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52)
255. 격돌(6)
#255
【···크으으, 윽.】
아지다하카의 가운데 머리가 눈을 떴다. 사방에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부옜다. 퀴퀴한 공기 속에는 눅진한 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그는 어느 넓은 공간 속에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있었다. 축 늘어진 모가지가 버려진 그네처럼 흔들거리고 있었다. 검붉은 피가 벌어진 이빨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어떻게 된 거지?’
아지다하카가 신음했다. 브레스를 머금은 채 거인에게 달려들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무슨 빛이 번쩍거렸던 것 같은데 그 이후가 생각나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동상에 걸린 것처럼 머리 아래의 감각이 없었다. 아무리 세 번째 머리에게 통제권 대부분을 빼앗겼다지만, 아예 감각이 단절된 것은 처음이었다.
나머지 두 개의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눈알을 좌우로 굴려 보니 자신과 같은 꼴로 대롱거리는 머리들이 보였다. 전부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는데,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걸 보면 살아는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먼저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아지다하카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아드렌인가 싶을 정도로 생소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처럼 뻥 뚫린 데다 휑한 공간이었다. 거무죽죽한 석벽은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황금으로 뒤덮인 자신의 거처와 여러모로 정반대의 인상을 주었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불현듯 아지다하카의 눈이 커졌다. 여기는 아드렌의 지하에 깔린 하수도였다.
【···아.】
무언가 떠오를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머릿속을 필사적으로 더듬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시야 한구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또 걸작이군. 시찰이라도 나온 건가?”
【으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아지다하카가 시선을 돌렸다. 웬 노인 한 명이 뒷짐을 진 채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너는···!】
아지다하카의 눈이 커졌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본질은 드래곤이라는 것을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굉장히 낯익었다. 그의 정체를 알아채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리브리헤? 설마 그대인가?】
“오랜만일세. 벗이여.”
알리브리헤가 미소지었다. 충격을 받은 아지다하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거의 천 년 만의 재회였다. 마지막으로 헤어진 두 용은 막 해츨링을 벗어난 시기에 어울려 지낸 적이 있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눈을 꿈뻑거리던 아지다하카가 말을 이었다.
【그대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 늙은이 몰골은 또 뭐고? 아드렌에는 언제 들어온 건가?】
“조금 됐다네. 자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머리가 하나뿐이라 대화가 편해서 좋군. 올려보며 말하기 피곤하니까 여기 좀 눕겠네.”
【···성격은 이전 그대로군. 멋대로 해라.】
알리브리헤는 정말로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입에서 새어나온 핏물을 뒤집어쓸 수도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벙찐 채 그를 내려보던 아지다하카가 입을 열었다.
【혹시 짐이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있나? 머리 아래로 감각이 없는데.】
“그럴 수밖에. 자네는 죽어가고 있으니까.”
【뭣이.】
아지다하카가 헛숨을 들이켰다. 갑자기 죽는다니 이게 무슨 헛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알리브리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자네의 생명력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일세. 나바르도제 님 다음 가는 용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어. 그 괴물의 공격을 옆구리에 맞고도 살아 있다니.”
【괴물? 아···!】
불현듯 아지다하카의 얼굴이 굳었다. 안개 속에 파묻혀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인의 강림과 무너지는 하늘탑. 나는 네게서 비롯된 존재라는 세 번째 머리의 충격 선언. 부하들을 미끼로 삼아 가며 역전을 노렸으나, 결국에는 처참한 패배로 끝난 싸움.
추락하면서 올려본 밤하늘은 옅은 암청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끝내 바닥과 충돌한 자신은 지면을 부수고 이 하수도에 머리를 처박아 버린 것이었다. 모든 것을 기억해낸 아지다하카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억울하고 분했다. 허나 투지나 호승심은 일어나지 않았다.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쉰 아지다하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허무하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네뷸라 클라지에라는 수상쩍은 놈들과 손을 잡았을 때부터? 아니면 나바르도제를 꺾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제는 왜 나바르도제를 이기고 싶어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를 가만히 응시하던 알리브리헤가 눈썹을 으쓱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미적지근하군. 포기하는 겐가?”
【그대는 모른다. ‘그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알리브리헤의 도발 섞인 어조에도 그는 흥분하지 않았다. 당시의 절망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아지다하카는 온 힘을 끌어모은 브레스를 맞고도 상처 하나 없이 건재하던 거인 두아루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피격당한 옆구리를 볼 수는 없었지만, 끔찍한 상태라는 것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시야가 그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죽어가고 있다는 옛 친구의 말은 아무래도 허언이 아닌 듯했다. 잠시 침묵하던 알리브리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그것도 엄연한 하나의 선택이니까.”
알리브리헤는 딱히 아지다하카를 나무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나와 옛날이야기나 조금 하겠나? 의미 없는 후회나, 내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취조로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잖나.”
【···상관 없다. 이미 다 끝났으니.】
“그래. 좋은 생각일세.”
아지다하카는 묵묵히 동의를 표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끝났고, 마침표를 찍는 방식 따위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옅게 웃어보인 알리브리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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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마법사.】
“네, 네에?”
【너는 저 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겠나?】
오르세가 물었다.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하늘이 머리 위로 펼쳐져 있었다. 그는 여전히 용왕과 그 부하들이 만들어낸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용왕은 갑자기 나타난 거인을 상대하기 위해 오르세를 그냥 방치하고 떠났다. 절호의 탈출 기회였으나, 온갖 질기고 단단한 식물과 광석을 마법적인 힘으로 고정시킨 봉인은 아무리 힘을 줘 봐도 풀리지가 않았다.
아셀은 그의 목덜미와 몸통 사이의 공간에 축 늘어져 있었다. 뭔가를 하고 싶어도 마나를 전부 소진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르세가 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그, 그러니까아···무언가를 찾고 있는 걸까요?”
【찾고 있다라···그런 것 같기도 하군.】
오르세가 주억거렸다. 두 사람의 시선은 저 멀리 날아다니고 있는 거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세 자릿수의 드래곤을 학살한 두아루는 공격을 멈추고 아드렌의 상공을 천천히 선회하고 있었다.
용왕이 격추당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드렌 측의 저항은 끝났다. 두아루의 발밑에는 두 동강이 난 하늘탑과 지옥이 된 아드렌이 드리워 있었다. 하단부만을 그루터기처럼 남긴 채 무너진 하늘탑은 그대로 도시를 가로지르듯이 깔아뭉개 버렸다.
사방에서 자욱하게 피어나는 연기와 불꽃 속에서 찬란했던 이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생존자들의 비명과 절규,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곡성이 영원한 영화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두아루를 응시하던 아셀이 입을 열었다.
“왜···공격을 멈춘 걸까요?”
【내가 알고 싶은 게 그거다. 아직 생존자가 많이 남아 있는데 말이지.】
오르세가 미간을 좁혔다. 저항을 멈췄을 뿐이지, 폐허 위에는 아직 살아남은 사람의 수가 제법 되었다.
헌데 두아루는 용왕을 격추한 순간부터 공격을 일절 하지 않고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마저 산산조각을 내 버릴 것 같던 초반의 기세와는 상반된 행동이었다.
저대로 돌아다니다가 떠나 버리는 걸까? 그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거인을 관찰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멈춰선 두아루가 팔을 뻗었다. 스아아아···다시금 그의 손아귀로 빛의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또, 또 시작한다!”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렀다. 순식간에 연성된 빛의 창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뭐라 할 새도 없었다. 콰아아아앙-!! 두아루가 지면을 향해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발생한 폭발이 지면을 흔들었다.
“흐야아아악!”
아셀이 새된 비명을 터트렸다. 하지만 공격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아루는 같은 자리에 반복하며 빛의 창을 투척했다. 쾅!! 콰아앙!! 굉음이 작렬할 때마다 치솟는 빛의 기둥이 구름을 찢으며 솟구치고 있었다.
“이, 이제 싫어, 제발···!”
아셀은 양쪽 귀를 틀어막은 채 웅크렸다. 오르세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두아루가 왜 저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창을 던지고 있는 장소는 평범한 숲일 뿐이었다. 건물이나 거주자 따위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
그의 기묘한 행동에 관해 고민하던 차였다. 별안간 두아루의 날개 아래로 깃털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떨어져 내리는 빛나는 깃털들은 꼭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이 평범한 깃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번째 깃털이 지면에 착지하는 순간이었다.
파아아아···! 깃털이 닿은 부분에서 백색 광채가 일렁거렸다. 용광로처럼 들끓던 빛 속에서, 덩치가 3m는 될 법한 거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두아루에게서 날개를 떼고 축소시켜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온몸은 빛으로 뒤덮여 있어 이목구비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오오오!”
“저, 저건?!”
마침내 허리를 곧추세운 거인이 괴성을 내질렀다. 아셀이 어깨를 움츠렸다. 깃털이 떨어진 자리마다 거인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뭔가 대단히 나쁜 예감이 들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거인의 수는 수십에서 수백 마리로 늘어났다. 갑자기 그들은 아직도 같은 자리에 창을 던지고 있는 두아루를 뒤로 하고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생존자가 많이 남아 있는 도시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거인들이 달려간 방향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뭐야? 사, 살려 주세···꺄아악!”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아셀이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작은 거인들은 생존자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살해하고 있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손아귀와 다리는 사람들을 걷어차고, 짓밟고, 아예 붙잡아서 산 채로 찢어 버리고 있었다.
콰직! 아이를 끌어안은 채 웅크린 어머니의 위로 거인의 다리가 떨어졌다. 종기처럼 터져 나온 핏물을 본 아셀이 절규를 토해냈다.
“그, 그만둬!!”
아무래도 저항하지 않으면 살려줄 것이라는 추측은 틀린 모양이었다. 당장 구해내야 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용왕과의 전투에서 체내의 마나를 남김없이 소진해 버린 탓이었다.
“아, 안돼···안 돼···.”
아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독한 공포와 절망, 이런 꼴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완전히 정신이 나간 놈이었군.】
문득 두아루를 바라보던 오르세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아셀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되물었다.
“왜, 왜 그래요···?”
오르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우르릉···! 불현듯 지진이 난 것처럼 발아래가 흔들렸다. 폭발로 말미암은 진동이 아닌, 저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몸을 뒤트는 듯한, 근원적인 흔들림이었다.
콰아아아앙! 다시 내리꽂힌 빛의 창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착탄지에는 이미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침음을 흘리던 오르세가 입을 뗐다.
【···놈은 아드렌을 통째로 추락시킬 생각이다. 섬의 중심에 있는 부유석을 파괴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