던 굉음이 더는 들리지 않았다. 일을 마친 그들이 두아루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려던 차였다. 쉬이이익!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섬광 한 줄기가 탑의 뿌리 부근에 처박혔다.
【이, 이것은!】
드래곤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아까 본 것과 같은, 빛으로 된 창이었다. 그들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창을 구성하는 광채가 거세지며 폭발이 일어났다. 호수의 물보라, 굉음과 함께 터져 나온 빛의 기둥이 구름 위까지 솟구쳤다.
【허, 허어어억!】
폭발에 휘말리지 않은 드래곤들이 경악했다. 빛의 기둥은 머지않아 안개가 흩어지듯 사그라졌다.
【맙소사···.】
물이 반절 이상 날아간 호수 안쪽에 살아 있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면을 둥둥 떠다니는 비늘조각이나 부러진 뿔만이 여기에 드래곤이 있었다는 정보를 알려 주고 있었다.
연기까지 사라지자 완파된 탑의 벽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궁! 붕괴가 재개되었다. 하늘탑은 아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막아보려 해도 역부족이었다. 뒤늦게 두아루가 있는 쪽을 쳐다본 드래곤들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새하얀 거인은 생채기 하나 없이 건재한 모습으로 하늘 위에 기립하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한때 이름을 떨치던 동포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훼손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저것이 드래곤인지, 정육점에서 팔기 위해 아무렇게나 썰어 놓은 고깃덩이들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시체에서 스며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두아루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저항을 멈춰라. 덧없는 이들이여.』
두아루가 말했다. 그를 중심으로 빛의 장창 수십 개가 일정한 간격을 둔 채 회전하고 있었다. 적막이 내려앉았다. 참상을 본 드래곤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이, 이건 아니야. 나는 물러나겠다···!】
【당장 죽여주마!!】
칠 할은 격분하며 달려들고 삼 할은 도망쳤다. 두아루가 그들을 향해 팔을 들자 주변을 회전하던 빛의 창들이 일제히 쏘아졌다.
사실 그들의 선택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두아루의 창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단지 등으로 받아내느냐, 가슴이나 배로 받아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퍼버벅-! 하늘을 가르며 날아온 두아루의 창이 드래곤들의 몸에 적중했다. 연쇄적으로 울려 퍼지는 폭발음이 학살의 재개를 알렸다.
용왕 아지다하카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잠식되지 않은 두 개의 머리가 격분하며 소리쳤다.
【하늘탑이 무너지고 짐의 신하들이 죽고 있다-】
【네놈은 왜 가만히 넋을 놓고 있는 거냐!】
지옥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충직했던 부하들은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창을 피해 접근해도 기괴한 방어막과 날갯짓에서 비롯된 광풍이 거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건 아니었다. 전쟁을 꿈꾸던 용왕이 보기에도 그들은 부질없는 개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당장 탑의 붕괴를 막고 부하들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몸의 통제권을 빼앗은 세 번째 머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잠자코 구석진 곳으로 이동해서 오르세와 싸우느라 소진된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세 번째 머리는 두아루에게 달려든 마지막 드래곤이 폭사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나서도 되겠지. 저 정도로 날뛰었으면 힘이 충분히 빠졌을 테니까.】
【뭣이···!】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좌절에 빠져 있던 두 머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네놈 설마···이걸 위해서-】
【모든 상황을 좌시했던 거냐?】
【그래. 어차피 놈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나 뿐이니까. 위험한 싸움을 할 바에는, 나머지 말을 소진시켜서 적을 지치게 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
감정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아지다하카의 두 머리가 노성을 터트렸다.
【네놈이 기어코-】
【최소한의 도리마저 져버릴 셈이냐!】
【듣자하니 네놈이라는 표현은 조금 거슬리는군. 나는 너다, 아지다하카.】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비웃음뿐이었다. 세 번째 머리의 말을 들은 아지다하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나를 몸에 자라난 기생 버섯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나는 나바르도제를 꺾고자 하는 네 열망에서 태어난, 틀림없는 너의 일부다.】
【뭣이···!】
【저 머나먼 곳에서 온 힘이 나를 깨웠지. 내게 있어서 나바르도제를 꺾는다는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왜냐하면 네가 그것을 바랬으니까. 이해되나?】
세 번째 머리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새롭게 자라난 인격이 아닌, 용왕 본인에게서 기인한 인격이라 말하고 있었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머리들이 말을 삼켰다. 설마 그런 진실이 있을 줄이야. 감정에 삼켜지지 말라는 옛 금언이 그 여느 때보다 절실하게 와 닿고 있었다.
드래곤을 거의 처치한 두아루는 이제 도시에 남아 있는 생존자들을 핥듯이 내려보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장창을 손에 쥔 채. 세 번째 머리가 툭 내뱉었다.
【간다.】
파아아앙-! 불현듯 용왕의 날개가 폭발하듯 펼쳐졌다. 거인 못지 않은 강풍이 폐허가 된 도시 위를 휩쓸었다. 변색된 비늘은 찬란한 황금빛이 아닌 달처럼 창백한 백색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한 번의 날갯짓만으로 떠오른 거체가 두아루를 향해 쇄도했다.
【건방진 짓거리도 여기까지다!】
세 번째 머리가 포효했다. 그의 입 안에 태양이 고이기 시작했다. 협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나머지 두 머리도 브레스를 쏠 준비를 했다.
『그대는.』
막 아래로 창을 던지려던 두아루가 고개를 들었다. 용왕의 압도적인 거구는 날개에서 일어나는 광풍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접근하고 있었다.
쾅! 머지않아 용왕과 별의 가호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장막에는 손상이 없었으나 워낙에 체급 차이가 많이 나는 탓에 두아루는 쭉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파아아아···! 용왕이 오른팔을 높게 치켜들자 그의 손아귀가 환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손바닥 안에 집중된 어마어마한 마나는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며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오르세와 싸우며 익힌 기술이었다. 두아루가 다시 자세를 잡으려는 찰나, 용왕의 손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얀 호가 장막에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그대로 내리꽂힌 두아루의 몸이 지면에 처박혔다.
【사라져라!】
동시에 벌어진 용왕의 입에서 세 줄기의 브레스가 쏟아져 나왔다. 콰아아아-! 한곳으로 모여 증폭된 브레스가 두아루를 덮쳤다. 열기 때문에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며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광선을 토해내던 세 번째 머리가 승리를 확신하던 차였다.
푹! 광선을 가르며 날아온 빛의 창이 용왕의 옆구리에 박혔다.
【커억···!】
세 머리의 눈이 커졌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브레스가 한순간 끊어졌다. 비늘을 관통한 창이 내장을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덧없는 자여.』
고고고···지면에 뚫린 구멍 위로 두아루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상아처럼 흰 그의 피부 위에는 여전히 어떤 상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 번째 머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두아루는 어떤 대답도 남기지 않은 채 그대로 등을 돌려 날아가 버렸다.
【네놈, 거기…】
세 번째 머리가 말을 이으려던 차였다. 별안간 옆구리에 박혀있던 장창이 환한 빛을 내뿜었다. 뭘 대처할 새도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솟구친 빛의 기둥이 아지다하카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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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드디어···.”
서북 교구의 주교 파르제네가 무릎을 꿇었다. 그를 따르는 평신도들도 제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했다. 고개를 들자 저 멀리 아드렌의 상공에서 창을 던져 대고 있는 두아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별이여. 부디 마음껏 날뛰시기를.”
파르제네가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별의 도래의 효시가 쏘아졌다. 갑자기 교주께서 계획을 전면 수정했을 때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아지다하카의 열등감과 집념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실로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몸을 일으킨 파르제네가 입을 열었다.
“가자. 본부로 복귀한다.”
그는 아드렌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부하들과 함께 탈출하던 중이었다. 이제 섬의 가장자리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가면 준비해 온 비공정이 나타날 터였다. 문득 이상함을 느낀 파르제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부하들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파르제네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만신창이가 된 청년 두 명이 나란히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녕.”
“무슨···.”
사납게 생긴 청년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파르제네가 헛숨을 들이켰다. 여기까지 올 때까지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두 사람은 모두 지옥의 솥단지에서 막 기어올라온 것처럼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넝마처럼 찢어진 부위 너머로는 크고 작은 상처로 뒤덮인 몸뚱어리가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출처 모를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농도 깊은 적색은 그들이 피를 수도 없이 덧칠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놈들은 뭐지? 둘의 면면을 살피던 파르제네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너희가 왜 여기에···!”
자세히 보니 두 사람 다 하늘탑에서 난동을 부리던 놈들이었다. 뒤늦게 주변의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 있는 자는 자신뿐이었다. 함께 기도를 올리던 신도들은 모조리 머리 없는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로난이 말했다.
“드래곤 열한 마리한테 쫓겼거든. 정신 차리고 보니까 여기더라고.”
“열두 마리였다.”
가만히 있던 슐리펜이 수의 오류를 정정해 주었다. 그들은 막 용왕이 보낸 추격대를 떨쳐낸 차였다. 숨을 거칠게 들이 내쉬던 파르제네가 입을 열었다.
“미친 자식들! 광풍이···”
그가 권능을 발동하기 위해 시동어를 외치려는 차였다. 슐리펜의 손에 쥐어진 칼자루가 까딱거리더니 바람 한 줄기가 그의 혀를 스치며 지나갔다.
촤악! 공중에서 한 바퀴를 회전한 혓바닥이 바닥에 떨어졌다. 통통한 살덩어리를 본 파르제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어억···!”
피가 튀었다. 절단면을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들이닥쳤다. 당장 기절하고 싶었지만, 주교 자리는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격통을 이겨낸 그가 허리춤에 끼운 메이스를 뽑아드는 순간이었다. 이미 품속까지 파고든 로난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몸과 분리된 파르제네의 머리가 공중을 날았다. 천천히 기운 몸뚱어리가 제자들의 주검 위로 쓰러졌다.
“···결국 이 지랄이 났군.”
피를 대충 닦아낸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뒤쫓기는 새에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용왕과 오르세는 어디 갔으며 하늘탑은 또 왜 무너진 건지.
로난은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머리가 사라져 버린 파르제네의 주검 위에 오줌을 갈겼다. 시선을 올린 그가 두아루를 바라보았다. 맨질거리는 대머리를 보아하니 자신이 먼젓번에 만나본 족속이 맞았다.
“오랜만이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바짓춤을 올린 로난이 도시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