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55)
258. 격돌(9)
#258
“검을 거둬라. 이제 너희에게는 아무런 적의도 없으니.”
용왕이 말했다. 한 입에서 나오는 두 남녀의 목소리가 기괴했다. 인간으로 폴리모프를 하면 오우거처럼 머리가 두 개 달려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변할 줄이야.
코웃음을 친 로난이 칼자루를 더 강하게 쥐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고?”
“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나 보군.”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를 포함한 일행은 아드렌의 외곽에 있어서 용왕의 선포를 듣지 못했다. 용왕이 두아루에게 격추당하는 것까지는 보았던 아셀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죠? 당신은 분명히···.”
“옛 친우의 조언과 미진하게나마 베풀었던 은덕이 나를 살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지. 이제 짐과 신하들의 목적은 저 침입자 놈을 처리하는 것뿐이야.”
그리 말한 용왕이 두아루를 올려보았다. 살짝 충혈된 눈동자에서 이전의 오만함이나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물론 로난은 그 말만 듣고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당한 것이 오죽 많았어야지.
실제로 아드렌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좆같은 일은 눈앞에 있는 쌍대가리가 원흉이었다. 문득 가만히 대화를 듣던 나란소니아가 끼어들었다.
“괜찮다면 그 부분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폐하.”
“윤허한다.”
나란소니아의 요청을 들은 용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개가 잘리는 중상을 입었던 그녀의 옷은 여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구했을 당시에는 거의 시체였는데, 그새 기력을 차리고 빨빨거리는게 용할 따름이었다. 로난 일행을 가로막고 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먼저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지.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발게니아의 강철 나란소니아는 너희에게 감사를 표한다.”
“갑자기 낯간지럽게 왜 이래?”
“짚을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하니까. 이제 우리 측의 정황에 대해 설명해 주자면···”
나란소니아는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던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자신과 용왕의 계획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했다.
그들은 두아루를 기습하기 위해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뒤 여기까지 왔다. 더 작은 동물로도 변할 수 있었지만, 마주치는 빛의 거인들을 처치하고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가 최선이라고 했다.
“폐하께서는 완전히 눈을 뜨셨다. 내가 보장하지.”
“너무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솔직히 댁도 그렇게 신뢰가 넘치는 인물은 아닌데.”
“내 긍지는 목숨을 구해 준 이에게 거짓을 고할 정도로 수준 낮지 않다.”
“···헹.”
로난이 픽 웃었다. 나란소니아의 백청색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표표했다. 가만히 그녀를 마주 보던 로난이 칼을 내렸다.
아까 감사 인사부터 느꼈지만, 드래곤. 그것도 용왕의 최측근으로 일하는 긍지 높은 용이 저런 말까지 하는 것은 어지간히 진심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로난은 그녀를 한 번 패배시킨 전적까지 있었으니. 칼을 집어넣은 그가 용왕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목적이 같은 거군.”
“그렇지. 안 그래도 여력이 부족했는데 잘 된 일이다.”
용왕이 주억거렸다. 로난의 시선이 그의 뒤편으로 이어진 드래곤들에게 닿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보이는 것보다 훨씬 수가 많았다. 폴리모프한 용의 행렬은 숲속 깊숙한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백 마리가 조금 넘는 드래곤은 모두 용왕의 외침을 듣고 모여들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다들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두아루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어 가며 분투한 탓이었다.
허나 그들의 세로로 좁혀진 동공에는 반드시 침입자를 처리하고 고향을 지키겠다는 투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평소 같았다면 불멸의 생을 살아가는 드래곤들은 결코 품을 일이 없는 감정이었다. 로난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 전력이면 가능할지도.’
희박하게나마 승산이 생겼다. 어쩌면 저 좆같은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작전을 정리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너희 계획도 기습이라는 건 잘 알겠어. 그래서 저 방어선은 어떻게 돌파할 생각이야? 쫄따구들은 어떻게 뚫는다고 쳐도.”
로난이 검지를 뻗어 두아루를 가리켰다. 족히 수백에서 수천 마리는 되어 버리는 빛의 거인들이 구름처럼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 뒤편으로는 네뷸라 클라지에의 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별의 가호가 두아루의 주변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역시 명불허전의 원본이었다. 잠시 뜸을 들인 용왕이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없다. 그래도 모두의 화력을 일점에 집중시키면 파훼할 수 있지 않겠나?”
“젠장, 꼬치구이 집 차릴 일 있냐? 그렇게 해서 뚫릴 거면 이 사달도 안 났지.”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각오와 비례 되는 무모함이었다. 주변에 있던 부하들의 표정이 급격하게 험악해졌으나 용왕이 그들을 제지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해. 굉장히 위험하지만.”
“상관없다. 알려다오.”
용왕이 말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르세가 헛웃음을 쳤다. 하도 기가 막혀서 상황의 못마땅함에 대한 짜증도 사라져 버렸다.
저게 내가 알던 아지다하카가 맞나? 눈을 떴다는 나란소니아의 말이 허언은 아닌 듯했다. 무겁게 끄덕거린 로난이 입을 뗐다.
“좋아. 다들 모여봐.”
임시 동맹이 결성되었다. 주력이 될 인원이 로난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두아루의 강림이라는 사상 초유의 재난은 드래곤이라는 종족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오만함과 우월주의적 성향마저 억눌러 버렸다. 로난은 최대한 짧고 명료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니겠지. 인간.”
설명 내내 곳곳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더없이 진지한 로난의 표정과, 용왕과 나란소니아의 지지가 혼란을 잠식시켰다. 오르세의 어깨 위로 피어나는 흉악무도한 살기도.
“마지막으로, 전부 가면 안 돼. 부유석이 파괴되거나 일이 잘못됐을 때 사태를 수습할 인원이 필요하니까.”
“음, 조를 두 개로 나눠야겠군.”
시간이 없었기에 회의는 금새 끝났다. 결론을 내린 인간과 드래곤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두아루를 칠 습격조와, 뒤처리를 담당할 수습조였다.
콰아아아앙-! 그 와중에도 두아루의 창은 부유석 위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준비는 이것으로 끝났다. 심호흡한 로난이 입을 열었다.
“시작하자.”
[시작한다.]용왕의 전음이 모두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 동시에 습격조에 배치된 드래곤들의 몸이 일제히 부풀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비늘이 피부를 뒤덮으며 머리 위로 뿔이 자라나는 장면은 나름 장관이었다.
불현듯 용왕의 어깨 위로 또 하나의 머리가 자라났다. 이윽고 드래곤의 형태로 변한 그의 모습에,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머리 하나는 어디다가 팔아 드셨어?”
【비싼 대가를 치르고-】
【떼어냈지.】
용왕이 웃었다. 조금 자조적으로 느껴지는 웃음에서는 감출 수 없는 피로가 묻어나고 있었다.
인간 모습일 때는 미처 몰랐는데, 두아루에게 당했다는 옆구리의 상처는 로난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일어나서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하려던 말을 삼킨 로난이 피식 웃었다.
“멋진걸.”
그리 중얼거린 로난이 칼로 자신의 팔뚝을 가볍게 그었다. 가느다란 자상 위로 붉은 피가 울걱거리며 올라왔다. 그의 곁에 있던 두 사람이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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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루는 지상을 내려보고 있었다. 네 장의 날개가 퍼덕일 때마다 불어닥치는 광풍이 주변의 구름을 모조리 밀어내고 있었다.
그가 자리한 드높은 상공에서는 아드렌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서 불길과 비명이 솟구치는 용의 도시는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고오오···!”
“고우오옷!!”
천 마리가 넘는 빛의 거인이 그의 주위를 해자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부유석의 파괴에 집중하는 두아루를 대신하여 경계 및 소탕을 대신해줄 소환수들이었다. 부지런히 떨어져 나오는 깃털에서는 새로운 빛의 거인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가 창을 던진지 머지않아 굉음이 울려 퍼졌다. 부유석의 파괴 상태를 슬쩍 확인한 두아루가 기계적으로 팔을 뻗었다.
다시 모여든 주변의 광자가 두아루의 손에 빛의 창을 쥐어 주었다. 그가 같은 지점을 겨냥하고 팔을 휘두르자,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창이 부유석 위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앙-! 다시 한 번 섬광이 솟아올랐다. 빛과 연기가 가라앉은 자리에서는 더 넓어진 구덩이, 아까보다 약간 더 균열이 간 부유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서너 번만 던지면 부서질 것 같았다. 침몰하듯 하강하고 있는 아드렌의 지반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그의 손아귀 안쪽으로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창을 쥔 그가 팔을 쳐드는 순간이었다.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포효성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
두아루가 잠시 멈칫거렸다. 빛 거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들려와서 방향을 종잡기가 어려웠다.
그들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날아가려는 차였다. 콰아아아아아!! 주변을 둘러싼 숲 속에서부터 제각기 다른 색상의 급류가 쏘아져 나왔다. 콰과광! 화염, 전격, 얼음 등 저마다 다른 속성으로 이루어진 브레스들은 그대로 당황하고 있는 거인들에게 직격했다.
“그, 그오오옷!”
“고옥!”
어마어마한 화력이었다. 미처 피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거인들이 빛으로 화하며 소멸했다. 다채로운 색으로 물든 하늘에서는 불길의 아지랑이와 서리 섞인 바람이 뒤엉키고 있었다. 빛 거인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이었다.
【지금이다!】
다시금 쩌렁쩌렁한 외침이 밤하늘을 흔들었다. 동시에 수백 마리의 드래곤이 숲의 지붕을 찢으며 날아올랐다. 달빛에 늘어진 용들의 그림자가 지면을 뒤덮었다.
【침입자를 아드렌에서 몰아내라! 우리의 고향을 지켜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 지어다!】
콰아아아! 노호를 터트린 드래곤들이 다시금 브레스를 내뿜었다. 전방향에서 쏟아진 원소의 급류가 거인들을 덮쳤다. 허나 이번에는 처음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한 번 당해본 거인들은 진열을 짜고 서로의 몸을 방패로 활용하며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고오오오오!”
거인들이 포효했다. 그들의 신체 윤곽이 분노를 표현하듯 격하게 일그러졌다가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기습으로 수를 줄였다지만 아직도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거인이 남아 있었다.
【크아아아아!】
“고우오오오!!”
둘 중 어느 쪽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드래곤 측은 주변을 빙빙 돌면서 브레스를 쏘아 봤자 효과가 미미하다는 걸 알았고, 거인들은 그냥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들의 손에 빛으로 이루어진 창칼이 쥐어지고 있었다.
【모두 죽여라!】
아드렌에서 두 번째로 빠른 용으로 알려진 마하카디아가 날개를 접고 속도를 더했다. 그녀의 일각뿔이 어느 거인의 가슴을 꿰뚫는 것을 시작으로 백병전이 개시되었다.
콰아아앙! 종말을 앞둔 아드렌의 상공에서, 두 세력이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