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58)
261. 수습(1)
#261
“마지막이군. 이 정도면 되나?”
새벽공기가 차가웠다. 멀어지는 하늘 속에서는 부스러기 같은 별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나란소니아가 부러진 석조 기둥 하나를 멀리 내던졌다.
쿵!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기둥이 산더미처럼 쌓인 잔해 위로 떨어졌다. 한때 아드렌을 구성하던 파편들은 모두 그녀가 치운 것이었다.
“네.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셀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원판 위를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마법진에 쓰여진 문자나 그림을 짱돌로 문질러 수정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원판을 가리고 있던 장애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의식에 사용되었던 마법진이 그 온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조금 전, 마법진을 발견한 아셀은 나란소니아에게 원판 위에 있는 잔해를 전부 치워 달라고 부탁했다. 나란소니아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의아해했지만, 결국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아드렌은 여전히 추락하고 있었다. 왜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인명 구조에 할애하는 대신, 요 조그만 인간 마법사에게 투자했는지는 그녀 본인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피를 많이 흘렸나.’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를 잡아 보고 싶었던 걸까? 누군가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 됐다.”
그때 바닥의 문자 하나를 긁어낸 아셀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마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몸에 영 힘이 없었다.
짱돌을 내려놓은 그가 마법진의 중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나란소니아가 질문했다.
“그래서 정확히 뭘 하려는 거냐. 이 마법진으로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운이 좋으면요. 처음 보는 양식이긴 하지만 이건 기본적으로 응집/방출식 회로에요. 외부의 마력을 대상에게 모아 주면서, 그 일부를 신호화해서 발산하는 거죠. 강력하지만 구조 자체는 단순해서, 제가 조금만 손을 보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마법진에 대해 설명하는 아셀은 말을 한 번도 더듬지 않았다. 그는 마법진을 수정하여 힘을 모으는 효력만 남기고, 신호를 발산하는 기능은 삭제해 버렸다고 말했다.
“방출과 응집이···뭐?”
나란소니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아셀의 입에서 나온 전문적인 용어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아셀이 무슨 짓을 하려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녀가 물었다.
“그러니까···너는 지금 폐하가 했던 의식을 재현하겠다는 건가?”
“네. 별이 완전히 저물어 버리기 전에 시작해야 해요. 그···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아셀이 말했다. 긴 속눈썹 아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란소니아가 갸웃거렸다.
“부탁이라니, 뭘 말이냐?”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말리지 말아 주세요.”
앳된 목소리는 결의에 차 있었다. 나란소니아가 잠시 흠칫거렸다. 기세부터가 달라진 것이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지.”
“에헤헤···감사합니다.”
아셀이 웃었다. 티 없이 맑은 웃음에서는 영문 모를 초연함이 느껴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마저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것. 한순간 나란소니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잠깐, 너 설마···.”
그녀가 말을 맺기 전에 아셀이 눈을 감았다. 어린 천재는 다시금 자신과 마법만이 존재하는 무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조막만 한 입술 사이로 노래하는 듯한 주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저물어 가던 별빛이 한결 밝아졌다. 주변의 대기와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한 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건···!”
나란소니아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품을 수 있는 총량을 아득히 웃도는 마나가 저 작은 인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셀을 중심으로 번져 나온 빛무리가 거푸집에 부어진 쇳물처럼 마법진을 밝히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작할게요.”
주륵. 아셀의 콧방울 아래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
“뒈지고 싶으면 와 봐.”
두아루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푸른 피가 하늘을 적셨다. 오르세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네놈···!】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베어 버렸다. 머리 없는 몸뚱어리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숨을 고르던 로난이 얼굴에 묻은 피를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후.”
오랜만에 느끼는 푸른 피의 감촉은 전생과 다름없이 개좆 같았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솟구치던 두아루의 머리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찰나 로난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떻게···.』
두아루의 눈은 아직 희번득하게 띄여져 있었다. 로난은 대답하는 대신 상스러운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런 걸 설명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아.』
두아루의 머리는 그대로 몸통과 함께 지상으로 추락했다. 한창 난전을 벌이던 빛 거인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당황한 드래곤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떠, 떨어진다! 인간이 해냈어!】
【뭐야, 정말인가? 폐하와 마룡은 어떻게 됐지?】
【맙소사···!】
경악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드렌의 모든 용이 달려들어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던 괴물이 머리 없는 주검이 되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상공에서 머무르고 있는 로난과 오르세의 모습은 어느 위대한 거장이 세운 조각상처럼 보였다.
【크아아아아!!】
【커허어엉-!】
순수한 감격이 그들의 가슴 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드래곤들은 날개를 펼치며 포효하는 것으로 갈채를 보내는 것을 대신했다. 막 터오른 여명이 폐허가 된 아드렌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흥.”
슐리펜이 실소했다. 언제나 냉정하던 그조차 벅차오르는 감정을 완벽히 억누르지 못했다. 용왕의 머리 위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헌데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불현듯 용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봐, 예의를 아는 검사야-】
【괴물 놈은 죽었느냐?】
슐리펜이 시선을 내렸다. 용왕은 취한 듯이 휘청거리며 천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그의 왼쪽 뒷다리와 뱃가죽 아래로는 여전히 눅진한 선혈이 맺혔다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네 개의 눈동자는 막이 낀 것처럼 혼탁했다. 원래 시들시들하던 비늘은 한층 더 색이 바래 있었다. 슐리펜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당신···.”
【하하하···반응을 보아하니-】
【그런가 보구나···.】
용왕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부옇게 물든 그의 시야 속에서는 하늘의 청색과 여명의 황금색, 숲의 암녹색만이 뒤엉킨 채 추상적으로 번져 있을 뿐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슐리펜이 입을 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겁니까?”
너무 빨리 상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무리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미처 몰랐다.
“폐하?”
슐리펜이 한번 더 되물었지만 용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딱히 무게를 잡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단순히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마시고 내뱉는 공기에서는 피 맛이 났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날개를 퍼덕이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왕으로서의 책무를 마쳐야 한다는 사명감이 한계에 다다른 육신을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신하와 백성, 함께 싸워 준 이들이 안전해지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었다. 부유석도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으니 아직은 가망이 있었다.
【돌아가자···아직-】
【구할 수 있다···.】
용왕이 하강하던 와중이었다. 불현듯 추락하던 두아루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읊조림이 새나왔다.
『그 분의···뜻대로···』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변화는 확실히 일어났다. 거의 지면에 다다른 두아루의 몸뚱어리가 삐걱거리며 팔을 뻗었다. 주위의 광자가 모여들며 그의 손아귀에 빛으로 이루어진 창 한 자루가 쥐어졌다.
이전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았다. 기존의 창이 산을 통째로 날려버렸다면, 이건 농가 하나만 제대로 부숴도 다행인 수준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허나 그에게는 아직 부술 수 있는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아주 천천히 목표물을 겨냥한 두아루가 팔을 휘둘렀다.
쉬이익···손을 떠난 빛의 창이 힘없이 날아갔다. 마침내 곤두박질치던 몸통과 머리통이 지면에 처박혔다.
퍼억-! 뼈와 살이 폭발하듯 찢어지며 푸른 피가 터져 나왔다. 오체가 분시된 두아루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꺼졌다. 푹! 그와 동시에 날아가던 창이 부유석에 난 균열을 파고들었다.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그가 뭐라 외치려던 차였다. 콰아아아아앙-!!! 땅이 뒤집히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거의 부서져 가던 부유석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부유석 내부에서 맥동하던 마나가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뭐, 뭐야?!】
【다들 조심해라!】
드래곤들이 동요했다. 우르릉! 아드렌의 지면이 물결치듯 흔들리고 있었다. 하강에 가속도가 붙으며 지면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새끼가 마지막까지···!”
불찰이었다. 설마 목이 잘렸는데 움직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하유테 그 새끼도 죽었었는데, 지독한 자식 같으니라고.
주인이 죽었음에도 빛 거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되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것처럼 난폭하게 변했다. 그들은 성난 벌떼처럼 날뛰며 다시 드래곤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옷!!”
“고우오오오옥!”
하지만 싸움이 재개되지는 않았다. 이제 드래곤 측은 거인과의 싸움에 시간을 소진할 필요가 없었다. 상황을 파악한 용왕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크흐···부유석이 부서졌다-】
【후퇴해라! 날개 달린 모든 이들은 인명 구조에 착수하라!】
두 머리의 입에서 핏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얼어 있던 드래곤들이 하나둘씩 이성을 되찾았다. 백여 마리의 드래곤은 거인들을 무시하고 일제히 아드렌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부유석이 파괴된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용왕의 말마따나 모든 것이 박살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목숨을 구해야 했다. 문득 인명이라는 단어를 들은 로난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스치며 지나갔다.
“아셀.”
아셀은 일행 중 유일하게 수습조로 빠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기로 아셀에게는 아직 자신의 몸을 간수할 만큼의 마나가 남아 있지 않았다. 친구의 이름을 읊조린 로난이 다급하게 외쳤다.
“빌어먹을, 오르세!”
【나도 알고 있다!】
오르세가 급강하했다. 그는 블링크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며 와글거리는 빛 거인의 무리를 돌파했다. 펑! 펑! 펑! 오르세와 로난의 형체가 그림자로 흩어졌다 나타나는 것을 반복했다.
“비켜, 개새끼들아!”
“고아아악!”
로난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바람을 맞으면서도 칼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토막난 거인들의 몸뚱어리가 빛으로 화하며 사라졌다.
오르세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아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가지에 도달했다. 이 잡듯이 지상을 훑어보던 로난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그만두란 말이다!”
“···나란소니아?”
로난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지의 한복판에서, 본모습으로 변한 나란소니아가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있었다.
“인간, 정녕 죽고 싶은 거냐?!”
그녀의 앞에는 아셀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발치에서는 하늘탑의 정상에서 보았던 마법진이 순도 높은 백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건···!”
로난이 눈썹을 치켜떴다. 단지 아셀의 엉덩이가 바닥에서 1m정도 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백지처럼 창백해진 그의 얼굴에서는 일곱 줄기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코와 입, 귀, 그리고 눈에서도.
왜소한 몸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네뷸라 클라지에 특유의 반짝거리는 마나가 사방에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지랄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막아야 했다. 이를 악문 로난이 소리 높여 외쳤다.
“아셀!!”
【마법사!】
오르세가 급강하했다. 그가 다시 한번 블링크를 발동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콰가가가각! 갈고리가 지면을 긁어내는 소리와 함께 아드렌의 추락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