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Genius Swordsman RAW - Chapter (27)
28. 그란 카파도키아(1)
#28
“나비로제?”
“교관님을 붙여라. 그리고 교내에서는 금연이다.”
구릿빛 피부와 연회색 머리카락. 전대 검성 나비로제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의 등에는 본인의 신장보다 긴 대태도가 비스듬이 메어져 있었다.
담뱃대를 털어낸 로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에 뵙네요. 여긴 무슨 일이에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로난. 제국 검술 수업은 어떻게 된 거지?”
“너무 잘 했다고 쫒겨났어요. 내 서러워서.”
주머니를 뒤적이던 로난이 조기 이수증을 나비로제에게 내밀었다. 꼬깃꼬깃한 이수증을 본 나비로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좀 시시했던 모양이군. 예상은 했다만.”
“모르던 걸 알게 되서 좋긴 한데 뭔가 성취하는 맛이 없네요. 교관님의 기술을 독학할 때는 재밌었는데.”
로난은 여관에서 나비로제의 회전검을 따라하던 때를 떠올렸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나비로제가 입을 열었다.
“검을 뽑아라.”
“예?”
“대련이나 한 번 하지. 어차피 할 것도 없지 않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 대련을 한다고요?”
나비로제는 대답하는 대신 대태도의 자루에 손을 올렸다. 로난도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았다. 흑철검의 상태를 본 나비로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계속 그걸 휘둘러 온 건가?”
“아, 예. 이번 주말에 새 검을 구하기 전까지는.”
“무기를 소중히 다뤄라. 검은 검사의 생명이다.”
“에이, 휘두르는 사람이 중요하지 칼은 다 거기서 거기죠. 물론 최대한 튼튼한 걸 고르기는 할 건데.”
“뭐라?”
갑자기 나비로제의 얼굴이 굳었다. 칼자루를 놓은 그녀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량을 먼저 파악하고 싶었건만···대련은 취소다. 칼을 이리 내라.”
“엇.”
나비로제는 말도 없이 로난의 검을 잡아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흑철검의 검신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손끝에 거친 상흔이 느껴질 때마다 나비로제의 미간이 좁혀졌다.
“관리가 소홀···아니, 그냥 안 한 수준이군. 왜 그 많은 검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명검을 찾아다니고, 왜 자신의 애병을 자식처럼 아낀다고 생각하나?”
“실력이 부족해서요?”
“···하긴 너는 모를 수도 있겠군. 소드 유저의 단계조차 이르지 못했으니까. 무기에 마나를 먹일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
그 말을 들은 로난의 눈동자가 커졌다.
“뭐야, 알고 있었어요?”
“그래. 마나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도 그런 용력을 발휘한다는 게 믿어지지는 않지만.”
“젠장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예요. 저도 미치겠다구요.”
“그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는 쓸 수 있게 될 테니까. 다만 지금부터 좋은 무기를 고르고 관리하는 버릇을 들이지 않는다면, 나중에 마나를 운용할 때 곤욕을 치를 거다.”
나비로제가 호숫가로 걸어갔다. 넓게 펼쳐진 호수에는 봄바람이 만들어낸 파문이 일고 있었다. 발도 자세를 취한 나비로제가 입을 열었다.
“잘 봐라. 무기의 중요성을 알려 줄 테니.”
쉭! 나비로제의 팔이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횡으로 날아간 검기가 호수의 중앙에 떨어졌다. 촤아악! 부채꼴의 물보라가 치솟아 오르며 호수 건너편의 숲을 가렸다.
“오오.”
로난이 감탄했다. 놀라우리만치 깔끔한 검격이었다. 나비로제가 흑철검을 로난에게 던졌다.
“생각보다 더 못 써먹을 물건이군. 이건 그냥 철토막이다.”
“너무하시네. 교관님 검이랑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요?”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생의 기억을 대조해 봐도 충분히 훌륭한 일격이었다. 현재로서 나비로제는 틀림없이 이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검사일 터였다.
스르릉. 나비로제는 말없이 자신의 대태도를 뽑아들었다. 그녀의 팔이 다시금 시야에서 사라졌다. 같은 자세. 같은 기술.
-촤아아악!
다른 결과.
물의 장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호수의 끝에서 끝까지 치솟은 물보라가 태양을 가렸다. 수중을 향해 날아간 검기는 그대로 수면에서 호수 밑바닥까지 이어진 경사면을 만들었다.
로난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니미, 이게 뭔···.”
로난은 푸른 비탈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저 아래쪽에 물이 없는 호수의 밑바닥이 보였다.
자상을 입은 진흙이 튀어오르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바람을 경험한 물풀이 살랑이고 있었다. 재수없게 토막난 물고기 몇 마리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내 수업을 신청해라 로난. 원래는 2학년부터 수강할 수 있지만, 특별히 허가해 주겠다.”
쏴아아아아···하늘을 가렸던 물보라가 비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호숫가를 거닐던 학생들이 머리를 가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닫히는 호수를 배경으로, 나비로제가 말했다.
“다만 조건이 있다. 족히 반평생은 휘두를 수 있는, 네게 맞는 무기를 지참할 것.”
****
“···그런 일이 있었다.”
로난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필레온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주말.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아셀과 마르야는 무작정 로난의 손에 이끌려 나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뺘아!”
로난의 어깨에는 엊그제 돌아온 시타가 앉아 있었다. 나비로제의 이야기를 들은 아셀이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굉장하다아…무기가 중요하긴 하구나.”
“그래, 마나를 다룰 줄 알면 중요하더라고. 나도 이제 무기를 좀 가려서 쓰기로 했다.”
“좋은 생각 같아. 그런데 저번 주는 어땠어? 시간표가 무시무시하던데···.”
아셀 또한 로난의 살인적인 시간표를 알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로난이 안주머니에서 웬 종이 다발을 꺼내서 아셀에게 내밀었다.
“이건?”
“해고 통지서.”
구겨진 종이들은 죄다 조기 이수증이었다. 아셀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다 몇 장이야? 제국 검술, 제국 창술, 기초 격투술, 방패술 기본···.”
“아홉 장. 덕분에 시간표가 아주 그냥 텅텅 비어 버렸다.”
로난이 투덜거렸다. 꽉꽉 차 있던 시간표에는 X자가 수두룩하게 그어져 있었다. 모두 조기 이수 처리가 된 과목이었다.
“다른 수업 괜찮은 거 있으면 소개 좀 시켜 주라. 체력 단련만 주구장창 하고 있어.”
조기 이수 당한 수업의 대부분은 기초적인 무예 과목이었다. 그는 아바르의 수업과 비슷한 맥락으로 조기 이수 처리를 당했다.
– 더는 내가 가르칠 것이 없군.
– 자네 같은 생도가 더 없어서 다행일세. 내가 굶어 죽었을 테니까.
– 솔직해지자 우리. 원래 창을 다룬 적이 있니?
마르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아바르의 지옥 훈련에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아주 배가 불렀지. 내가 이래서 천재들이 싫다니까.”
“아니, 뭐 어려운 거면 모르겠는데 단순하잖아.”
“동기들이 널 얼마나 부러워 하는지 알아? 아마 너가 마나까지 잘 다뤘으면 절반 정도는 자퇴했어도 안 이상한 상황이라고.”
마나라는 말을 들은 로난이 조용히 담뱃대를 꺼내들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빠지는 것 같았다. 눈치 없이 끼어든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직 마나 감응이 잘 안 돼?”
“···그래. 내가 원숭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더라. 근본적인 뭔가 잘못된 거 같다던데.”
주 2회. 제국에서 손꼽히는 교수들의 수업에도 불구하고 로난은 끝내 마나 감응을 하지 못했다. 동기 중 소드 유저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학생은 그 뿐이었다.
“마나 감응도 못하는 차석. 좆나게 웃기지 않냐. 수석 나리께서는 열한 살에 오러를 개화했는데.”
로난이 자조적으로 낄낄거렸다. 아셀이 양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언젠가···아니, 조만간 꼭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알아 인마.”
로난이 담뱃대로 아셀의 머리를 툭툭 쳤다. 답답하기는 했지만 나름 도전하는 보람이 있었다. 마르야가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 말했다.
“마나 감응에 도움 되는 포션 같은 거 있으면 가져다 줄게. 그래서 지금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마, 맞아. 나도 궁금했어.”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멈출 예정이 없어 보였다. 아셀은 점점 음침해지는 거리를 불안한 눈빛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아.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기왕 갈 거면 다 같이 가는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지.”
“어디를?”
안주머니를 뒤적이던 로난이 금속패를 꺼내들었다. 금속패의 정체를 알아본 마르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난은 공중에 던졌던 패를 다시 낚아채며 말했다.
“좀 괜찮은 무기를 만들어줄 만한 곳.”
****
슐리펜이 말했던 대장간은 공방 거리의 가장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삼십 분 정도를 더 걸은 끝에 [망치 망치 망치]라는 멍청한 이름의 대장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가 아닌가?”
세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이상했다. 다 쓰러져 가는 것은 둘째치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로난이 중얼거렸다.
“그 자식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는데···우선 들어가 볼까.”
대장간에 들어선 로난이 주위를 살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듯 했다. 화로는 차갑게 식어 있었고, 벽에 걸려 있는 병장기들은 모조리 녹이 슬어 있었다.
“아무도 없어요?”
로난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때 저 안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 한 명이 머리를 붙잡은 채 걸어 나왔다.
“으윽, 숙취야···니들은 뭐냐?”
로난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있는 거한이었다. 위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아 드러난 상반신에는 털이 북슬북슬 나 있었다. 인간보다는 차라리 짐승에 가까운 행색이었다.
“히이익···.”
겁에 질린 아셀이 화로 뒤로 숨었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내에게서는 술과 철, 그리고 지독한 개 냄새가 났다.
사내가 짜증스레 되물었다.
“왜 왔냐니까.”
“무기 구하러 왔어요. 여기가 칼을 그렇게 잘 만든다 하던데.”
“하아···별 재수가 없으려니까. 장사 안 한지 꽤 됐다. 화로에 불 꺼진 거 보면 몰라?”
사내가 바닥에 침을 뱉었다. 로난은 심호흡을 하며 화를 억눌렀다. 여기서 지랄을 했다가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도 있었다.
안주머니를 뒤적인 로난이 금속패를 꺼내들었다.
“자, 봐요.”
“엉?”
로난은 금속패를 사내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한순간 사내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로난과 금속패, 뒤에 있는 아셀과 마르야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그랑시아 가문의 어음패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예?”
“그래서 너희가 그랑시아냐? 젠장, 정보가 어디서 새는 지 모르겠구만. 썩 꺼져라 꼬맹아.”
사내가 가랑이를 벅벅 긁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그가 마르야와 아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가능하면 저것들은 두고 가고.”
“저거?”
“저 야들야들한 애새끼들 말이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데.”
사내가 천박하게 낄낄거렸다. 아셀과 마르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두 사람을 돌아본 로난이 입을 열었다.
“입 조심해 형씨. 그러다가 평생을 불구로 살 수가 있어.”
“맛있어 보이는 걸 맛있어 보인다 한 게 잘못이냐? 꼬우면 덤벼 봐.”
“그럴까.”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흑철검의 칼끝은 그대로 사내의 양 어깻죽지를 향해 쏘아졌다. 검격이 사내의 피부에 닿는 순간이었다.
-챙그랑!
손으로 충격이 전해짐과 동시에, 무언가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로, 로난! 칼이!”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그의 손에는 반토막난 흑철검이 쥐어져 있었다. 부러진 검신의 반쪽이 나무벽에 처박혀 있었다.
“···제법인데.”
사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검격이 쏘아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사내를 노려보던 마르야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 가, 갑옷?”
분명 아무것도 입지 않았던 사내의 상반신에 갑옷이 입혀져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사내가 옷을 입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사내는 로난에게 피격당한 부분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고작 한 번 막는 걸로 인챈트가 풀리다니. 보강을 조금 더 해야겠어.”
“무슨 요술을 부린 거냐?”
로난이 미간을 찌푸렸다. 흑철검이 부러진 걸로 봐서 보통 갑옷은 아니었다. 마도로스 경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경도를 지닌 듯 했다.
하지만 뚫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로난이 반 토막 난 검을 재차 휘두르려는 차였다. 사내가 양 손을 들어 올리며 손사래를 쳤다.
“워, 워, 그만둬. 합격이니까 들어와도 좋아. 제기랄, 내 살다살다 이런 쾌검은 처음 보는군.”
“합격?”
“그래. 척 봐도 그랑시아가 아닌 놈이 그랑시아의 패를 내미는데 막 들여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실력 좀 보게 도발 한 번 해본 거야. 어음패는 누가 줬어?”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뒤쪽의 아셀과 마르야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저 애새끼들한테 사과해.”
“참, 그렇지. 미안해 여러분. 본심은 아니었어.”
사내는 곧장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두 사람이 얼떨떨하게 사과를 받아들였다. 로난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 주었다.
“슐리펜.”
“그 깍쟁이 도련님이? 별일이군.”
사내가 끌끌 웃으며 망치로 자신의 다리를 내리쳤다. 이번에도 망치가 다리에 닿기 전에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또 다른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를 완전히 감싸는 형태였는데, 상하의가 이어져 있어 기사단이나 입을 법한 멋들어진 갑옷이었다. 로난이 칼을 내렸다.
“대장장이 웨어울프라니, 이건 또 신박하군.”
“뭐야, 눈치챘어?”
“개 냄새가 여간 지독해야지. 네가 이 대장간의 주인인가?”
사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평정을 잃지 않는 로난을 흥미롭다는 듯 내려보았다.
“아니. 나는 그냥 도제야.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건 아래쪽에 있는 영감들이지.”
“그럼 대장간 일을 안 돕고 왜 여기 있는 거지? 문지기 역할이라면 다른 사람을 세워도 될 텐데.”
“이번에 개발한 투명 갑옷을 시험해보고 싶었거든. 원래는 그랑시아 가의 기사들에게 기술을 한 방 날려달라 하려고 했는데, 너희가 오더라고.”
그 말과 함께 사내의 몸이 변형을 시작했다. 주둥이가 늘어나고, 온몸에서 회갈색 털이 솟구쳤다.
더 높아진 머리통은 천장에 닿을 지경이었다. 거의 웨어라이온이나 웨어타이거에 가까운 덩치였다.
“히이이이익!”
“느, 늑대인간?”
“뺘아아아···!”
아셀과 마르야가 기겁하며 물러섰다. 시타가 위협하듯 털을 부풀렸다. 로난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갑자기 변신한 거지?”
“내 걸작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이거 봐, 체격이 달라졌는데도 벗겨지거나 부서지지 않잖아.”
그러고 보니 확실히 신기하기는 했다. 괴상한 갑옷은 저절로 이음새가 벌어지며 수인화된 사내의 체격에 정확하게 맞춰졌다. 사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때, 끝내주지 않나? 마도 제련이야말로 기술의 최전선이지. 고리타분하게 쇠만 두들기는 대장장이들은 이제 살아남을 수 없어.”
사내의 표정만 봐도 직업에 대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피식 웃은 로난이 반토막난 흑철검을 칼집에 꽂았다.
“확실히 그랑시아 가의 무기를 전담해서 만들만 하군.”
“뭐야, 그것도 알고 있었나? 크하하하! 나도 내 일터가 자랑스럽기는 해.”
큼직한 꼬리가 좌우로 훙훙 흔들리고 있었다. 입을 귀 옆까지 찢은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디디칸이다.”
“로난.”
“좋아 로난. 정확히 대장간을 방문한 목적이 뭐지?”
“쓸만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정확히 찾아왔군. 들어가 보자고. 거기 있는 친구들도.”
“들어간다고?”
“그럼 여기가 정말 우리 일터인 줄 알았나? 따라와 봐.”
세 사람과 한 마리는 디디칸을 따라 대장간 안쪽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볼 때는 굉장히 좁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넓었다.
디디칸은 화로 뒤편에 멈춰섰다. 그가 로난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내 옆에 붙어. 이거 한 번에 다 탈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
일행이 디디칸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뭉쳤다. 화로의 벽면을 더듬거리던 디디칸이 특정 구간을 꾹 눌렀다.
건물이 미세하게 진동하나 싶더니,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